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초과로 얻은 이익이든 정상으로 얻은 이익이든 그 이익을 공유하겠다는 발상은 자본주의 국가에도 있고, 사회주의 국가에도 있고, 공산주의 국가에도 있다. 나라마다 사정과 정도가 다를 뿐,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법으로든 사회 제도나 관행으로든 이익공유제를 시행하고 있다.
▲ 10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 만찬에서 건배하는 이건희 삼성 회장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뉴시스 |
단체교섭은 이익공유의 출발점
한국 사회와 같은 자본주의에서 이익을 만들어낸 집단 사이에 그 이익을 나누려는 대표적인 제도로는 노사 간에 이뤄지는 단체교섭을 들 수 있다. 단체교섭은 노동자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개선하여 사회경제적으로 보다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한 제도다.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과 복지 개선의 재원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게 아니라 해당 기업, 산업 혹은 국민경제가 만들어낸 이윤에서 나온다.
우리나라처럼 기업별 단체교섭이 우세한 곳에서는 기업 수준에서 이익공유가 이뤄지지만, 유럽처럼 산업별 단체교섭이 우세한 곳에서는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산업 혹은 국가 수준에서 이익공유가 이뤄진다. 단체교섭이 없었다면 자본가의 주머니로 몽땅 들어갈 이윤을 단체교섭을 통해서 노동자들이 나눠 갖는 것이다. 자본가의 주머니로 몽땅 들어간 돈과 노동자들의 가계로 고루 흘러간 돈 가운데 어느 것이 국민경제 발전에 더 크게 기여하는가란 질문의 답은 뻔하다.
단체교섭만이 아니다. '근로자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에는 노사 동수로 구성되는 노사협의회가 다룰 사항으로 '생산성 향상과 성과 배분'이 맨 위에 올라 있다. 생산성이 올랐다면, 성과가 늘었을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나눌 지 노사가 논의하라는 것이다. 이 법의 목적은 "근로자와 사용자 쌍방이 참여와 협력을 통하여 노사 공동의 이익을 증진함으로써 산업 평화를 도모하고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것이다.
제헌헌법의 이익균점권
이익공유제는 이승만을 포함한 대한민국 건국자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제헌헌법에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서는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후 독재정권의 개악으로 사라지기는 했으나, 사기업에서의 이익 공유는 우익이 주도한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기본권으로 여겨졌다.
이익공유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라 노동조합의 힘이 상대적으로 강한 유럽은 물론 기업의 힘이 세다는 미국에서도 다양하게 실현되고 있다. 비즈니스사전 사이트(businessdictionary.com)를 보면 이익 공유(gains sharing)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보다 효율적인 자원(에너지, 노동, 그리고 재료)의 활용을 통해 작업집단의 생산성을 향상할 수 있도록 종업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고안된 집단적인 급여 인센티브 제도. 하지만 이익 공유제는 보통 참여경영 없이는 실질적인 개선을 이루기 어렵다."
대기업-중소기업 이익 공유는 당연
물론 이익 공유제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한 기업이 잘 되기 위해서는 노사는 물론 국가와 지역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재벌들도 엄청난 국민 혈세와 여러 가지 정책적 특혜가 베풀어지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위세를 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삼성과 현대 같은 재벌기업들은 재벌총수 가족의 사기업이 아니라 국민기업에 다름 아니다.
재벌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으로 '협력사'에서 일하는 임직원들의 노고를 빼놓을 수 없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말한 초과이익공유제의 핵심은 재벌회사들이 벌어들인 엄청난 이윤을 협력회사를 위해 좀 쓰라는 것이다. 대기업이 초과 달성한 이익을 중소기업체에 나누어 주어 기술 투자와 고용 안정을 통해 동반성장을 도모한다는 개념이다.
대한민국에서 재벌기업들이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사내외(社內外) 하청업체들의 등골을 빼먹으면서 막대한 이윤을 챙겨왔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 결과 재벌기업의 노사는 해마다 보너스 잔치를 벌일 수 있었던 데 반해, 하청에 재하청에 그 밑의 하청으로 내려갈수록 임금이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 수준으로 전락해갔다.
비정규직과 저임금노동자 문제와 직결
정부와 기업은 비정규직으로 표현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문제를 정규직 노동자들의 잘못으로 포장하면서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운동을 공격하는 선동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노동자, 협력사, 지역사회, 정부로부터 다양한 지원과 혜택을 받으면서도 막대한 이윤을 독점해왔던 재벌들의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
노태우 정권 하에서 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 씨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익공유제는 실현 자체가 불가능 하다. 초과 이윤이란 얘기를 끄집어내는데, 초과이윤이라는 산정 자체가 불가능 하다"면서 "잘못하면 강제할 수도 없는 거고 결국 기업 내부의 이윤공유제도 안 되는 나라에서 기업 간 이윤 공유제를 한다는 발상 자체가 근본적인 잘못"이라고 이익공유제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고 한다.
단체교섭 제도가 있고 노사협의회를 통한 성과공유 제도가 있지만, 기업 내부의 이윤공유제도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은 맞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를 겨우 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 내부의 이윤공유제가 잘못된 발상이 아니듯이 기업 사이의 이윤공유제도 잘못된 발상은 아니다. 한 기업의 이윤은 노동자의 노동력이 있어야 하고, 그 기업을 위해 일하는 다양한 하청업체들의 협력이 있어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 헌법제정 전문위원을 맡아 제헌헌법의 설계자 역할을 했던 유진오 전 고려대 총장은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정신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와의 조화", 즉,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과 권리를 위하고 존중하는 동시에 경제균등을 실현해 보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자유와 평등이 국가전체의 이해와 모순되는 단계에 이르면 국가권력으로써 이것을 조화하는 그러한 국가체계를 생각해 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재벌들은 단군 이래 최대 이윤을 내고 있지만, 그 돈이 밑으로 돌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재벌들이 누리는 지나친 '자유'로 국민들이 누려야 할 '평등'이 심각하게 침해받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60평생 넘게 살아오면서 이익공유제를 들어본 적도 없다는 이건희 삼성재벌 회장의 발언은 그의 의도 여부를 떠나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無)노조 정책 때문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주도하는 유엔 글로벌 콤팩트에도 가입하지 못하는 삼성이 글로벌 정치 경제의 격변기에 무엇을 꿈꾸며 어디로 가고 싶어하는지를 잘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 애쓰고 있음은 두말 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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