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산재를 신청한 이는 1992년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해 14년 7개월간 근무하다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에 걸린 이윤성(38) 씨다. 그는 기흥공장 구(舊) 라인인 5라인에서 화학증기를 이용해 기판 위에 단결정 반도체나 절연막을 만드는 CVD공정의 설비 엔지니어로 일했다.
이 씨가 맡은 일은 CVD 공정에서 증기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가스가 담긴 설비를 점검하고 고장이 나면 수리하는 PM업무였다. 표면적으로는 3조 3교대 근무였지만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날이 대다수였다. 생산량이 적은 날이나 장비가 멈춰 수리하는 날에는 연장근무 제한시간을 넘길 때도 많았다. 일은 고되고 항상 피로가 남았다고 한다.
CVD 공정에는 모노실란(SiH4), 포스핀(PH3), 디보란(B2H6), 암모니아(NH3), 육불화텅스텐(WF6), 오존 등 인해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가스가 자주 사용된다. 사람이 노출되면 근육이나 장기, 신경 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씨가 일하는 5라인은 노후 설비가 많아 문제가 자주 발생했는데, 설비를 교체하고 고치는 과정에서 독한 냄새를 풍기는 가스에 자주 노출되었다고 했다.
이 씨가 일할 당시 5라인은 한 달에 최소 5번 이상 작업장에 냄새가 퍼졌다. 엔지니어들은 별도의 보호장구 없이, 때로는 방진 마스크를 벗고 코로 직접 냄새를 맡아 문제가 발생한 곳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챔버 설비와 배관에 남아있는 잔류가스와 기타 물질을 제거할 때 PMPI라는 유독성 물질을 사용할 때가 있는데, 1년에 한번 꼴로 PMPI가 든 병을 교체하고 나면 하루 이틀은 두통으로 누워있어야 했다. 한 번은 교체 시 PMPI 한 방울이 바닥에 떨어져 순식간에 역한 냄새가 퍼져 전원이 밖으로 대피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 씨는 따로 방독면을 착용한 적은 없다고 했다. CVD 공정의 플라즈마 장비에서는 강한 전자기장과 방사선이 발생하는데 플라즈마 섬광을 맨눈으로 보던 작업자가 실명하는 등 작업환경 곳곳에 위험 요소가 많았다.
이 씨는 주어진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무리하게 작업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고 주장했다. 펌프와 배기장치가 몰려있는 지하는 배기가 잘 되지 않아 각종 가스 냄새가 많이 났다고 했다. 설비에 공급되는 가스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누출을 방지하기 위해 가스가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시간 절약을 이유로 심한 경우가 아니면 작업을 강행했다. 이 씨 역시 작업 중 구토와 두통 증상을 장시간 겪었다. 유독 가스를 덜 위험한 형태로 중화하는 과정에서 가루 형태로 나오는 반응물을 치우다 흡입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 ⓒ프레시안(최형락) |
이런 환경에서 14년이 넘게 근무한 이 씨는 결국 2006년 7월경부터 다리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고 같은 해 8월 퇴사했다. 이후 2008년 12월 다리에 종양이 발견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근육 경련 등 증상은 계속됐고 2009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루게릭병은 증상을 늦추는 치료법만 있는, 불치병이다.
현재 이 씨는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거동에 장애를 겪고 있다. 식사부터 씻는 것까지 모두 아내 이 모 씨가 도맡고 있다. 부부는 지난해 5월 지인을 통해 반올림을 알게 됐고, 처음으로 이 씨의 발병이 산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아내 이 씨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반올림을 만나고 나서 남편의 근무환경에 대해 처음 들었는데 너무 놀랐고 억울했다"며 "다른 사업장에서 전기화학에 관련된 일을 하다 루게릭병에 걸린 사람들이 산재 인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있어서 남편의 병도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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