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생이 다시 수능공부를 한다. 남들보다 고생해서 들어가긴 했지만, 어느 정도 점수에 맞춘 과가 결국 적성에 맞지 않다고 한다. 캠퍼스와 동아리가 있는 대학생활을 부러워도 한다. 막 불붙은 결심과 희망에 찬물을 끼얹을 수가 없어 독려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말리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쓰고 보니 좀 웃기는 표현처럼 보여도 당시에는 진지하고 나름대로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어머니 친구들은 부러워하기도 했고 솔직히 나도 내심 자랑거리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서 몇 년을 보낸 지금은 내가 대체 그때 뭘 자랑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학교엔 온통 강남·특목고 출신…"황새 쫓는 뱁새마냥 가랑이가 찢어질 판"
대학에서 내가 처음 마주친 건 원하는 과목을 듣기가 거의 불가능한 수강신청, 그래서 경쟁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들었지만, 말하는 교수도, 듣는 나도 서로 민망한 영어수업, 그마저도 교수 한 명에 학생 백 명은 들어찬 대형강의였다. 앉아서 수업을 듣는 그 자체가 고문에 가까웠다. 덕분에 나는 그 학기를 포기했다.
학기를 포기하니 시간이 남았고 그 시간을 함께 보내줄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친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게 실수였다. 학교는 길만 건너면 수백 수천 개의 술집이 널린 곳에 자리 잡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부엉이처럼 밤에만 길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어찌 된 영문인지 이놈의 학교에는 학생이라고는 죄다 강남이나 특목고 출신밖에 없었고 나는 잘못하다간 황새 쫓는 뱁새마냥 가랑이가 찢어질 판이었다. 결국 친구보다는 취미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동아리에 들기로 했다.
고문 같은 대학 생활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붙인 곳, 그러나…
비슷한 일을 겪지 않을 수 있는 동아리를 겨우 찾아냈다. 사회적 문제를 고민한다는 학회였다. 거기서는 좀 인간다운 관계를 맺고 흥미가 붙는 활동을 했다. 하지만 나도 마냥 학교에 다니지 않고 놀 수는 없는 노릇이라 결국 복학을 했다. 때늦은 복학은 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고 나는 점점 동아리방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동아리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는 치열한 학점 경쟁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날 형편이었다. 내가 대학에서 처음으로 정을 붙인 곳에서 학교가 나를 떼어놓은 셈이다.
복학과 동시에 마침 과를 배정받았다. 선호도가 떨어지는지 운이 좋았는지 나는 내가 선택한 과를 갈 수 있었다. 사회학과였다(그곳에서 교수들에게 사회를 보는 방법을 배웠다).
일방적인 학사행정, "학생에겐 어떤 결정권도 줄 수 없다"라는 학과장
학과를 구성하는 교수진은 대체로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편이었다. 덕분에 이전보다 수업이 재미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웬걸. 시간이 흐르면서 학과에 대해 자세히 알면 알수록 정나미가 떨어졌다. '몸의 사회학'을 가르친다던 교수가 성폭력 문제로 징계성 정직을 받지를 않나, 사회학과 타이틀을 달고 있는 곳에서 '젠더'를 가르치는 교수가 없질 않나, 이도 저도 아니면서 수업 내용은 몇 년째 그대로이질 않나, 비정규직 문제를 가르치면서 시간강사를 쓰질 않나.
얼마 전에는 사회학과에서 좀 더 규모가 큰일이 벌어졌다. 학과 새내기들을 의무적으로 새로 지어진 지방캠퍼스에서 1년간 생활하게 하겠다는 일방적 통보가 떨어졌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사회학과 학장님은 놀랍게도 학생들에게는 어떤 결정권도 줄 수 없다는 말을 해서 분란을 싹 틔웠다. 나만 짜증을 느낀 게 아닌 모양이다. 학생총회가 성립됐고 그간의 학과 운영에 대한 온갖 성토가 쏟아졌다. 그 뒤로도 학과 사무실인지 학과장인지가 좀 더 버틴 모양이다. 결국 학생들이 총장실로 들이닥쳤고 그제야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
'스터디 모임', 결국 잠재적 경쟁자…뒤에서 헐뜯고, 견제하고
마침내 남들 다하는 스터디라도 해볼 생각도 했다. 취직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법했다. 스터디를 하는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사정을 들어봤다. 절대로 하지 말자는 결연한 결심이 섰다.
이야기로는 스터디에서는 사람에 대한 견제가 난무한다고 한다. 사회학과 학생들이 많이 하는 기자나 PD 스터디는 서로를 잠재적 경쟁자로 보고 결정적인 아이템을 숨기는 눈치 싸움이 벌어진단다.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을 뒤에서 헐뜯는 경우도 있단다. 이게 또래끼리 할 짓인가 싶었다.
그렇다고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더 이상 대학 졸업장이 취직을 보증하지 않는 상황이니까.
'이름난 대학'도 다를 것 없다
대학 졸업장이 없거나 학벌 때문에 원하는 직장에 취직을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돌을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름난 대학이라고 별로 다를 바 없다. 취직을 위해 졸업 일 년 전부터 준비하고도 졸업 때까지 일자리를 얻지 못해 학기를 연장하거나 졸업을 하고도 도서관으로 나와 취직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지천에 널렸다. 이러니 서로 견제할 수밖에.
떨어지는 이유도 다양하다. 여성이라 떨어지고, 외모가 볼품없어 떨어지고, 학점이나 영어 점수가 모자라서 또 떨어진다. 심지어 내가 아는 선배는 면접에서 노동조합에 호의적인 대답을 했다가 낙방했다. 내가 알기로, 노동조합은 합법이고 조합 결성은 국민의 권리다. 그 선배에게 죄가 있다면 배웠다고 눈치도 없이 그대로 말했다는 것이겠다.
노력을 안 해서가 아니다. 개인의 어떤 잘못 때문도 아니다. 이 판 전체가 미쳐 돌아가고 있을 뿐이다.
갈 곳 없는 대학, 그래서 난 '좌빨'이 됐다
나 같은 사람들이 결국 마지막에 다다르는 곳이 운동이다. 경멸적인 표현으로 '좌빨'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좋은 사람도 많고 사회적 지지도 있었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이 짓도 정말 힘들다. 현실에서는 별 큰 이유도 없이 잡아가고 사이버 세상에서는 인신공격을 당한다. 그게 무서워서 변명을 좀 하자면, 내가 원해서 왔다기보다는 갈 곳이 없어서 떠밀려 왔으니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마나 상황이 안 좋은지 좀 설명을 하자. 일단 우리 학교 출신으로 교과서에 실린 민주화 열사의 추모제에 참석해도 결석계를 받아주는 교수가 거의 없다. 청소노동자들의 최저임금 파업에 참여했더니 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버젓이 교정에 나타난다.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면 '정신이나 차리라'는 말이 돌아온다. 정신이야 차릴 수도 있지. 문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거다.
그래도 나는 버틸만한 축에 속했다. 여성주의 운동을 하던 친구들의 플래카드는 날마다 테러를 당했다. 뉴스를 봐서 알겠지만, 다른 학교 사람들은 심심찮게 징계를 당하기도 한다.
▲ 청소노동자들의 최저임금 파업에 참여했더니 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버젓이 교정에 나타난다. 사진은 파업하는 대학 청소 노동자들. ⓒ프레시안 |
취업 성공한 선배들, 역시 별 것 없다
그러는 사이에 학교를 성공적으로 떠나 취직한 선배들이 생기곤 했다. 신기하게도 가끔 연락을 받고 만나면 그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하루가 멀다고 이어지는 야근, 폭탄주를 강요하는 회식, 음흉한 눈빛의 상사, 보람 없는 노동. 그들은 모두 이직을 꿈꿨다. 실제로 이직에 성공한 경우도 있다. 정말 막다른 골목이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이유는, 이직을 해도 그들이 똑같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결혼하거나 아이가 생긴 선배들은 이직에 대한 욕심을 깨끗이 지운다. 그때부터는 어떻게든 악착같이 회사에 다녀 승진하고 연봉을 더 받을 생각을 한다. 그래야 차를 사고 집을 사고 아이들을 키우니까. 여기서 절망적인 계산이 등장한다. 서울에 직장이 있는 사람이 집을 사려면 일 년에 3000만 원씩 모아도 15년은 걸린다. 보통 그런 계산을 할 때는 일 년에 삼천만 원을 모으는 일이 가능한가와 그러는 동안 피폐해질 삶에 대한 고민은 일단 제외한다.
대학에 '로망'은 없다…'술 먹기 게임' 아니면 '생존게임'뿐
동생에게 솔직한 속마음을 드러낼 용기는 없고 그렇다고 계속 응원만 하자니 속이는 기분이다. 그래서 이 글을 기회로 삼아 읽을지 못 읽을지는 우연에 맡기는 고백을 한다.
대학 가지 마라. 대학에 로망은 없다. 대학 생활은 '술 먹기 게임' 아니면 친구나 나 둘 중의 하나가 끝장이 나는 '생존게임'이다. 주변에 믿을만한 사람도 별로 없다. 교수들은 학생들 이름도 모르기 일쑤고 선후배들은 자기 앞길 가기도 바쁘다.
그렇다고 현실적인 도움이 되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놀라 자빠질 정도로 비싼 등록금을 내고 졸업장을 따도 별 소용이 없다. 학문에 뜻을 두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도 추천을 못 하겠다. 교수들 눈치 보면서 수발들어야 하고, 겨우 졸업해도 시간강사다. 요즘은 학사부터 해외에서 딴 사람도 교수를 못해서 난리다. 시간강사가 행복하면 좋겠지만, 알다시피 이 사회는 비정규직은 소모품 취급을 한다.
대학은 썩었다…"마음과 몸 중 하나가 썩는다면, 몸을 택하자"
이걸 다 이겨내고 흔히들 말하는 성공을 했을 때는, 이미 네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거다. 나는 그걸 바라지 않는다. 축복은 못할망정 저주를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별로 안 좋다.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야겠다. 대학은 썩었다. 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도 근처에 얼씬도 않는 편이 몸에 이롭다. 마음이나 육체 중 하나가 썩는다면 육체를 택하자. 처음에는 괴롭고 고통스럽더라도 결국은 그게 살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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