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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다리 마비·시력 장애, 그런데도 삼성은…"

"1만명당 1명 걸리는 희귀병, 삼성에서만 환자 3명?"

법원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에게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데 이어 또 다른 삼성전자 노동자 2명이 산업재해 요양을 신청했다.

삼성 반도체 공장 등에서 화학물질을 다뤄온 이들은 희귀병인 '다발성경화증'에 걸렸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는 이미 삼성전자 반도체, LCD 공장에서 일하다가 다발성경화증에 걸렸다는 제보가 세 개째 들어와 있다.

공유정옥 산업의학 전문의는 "다발성경화증은 의사가 일생에 한 명 볼까 말까 할 정도로 매우 드문 질환"이라며 "그런데도 한 회사에서 일했다가 반올림에 다발성 경화증에 걸렸다고 제보한 사람이 벌써 3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종이 마스크는 납 냄새를 막아주지 못했다"

반올림은 29일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삼성전자 다발성경화증 피해 노동자 2인 산재신청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7년에 삼성전자 LCD 기흥공장에 입사해 납땜 업무 등을 하다가 2001년경 재직 중 다발성경화증 판정을 받은 김미선(32) 씨가 증언자로 나섰다.

김 씨는 "가장 노후화된 라인 중 한 곳에서 일했다"며 "불량도 많이 났고, 주로 수동으로 납을 땜질하는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공장 안에 다른 환기시설도 없었고 국소배기장치는 가동하지 항상 납 냄새가 진동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유기용제로 이물질을 제거하면서 심한 화학약품 냄새를 맡았다고 했다. 그는 종이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종이는 냄새를 막아주지 못했다.

2000년 3월 입사한 지 3년 만에 김 씨는 왼쪽 팔다리가 완전히 마비됐고, 병원을 전전한 지 1년이 지나서야 '다발성경화증' 확진을 받았다. 김 씨는 지금까지 5차례에 걸쳐 다발성 경화증이 눈에 재발해 시력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에서 화학물질 등을 다루는 일을 했다가 희귀병인 다발성경화증에 걸린 노동자 2명이 산재 신청을 한다"고 밝혔다. ⓒ프레시안(김윤나영)

공유정옥 전문의는 "다발성경화증은 희귀병이라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질병"이라며 "다만 고도의 스트레스나 화학물질 노출이 다발성경화증의 원인일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다른 건 몰라도 건강 하나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며 "회사에서 일하던 중 갑자기 희귀병에 걸렸으니 납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가족들과 5자매가 모두 건강했고, 입사하기 전 삼성전자에서 받은 건강검진에서도 매우 건강했다는 것이다.

김 씨는 산재신청을 하려 했지만, 회사는 "개인 지병이라 신청해도 (산재 처리가) 안 될 것"이라고 그를 말렸다. 그러나 올해 들어 언론을 통해 반올림이라는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뒤늦게 반올림에 문을 두드렸다. 그는 "눈이 잘 안 보이니 재취업도 할 수 없고,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게 막막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초기 수동설비, 2~3일마다 에러"

지난 2003년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한 박미선(가명‧28) 씨도 다발성경화증 환자다. 반올림에 따르면 박 씨는 "감광제 투입은 원래 엔지니어들의 업무지만, 주 2~3회 정도는 여성 오퍼레이터인 나도 흑갈색 유리병에 들어 있는 감광 용액을 갈았다"고 진술했다. 박 씨는 "내가 일했을 당시 반자동이나 수동 설비를 섰으며, 초기에는 2~3일마다 한 번씩 설비에 에러가 났다"고 밝혔다. 현장에 냄새가 나서 1시간 정도 대피한 적도 있지만, 원인은 듣지 못했고 조치를 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했다.

박 씨는 클린 용액의 이름은 기억했지만 성분은 들은 바 없다고 한다. 용액이 들어 있는 용기와 라벨 모양은 기억했지만, 성분은 작은 글씨의 영어와 일어로 쓰여 있어서 알 수 없었다고 했다.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문은영 노무사는 "박 씨는 신기술 개발라인에서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다"며 "다양한 종류의 화학물질에 노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박 씨는 현재 하지 통증, 보행 장애 등을 겪고 있다. 박 씨는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해도 실신할 정도로 몸이 쇠약한 탓에 기자회견 현장에는 나오지 못했다.

박 씨가 일했던 현장은 집단으로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가 나온 삼성 기흥공장 현장과 같다. 김 씨와 같은 부서 옆 라인에서 납땜 업무를 하다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 씨는 김 씨보다 앞서 산재 불승인 처분을 받고 현재 소송 중이다. 삼성전자 LCD공장에서 일했다가 다발성경화증에 걸린 또 다른 20대 여성 노동자도 올해 4월 '산재를 인정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산재 인정받으려 재판까지 4년…신청단계서 인정해줘야"

그동안 삼성전자에서 각종 화학물질을 다루거나 방사선에 노출되는 일을 하다가 백혈병, 림프종, 재생불량성빈혈, 뇌종양, 루게릭과 같은 희귀질환 등에 걸린 노동자들은 130여 명에 달한다. 그 중 18명이 산재신청을 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계류 중인 2건을 제외하고 나머지 16건에 대해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이에 불복한 노동자와 유족들이 건 소송에서 법원은 원고 2명의 손을 들어줬다. (☞관련 기사 : 법원 "'삼성 백혈병' 산재 맞다…유해물질 지속 노출 탓")

반올림은 "피해자들은 최초로 산재 신청을 접수한 지 4년 만에 산재를 인정받게 됐다"며 "더 이상 이렇게 어렵게 재판까지 와서야 산재로 인정받는 구조가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하는 단계에서 손쉽게 산재로 인정하고 피해보상과 치료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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