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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는 '백의의 천사'?…한국에선 '백의의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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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는 '백의의 천사'?…한국에선 '백의의 전사'!"

[복지국가SOCIETY] "보편적 의료복지, 문제는 병원 인력이다"

1. 적정 병원 인력은 의료복지의 핵심적 요소이다

국가의료제도의 양대 축은 의료재정체계와 의료공급체계이다. 지금 한국은 의료재정체계에서 공적 재정의 확충을 통해 낮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진행되고 있고, 의료공급체계에서는 지난 3월 복지부가 발표한 의료기관 재정립 방안을 둘러싸고 주치의제도와 의료전달체계의 확립, 공공의료 강화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의료공급체계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인 바로 병원인력 문제이다. 병원은 인건비의 비중이 40~ 50% 이상을 차지할 만큼 노동집약적인 산업이고 사람이 의료서비스를 직접 제공해서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돌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인력정책을 수립하느냐에 따라 국민과 환자가 받는 의료서비스는 질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현대사가 1960~70년대의 산업화 시대를 거쳐 1980~2000년대 민주화 시대, 그리고 2010년 이후로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면, 의료분야 또한 초기 전국민의료보험제도의 도입과 외형적 병상 증축의 시대를 넘어, 이제는 1-2-3차 의료전달체계의 확립과 의료공급체계의 혁신, 보다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병원이 지역별, 규모별 차이와 관계없이 환자들에게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과제이다.

보건의료노조는 병원인력 부족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작년 9월 한미일독 4개국 병원인력 국제세미나를 개최했고, 이어서 병원의 인력기준을 법제화하면서 인력문제를 해결한 미국의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미국 연수와 함께 주요 병원들을 직접 방문하여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 4월 7일 보건의 날과 5월 12일 국제간호사의 날을 맞아 국회에서 병원인력 확충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한국과 미국의 병원 인력 현실을 비교하면서 대안으로 미국의 Ratios 인력법과 환자보호법(Patient Protection)을 주요하게 제기하였다.

2. 병원 인력 부족, 얼마나 심각한가?

먼저, 미국과 한국의 병원 근무 인력을 비교해보자.

한국의 경우, 820병상 규모의 사립대병원인 W병원은 의사 342명, 간호직 646명 등으로 직원이 총 1438명인데 비해, 미국 LA에 있는 909 병상 규모의 비영리민간병원은 의사 649명과 간호직 2956명의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총 직원 규모가 무려 9806명이다. 필자가 얼마 전에 다녀온 520 병상의 UCLA 대학병원은 전체 직원 수가 6800명이고, 그 중에서 의사가 4000명(외부포함, bedside Dr 2000명), 간호사가 2800명, 테크니션이 280명이다. 미국의 경우, 비슷한 병상 규모에서 우리나라보다 4∼5배 많은 간호사가 근무하고 있고, 총 직원 또한 5∼6배나 많다.

이것은 유럽 병원과 비교해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경우, 2743 병상 규모의 사립대병원에서 의사 1384명, 간호사 2803명 등으로 직원이 총 7566명인데 비해, 독일의 3212 병상 규모의 공공병원은 의사 3290명과 간호사 4000명 등 총 직원이 1만4500명에 달한다. 독일이 한국에 비해 최소 2배 이상 많은 병원 인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 같은 신자유주의 국가든 독일 같은 유럽의 복지국가든 병원 인력만큼은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 차원에서 한국보다는 2~5배 많은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 3월 8일 심평원에서 발표한 자료는 이런 현실을 더욱 잘 보여준다. 2010년 말 의료기관 수, 의료인력 수, 병상 수, 의료장비 등록 현황 등을 공개한 자료를 보면, 국내 병원 수와 병상 수, 그리고 장비 수는 OECD 평균보다 30~50% 더 많은데 비해, 의사와 간호사 등 병원 인력의 수는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그래서 인력 부족으로 시달리고 있는 한국의 간호사는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백의의 전사'가 된 지 오래다. 근무시간 당 적게는 10여명에서 많게는 50여명의 환자를 돌봐야 한다. 일본이 7명, 미국이 4~5명의 환자를 보는 것에 비하면, 최소 2배에서 10배나 더 많은 환자를 담당한다. 그러다 보니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이, 화장실도 못가고 연속적으로 10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 주말휴식과 주 5일제는 꿈도 못 꾼다. 산업의학계에서 발암물질이라고 하는 '밤 근무'를 한 달에 7회에서 10회씩 하다 보니 몸은 몸대로 망가지고 환자에게도 피해가 고스란히 전가된다. 그 결과 간호사들의 평균근속연수가 5년을 채 넘지 못하고, 이직률 또한 20%에 육박한다.

이로 인해 간호사가 근무 중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잠시만요'라고 한다. 부족한 인력 때문에 환자의 요구를 곧바로 해결하지 못해 그런 말을 가장 많이 한다고 한다, 인건비(인력)는 줄이고 고객(환자)만족도는 높이려는 병원의 이중적인 태도 때문에 중간에서 간호사만 샌드위치 신세가 된다.

하지만 미국에서 만난 간호사는 전혀 달랐다. 한국과 미국 병원 생활을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 한국 병원 다닐 때는 폴대 찾다가 퇴근 못한 경우도 있었다면서 미국 병원에서는 잡일이 없다고 했다. 한국에선 간호사 당 환자 비율, 즉 레이시오(Ratio)가 30명쯤 된 것 같은데, 미국에선 그 정도 비율은 상상도 할 수 없다면서 여기는 노동안전을 위해 취업 후 가장 먼저 환자 리프트 안전부터 배운다고 했다. 미국에서 한국 병원의 근무조건과 생활을 이야기하면 학대 수준으로 취급당한다면서 그것은 즉시 소송 감이라고 했다. 미국 병원에서는 환자와 대화할 시간이 많아서 정서적 간호가 가능하다며 그날은 12시간을 근무했는데 8시간을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또 다른 간호사는 한국에서는 할당된 환자 수가 너무 많아서 환자와 대화하고 환자를 파악하고 알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면서 미국에서는 레이시오 법에 따라 4명의 환자만 보면 된다고 했다. 이 기준은 철저히 지켜진다. 안 지키면 바로 고발당한다. 레이시오의 가장 큰 장점으로 간호사가 환자를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전인간호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3. 미국 The Ratios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미국의 The Ratios(safe RN to patient staffing Ratio Law)는 숫자가 주는 의미, 그 이상이다. 부서별 인력기준은 왼쪽 표와 같다.

The Ratios 법안은 16만 명의 '캘리포니아 간호사 노조'(CNA-California Nurses Association)와 '전미간호사연대'(NNU-National Nurses United)의 투쟁으로 만들어졌다. 그들은 '이윤보다 환자를!(patients before profit)'이란 구호를 내걸고,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위해서는 더 많은 간호 인력이 필수적이다" "간호사로서, 환자를 돌보는 일에 관한 한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인력법 제정투쟁을 1999년부터 시작하였고 결국 2004년 법 시행을 통해 그 결실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논란 끝에 구체적 기준을 명시하지 않은 원론적인 인력법이 1999년 통과되었고, 그 이후 병원에 2년간의 준비기간을 충분히 주면서, 정부 주도하에 2년간 세부 기준 조사 및 연구 작업을 거쳐 2002년 세부 기준을 만들었다. 이를 기초로 2년 후인 2004년에는 전면 시행을 하게 되었다.

The Ratios는 당시 미국 보건의료 시스템의 시장 추구 경향이 강화되면서 미국에서 일반화된 HMO(the 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와 같은 '관리의료(Managed Care)'의 의료비용을 줄이려는 압력에 대응하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그런 압력으로 인해 환자의 중증도가 높아졌지만 간호 예산은 삭감되고 충분한 간호 인력 확충에 대한 책임은 병원에게 전가되었다. 이 시기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가장 열악한 간호사 인력 수준을 보이면서 간호 인력 부족을 악화시키는 간호사의 이직율도 높아만 갔다. 따라서 점차적으로 간호사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법률적 처방에 대한 요구가 커져가면서 CNA가 The Ratios 인력법 제정에 나서게 된 것이다.

The Ratios는 병동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5를 포함하여 20개 부서에 인력기준을 만들었고, 내용면에서 "모든 비율 기준은 최소 수치이며 병원은 환자 개인의 요구도(needs)에 기초해서 인력을 더 늘려야한다. 인력법은 식사와 휴식시간까지 포함하여 모든 근무시간에 적용되어야 하고 평균치로 적용해서는 안 되면 인력법에 따른 보조 인력의 해고는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CNA는 The Ratios 인력법을 만들면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첫째는 의무화된 정규간호사(RN) 비율제가 환자들의 만족도와 치료실적을 증가시켰고, 둘째는 현장 간호사들의 직무 만족도를 높이고 이직률을 낮추었다. 많은 간호사들이 인력비율제가 있는 캘리포니아 병원에 재취업했다. 셋째는 수많은 연구논문을 통해 환자 안전을 위한 간호사-환자 비율 인력법의 중요성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넷째는 간호사-환자 비율 인력법은 병원에게 비용을 절감케 하는 해결책이 되었다.

미국의 The Ratios가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인력투쟁을 준비 중인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너무나 많다. 첫째, The Ratios는 환자보호법과 함께 추진됨으로써 환자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환자안전과 인력법을 연계하여 노동자만의 요구가 아니라 환자와 국민들을 위한 요구임을 분명히 했다. 둘째, 가장 산별적인 투쟁, 가장 정치적인 투쟁으로 개별 병원의 한계와 경제적 조합주의를 뛰어넘어 산업 전체적 차원에서 법 제정투쟁을 승리로 이끌어내었다. 모든 선거에서 The Ratios 법 지지 여부에 따라 후보 지지와 낙선운동을 전개했다. 셋째, The Ratios 투쟁은 CNA 노조 조직운동과 투쟁의 처음이자 끝, 조직 확대의 무기였다. 이는 캘리포니아 주를 모델로 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현재 26개 주까지 조직을 확대하여 법제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The Ratios 인력법 투쟁은 노조의 대표 브랜드 이자 노조 조직 확대의 가장 중요한 무기이다. 모든 것은 Ratio로 통한다. 우리도 인력 요구를 중심으로 투쟁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요즘 우리나라의 모든 병원들이 고객만족도(CS)를 강조하며 친절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억지 미소의 친절한 간호사가 환자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환자에게는 전문 의료인의 손길이 자주 닿고,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있는 간호사가 필요하다. 모 대학병원의 구호처럼 '환자 곁에서, 환자 편에서' 병원이 운영되려면 정말이지 사람 중심의 경영방침을 가지고 대대적인 인력 확충과 함께 교대제의 개선, 노동시간 단축, 복지수준의 획기적 개선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보건복지부는 '간호인력 확충과 간호서비스 제공체계 재정립'을 목표로 '인력 TF'를 구성하고, 진행 중인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방안'에서 인력부족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적극 제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높은 이직율의 원인을 진단하고, 거기에서부터 해법을 찾지 않고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다. '향토 장학 간호사 제도와 남자 간호사 병력 특례' 도입도 적극 검토해 볼 만하다. 나아가 정부는 인력이 OECD 국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이런 과제들은 이제 개별 병원 차원에서 해결하는 수준을 넘어 미국의 The Ratios처럼 전 산업 차원에서 '병원 인력법' 제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보편적 의료복지의 시대로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모든 병원비를 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는 것과 더불어 '양질의 의료를 모든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병원 인력의 확충을 포함한 의료공급체계를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할 때 '보호자 없는 병원' 실현을 통한 개인 간병문제의 해결, 인력 확충을 통한 입원서비스의 질 향상, 그리고 친절하고 충분한 설명이 가능한 병원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 '내가 간호사로 살아간다는 것'. 미국 시사만화 가운데 일부
▲ '내가 간호사로 살아간다는 것'. 독일 시사만화 가운데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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