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다리를 꼬고 앉으면 다른 사람이 불편하니 삼가해 달라'는 노인의 정당하고 예의 바른 권유에 청년은 폭언과 위협으로 대응했다. 청년의 반응은 마치 아비 죽인 원수를 대하는 듯해 차라리 비현실적적으로 느껴졌다. 무엇이 이 청년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 청년 안에 '인간에 대한 예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상실함으로써 이 청년은 스스로를 비(非)인간의 자리로 밀어내었다. '지하철 폭언남'사건은 단순히 개인의 퍼스낼리티 차원으로 환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하철 폭언남'의 출현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가장 큰 책임과 권한이 있는 제도권 교육이 완전히 파산했음을 보여주는 징후적 사건이다. 제도권 교육이 인간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예의인 노인에 대한 공경조차 가르치는데 철저히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 폭언남이 노인 한 명을 상대로 인격 상실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상급노동단체, 시민사회를 상대로 예의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조 회장은 국회가 마련한 청문회에 버젓이 불출석해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노동력뿐인 노동자에게 해고가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또한 해고당한 노동자의 가정과 지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 회장이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한진중공업 사태가 지금처럼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보를 양보해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더라도 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나 노동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현재와 같은 극단적인 반목이나 대립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 회장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근거로 정리해고를 강행하면서도 이에 따르는 갈등이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 조 회장이 이렇게 나오는 데에는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재벌의 힘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물론 재벌의 힘이 비할 바 없이 세졌다고 해서 모든 재벌들이 조 회장처럼 하지는 않는다. 한진중공업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조남호 회장에게 인간-노동자를 인간으로 취급한다면 말이다-에 대한 예의가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도 까마득한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김진숙은 20년 지기(知己) 두명의 죽음 이후 8년 동안 보일러를 때지 않고 냉골에서 겨울을 났다고 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란 이런 것이다.
무뢰한(無賴漢)들이 지배하는 세상, 인간에 대한 예의가 사라진 세상에 인간의 존엄성이 뿌리내리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딱 그런 상황이다.
▲ 크레인 위에서 손을 들어 보이는 김진숙 지도위원. ⓒ민주노총 부산본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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