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을 둘러싼 고르디우스의 매듭
외환은행을 둘러싼 문제가 점점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다. 론스타와 하나금융 간에 외환은행 주식 거래 계약이 체결되었고, 인수자금 마련을 위한 하나금융의 유상증자 및 신주상장까지 마무리되어 금융위의 최종승인 절차만 남았는데, 최근 대법원이 외환카드 관련 주가조작 사건에서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선고를 내렸기 때문이다.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 당연히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은 상실되고, 10% 초과 지분은 즉각 의결권이 제한되며 6개월 내에 매각하여야 한다. 문제는, 아직까지 유죄 판결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후 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 절차가 진행되어야 하고, 여기서 유죄 판결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론스타는 분명히 대법원에 재상고할 것이기 때문에 확정 판결이 나려면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내일 (16일) 예정된 금융위 전체회의에서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건을 승인해야 하는가, 아니면 법원의 확정 판결이 날 때까지 결정을 보류해야 하는가? 의견이 분분하다.
이 문제만이 아니다.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에 대한 판단 문제도 있다. 필자가 책임자로 있는 경제개혁연대가 제기한 정보공개청구 소송의 1, 2심 판결(현재 대법원 계류 중)에서 사실상 확인된 것이지만, 2003년 9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감독당국은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지 않았다. 또한 그 이후 6개월마다 하게 되어 있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당연히 감독당국의 책임 문제가 따른다. 더구나 김석동 현 금융위원장은 당시 감독당국의 실무 국장이었으니, 자기가 자기 책임을 물어야 할 형국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결정도 시간이 별로 없다. 특히 외환은행 인수 건에서 사는 사람(하나금융)의 자격을 승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파는 사람(론스타)의 자격에 대한 판단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적인 논란 이외에 정서의 문제도 얽혀 있다. 론스타가 주가조작으로 유죄판결이 확정될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에서 더구나 산업자본으로 판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하면 결국 론스타의 '먹튀 행각'을 감독당국이 방조하였다는 비난이 쏟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비난을 무릅쓸 용기 있는 관료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우면 손 뺀다? 그러면 안 돼
이처럼 복잡하게 꼬여 있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 수 있는 현명한 해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다. 그래서 '어려우면 손 빼라'는 바둑 격언처럼, 감독당국은 또 결정을 미루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그러면 안 된다. 먼저, 론스타의 산업자본 문제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리고, 과거에 대해 책임질 일이면 책임 져야 한다. 그러고 나서,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건에 대해 승인이든 불승인이든 명확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도저도 아니고,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이는 외환은행에게도, 한국 금융산업에도 절대 도움이 안 된다.
금융회사의 지배권에 대한 법적 불확실성을 몇 년째 방치하면서 어찌 외환은행의 기업가치 제고를 이야기할 수 있겠고, 더 나아가 감독당국에 대한 신뢰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외국 투기자본의 먹튀 행각을 방치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한 꺼풀만 벗겨보면, 현 관료들의 책임회피를 위한 변명에 불과하고, 더구나 몇 년 뒤 후배 관료들에게 똑같은 문제를 넘겨줄 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복잡한 문제일수록 간명한 원칙에 따라 풀어가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론스타는 산업자본이 분명하고, 또 주가조작 사건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될 것이다. 즉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대주주 자격이 없다. 그렇다면, 뭐가 달라지는가? 애석하지만, 현 상황에서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 대주주 자격 상실의 효과는 단지 6개월 내 매각을 강제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론스타는 이미 외환은행 주식의 매각 계약을 맺었다. 뭘 더 어쩌겠는가?
그러면, 론스타가 얻는 천문학적 액수의 부당이득이라도 제한해야 하지 않느냐고? 예컨대, 우리나라 감독당국을 속이고(즉 산업자본임을 숨기고) 외환은행을 인수했으니, 2009년 9월의 인수계약을 무효화해야 않느냐고 주장하는 분도 있다. 정서에는 맞는 말이지만, 법률적으로 옳지 않다.
▲ 지난해 12월,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를 반대하는 집회에 참가한 외환은행 직원들. ⓒ프레시안(김윤나영) |
비근한 예를 하나 들어본다. 또 다시 삼성 이야기다. 경제개혁연대는 얼마 전 이건희 회장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한 적이 있다. 삼성특검 형사재판에서 법원을 속였다는 혐의다. 그런데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유인즉슨, 피고가 검찰과 법원에서 진실만을 이야기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피고의 거짓말을 밝힐 책임은 검찰과 법원에 있는 것이고, 굳이 따진다면 속인 피고가 문제가 아니라 속은 사법당국이 바보라는 것이다.
2003년 9월에 론스타는 우리나라 감독당국을 속였다. 그러나 속은 감독당국이 바보일 뿐이고, 이제 와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계약 자체를 무효화하거나 그로 인한 이익을 박탈할 방법은 없다. 이 무슨 황당한 이야기냐 하시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심히 배가 아프지만, 어쩔 수가 없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감독당국이 바보 같은 짓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과거의 책임을 묻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뿐이다.
더구나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문제를 빌미로 하나금융의 인수 승인 건을 보류해서는 안 된다. 법에서 정한 금융회사 인수 승인의 요건은, 하나금융의 경영능력, 재무적 능력, 사회적 신용도 등과 함께 인수 후 은행시장의 경쟁제한성 여부뿐이다. 이러한 요건들에 문제가 없으면 승인해야 하고, 문제가 있다면 불승인하면 된다. 감독당국이 파는 사람의 하자 때문에 사는 사람의 인수 자격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너무 비싼 값에 사는 바람에 또는 무리한 방법으로 인수자금을 동원하는 바람에 하나금융이 부실해질 가능성이 있다면, 이는 불승인의 사유이지 승인보류의 사유는 아니다.
감독당국, 결단을 내려라
이 글을 쓰는 필자의 마음은 무척 쓰리다. 아무리 합리성을 생명으로 하는 경제학자라고는 하지만, 정서에 맞지 않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2003년 9월 이후 7년 반이 지난 오늘까지도 론스타-외환은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무능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독당국의 '일단 틀어막고 보자'는 관치금융 성향과 '내가 현직에 있는 동안 문제가 없으면 된다'는 책임회피 성향을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론스타 류의 사건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우리 모두가 패배자가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감독당국이 결자해지의 자세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감독당국과 법원 중에 누가 더 금융 현안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는가. 당연히 감독당국이다. 아니, 당연히 감독당국이어야 한다. 감독당국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과정에서 감독당국의 전문성이 제고되고, 그 결과로써 감독당국의 전문적 판단이 갖는 권위를 법원과 국민이 인정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반대로, 사건이 법원으로 갔으니 감독당국은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인 자세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 더구나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수수방관하는 지극히 책임회피적인 자세로는 모든 것이 악순환될 뿐이다. 이러라고 당신들에게 그 막강한 금융감독의 권한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16일 금융위의 결정을 지켜보겠다. 오늘의 문제를 내일로 미루는, 그럼으로써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드는 비겁한 자세를 반복하지 않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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