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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묻은 토슈즈, 무용학도들은 왜 '108 계단'에 올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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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때 묻은 토슈즈, 무용학도들은 왜 '108 계단'에 올랐나?"

['강매' 당한 학사모, 대학은 죽었다·③] "무리한 학과 통폐합, 학생에겐 폭력"

대학은 학교다. 그리고 학교는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상식은 잊힌 지 오래다. 대학은, 졸업장 없으면 당할 차별이 두려워서 다니는 곳에 가깝다. 가르침과 배움은 뒷전이다.

대학 구조조정이 다시 화두다.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추진돼 온 대학 구조조정이 '반값 등록금' 논란을 계기로 탄력을 받았다. 세금으로 등록금 부담을 줄이려면, 먼저 대학생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타당한 주장이다.

그러나 대학 구조조정이 그저 경제논리로만 진행되는 것은 위험하다. 말 그대로, 대학은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그들이 상처입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정답이 있을 리도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대학의 현재는 사회의 미래'라는 점이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이 오로지 경제 논리만 따른다. 이런 학교에서 배운 학생들이 사회로 나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이 내린 의사결정에서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배려', '당장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의 가치' 등이 함께 고려된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게다. 오로지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대학 구조조정이 위험한 이유다.

대학은 배우는 곳이고, 따라서 대학 구조조정은 '교육의 논리'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만약 학과를 없애거나 합친다면, '돈'의 관점이 아니라 '가르침'의 관점에서 내려진 결정이어야 한다.

한 지방 사립대 학생의 글을 소개한다. 그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요즘 '무용학과 폐지'가 화두다. 이에 반발한 무용학과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나와 매일 '108' 계단에서 무용을 한다고 했다.

무용학과 폐지는 '지방대, 인문과학대학, 문예창작과'에 다니는 그에게는 '남의 일' 같지 않다. '돈'의 눈으로 보면, 소수자이자 약자인 그에게 요즘 대학의 세태는 그저 약육강식의 정글에 다름 아니다. '돈'과 '힘'이 모든 걸 결정하는 정글에서 배운 학생들은 과연 민주시민으로 자랄 수 있을까. 이번에 소개하는 글이 던지는 질문이다. <편집자>

- '강매' 당한 학사모, 대학은 죽었다
☞<1>"좋은 대학 간 것도 아닌데…'불효자'는 웁니다"
☞<2>"교수 딸 문제지 정리하는 대학원생, 이유인즉슨…"

부산 동아대학교 하단 캠퍼스에는 상징적인 장소가 있다. 이름 하여 '108 계단'. 그 높이 때문에 등교를 기피하고픈 욕망이 솟구치는 것과 동시에 휴학하거나 졸업하면 가끔씩 꼭 떠올리게 되는 계단이다.

"무용학과 학생들은 왜 '108 계단'에 올랐나"

때는 전국 대학의 캠퍼스를 봄빛으로 물들이던 벚꽃이 자취를 감추고, 연두색 여린 이파리들이 하루가 다르게 번져나가던 5월의 마지막 일주일이었다. '108 계단'에서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민주 광장과 체대 건물 사이, 그러니까 '108 계단'의 중간쯤에서, 긴 머리카락을 말끔하게 뒤로 묶어 내고 트레이닝복과 토슈즈를 착용한 무용학과 학생들이 우아한 자태와 유연한 몸짓을 뽐내며 매일같이 온종일을 보내고 있었다. 행여 지각할까봐 등교할 때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계단을 뛰어오르고, 강의 듣느라 진이 다 빠져 풀린 다리로 털레털레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데 체념하듯 익숙한 학생들도 그들의 공연 같은 실습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무용학과 학생들은 왜 강의실에서 나온 것일까.

'계단 실습'이 있기 불과 며칠 전, 학교 측은 무용학과에 폐지를 통보했다.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학과 교수들조차도 논의에서 제외된 끝에 나온 일방적인 통보였다. 물론 학교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무용학과는 개설 이래 높은 명성을 자랑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입학생은 줄어들고 졸업률은 낮아지고 전과율은 높아져서 운영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마침 언론과 국가 기관에서는 대학 경쟁력이니 국가 정책 방향이니 하며 대학 경영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때였다. 그야말로 적절한 시기가 오자 결국 폐과를 결정한 것이다. 학교가 행정권을 쥐고 있으니 그 절차야 표면적으로 합리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라지는 당사자들에게 그것이 합리적일 수가 있는가, 그것도 대학이라는 배움의 공간에서. 졸업한 학생들과 졸업할 학생들에게 배움의 뿌리가 사라지는 셈이다.

이러한 과정 끝에 무용학과 학생들이 강의실 밖으로 나왔다. 처음 활동은 '계단 실습'과 함께 학생들의 서명을 받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점차 대학본부와 총장실이 있는 인문대학 일대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담도 뜻도 그릇도 작은 필자는 그 근처를 오가는 척 지나치면서 힐끗힐끗 분위기나 살필 뿐이다.

폐과 반대 활동을 시작하면서 학생들은 교정 곳곳에 자신들이 사용한 토슈즈를 걸어놓았는데, 수많은 발놀림 끝에 거뭇하게 때가 탄 그 실습화 하나하나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이 토슈즈는 우리의 땀과 눈물입니다." 초여름 미지근한 바람에 그것들은 이따금씩 흔들리고 있다. 학생들이 기쁘게 웃으면서 제 손으로 토슈즈를 거둬가는 모습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그들이 지금 흘리고 있는 슬픈 땀과 눈물이 값진 것이 되고, 온전한 실습실에서 배움의 의미로서 땀과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때가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학과 통폐합, 내일의 내 모습일지도"

높은 곳에 계신 분들께서 불편해하실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담도 뜻도 그릇도 작은 필자가 키보드를 두드려가며 굳이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남일 같지 않아서이다. 나는 '지방의 잡다한 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이다(해당 사항의 의미를 음미해보고 넘어가고자 한다. 먼저, 이른바 '지잡대'-학벌 및 학연 혜택 전무. 다음으로 '인문과학대학'-어디든 취직할 수 있지만 정작 오라는 곳은 없고 한창 위기 상황에 처해있음. 마지막으로 '문예창작학과'-뭐하는 곳이지? <기고자>). 그런 나로서는 이번 무용학과의 사례가 내일의 내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 학과에 폐과 통보 문서가 들이닥친다면 '108 계단'에서 쭈그리고 앉아 습작이라도 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용학과 학생들한테야 그 고고한 모습에 사람들이 적극적인 시선을 보내주고 있는 것이겠지만, 남루한 행색의 필자가 반쯤 빈 소주병을 옆에 둔 채 모나미 볼펜으로 이면지에다가 그림인지 문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글을 끄적이고 있다고 상상해봤다. 일말의 관심조차 기대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현명할 것 같다.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솔직히 좀 눈물 난다.

같은 학교에서 폐과되는 학과가 생겼기 때문에 위화감이 들어 급하게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학 사회에서 통폐합 문제는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이른바 '지잡대'만의 일도 아니다. 작게는 학과 규모의 문제에서 크게는 학교 단위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학과 통폐합 문제는 그 파급력이 크다. 현재 대학 사회에서 등록금 문제와 함께 가장 큰 쟁점이 됐다.

지금도 수많은 학교와 수많은 학과가 통폐합 위기에 놓여있다. 자연히 배움의 뿌리, 터전, 고향을 잃을 판국에 놓인 졸업생과 재학생이 부지기수다. 이러한 상황을 정당화하는 것은 바로, 그 견고하기가 비할 곳이 없는 '경영의 논리'이다.

▲ 기업식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해 시위했다가 '퇴학' 처분을 받은 중앙대 학생 노영수(29) 씨. 지난 1월 법원에서 '퇴학은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노 씨는 재차 '무기정학' 통보를 받았다. 사진은 그가 무기정학 처분에 반발해 본관 앞에서 퍼포먼스를 벌이는 모습. ⓒ프레시안(허환주)

"기업 구조조정과 비슷한 대학 구조조정…기준은 돈이다"

현재 대학 통폐합의 대상은 '경쟁력' 유무의 기준을 따른다. 문제는 이 기준에서 제시하는 '경쟁력'이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라는 것이다. 돈 안 되는 학교나 학과는 없어지거나 그럴싸한 이름을 부여받고 뭉쳐진다. 그렇다면 과거에 기껏 만들어 놓은 학교와 학과가 왜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것인가. 그 이유를 최대한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하나는 정책의 실패고 하나는 그릇된 인식 때문이다.

정책이 왜 실패했는가. 일단 대학을 너무 많이 지었다. 당시 상황에서 수요에 맞게끔 허가를 내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막상 현 상황을 보면 대학 진학자의 절대수가 감소해 '진심으로 운영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한 경향은 전문대일수록 더욱 크다. 더욱 잘못된 것은 현재 정책이 학생 잃고 학교 없애는 식이라는 점이다. 정책의 방향 또한 기업에서 활용하는 구조조정이나 체제 개편과 유사하다. 사라지고 뭉쳐질 학교와 학과에 남아있던 학생들을 비롯한 구성원들은, 명예퇴직이라는 구실로 해고된 노동자와 비슷한 종류의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그릇된 인식은 무엇을 말하는가. 경영, 의학, 법학, 공학을 비롯한 전문학과(여기서 말하는 전문은 직업이나 취직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개념이다. <기고자>)에 비해 인문, 사회, 예술을 비롯한 비전문학과가 상대적으로 불필요하다는 편견이다. 당장 손에 돈을 쥘 수 없는 학과들이라고 여기는 셈이다. 기준은 돈이다. 내가 다니는 대학에서 벌어지는 무용학과 폐지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마침 돈도 안 되는 학과인데다가 정원 미달이니 폐과한 셈이다.

현재 대학 사회에 대해서 좀 거칠게 정리하자면, 등록금 올려서 돈 불리는 것만으로는 수지에 안 맞아 재미를 못 보겠다 싶으니 돈 안 되는 학과는 학교에서 나가라고 하고 돈 안 되는 학교도 대학 사회에서 나가라는 꼴이다. 그걸 정부도 거들고 있다. 언제까지 약자의 희생을 종용하겠단 말인가. 그것도, 대학이라는 사회에서. 대학이 너무 많으니 대학을 줄이자고들 하지만 당장 사라질 대학 사회의 구성원들, 특히 학생들에게 그것은 폭력이다.

- '대학 안 가도 당당한 사회'

"대학 졸업장 '강매'하는 나라, 행복하십니까?"
"'기름밥' 잘 사는 꼴 못보는 그들, '룸살롱 여대생'엔…"
"교수 월급이 청소부보다 많아야 할 이유, 과연 있나?"
"최저임금 인상이 산업경쟁력 높인다"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좌파'보다 국익에 무관심한 그들, '진짜 우파' 맞나?"

- '직업과 학력·학벌에 따른 차별이 적은 사회'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당신들을 공부시켰다"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도 '무상복지'가 필요한 이유

- 경쟁보다 효율적인 것? 바로 협동!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 '반값 등록금' 바라보는 여러 시각

"대학 졸업장 '강매'하는 나라, 행복하십니까?"
"대학 진학률이 높아서 문제?…'최저임금'부터 올리자"
"너, 대학 안 나와서 뭐 먹고 살래?"
"서울대가 등록금 2000만 원 받는다고 정원 못 채울까"

- '대학주식회사'의 그늘

"'시장의 포로' 대학 캠퍼스…술집 빼고 다들어왔다"
등록금 400만원, 대학교육 '원가'는 도대체 얼마?
"한국의 대학, 이제 시장의 포로가 됐다"
"비참해진 대학, 뭘 가르칠지 목표도 방향도 잃었다"
자살 또 자살, '공짜' 없는 카이스트는 지금…

- '대학의 교육 불가능'

☞ ①
"학부생 인질 잡힌 대학원생 등록금,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②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 가난할수록 공부할 수 없는
☞ ③ '스펙 괴물'이 된 대학생의 시한부 인생
☞ ④ "접대 자리엔 인문학 전공자 노래 한 곡이 효과적?"

☞ ⑤ 누가 대학생과 대학을 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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