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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차 나가냐?" 추근거림은 참아냈지만…

[2011년, '죽은 대학'에서 사는 법·上] '알바'가 집어삼킨 삶

시급이 셌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은 4320원. 술집 사장은 7000원을 준다고 했다. 호프집처럼 정신없이 왁자지껄하지 않았고, 이상한 유흥업소도 아니었다. 직장인들이 2차 술자리를 찾을 시간인 밤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고급스러운 유니폼을 입고 바에서 손님들과 대화를 하는 게 일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힘들었다. 아니, 생각지도 못한 일들에 시달려야 했다.

"야, 옆에 와서 앉아 봐. 예쁘네. 2차 나가냐?" 술을 마시면 '술집 여자=접대부'라는 공식을 만들어내는 남자들이 있었다. '그런 가게가 아니'라고 해도 "비싸게 군다. 밖에서 따로 만나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비어가는 술잔은 사내들의 밑천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겉으론 멀쩡하게 생긴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서유림 씨(가명, 25)는 부산의 한 바(bar)에서 일한다. 양주와 맥주를 판다. 그를 포함해 전체 스태프는 총 5명. 여자는 오직 바에서만 일한다. 서빙은 남자직원들만 한다. 치근덕대는 손님이 많아서 그랬단다. 손님과 서 씨의 사이에 가로놓인 테이블이, 일종의 안전선인 셈이다.

남자들의 노골적인 시선을 참는 이유는 등록금 때문이었다. 유림 씨는 2년째 휴학 중이다. 졸업까지 한 학기가 남았다. 장학금만 받았어도 좋았을텐데, 실패했다. 그 사이 동생이 대학에 입학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없었다. 등록금을 모아야 했다.

등록금 때문이었다

휴학을 결심하면서 그래도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하리라 생각했다. 불가능했다. 가게가 문을 닫아도 뒷정리를 해야 한다. 끝나면 이미 새벽 6시. 밤에 일하다보니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눈을 뜨면 정오였다. 유림 씨는 졸업반이 되었음에도 아직 토익(TOEIC) 시험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같은 시간 누군가는 900점대의 토익점수를 받아놓고, 누군가는 어학연수를 다녀왔을 것이다. 취업면접에 필요한 '스펙' 관리에서 유림 씨의 경쟁력은 '빵점'이다.

형편이 아주 어려운 건 아니었다. 아버지가 아프셔서 문제였다. 어머니가 가계를 부양하신다. 그 돈으로 아버지의 병원비를 대고, 유림 씨와 동생의 학비까지 대기란 어려웠다. 그래서 일했다.

유림 씨가 지금 기업체 서류전형에 지원한다면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이 회사에 지원하기 위해 경쟁력을 키웠습니다"라는 글은 쓰지 못할 것이다. 대신 '알바경력'이 빈 공간을 빼곡이 메울 것이다. 유림 씨는 휴대폰을 팔고, 신부 들러리를 서고, 공공기관에서 복사물을 정리하고, 과외를 했다. 2008년, 아울렛 매장에서 옷을 팔 때였다. 회사는 기계가 되기를 원했다.

처음에는 일당 4만 원에 주말만 일하기로 되어 있었다.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다. 직원들이 쉬는 날은 '쉽게 굴려먹기 좋은' 아르바이트생이 대신 일해야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5일을 몽땅 일하고 있었다. 수업과 병행하기란 불가능했다.

휴게실이 없었다. 매장에서 앉을 수도 없었다. 직원들을 감시하는 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갔다. 밥은 30분 만에 해치우고 와야 했다. 직원 3명이 돌아가며 식사를 했다. 이렇게 하루 열 시간씩 일했다. 아침 열시 출근, 밤 9시 퇴근. 이런 생활을 꾸려가며 유림 씨는 등록금을 모아야 하고, 뒤쳐진 취업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는 새삼 "아, 말하고 나니 끔찍하네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앞에서 이형섭 등록금넷 간사가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제 목표가 뭘까요

서 씨가 새로 들어온 손님을 맞이할 6월 17일 새벽 1시 서울 용산구의 한 편의점. 김정필(가명, 24) 씨는 밀려들어오는 짐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필 씨는 2009년 전역 후 아직 복학하지 않았다.

전역 후 가장 먼저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음식점 서빙이었다. 텔레마케팅 상담사로 일하고, 현수막을 걸었고, 고급 아파트 단지의 새벽세차 아르바이트도 했다.

"아르바이트 할 때부터 돈을 모아야 한다 생각했어요. 막연하게는 부모님한테 용돈을 안 받으려고요. 아무리 적게 벌어도 절반씩은 꾸준히 적금에 부었어요. 지금은 한 700(만 원)? 그 정도 모았어요. 근데 이걸 쓴다 하더라도 일년치 등록금도 안 될 텐데…."

정필 씨는 최근 뉴스를 장식하는 촛불집회 기사를 보며 생각이 많다. 일단은 가보고 싶었다. 학생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게 반갑기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다른 생각도 든다. '저 친구들은 이 시간에 알바를 안 하니 나오는 것 아닌가'하는 묘한 부러움이 샘솟았다. 당장 하루하루 생활하기 바쁜 정필 씨에게 '투쟁'이니 '정의'니 하는 말은 먼 나라 얘기다.

그는 이른바 명문대 경영학부 편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급이 상대적으로 박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도 다가온 편입시험 준비 때문이다. 가끔 만취한 노숙자들이 편의점에 들어와 드러눕고, 밤을 즐기는 청년들이 훼방을 놓긴 한다. 그래도 편의점만큼 자기 시간을 낼 수 있는 일자리가 흔치 않다.

정필 씨는 오히려 요즘 들어 '과연 내게 대학이란 무엇인가'는 고민을 한다. "군 생활 하는 동안 책을 많이 읽었어요. 사회학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더라고요. 성공회대 교수님들 글을 신문에서 많이 봐서, 기왕이면 성공회대 가고 싶었고요. 그런데 취업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경영학부 편입을 준비해요.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라고 하는데, 아, 나는 취업준비 때문에 대학 가려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어차피 학문을 깊이 파는 것도 아니고, 돈 버느라 생활에 치이고. 이럴 거면 대학에 왜 가야 하나, 대학이 나에게 뭐지? 이런 고민을 해요."

왜 등록금 모으느라 고생해야 할까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 대학생 수는 307만4000명이다. 인구 1만 명 중 630명, 인구 16명 당 1명이 대학생이다. 1990년에는 이 수치가 342명에 불과했다. 20년 사이 대학생 수가 두 배가량 늘어났다.

등록금은 얼마나 크게 올랐을까.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가 지난 9일 국회에서 발표한 자료는 핵심을 짚는다. 2000년 219만3000원이었던 국립대 평균 등록금은 2011년 440만2000원으로 올랐다. 정확히 두 배가량 뛰었다. 사립대 역시 마찬가지다. 2000년 451만1000원이던 사립대 등록금 평균치는 올해 776만1000원으로 325만 원이나 뛰었다. 한국은 칠레와 함께 대학에서 사교육비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보통의 가정에 이 정도 등록금은 어느 정도 부담이 될까. 지난해 우리나라의 4인 가족 월평균소득은 415만5000원이다. 연소득으로 환산하면 대략 5000만 원대다. 우리나라의 국·공립대와 사립대 수는 50대 295. 대부분의 대학생이 사립대에 재학 중이다. 두 자녀가 모두 사립대에 재학 중이라면 매년 자녀의 등록금으로만 1552만2000원(776만1천원*2)이 빠져나간다. 남은 돈으로 각종 세금과 생활비, 저축, 대출금 상환 등을 해결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등록금이 대학생의 숨통을 조여오는 건 결국 비싸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0 인구주택 총조사'를 보면, 작년 4년제 대학 중퇴자는 총 8만3220명(20대)에 달한다. 10년 전인 2010년에는 이 숫자가 지금의 절반인 4만2433명이었다.

도저히 부모의 수입만으로 대학 등록금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학생도 돈을 벌어야 한다. 학생이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는 한정돼 있다. 학생의 노동은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결국 대학생은 노동에 구속되고, 공부는 뒷전이 된다. 이 틈바구니에 끼인 학생에게 "대학 생활을 즐겨라"거나 "열심히 공부해라"는 말은 폭력이다. 정필 씨는 알바로 치이는 생활 끝에, 남들보다 자신의 삶이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었다.

"밤 11시부터 아침 9시까지 일해요. 집에 들어와서 씻고 누우면 대충 10시~11시쯤 돼요. 아무리 일찍 일어나려고 해도 눈 뜨면 다시 출근하기 바빠요. 공부는 고사하고, 너무 힘들어서 가족과 대화도 거의 안 나눠요. 그냥 편의점 생활에 제 삶이 맞춰지는 것 같아요. 딴 일은 아무 것도 안 돼요."

억지로 대학 등록금을 감당하더라도, 졸업 후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가 지난 7일 국회서 열린 '반값을 넘어 등록금폐지 가능한가'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대졸자 평균취업률은 77.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터키(74.6%)보다 약간 높다. 고시생과 취업준비생이 취업 통계에 잡히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대학생들의 체감 취업 수준은 통계자료보다 훨씬 낮을 것이다. 큰 비용을 치르고 대학에 졸업해도 사회적 보상 수준이 낮아, 대학생활에 대한 만족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학의 공공성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반값등록금 불가능 발언'에 반박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경희대 인운호 총학생회장이 '반값등록금 촉구'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결국 등록금을 버느라 치이고, 그렇게 다닌 대학에서는 별다른 보람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는 게 오늘날의 대학생이다. 당장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전액장학금 지원 등의 제도적 마련이 시급하다.

보다 근본적으론, 대학의 공공성 강화가 핵심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학이 학문을 키워가는 곳으로 변화해야 하고, 이곳에서 학생들이 학문 자체만을 놓고 고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해영 교수는 "결국 대안은 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나아가 사회화의 전망을 학생들에게 만들어주는 데서 찾아야 한다"며 "시민사회나 각종 공익적 단체의 대학 운영에 대한 참여 확대가 보장돼야 하고, 특히 사학에 대한 사회적 지분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 혁신적인 제안처럼 들리는 게 지금 한국의 대학이 맞이한 현실이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핵심 쟁점이던 '반값 등록금'이 어느새 '대학 구조조정'으로 옮아간 상황이라, 정부가 나서지 않고는 학생들의 현실을 개선할 수 없다는 이유다.

이 연구소는 20일자 논평에서 "대학 등록금 문제의 핵심은 정부가 투자를 회피해 사학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사학들이 등록금에만 의존해 대학을 운영하면서 천정부지로 인상시켜 놓은 것"이라며 "반값등록금' 도입으로 '정부 책임형 대학 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고등교육 육성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밝히고, 국민들에게 대학 개혁에 대한 당위성과 필요성을 설명한 후 범사회적으로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합의를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강매' 당한 학사모, 대학은 죽었다

☞<1>"좋은 대학 간 것도 아닌데…'불효자'는 웁니다"
☞<2>"교수 딸 문제지 정리하는 대학원생, 이유인 즉슨…"
- '대학 안 가도 당당한 사회'

"대학 졸업장 '강매'하는 나라, 행복하십니까?"
"'기름밥' 잘 사는 꼴 못보는 그들, '룸살롱 여대생'엔…"
"교수 월급이 청소부보다 많아야 할 이유, 과연 있나?"

"최저임금 인상이 산업경쟁력 높인다"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좌파'보다 국익에 무관심한 그들, '진짜 우파' 맞나?"

- '직업과 학력·학벌에 따른 차별이 적은 사회'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당신들을 공부시켰다"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도 '무상복지'가 필요한 이유

- 경쟁보다 효율적인 것? 바로 협동!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 '반값 등록금' 바라보는 여러 시각

"대학 졸업장 '강매'하는 나라, 행복하십니까?"
"대학 진학률이 높아서 문제?…'최저임금'부터 올리자"
"너, 대학 안 나와서 뭐 먹고 살래?"
"서울대가 등록금 2000만 원 받는다고 정원 못 채울까"

- '대학주식회사'의 그늘

"'시장의 포로' 대학 캠퍼스…술집 빼고 다들어왔다"
등록금 400만원, 대학교육 '원가'는 도대체 얼마?
"한국의 대학, 이제 시장의 포로가 됐다"
"비참해진 대학, 뭘 가르칠지 목표도 방향도 잃었다"
자살 또 자살, '공짜' 없는 카이스트는 지금…

- '대학의 교육 불가능'

☞ ①
"학부생 인질 잡힌 대학원생 등록금,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②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 가난할수록 공부할 수 없는
☞ ③ '스펙 괴물'이 된 대학생의 시한부 인생
☞ ④ "접대 자리엔 인문학 전공자 노래 한 곡이 효과적?"

☞ ⑤ 누가 대학생과 대학을 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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