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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축복'이 될 수도 있는 석유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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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숨은 축복'이 될 수도 있는 석유위기

['석유 시대'의 종말, 그리고 한국경제·③] "산업용 에너지 보조금, 이제 끊어야"

- '석유 시대'의 종말, 그리고 한국경제
☞<1> "유가 불안, 과연 투기꾼 농간 탓이기만 할까?"
☞<2> "경제성 없다"던 유전, 다시 파헤치는 이유?
유가 상승과 스태그플레이션

석유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재화이기 때문에 유가상승은 국내외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유가상승은 일반적으로 석유수입국에서 석유수출국으로 소득을 이전하는 효과를 미친다.

이 때 소득 이전에 따른 석유수출국의 총수요 증가가 석유수입국의 총수요 감소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유가상승은 세계경제의 총수요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특히 큰 폭의 유가상승은 소위 비용인상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여, 물가상승과 수요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한다. 1970~80년대의 1, 2차 오일쇼크는 실제로 세계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하였다. 미국경제의 경우 1970년 이후 7차례의 경기후퇴를 경험하였는데 그 중 5번이 유가급등에 뒤이어 나타났다. 그만큼 유가상승이 각국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한국, 유가 상승에 특히 민감한 경제 구조

우리나라는 그중에서도 유가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국가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중화학공업과 같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산업의 비중이 특히 높고 석유를 전부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석유수입액/GDP 비율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가 OECD국가중 가장 높다. 우리나라와 산업구조가 비슷한 일본과 비교해도 2009년을 기준으로 할 때 우리나라의 GDP는 일본의 1/6 수준이나 원유수입량은 일본의 약 70%에 육박한다.

이같은 경제구조의 특성을 반영하여 우리나라는 유가상승의 충격에 특히 민감하다. 실제로 과거 1,2차 오일쇼크시에 우리나라는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었다. 단적인 예로 1960년대 경제개발 이래 우리나라 연간 GDP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단 두해뿐인데 그중 하나가 2차 오일쇼크 직후(1980년)였다(다른 하나는 외환위기시). 그만큼 유가급등은 우리경제에 큰 충격을 미친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과거와 상당히 달라졌기 때문에 과거 오일쇼크기에 비해서는 유가상승의 충격을 덜 받는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 예로 2000년 이후 유가가 장기상승을 보였고 특히 2007~8년에는 과거 오일쇼크기와 맞먹는 유가급등을 보였음에도 그다지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지 않았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

최근 유가 상승, 곧 영향 미친다

하지만 이는 위험한 시각이다. 첫째 유가상승에도 불구하고 과거 오일쇼크기와 같은 GDP 급락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금융위기전의 버블에 힘입은 세계경제 호조와 시차효과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우선 2000년대 초반에는 유가 상승폭이 과거 오일쇼크기에 비해서는 휠씬 완만하였던데다 금융위기 이전의 버블 등으로 세계경제가 호조를 지속하여 국내 GDP도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한편 2007~8년의 유가 상승폭은 과거 오일쇼크기에 못지 않고 또 실제로 경기침체를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된다. 다만 유가상승이 경기침체를 유발하기까지의 시차효과와 2008년 하반기 금융위기 충격으로 그것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예컨대 관련 연구에 의하면 미국경제의 경우 금융위기와 별개로 2007~8년의 유가급등으로 이미 경기침체가 시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J. Hamilton 2009). 금융위기시 우리나라의 경기급락은 2008년 3분기부터 가시화되었는데 여기에도 유가급등의 영향이 시차를 두고 작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GDI 성장률, 여기서 빨간 불 켜졌다"

둘째 유가상승의 영향과 관련해서는 GDP(국내총생산) 이상으로 GDI(국내총소득)의 추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국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나 가계소득과 보다 밀접한 것은 GDP성장률보다는 GDI 성장률이다. GDI는 GDP에서 교역조건 변화에 따른 실질무역손실을 차감한 것이다. 유가가 오르면 우리나라의 수입물가는 따라서 상승하지만 우리가 외국에 파는 수출품 가격(예컨대 자동차나 반도체 가격)은 별로 오르지 않기 때문에 무역을 통해 얻는 실질 소득이 감소한다. 이를 교역조건 악화에 따른 실질무역손실이라 한다. 이같은 효과 때문에 유가상승시 우리나라의 GDI 성장률은 GDP 성장률보다 상당히 낮게 된다.

유가가 상승하였던 2002년 ~ 2008년 기간중의 연평균 성장률을 보면 GDP 성장률은 4%인 반면, GDI 성장률은 2.6%에 그쳐 양자의 격차가 연평균 1.4%p에 달한다. 이 기간중의 GDP, GDI 성장률간의 격차는 우리나라가 OECD중 가장 크다. 즉 우리나라는 유가상승시 교역조건 악화에 따른 소득손실효과를 매우 크게 받는다. 2002~08년간의 연평균 GDI 성장률 2.6%는 우리나라의 과거 실적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다소 초라한 수치이다. 요컨대 위 주장과 달리 2000년대의 유가상승은 한국경제에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가 크게 변하지 않는한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욱이 금융위기 이전 2000년대 초중반이 미국 등의 버블에 기초한 세계경제의 초호황기였고 앞으로의 국내외 GDP 성장세가 그에 못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 향후의 유가상승 하에서 체감 경기는 금융위기 이전보다 더 부진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제조업 중심 경제의 숙명, 에너지 효율에 사활 걸어야…"독일·일본을 보라"

그렇다면 다가오는 석유부족의 폭풍에 대응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경제의 석유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에너지 소비를 절감하고 경제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나라는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일본이나 독일처럼 제조업 비중이 높은 경제구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제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에너지 사용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제조업 중심 경제의 경우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일본과 독일은 제조업 중심 경제임에도 에너지 효율이 세계 최고수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독일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1/3 수준에 머물고 있어 아직 효율 제고의 여지가 많다. 산업의 에너지 효율 제고를 위해서는 개별산업 차원의 효율 제고 노력과 더불어 산업구조를 에너지 절감형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너무 싸게 공급하는 산업용 에너지, 이젠 독이다

▲ 산업용 에너지 가격 구조를 바로잡아서, 기업 스스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도록 유도할 때가 됐다. ⓒ뉴시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에너지 가격구조의 왜곡을 바로잡는 것이다.

즉 각종 보조금에 의해 왜곡되어 있는 에너지 가격구조를 바로 잡아 기업이 스스로 에너지를 절감하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업종으로 전환하여 나가도록 유인과 압박이 가격기구를 통해 제대로 전달되어야 한다.

아울러 이러한 노력을 좀 더 촉진하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에너지 효율 제고를 독려하는 것도 필요하다. 에너지 절감 및 효율 제고 정책은 일본이 가장 성공적인 사례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일본에서 추진된 정책은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대부분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차이는 정책 추진의 열의와 지속성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가상승기에만 반짝 시행되는 정책이 아니라 일본처럼 유가변동과 무관하게 장기적인 시야에서 지속성을 갖고 추진되는 정책이 필요하다.

석유 비중 줄이고, 신재생 에너지 키워야…"정부 역할이 중요"

다음으로 에너지 구성에서 석유의 비중을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장기적으로 신재생 에너지의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여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 이 부문에서는 가장 선도적인 사례라 할 수 있는 독일의 정책과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에너지원 다변화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면서 우리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인 배터리 기술이나 전기자동차 등 관련 기술의 개발에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에너지원 다변화를 위한 노력은 대규모 투자를 요하고 소위 외부효과가 높다는 점에서 정부의 주도적 역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밖에 공급확보 차원에서 해외자원개발 관련 투자와 외교 노력의 강화, 유가 변동성 확대에 대비한 조기경보체제 확충과 장기공급 계약 및 선물활용 등을 통한 위험분산노력 등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임박한 석유정점…엇갈린 전망에도 공통분모 "근본적 대응, 서두를 때"

첫 번째 글에 언급한 것처럼 얼마 전에 IMF는 석유부족 문제를 중심이슈로 다룬 2011년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번 IMF 보고서는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석유정점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제 구조적인 석유부족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IMF는 시나리오별 전망중 기준 시나리오에서는 유가가 지속적으로 오르지만 비교적 완만한 상승을 이어가면서 세계경제의 회복기조를 흔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견지하고 있다.

한편 일부 석유정점론자들은 그동안 금융위기 다음은 석유위기이며, 금융위기 직전에 수많은 전문가들이 낙관적 편향에 빠져 다가오는 파국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거의 관성에 젖어 다가오는 석유정점의 위기와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여 왔다.

이들 두 견해가 보여주듯 석유부족 문제가 앞으로 얼마나 심각하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보의 불확실성이 크고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적어도 석유부족 시대가 도래하고 있고 석유수급을 둘러싼 문제의 심각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이 문제가 단기간에 그칠 성격이 아니고 앞으로 점점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임을 고려한다면 이제는 근본적 대응을 서둘러야 할 때라 할 수 있다. 관련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듯이, 석유정점이 설사 10년, 20년 뒤의 일일지라도 정점 이후에 대비하여 대체에너지를 본격 개발하고 이를 활용할 시스템을 구축하는데는 장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대응을 지금부터 서둘러도 결코 이르지 않다. 더욱이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의 재정악화나 세계경제의 취약성, 이번 일본 원전사태의 여파 등으로 근본적 대응에 수반되는 어려움이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커졌을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석유 시대 종말…'에너지 전환' 계기로 삼는다면, 축복일 수도

사실 에너지 소비를 절감하고 석유등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원을 다변화하는 노력은 비단 유가문제가 아니더라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중장기적으로 우리가 추진하지 않을 수 없는 과제들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기후변화 문제는 석유수급 불안 문제보다 훨씬 더 큰 중요성을 갖는 문제이다.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본격적 대응이 계속 늦추어질 경우 이 문제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어가 파국에 이를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각국의 공동보조를 통해서만 대응이 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동안 각국의 단기적 이해 집착으로 인해 진전이 부진한 상태에 있다.

우리가 살펴본 석유정점과 석유부족 문제는 에너지 절감과 대체 에너지 개발을 강요함으로써 다른 차원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압박하고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석유부족 시대의 도래는 어쩌면 아직도 지혜가 부족한 인류를 위해 영어에서 말하는 소위 "blessing in disguise"(외면적으로는 불행처럼 보이지만 실은 축복인 경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올바른 대응 노력이 어느 정도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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