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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백혈병' 논란 낳은 산재보험 제도, 개선책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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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백혈병' 논란 낳은 산재보험 제도, 개선책은 없나?

'산재판정 문제점과 개선방향' 토론회 열려

'삼성 백혈병' 논란을 계기로 산재보험 승인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산업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작업장 환경이 복잡해지고 직업성 암도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지만 과학적인 입증이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거액의 치료비가 당장 부담되는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것은 산해보험의 취지를 망각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참여연대와 민주당 이미경 의원이 주최한 '산재판정 제도운영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정책토론회'는 '삼성 백혈병'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을 꾸준히 주장해온 반올림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이 모여 현재 산재 인정 기준의 문제와 한계를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 토론회에는 삼성 반도체 사업장에 대한 연구 용역을 맡았던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장과 김제락 고용노동부 산재보험과장도 함께 했다.

반올림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산업의학 전문의는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를 비롯해 직업성 암에 걸린 이들을 지원하지 못하는 산재보험의 허점을 지적했다. 공 전문의는 "미국 기준으로 직업성 암으로 추정되는 비율은 전체 암 발병건수의 4% 수준"이라며 "하지만 실제 직업성 암으로 보고되는 비율은 프랑스나 영국, 독일이 8.3~12.9%인데 반해 한국은 2007년 기준 0.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공 전문의는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 최초로 암 관련 산재를 신청했던 故 황유미 씨의 경우를 봐도 최초 신청에서 불승인 결정까지 2년이 걸리는 등 업무상 질병 판정 절차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며 "직업성 암이 발견되기 어려운 구조 속에 보고율이 점차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이 점을 사업주들이 산재 신청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부도덕한 일들이 삼성 백혈병 사건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고 덧붙였다.

문길주 금속노조 노동안정국장은 "2007년 8월 산재보험법 개정 이후 뇌심혈관계질환 승인율이 40~50%에서 15%이하로 급격하게 감소했다"며 "개정 이전에는 7일 걸리던 승인 기간이 최소 2~3달 길어져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한 초기에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국장은 "여기에 업무상 질병 여부 결정에 필요한 세부 사항은 장관 고시로 위임해 승인을 더 까다롭게 만들고 있다"며 "근로복지공단의 지침에서도 과로로 인한 산재 기준을 어떤 근거도 없이 일상 업무 시간의 30%' 이상이라고 규정함으로써 평균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 중 하나인 한국의 노동 상황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라고 지적했다.

백도명 교수는 기업이 정부의 산재 판정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백 교수는 반도체 공정을 예로 들어 "삼성은 공정에 쓰이는 물질을 영업 기밀이라고 공개하지 않지만 현재 삼성이 생산하는 반도체는 1990년대 IBM이 생산하던 방식으로 최신 공정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며 "더군다나 노동자들의 건강에 관련된 정보까지 포함해 모든 게 기업 비밀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삼성 반도체 사업장의 작업환경을 측정하는 유지관리 인력들도 본사 직원이 아닌 하청을 받은 업체 직원들"이라며 "그나마 라인이 새롭게 설치되고 나서 시행착오를 겪는 초기 과정에서의 측정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노동자들의 산재 승인 여부에 대해 거의 절대적인 권한을 쥐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비판도 잇따랐다. 공 전문의는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불승인의 근거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산보연)의 역학조사 결과를 들고, 산보연은 역학조사가 단지 과학적인 측면에서 업무관련성을 평가하는 것일 뿐이라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 교수도 "이해당사자가 모두 참여한 상태에서 판정 논리에 대한 동의를 얻고, 공개된 증거를 바탕으로 나온 결과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게 정상인데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며 "결과를 미리 예상해 놓고 이에 따른 이해당사자들의 관계를 설정한 다음 논리를 끼워맞추고 그에 맞지 않는 증거는 제외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 ⓒ프레시안(최형락)

"독립적인 질병판정 위원회 설치해야"

참가자들은 직업성 암 등 승인율이 낮은 산재를 입은 노동자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책임은 가볍고 권한은 막대한 근로복지공단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문길주 국장은 "불승인 남발기구인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해체하고, 최소한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판정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도명 교수도 "노동부에 질병 인정기준을 설정하는 위원회를 만들고 독립된 판정검토위원회를 설치하는 한편 주치의를 포함한 이해당사자의 참여, 기업 비밀의 범위를 명시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유정옥 전문의는 "산업의학 교과서에도 역학 연구에서 해당 물질이 발암성이 없다고 해서 이를 암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하고 있다"며 협소한 판정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재보험법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세계보건기구 등에서 발표한 발암성 물질 등의 국제 기준을 도입해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쉽게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참석한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도 "한국의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은 일본의 기준을 그대로 베껴온 것"이라며 "인정기준의 통일성, 인정절차의 효율성, 산재환자의 보호 등에 대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측 발언자로 참석한 김제락 고용노동부 산재보험과장은 "직업성 암과 관련해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많은 지적이 있었고 현재 개선책 마련을 위해 연구 용역을 진행중"이라며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대한 지적 역시 공단에서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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