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반도체 산업의 주역이면서도 이날 초대받지 못한 이들이 있다. 반도체 산업의 최하층인 생산 라인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 희귀병에 걸렸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이다. 29일 정오, 행사가 예정된 63빌딩 앞에 방진복을 입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건 지킴이 반올림' 회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방진복 등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름이 달려있었다.
▲ 29일 제3회 반도체의 날 행사가 열릴 서울 여의도 63빌딩 앞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회원들이 방진복을 입고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
이 자리에서 반올림은 삼성반도체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을 지지하는 국제사회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은 "지난 20년간 삼성은 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전자회사로 성장했지만 슬프게도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삼성의 제품을 만드는 노동자들은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됐다"며 "100명의 노동자가 암에 걸려 최소 30명이 사망한 사건은 세계 전자산업의 집단 암 발병 중 가장 큰 규모"라고 밝혔다.
선언문은 정부와 삼성이 △생산시설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구성성분과 독성정보 △생산시설에서 산업위생 관련 모니터링 결과 △삼성 노동자들의 건강진단 방법과 결과 자료 △지금까지 수행된 반도체산업 관련 산업보건 연구 결과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정부가 반도체 피해 노동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보장하고 삼성이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질 것을 촉구했다.
▲ 삼성 LCD 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이 생긴 한혜경 씨가 장미꽃 한 송이를 꼭 쥐고 있다. 꽃잎은 잠시 후 방진복을 입고 거리에 쓰러진 반올림 회원들 위로 뿌려졌다. ⓒ프레시안(김봉규) |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청원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세계 50여 개국의 산업보건 전문가 등 7000여 명에 이른다(☞관련 사이트 바로가기).
기자회견에는 이날 오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재심사청구를 신청한 한혜경 씨와 모친 김시녀 씨가 함께했다. 경기 기흥의 삼성 LCD 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을 얻은 한 씨는 현재 사물이 4개로 보이는 복시 증상 등 혼자서는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수술 후유증을 앓고 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작업환경과 한 씨의 발병을 연관지을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날 오전 재심사 청구에 앞서 기자회견을 가진 한 씨는 어눌한 말투로 "삼성에 들어가서 12시간씩 일한 죄밖에 없는데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며 "(근로복지공단이) 자꾸 이러면 나 같은 사람이 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친의 만류에도 마이크를 놓지 않고 "근로복지공단 나와!"라고 외치다 끝내 오열했다. 하지만 뇌종양 수술 당시 눈물샘까지 제거된 한 씨는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 뇌종양 수술 당시 눈물샘이 함께 제거된 한혜경 씨.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인정을 촉구하며 오열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프레시안(김봉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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