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등 111개 각계 단체가 모인 '제주 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는 8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해군기지 건설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주 출신인 소설가 현기영 씨는 "'4.3 사건'이라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에 대해 정부가 사과하면서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에 평화와 반대되는 전쟁무기·기지를 만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초토화될 연산호 군락과 강정마을에만 있는 1.2㎞의 구럼비 해안, 멸종 위기인 붉은발말똥게들이 일시에 '제노사이드'를 당하게 되는 꼴"이라고 말했다.
현기영 씨는 "해군기지는 생태계 파괴뿐 아니라 인간 생태계까지 파괴한다. 민주적 방식을 통하지 않고 주민들을 이간시켜 500년 동안 지켜오던 끈끈한 공동체가 뿌리 뽑히고 있다"며 "그 자리에 들어오는 건 해군기지와 기지촌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화와 통일을 위한 사람들'의 배종렬 상임대표는 "제주 해군기지에 대해서는 민주당에 원죄가 있다"며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노무현 정권에서 해군기지 건설이라는 모순된 결의를 한 민주당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불법으로 강행되는 공사를 중단토록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강정마을 주민과의 합리적인 갈등해소 방안이 마련될 때까지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 111개 단체로 이뤄진 '제주 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가 8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국장 이훈삼 목사가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
"강정마을에 환경 변화 없는데도 절대보전구역 무단 해제"
절대보전지역이었던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장소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절차적 잘못도 지적됐다. 신용인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절대보전지역 변경 조사 과정에서 환경여건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국책 사업을 위해 무단 해제했다"며 "주민들의 제대로 된 의견 청취도 없이 도의회가 날치기 처리로 강정마을을 보전지역에서 제외했다"라고 주장했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제기한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신용인 교수는 "법원에서 이러한 절차를 적법하다고 인정하면 절대보전지역을 지정하는 특별법 자체가 무력화되고, 도지사가 절대권력을 쥐고 난개발을 해도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없어지게 된다"며 "다수의 횡포로부터 소수를 지키는 소명을 가진 법원이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을 내리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제주지방법원은 지난해 말 주인들이 제기한 절대보전지역 변경처분 효력정지 및 무효 확인 소송에서 '주민들에게 원고 자격이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광주고등법원 제주지사에서 지난 5월 열린 항소심 역시 기각됐다.
제주에 들어설 해군기지가 곧 미군의 동북아 패권 장악을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제주 해군기지는 한국의 안보가 아닌 (미국의) 대 중국용 기지로 '제2의 오키나와 기지'가 되는 게 아니냐는 말들이 나온다"며 "이 싸움은 강정 주민들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라 전국의 국민들이 함께 나서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남부원 한국YMCA 사무총장도 "강정마을 주민들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시민사회를 대신해 싸우고 있는 것"이라며 동참을 호소했다.
전 세계 111개 시민단체들도 강정마을 주민들을 지지하는 성명을 보내왔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해군기지 건설은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연산호, 어류, 바다,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생명체에 해로운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며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 해군에게 더 강력한 접근성을 제공하고 잠재적으로 중국의 해양수송로를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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