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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약국' 인도가 무너지면, 우리도 다친다"

[기고] "우리 약에 손대지마!"…인도-유럽FTA가 가져올 위험

한국의 환자들이 인도와 유럽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데 결사적으로 반대한다고 한다. 한미 FTA나 한-EU FTA라면 몰라도, 이들은 왜 먼 나라 이야기 같은 인도-유럽 FTA에 반대할까?

답은 세계화에 있었다.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인 권미란 씨는 인도가 '세계의 약국'이라고 말했다. 인도에서는 초국적 기업들이 '독점'하는 약들을 복제해 싼값에 팔아 왔다는 것이다. 얼마나 싸냐고? 똑같은 당뇨병 치료제가 인도에서는 1000배 이상 싸다! 반대로 말하면 초국적 제약회사는 원가가 100원도 안 되는 약 한 알을 이를테면 10만 원에 팔아왔던 셈이다.

인도는 한국과는 달리 '특허권'과 '의약품 공공성' 사이에 균형을 맞추어 왔다. 권 씨는 가난하지만 매일 약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환자들에게 '인도'는 마지막 보루와 같았다고 말한다. 그런 인도마저 이제는 '특허권'과 '자료독점권'에 발을 묶일 위기에 처했다. 권 씨에게 '인도-유럽 FTA'의 자세한 실상을 들어봤다. <편집자>

나에게 인도는 가난, 카레, 요가, 갠지스 강이 연상되는 정도였다. 인도가 '세계의 약국'으로 불린다는 걸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2002년 백혈병치료제 '글리벡' 강제실시 투쟁당시 인도에 글리벡과 똑같은 제네릭(복제약)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안도했었지만 인도의 역할이 '세계의 약국' 수준인줄은 몰랐다.

인도, 전 세계 에이즈 치료제 90%를 공급하는 '세계의 약국'

인도는 전 세계 제네릭 의약품시장의 20%를 공급하고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 필요한 에이즈치료제의 90%를, 전 세계 에이즈치료제의 50%를 공급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글로벌펀드, 국제의약품구매기구(UNITAID)를 통해 115개국에 에이즈치료제가 공급된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06년 이래 인도에서 생산된 제네릭 에이즈치료제는 이들 국제기구에 의해 공급된 에이즈치료제의 80% 이상을 차지했고, 2008년에는 87%를 차지했다. 태국, 브라질, 남아공, 네팔처럼 정부차원에서 공공의료기관에 공급하는 인도산 에이즈치료제까지 포함하면 그 비중은 90%를 훨씬 넘는다. 소아용 에이즈치료제 역시 인도산이 91%를 차지한다. 즉 북미, 유럽, 일본, 한국 등 소위 선진국과 선진국흉내를 내는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인도산 에이즈치료제에 의존하고 있다.

전 세계에 3300만 명이 넘는 에이즈 감염인이 살아가고 있다. 이들 중 에이즈치료를 받고 있는 이는 500만 명이 넘는다(2009). 2001년에 24만 명이 에이즈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값싼 인도산 에이즈치료제 덕분이었다. 그러나 WHO의 에이즈치료가이드라인(2009)에 따르면 에이즈치료가 필요한 이는 1500만 명에 이른다. 아직도 2/3가 치료를 받지 못 한 채 죽어가고 있으며, 내성이 생겼을 때 사용하는 2차, 3차 에이즈치료제에 대한 접근은 더욱 제한적이다. 인도가 제네릭 생산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더 값싸게 더 많이 공급하기를 120개국이 넘는 국가의 에이즈환자들은 간절히 소망한다.

한국에서도 인도산 제네릭이 필요하다. 약값이 너무 비싸서 환자들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경험을 우리는 뼈저리게 겪었다. 백혈병치료제 '글리벡'과 똑같은 인도약 '비낫'의 가격은 글리벡의 1/20이다. 한국에서는 한 달에 100~150만원하는 1차 에이즈치료제에 비해 인도약은 100달러도 되지 않는다. 지금도 약값이 너무 비싸서 한국에서는 약을 구하지 못해 인도약을 수입하려는 환자들이 있다. 의사가 처방을 해주지 않아 수입이 불가능할 때는 밀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인도는 한국의 환자에게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이다.

'세계의 약국' 을 철거하려는 인도-유럽 FTA

인도가 '세계의 약국'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인도특허법의 역사와 더불어 인도의 활동가들이 특허독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 특허강화를 반대하는 강력한 운동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인도는 의약품 수요의 약 85%를 외국계 제약회사에 의존하고 있었고, 약값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그래서 인도정부는 1972년에 의약품에 대한 물질특허를 폐지하였다. 따라서 인도의 제약회사들은 제조공정을 달리하여 제네릭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인도는 WTO 트립스협정(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에 따라 2005년에 의약품에 대한 물질특허제도를 재도입했지만, 특허요건을 '기존약에 비해 상당한 임상적 효과가 입증된 경우(인도특허법 section3(d))' 등으로 제한하여 '세계의 약국'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인도특허법은 자료독점권이나 특허-허가 연계와 같은 '트립스 플러스'조항을 담고 있지 않다.

▲ 한미 FTA가 체결되면 한국 제약 업계과 환자들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특허권이 강화되면 복제약을 만들기 어려워지고 약값도 오르기 때문. 사진은 서울시 종로구 대형약국에서 환자들이 약을 구입하는 모습. ⓒ연합
그러나 초국적 제약기업은 인도특허법에 트립스플러스 조항을 포함시키려고 끊임없이 소송과 로비를 하고 있다. 노바티스는 2006년 1월에 글리벡 특허가 거절되자 인도특허법 section 3(d)가 트립스협정에 위배된다고 2006년 5월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2007년 8월과 2009년 6월에 각각 노바티스의 소송을 거절하는 판결이 내려졌지만 노바티스는 section3(d)조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2009년 8월에 대법원에 소송을 걸었고, 소송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또한 바이엘사는 항암제 '넥사바'와 똑같은 약을 인도 시플라사가 판매허가를 받자 특허-허가 연계제도를 도입하고 시플라사의 판매허가를 취소할 것을 요구하며 소송을 걸었다. 대법원까지 끌고 간 바이엘사의 소송은 2010년 12월에 대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대법원은 특허제도와 의약품규제제도는 별개이고, 인도법 하에서는 의약품규제기구가 특허약의 제네릭 판매허가를 막을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시플라사의 판매허가여부는 바이엘사가 이미 제기한 특허침해소송에서 다룰 문제라는 것이다.

앞서 로슈사 또한 항암제 '타세바'에 대해 특허-허가 연계를 주장하다 대법원에서 기각당한 바 있다. 2008년에 시플라사가 타세바와 같은 제네릭을 시판하자 로슈사는 특허-허가연계를 주장하며 소송을 걸었다. 그리고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고 시플라사는 특허무효소송으로 맞대응했다. 2009년 4월에 고등법원은 시플라사의 판매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고, 2009년 8월에 대법원은 로슈의 소송을 기각했다. 현재 특허소송은 진행 중이다. 인도에 있는 초국적기업들의 연합인 OPPI(Organisation of Pharmaceutical Producers of India)는 자료독점권, 특허-허가연계, section3(d)의 개정을 촉구하는 로비를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런 초국적제약기업의 요구를 한방에 관철시키려는 것이 인도-유럽FTA이다. 인도정부와 유럽연합은 의약품자료독점권과 지적재산권 집행조항에 대한 합의만을 남겨두고 있고 3월에 체결할 예정이다.

의약품에 대한 독점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특허권이고 다른 하나는 자료독점권이다. 153개국이 가입한 WTO TRIPS(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에 따라 최소 20년의 특허보호기간이 보장된다. 자료독점권은 의약품 판매승인을 받을 때 제출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안전성, 유효성에 관한 임상시험자료를 제네릭 제약회사가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제네릭 출시를 지연시켜 오리지널 의약품의 독점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자료독점권이 부여되면 특허가 없는 혹은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일지라도 판매독점권이 생기게 되어 제네릭 생산과 수출을 못하게 되고, 심지어 강제실시와 같은 특허권의 공공적 사용도 못하게 된다. 자료독점권은 특허권에 비해 독점기간이 짧지만 훨씬 간편한 절차를 거쳐 쉽게 얻을 수 있다. 초국적제약회사가 노리는 것은 인도의 특허요건에 미달하는, 임상적 효과가 더 낫지도 않은 약들에 대해 더 수월한 방식으로 독점을 획득하여 제네릭의 생산을 막고 비싼 약값을 받으려는 것이다.

지적재산권 집행조항은 초국적기업들이 지재권 침해를 빌미로 사법절차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민·형사소송을 손쉽게 제기하도록 하고, 과다한 배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며, 제네릭을 위조품으로 간주하여 압류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인도활동가들은 투자자-국가소송제가 포함되어 약가인하조치와 같은 국내보건정책 결정권이 훼손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자료독점권의 폐해: 돈 없으면 약 먹을 자격이 없다는 그 말

자료독점권은 '돈 없으면 약 먹을 자격이 없다'는 말과 같고, 이름뿐인 약들만 존재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에서도 들어본 말이다. 초국적 제약사 로슈가 2004년에 에이즈치료제 '푸제온'을 보험 등재까지 해놓고도 지금까지 건강보험을 통해서는 공급하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이름뿐인 약이다. 그 이유에 대해 로슈는 '의약품 공급에 관한 문제는 해당 국가 국민이 해당 의약품을 구매할 능력이 되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며 '실제 푸제온의 약값이 비싸다는 점에서, 한국뿐만 아니라 경제수준이 낮은 동남아지역 국가에는 푸제온 공급이 안 되고 있다'고 밝혔다(<약업신문> 2008. 5.22).

특허권이든 자료독점권이든 오리지널 의약품의 독점으로 인해 환자들이 받을 고통은 같다. 자료독점권의 폐해는 이미 충분히 증명되었다. 초국적기업들은 특허권보다 자료독점권을 얻기가 훨씬 간편하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특허보다는 자료독점권을 통해 독점을 획득해왔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과테말라와 요르단은 자료독점권 때문에 약값폭등을 초래했고, 이름뿐인 약들로 가득하다.

요르단은 2001년 12월에 트립스플러스 조항을 담은 미국식 FTA를 처음 체결한 나라이다. 미-요르단 FTA에 관한 옥스팜 보고서(2007)에 따르면 2001년 이후부터 2006년 중반까지 21개의 초국적 제약사가 요르단에 등재한 신약의 79%만큼이 오로지 자료독점권 때문에 제네릭이 출시되지 못했다. 즉 이 79%에 해당하는 신약은 특허권이 없지만 자료독점권으로 인해 독점을 획득한 약들이다. 이 신약들의 가격은 자료독점권이 없는 이웃나라 이집트에 비해 현저히 비싸다. 당뇨약 '메트폴민'은 8배, 고지혈증약 '심바스타틴'은 5배에 달한다. 전혀 구매기록이 없거나 미미한 신약들이 허다한 것은 당연지사다. 요르단 의약품시장에서 제네릭이 없는 독점약의 비중은 2002년 3%에서 2006년 중반에는 9.4%까지 늘어났다.

과테말라는 1999년에 물질특허제도를 도입했고, 2005년에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를 체결했다. 자료독점권은 2000년에 도입되어 5~15년간의 독점기간을 허용하고 있다. CPATH 보고서(2009)에 따르면 자료독점권이 있는 약은 같은 치료계열의 약값과 비교했을 때 무려 1000배가 넘는 약도 있다. 고지혈증치료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크레스토'는 같은 치료계열인 제네릭 '플루바스타틴' 캡슐의 2.5배이고, 당뇨병치료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 '란투스'는 인슐린 주사액의 8.5배, 항진균제인 '브이펜드 주'는 제네릭 '플루코나졸' 캡슐과 '이트라코나졸' 캡슐에 비해 각각 1208배, 264배에 달했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대학살을 초래하는 거래는 중단되어야

ⓒ국경없는 의사회
하지만 FTA를 체결한 후 민중에게 억만금이 돌아갔다는 사례는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식량·의약품 가격 폭등, 공공서비스의 붕괴, 주권 박탈로 이어졌을 뿐이다. 특히 인도는 120개국이 넘는 개발도상국의 민중에게 '세계의 약국'인 만큼 그 피해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전 세계의 환자와 활동가들은 3월 2일에 인도-유럽FTA 중단을 촉구하는 국제공동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상식적으로 해야 할 말은 국경없는 의사회가 하고 있는 캠페인(https://action.msf.org/en_CH) 구호면 족하다.

"유럽! 우리 약에 손대지마(EUROPE! HANDS OFF OUR MEDI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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