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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칼바람 속 노동자, 살처분 짐승과 뭐가 다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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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해고 칼바람 속 노동자, 살처분 짐승과 뭐가 다른가요?"

[인터뷰] 고공 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27일 오후, 영상 20도가 넘는 포근한 사무실에서 전화기를 들어 버튼을 누르는데 마음 한 편이 불편하다. 유난히 심한 올해, 게다가 96년 만에 최대 한파가 찾아왔다는 부산에서 35미터 크레인 위에 올라가 23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와 대화의 온도를 맞출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이다. 수화기 너머로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는 뜻의 '돈 데 보이(don de voy)'가 흘러나온다.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지난 6일 새벽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35미터 크레인 위에 홀로 올라갔다. 햇수로 3년째 접어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시도가 갈 수록 강도를 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구조조정 당시 김주익 한진중공업노조 지회장이 목을 매 목숨을 끊었던, 바로 그 85호 크레인이다. 구조조정이 문제가 될 때마다 반복되는 메아리 없는 집회와 선전전 속에서 지난해 24일간의 단식에 이어 홀로 고공 농성을 벌이는 김 지도위원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김 지도위원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밝았다. 지독한 추위에도 목이 잠긴 기색은 없었다. 안부를 물어도 조합원들 이야기가 앞섰다. 반평생을 해고자로 살아왔지만 언제나 그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함께 한다. 반복되는 위기에 날카로움을 잃어가는 노동계에 대한 비판 의식도 여전히 선명했다. 될 싸움 안 될 싸움 미리 가리면 돌아오는 결과만 낳을 거라는 그의 고독한 농성은 설을 넘길 가능성도 있다. 그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고공 농성과 트위터, 내겐 적응력이 뛰어난 유전자가 있나 보다"

프레시안: 건강상태는 어떤가.

김진숙: 작년(정리해고 당시)에 24일간 단식을 하면서 위를 버렸다. 이후에 밥을 잘 못 먹는다. 여기서도 군고구마나 두부로 끼니를 삼는다. 그것 빼고는 괜찮다. 허리나 다리는 원래부터 아팠으니.

프레시안: 크레인 위에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김진숙: 올라오기 전에도 1년 넘게 한진중공업 앞에서 출근투쟁을 했다(*김 지도위원은 2009년 11월 민주화운동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부당해고 결정을 받았지만 한진중공업은 그를 복직시키지 않았다). 매일 5시에 일어나는 생활의 반복이었고 깊은 잠을 자본 적이 하루도 없다. 여기서는 푹 잔다(웃음).

오전 7시 30분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는데 추워서 움직이진 못한다. 이불 속에서 장갑 낀 채로 신문을 읽으며 보낸다. 점심을 먹을 때쯤이면 햇살이 들고 움직일 만하다. 밤새 얼어 버린 물도 그때쯤엔 녹아서 마실 수 있다. 주변 청소하고, 운동 1시간씩 하고. 오후가 되면 (크레인 조정실 밖으로) 나와서 얼쩡거린다. 사수대 동지들 눈 마주치고 크레인 밑에 오는 손님들 맞는다. 그러다보면 오후가 거의 다 간다. 저녁 먹고 나면 매일 열리는 촛불집회가 있다. 전화기에 마이크를 연결해 발언할 때도 있다. 7시 30분에 시작해 9시 30분 정도에 끝나는데, 그러면 다시 (추워서)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이 돌아온다. 트위터도 하는데 그러다보니 책 볼 시간이 없어지더라.

프레시안: 트위터로 응원이나 지지를 보내는 이들은 많나.

김진숙: 많이 오는 편이다. 트위터로 글을 길게는 못 쓰겠고 크레인 위에서 겪는 사소한, 소중한 일상을 적으면 많이들 응원하더라. 답장도 하고. 하루에 두 시간은 트위터를 하는 것 같다. 막상 해보니 의외로 단순하더라. 아마 적응력이 뛰어난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 크레인도 그렇고 상상하기 힘든 공간이나 조건 속에서 오히려 더 잘 살아남는(웃음).

▲ 크레인에서 손을 들어 보이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모습 ⓒ민주노총 부산본부 제공

"구조조정 당하는 노동자, 살처분 짐승과 뭐가 다른가"

프레시안: 지난 6일 새벽 크레인에 올라갔을 때 주위의 우려가 많았다. 전날만 해도 예고됐던 정리해고 통보가 연기됐고 노사 간 대화도 재개된 상태였다. 지난해처럼 합의를 볼 수 있는 분위기 아니었나.

김진숙: 사측은 교섭을 재개한다고 주장했지만 대단히 기만적인 표현이었다. 대화의 장에 상급단체인 금속노조가 빠진 상태에서 조합원들도 교섭이 필요한 단계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측이 정리해고를 유보한다고 기정사실화했다. 지난해 초에도 정리해고를 '중단'한다고 합의해놓고 1년이 안 돼 칼날을 빼들었다. 그런데 이번엔 '유보'다. 조합원들은 정리해고의 고통이 연장되는 걸 견디지 못했다. 작년에 중단해놓고 회사가 한 일은 설계실 폐쇄, 울산공장 폐쇄, 600명 명예퇴직, 300명 장기휴직이다. 그게 1년 동안 진행됐다. 정리해고 유보는 그런 과정의 연장일 뿐이다. 그래서 '안 되겠다, 쐐기를 박지 않으면 사측은 더 도발하고 비난으로 일관할 거다'라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85호 크레인에선 2003년 김주익 지회장이 숨진 비극이 있었다. 그래서 우려가 더 컸다. 진보신당 강상구 대변인도 그날 소식을 전하며 울음을 삼켰다. 본인도 故 김 지회장 생각을 했나.

김진숙: 대변인이 울먹였나. 모르고 있었다. 수십 대의 크레인 중 85호를 택한 건 사측이 벌이는 상황이 2003년 당시와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구조조정 프로그램마저 비슷하다. 우리 스스로 만만한 싸움이 아니라는 경각심을 가져야한다. 노동자 몇 백 명 정리해고 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구제역 기사에 산채로 묻히는 짐승들의 이야기가 많더라. 난 그게 노동자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단체로 생매장 당하는 꼴이다. 이번에 발표된 정리해고 명단을 보면 젊은 동지들이 많다. 나이든 노동자들이 아닌 젊은 층을 해고한다는 건 나중에 해고를 또 하겠단 얘기다. 연세 많은 이들은 1~2년 이면 어차피 정년퇴직을 해야 한다. 명예퇴직 등 던질 수 있는 미끼도 있다. 그래서 더 만만한 싸움이 아닌 거고, 어떻게든 마무리해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크레인에 오르는 건 작년에도 생각했는데 용기가 안나 단식을 택했었다.

▲ 지난해 1월 단식 당시 김진숙 지도위원 ⓒ매일노동뉴스
프레시안:
크레인에 오른 직후 만류하는 이는 없었나.

김진숙: 제일 말린 이들이 2003년 당시 크레인 아래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젊은 조합원들이었다. 이번에도 제일 먼저 달려와 가장 많이 울더라. 근데 말려도 어차피 내가 말을 안 들으니까(웃음). 그날은 오르고 나서 전화도 받지 않았다.

프레시안: 농성 이후 최근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12일에는 사측이 290명에 일방적으로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김진숙: 앞서 말한 젊은 친구들이 통보를 받고 받은 상처, 배신감, 절망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다. 통보가 나온 그 주말이 고비다 싶은 정도로 축 처진 분위기가 눈에 보였다. 처음부터 만만한 싸움 아니라고 해서 올라왔고, 그래도 주말 지나가고 나니 다행히 추스르는 것 같았다. 젊은 노동자를 해고한 사측의 의도도 알아챘으니 시간이 가면서 더 안정이 되어 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조합원들이 최우선이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주말에는 나도 여기서 버티기 힘들었고, 조합원들이 기운을 차리니 나도 힘이 붙고.

프레시안: 한진중공업 측이 김 지도위원을 '회사와 관련이 없는 이'라며 법원으로부터 퇴거명령서를 받아냈다. 내려오지 않으면 100만 원씩 벌금이 부과된다. 얼마 전 편지에서도 '100만 원짜리 인간이 됐다'고 썼는데.

김진숙: 그걸 보면서 '얘들이 정말 자료가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날 공격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나보다. 1986년에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하고 얼마 뒤 한진중공업으로 전원 고용이 승계됐다. 사측의 지금 논리라면 지금 조선소 사람 절반이 한진 사람이 아닌 거다. 당시 노동 운동을 하나 나와 함께 해고된 이들도 2003년에 다 복직이 됐다. 그런 논리라면 왜 복직을 시켰나. 난 아직도 한진중공업 조합원이고 조합비도 낸다. 몸담고 있는 민주노총은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의 상급단체다.

"이슈화? 우리보다 GM대우, 발레오 동지들이 더 안타까워"

프레시안: 지난해 단식 당시 인터뷰에서 '노동운동 24년을 허송세월했다'며 노동자들의 파편화, 소외 문제를 지적했다. 이제 25년째를 맞았다. 지금도 연대의 결핍을 느끼나.

김진숙: 작년에 단식을 하고 있으면 연맹별로 천막도 죽 치고 연대단위도 늘어날 거라고 기대했는데 현실이 달라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 힘들었던 기억이다. 겪어봐서 그런지 이제는 크게 기대하는 게 없다.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고. 지금까지 안 되던 게 누가 크레인 올라간다고 하루아침에 되겠나. 와서 마이크 잡고 연대 말해도 믿지 않는다. 기대를 하면 거기에 의존하게 되니 더 힘들어진다. 그래도 조합원들과 마음이 있는 분들이 저녁마다 촛불집회를 열면 연대하는 기분이 든다.

프레시안: 홍익대에서도 나이 많은 여성 청소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해고에 항의하는 농성이 벌어지고 있다. 트위터 등을 통해 많은 지지와 도움이 쏟아지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시민사회의 연대나 이슈화가 덜 돼 아쉬운 건 없나.

김진숙: 아쉽지 않다. (지지하는 분들이) 마음 가고 몸 가는 곳으로 가는 게 좋은 거 아닌가. 홍익대 사태는 배우 김여진 씨가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그런 분들이 연대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이슈화시켜 좋은 결과 만들면 좋은 거다. 나도 운동하면서 모든 사업장을 다 가본게 아니고 되는 싸움에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지금 우리보다 GM대우, 발레오공조코리아 동지들이 훨씬 어렵게 싸우고 있는 게 오히려 더 안타깝다.

프레시안: 단식에 이어 고공 농성이 이어질 때까지 긴 시간 정리해고를 추진하는 사측 역시 물러설 것 같지 않다. 어떤 결과를 바라는 것 같나.

김진숙: 판단컨대 이 조선소를 관리직을 제외하고 다 자르겠다는 심산인 것 같다. 자기들이 말하는 것처럼 조선소를 당장 팔아먹지는 않을 거다. 조선업도 장치산업이니 단시간에 그러기 쉽지 않다. 그 전까지는 필리핀에 주력하고 영도 조선소는 하청기지화해 이윤을 높이겠다는 거다.

▲ 영도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선박 ⓒ프레시안(김봉규)

프레시안: 설이 얼마 남지 않았다. 크레인 위에서 설을 맞을 가능성도 있는데 기분은.

김진숙: 글쎄, 나보단 조합원들이 대부분 장남이고 가장이다. 정리해고 통보받고 싸움 마무리도 짓지 않은 채 명절을 맞는 게 힘들 거다. 지난 일요일에 가족들이 참가한 문화제를 했다. 한 달째 집에도 안 들어가는 조합원 보러 부모님부터 애들까지 왔는데 지켜보면서 마음이 좀 그렇더라. 그날은 조합원들이 술을 많이 먹었다. 울기도 하고 나한테 전화도 많이 하고. 설에도 여기서 합동 차례도 지내도 술도 많이 먹겠지.

프레시안: 힘든 싸움인데, 땅 위에 있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진숙: 구조조정은 곧 대량 해고다. 큰 이슈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햇수로 4년 동안 너무 끔직한 일들을 많이 겪으면서 우리 스스로 분노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터지고 터지니 분노가 일상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누가 분신해도 놀라지도 않고. 연대하러 가면 좋았을 텐데 죽고 나면 문상 가는 현실. 노동계 내부에서도 성찰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정리해고만 해도 몇 년 전만 해도 받아드릴 수 없는 사안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어려우니까 할 수 없는 게 아니냐는 의식이 노동자들 사이에서조차도 생겨나는 것 같다. 그런 과정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아예 묻혀버린다. 우리 스스로 분노를 되살리는 게 곧 힘이지만 그마저도 무뎌져 있는 현실이다. 될 싸움과 되지 않을 싸움을 미리 예단하고 '명예퇴직만 되도 선방한 거다'라는 얘기나 하고. 명퇴나 정리해고나 뭐가 다른가. 강제로 퇴사하는 건 마찬가지고 결국 비정규직 될 건데.

프레시안: 마지막으로 크레인에서 어떻게 내려오고 싶나?

김진숙: 박수 받으면서 내려가는 게 제일 좋지 않겠나. 밑에선 청소 깨끗이 해놓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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