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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전 대표님, '전태일'을 또 죽일 겁니까"

[힘내요 '소금꽃'] "당신과 아버지의 꿈이 진정 '복지국가'라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 본부 지도위원의 목숨을 건 고공농성이 벌써 반 년째다. 김 지도위원이 있는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은, 지난 2003년 김주익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지회장이 회사 측의 정리해고에 맞서 129일 동안 농성하다 목을 매 숨진 곳이다.

그날 이후, 김 지도위원은 한번도 따뜻한 방에서 잔 적이 없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그는 고(故) 김주익 씨가 죽었던 자리에 섰다. 회사는 변한 게 없다. 한진중공업은 막대한 수익을 내면서도 노동자를 잘랐다. 이익은 오로지 주주의 몫일 뿐이었다.

김 지도위원이 선 자리,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은 그래서 우리 시대의 한 상징이 됐다. 사회안전망이 없다시피한 한국에서 일자리를 잃는 것은 곧 죽음이다. 이땅에서 노동자에게 선택은 두 가지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비굴해지거나, 아니면 목숨을 걸거나. 그리고 한진중공업 사태는 이런 두 가지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프레시안>은 한진중공업 사태에 관한 독자 기고를 받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삶과 투쟁,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대한 생각 등을 다룬 내용이면, 누구나 글을 보낼 수 있다. 이 메일 주소 mendrami@pressian.com 또는 kakiru@pressian.com로 보내면 된다.

이상이 복지국가 만들기 국민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이 글을 썼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이 글에서 이 본부장은 김진숙 지도위원을 '우리 시대의 전태일'이라고 일컬었다. 그리고 그는 박 전 대표가 이야기하는 복지국가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우리 시대의 전태일'을 살려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정리해고로 내쫓긴 노동자와 그 가족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복지국가란, 그 자체로 모순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 본부장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님, 안녕하신지요. 요즘 우리나라의 여름은 특히 더운 것 같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박근혜 전 대표께서는 200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사를 통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으며 "아버지가 그토록 노력하셨지만 경제성장 자체가 목적은 아니셨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2007년 7월에 여러 동료들과 함께 복지국가소사이어티라는 조직을 공식 출범시키면서 대한민국이 '보편적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는 '복지국가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전후하여 드디어 대한민국 정치사상 최초로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둘러싼 정책 논쟁이 무상급식 문제를 쟁점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당시의 무상급식과 보편적 복지 논쟁은 감회가 남다른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불과 3년 전 대선이었던 2007년 대선에서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은 세우자는" 내용의 '줄푸세' 공약을 제시하셨던 박근혜 전 대표께서 불과 2년 만인 2009년에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였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듣고서, 많은 국민들은 "아, 이제야 뭔가 되려나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편지를 드리는 이유는 박근혜 전 대표께서 아버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우리시대에 실천하셔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전태일이 85호 크레인 위에 있습니다

▲ ⓒ손문상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시대의 '전태일'을 살리는 것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하시기 한 해 전이었던 1970년 11월 13일입니다. 청계천 평화시장의 한 청년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꿈을 헛되이 하지 마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신의 몸을 불살랐습니다. 그가 바로 22세의 청년 전태일입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통치하던 대한민국의 노동부가 노동자의 민원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여 청계천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민원을 넣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좌절했습니다. 그 좌절을 딛고 그는 이후에 '바보회'라는 노동자들의 친목동호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좌절이 실패한 후, 22세의 청년노동자는 '근로기준법'과 함께 활활 타올랐습니다.

아마도 박근혜 전 대표님께서도 아시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52세의 또 다른 '전태일'이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노동자도 인간이다'라며 절규하고 있습니다.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180여 일이 다 되도록 1평짜리 크레인 위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지상에는 수백 명의 용역 깡패들과 전경들이 와 있으며, 무력진압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경찰은 용산 참사처럼 불상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압의 의지를 꺾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52세의 또 다른 전태일은 오직 '인간 존엄'을 위해 싸우고 있을 뿐입니다.

22세의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최후에는 자신의 몸을 불살랐습니다. '내가 아닌 모든 나를 위하여' 그는 결단의 순간을 선택했었습니다.

인혁당 사건이 박정희 전 대통령 치하에서 민주주의가 압살 당했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면, 전태일의 분신 사건은 박정희 전 대통령 치하에서 압살 당하고 있었던 노동자의 존엄을 고발한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의 '경제성장'이 노동자의 죽음 위에 이룩된 것임을 알리는 슬픈 사건이었습니다.

한진중공업의 조남호 회장은 노동자 170여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통보한 바로 다음날 174억 원의 주식배당금을 챙겼습니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도입된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을 경우에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에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노동자를 부품처럼 써먹다가 버렸습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평생을 바쳐 땀 흘려 일했던 회사에서 졸지에 쫓겨난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표님, 아버님의 꿈이 진정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습니까? 그리고 박근혜 전 대표님의 꿈이 진정 '생애주기별 복지'를 실현하는 것입니까?

제 꿈도 이 땅에서 '보편적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나라가 온 국민이 행복한 선진복지국가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 꿈을 위해 지금까지, 저는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을 연구하고 실천하고자 몸부림 쳐 왔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복지국가는 노동자의 존엄이 위협받고 있는 참혹한 노동현실에 대해 눈물 흘리고 근원적 개혁을 추진하는 국가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생애주기별 복지는 일자리의 양극화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6월 11일 도착한 1차 희망버스 참가자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다. ⓒ노동과세계(이명익)

진정한 복지국가는 '노동자의 존엄'을 위해 눈물 흘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박근혜 전 대표님, 우리시대의 전태일을 살립시다.

22세의 청년 노동자 전태일은 근로기준법과 함께 불꽃이 되었지만, 오직 '동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고 있는 52세의 전태일, 김진숙을 살립시다. 박근혜 전 대표님의 아버님 시절이었던 1970년에는 전태일이 끝내 불꽃이 되어야 했지만, 2011년의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재, 박근혜 전 대표님은 집권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이십니다. 수백 명의 노동자가 '정리해고'의 위협에 노출되어, 수백 개의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는 이러한 '정치적인' 사태를 책임 있게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동자의 존엄에 대해 눈물 흘리지 않고, 노동자의 대량해고 사태에 대해, 게다가 부도덕한 기업주의 비인간적인 만행에 대해 침묵하면서 '생애주기별 복지'와 '복지국가'를 말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설득력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또 다른 '부마항쟁'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표님,

한진중공업은 부산에서 가장 거대한 공장입니다. 그리하여 부산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시대의 전태일에게 '무슨 일'이 발생한다면, 2011년 혹은 2012년에는 '부마항쟁'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전태일을 사랑하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의 분노와 분노가 연대하여, 부산에서, 마산에서, 경기도에서, 서울에서, 2012년 총선 때 모두가 '종이짱돌'을 하나씩 들고,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부당한 정부여당에 대해 분노의 '종이짱돌'을 던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1979년 부마항쟁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끝냈던 것처럼 분노한 부산의 민심은, 아니 대한민국의 노동자와 서민들의 민심은 2012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심판하고, 대선에서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한나라당의 대선후보까지도 기어이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표께서 꿈꾸시는 그 복지국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꿈꾸었다는 그 복지국가가 '노동자'도 포용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리해고로 내쫒기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복지국가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1970년에는 죽어야 했던 전태일, 2011년에는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뉴시스
박근혜 전 대표님이 알고 계신 바로 그 '복지국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꿈을 넘어 우리시대의 가장 올바른 정치노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님의 '생애주기별 복지'가 일부 국민만을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노동자를 포함하여 우리 국민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저와 동료들은 지난 20년 동안 보편주의 의료보장제도와 각종 국가 복지를 제도화하는 데 노력해왔으며, 2007년 (사)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창립한 이후로는 보편주의 '역동적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을 확산하고 있습니다. 저는 박근혜 전 대표님께서 이를 참고하시길 기대합니다.

한나라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이시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따님이시고, 그리고 복지국가를 주창하고 계시는 박근혜 전 대표님께서 진정으로 85호 크레인 위에서 힘겹게 불의와 싸우고 있는, 인간의 존엄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우리시대의 '전태일', 김진숙을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2011년 7월 4일
이상이 (복지국가 만들기 국민운동본부 공동본부장) 올림

<프레시안>은 한진중공업 사태에 관한 독자 기고를 받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삶과 투쟁,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대한 생각 등을 다룬 내용이면, 누구나 글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 mendrami@pressian.com 또는 kakiru@pressian.com로 보내면 됩니다. 기고가 채택된 분에게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책 <소금꽃나무>(후마니타스 펴냄)를 드립니다.

☞ <소금꽃나무> 프레시안 서평

"민들레가 죽어가는 땅에선 어떤 나무도 못 살아"

그날 부산 영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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