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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과 농구, 미국 흑인의 유이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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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과 농구, 미국 흑인의 유이한 꿈

[김봉현의 블랙비트] 키워드로 보는 힙합-농구①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있다. 그냥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다는 걸. 초코파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굳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의심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꽤 존재한다.

피자에는 콜라다. 누구도 피자와 막걸리를 같이 먹고 마시지 않는다. 오징어는 땅콩을 곁들여 씹어야 제격이다. 삼국지로 말해보자. 미방 옆에는? 부사인이다. 장달과 단짝은? 범강이다. 그리고 누구도 조조와 엄백호를 최강콤비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힙합과 어울리는 스포츠는 무엇인가. 테니스인가? 축구인가? 내가 '힙합!'하면 너는 '세팍타크로!'를 외치면 그럴싸한가? 모두 엉터리 거짓놀음이다. 힙합의 동반자는 누가 뭐라 해도 농구다. 힙합과 농구, 농구와 힙합. 우리는 아무도 이 둘의 끈끈한 관계를 의심하지 않는다.

▲미국 농구 꿈나무들의 새로운 우상인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미국 흑인 사회에서 농구와 힙합은 뗄 수 없는 삶의 단편이다. ⓒ뉴시스

왜일까? 어째서 내가 '힙합!'하면 너는 '농구!'를 외치는 일이 자연스럽게 되어버린 걸까? 역시 아무래도 인종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힙합과 농구는 '흑인의 것'이라는 절대적인 공통점을 지닌다. 에미넴(Eminem)같은 백인 래퍼의 성공이 굉장히 이례적으로 취급받고 'NBA에는 흑인이 많은데 EPL 스타들은 왜 대부분 백인인가요?'라는 질문이 태연하게 올라올 만큼 힙합과 농구는 흑인의 전유물이다. 즉 흑인의 음악이 힙합이고 흑인의 스포츠가 농구다.

실제로 하와이 주립 대학 농구부의 파워포워드이자 아마추어 힙합 뮤지션이기도 한 아프로-아메리칸 브랜든 제임스(Brandon James)는 힙합과 농구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Guys that played basketball are also into hip hop. And guys into hip hop played basketball. They went together(농구를 하는 녀석들은 힙합에 빠져들었고, 힙합을 좋아하는 녀석들은 농구를 즐겼다. 힙합과 농구는 늘 함께였다)."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그리고 조금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힙합과 농구는 흑인이 가질 수 있는 '유이'한 꿈이자 희망으로 여겨져 왔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적/문화적 차별을 당해온 흑인이 재능과 실력을 가지고 정당하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분야, 또 자신들이 스스로 가꿔온 고유한 문화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분야가 바로 힙합과 농구다.

마치 대한민국 청소년의 1순위 꿈이 연예인(혹은 가수)인 것처럼 흑인 청소년은 성공한 NBA 스타 혹은 성공한 힙합 뮤지션을 꿈꾼다. 그들의 무의식 속에 저 두 모델은 (조금 원색적으로 말하자면) 곧 지긋지긋한 게토(ghetto)의 삶에서 해방됨을 의미한다.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고 모두의 롤모델로 등극하며 신분 수직상승을 이룰 수 있는 길. 브라질의 아이들에게 축구공이 있다면 아프로-아메리칸 아이들에게는 마이크와 농구공이 있다.

래퍼 나스(Nas)의 가사를 살펴보면 더 뚜렷해진다. 나스는 자신의 세 번째 정규 앨범 [I Am...](1999) 수록곡 <We Will Survive>에서 이렇게 말한다.

More than fifty percent of us endin up with holes through the chest through the head, through the gut it shows
우리 중 절반 이상이 가슴과 머리에 구멍이 뚫리고 내장이 드러난 채 죽음을 맞이하지

The future for us young shooters and old killers/ Who become rich as dope dealers?
어린 총잡이와 늙은 살인자인 우리들의 미래/ 누가 마약을 팔아 부자가 되는가?

Nothing left for us but hoop dreams and hood tournaments/ Thug coaches with subs sittin on the bench; either that or rap/ We want the fast way outta this trap
우리에게 남은 것은 농구로 성공하는 꿈과 토너먼트/ 그게 아니면 랩 뿐/ 우리가 빨리 이 덫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후프 드림스> ⓒFine Line Features
뭐랄까, 조금은 서늘하고 서글픈 가사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가사를 통해 흑인에게 힙합과 농구가 유이한 희망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영화도 있었다. 1994년에 개봉해 비평적 찬사를 받았던 다큐멘터리 영화 <후프 드림스 Hoop Dreams>가 그것이다. 이 영화는 농구에 소질 있는 두 흑인 소년 아서와 윌리엄의 성장과정을 다룬다. 길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마약을 거래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총성이 울리며 가스와 전기가 끊기기 다반사인 흑인 동네에서 벗어나기 위해 농구에 모든 것을 거는 두 소년과 가족의 모습이 그려지고, 감독은 이들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 즉 기회의 땅인 미국에서 흑인은 어떠한 꿈을 품으며 그것이 어떻게 실현되고 좌절되는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여기까지가 1부다. 1부에서는 힙합과 농구가 왜 뗄 수 없는 관계인지, 흑인에게 힙합과 농구는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주로 살펴보았다. 힙합과 농구가 만나고 섞이는 보다 다양하고 생생한 사례는 다음 회에 이어진다.



*필자의 블로그에서 더 많은 음악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http://kbhma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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