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원안에 대한 정운찬의 심각한 오해
이명박 정부 전반기를 이야기할 때,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행보를 빼 놓을 수 없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이 대통령으로부터 세종안 수정안 관철이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총리로 발탁되었다. 정 전 총리는 왜 그렇게도 세종시 수정안에 집착했을까.
언뜻 떠오르는 것이 '지식은 집중시키되, 권력은 분산시키라'는 어느 근대 철학자의 말이다. 경제학 이외에는 별 관심이 없는 정 전 총리가 이 말을 접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가 이 말을 접했다 하더라도 막강한 권력을 가진 서울대에서 오래도록 혜택을 향유한 그에게 '권력을 분산시키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신 '지식을 집중시키라'는 구절은 구미에 잘 맞았을 것이다.
필자도 평소 이 철학자의 말에 상당부분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정 전 총리와 세종시 원안 입안자들의 주장을 균형있게 경청하려 했다. 그러나 많은 분량의 세종시 원안 관련 보고서들을 검토해 본 결과, 정 전 총리가 심각한 오해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정 전 총리는 정부부처 분산이 가져오는 행정비효율이 매우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KTX가 서울역에서 세종시 인근 오송역(호남고속철도와 경부고속철도 분기점)까지 50분에 주파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과천에서 세종로 청사까지의 소요시간이 40분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50분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다.
물론 세종시에서 세종로 청사까지 이동하려면 오송역까지 15km를 도로로 이동하고 또 고속철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과천에서 이동하는 것보다 다소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러나 국가안보 위기를 운운하고 천문학적인 행정 비용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 정도로 그 차이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
그는 또 세종시 원안을 그대로 추진할 경우 도시자족성이 없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정부청사로부터 10~15km 거리 내에 세종시 수정안 산업용지 면적의 20배에 달하는 거대한 대덕특구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또 세종시의 제조업 비중(6.70%)이 워싱턴DC(0.36%)의 19배에 달하고, 대전광역시, 청주시, 공주시, 청원군, 연기군을 포함한 세종시권역의 제조업 비중(21.16%)이 워싱턴DC의 56배에 달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물론 워싱턴DC가 좀 특수한 경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캐나다의 행정수도 오타와와 비교해 보아도 세종시 제조업 비중이 낮은 편은 아니다. 국토연구원이 2006년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세종시의 제조업 비중은 6.70%로 8.28%인 오타와보다는 다소 낮다. 그러나 세종시권역의 제조업 비중(21.16%)은 오타와의 2.6배에 달한다.
또 건설교통부는 2006년 보고서에서 세종시의 제조업 비중이 다소 낮은 이유가 도시를 더 쾌적하게 건설하라는 도시계획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고 소개했다. 대부분의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세종시에 소프트웨어진흥단지, 정보통신산업단지, 문화산업단지가 들어서기를 원했다. 반면 도시아파트 공장이나 벤처기업전용단지가 들어서기를 원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이들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한 결과 세종시에는 제조업보다는 정보산업,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문화예술오락산업이 더 많이 들어서게 되었다. 세종시의 정보산업 비중(11.89%)은 워싱턴DC(3.53%)보다 3.4배 더 높아졌고, 오타와(4.04%)보다 2.9배 더 높아졌다.
정보산업,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문화예술오락산업을 모두 합친 첨단 정보·서비스·문화산업 비중도 32.65%로 워싱턴DC(18.74%)보다 1.7배 더 높아졌고, 오타와(18.12%)보다 1.8배 더 높아졌다.
정 전 총리는 이런 보고서들을 읽어보기나 했을까.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걸고 승부수를 던지는 사람이라면 반대파들 주장의 근거가 되는 보고서들은 반드시 읽어보아야 한다. 그러나 서울대 교수라는 보호막 안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에게는 그런 긴장감이 없었다.
▲11일 오전 서울 정부종합청사에서 제40대 국무총리 이임식에 참석한 정운찬 국무총리. 정 총리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뉴시스 |
셰익스피어 비극론과 정운찬에 예정된 비극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정 전 총리의 비극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대학생 때 읽었던 어느 교수의 셰익스피어론이 떠오른다. 그 교수에 따르면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왕과 귀족들의 운명이 모두다 비극적인 이유는 그들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왕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많은 시종들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한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육체와 정신의 활동을 대신해 주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보니 그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또 찬사만을 쏟아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말을 너무나 쉽게 믿는다.
반대로 자수성가한 귀족들은 거친 경쟁 속에서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권력 상층에 접근하다 보니, 그들에게 남는 것은 주로 남을 속이고 힘으로 제압하는 기술들이다. 그들이 왕족들과 다른 점은 상대적으로 유능해 보인다는 것, 교활해 보인다는 것, 다른 사람들을 절대 믿지 않는다는 것, 자신이 남을 속이고 힘으로 제압하며 정상에 접근했기 때문에 항상 부하들을 경계하고 의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의심 때문에 더욱더 포악해진다는 것.
지나치게 무능한 왕과 지나치게 영악하고 야심많은 귀족. 그들이 만났을 때 비극이 도래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것이 바로 그 교수가 정리한 셰익스피어 비극론이다. 물론 그 교수의 평론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모든 왕이 무능한 것이 아니고, 모든 귀족이 영악하고 포악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교수의 평론이 시사하는 바는 그렇게 가볍지 않다.
정 전 총리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전자에 가깝다. 지나치게 오랜 기간 그는 서울대 교수라는 보호막 안에서 안주하며 살아왔다. 그는 반대파들 주장의 근거가 되는 보고서들을 읽지도 않고 그들을 손쉽게 제압하리라 판단한 것이다. 왕들의 주변 사람들이 항상 그러했듯이 서울대 교수 주변사람들도 끊임없이 그들에게 별다른 의미없이 찬사를 보낸다. 이런 찬사에 익숙해지다 보면 나중에 교수들은 자신들이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교만해진다. 정 전 총리의 비극은 그렇게 잉태되었다.
싱겁게 끝나버린 세종시 논리싸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연초에 세종시 수정안이라며 표 서너 개가 포함된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보도자료 몇 쪽을 내놓았다. 그리고 조만간 국책연구소들이 그럴듯한 '세종시 수정안 연구보고서'들을 내놓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그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에 대한 논리싸움은 너무나도 싱겁게 끝났다. 세종시 수정안의 근거를 제공했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끝내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보고서를 내지 못했다. 행정부처 분산으로 매년 수조원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주장을 한 한국행정연구원도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보고서를 내지 못했다.
물론 필자도 행정부처 분산으로 인한 비효율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적으로 성실한 연구자라면 매년 수조원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밑도끝도 없는 주장을 하며 국민들을 협박해서는 안된다.
논리싸움에서 패배한 정 전 총리의 행보는 구차함과 초라함 그 자체였다. 그는 세종시 논쟁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충청도에 대한 읍소전략에 매달렸다. 친이와 친박의 세 싸움 속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충청도의 이반'을 이끌어 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한 셈이니 바보 정운찬의 행보라 할 만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정 전 총리의 바위치기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MB는 왜 세종시 수정안을 들고 나왔나
이명박 대통령도 '세종시 수정안은 국익을 위한 것, 원안은 지역이기주의에 편승한 것'이라는 흑백논리를 내세우며 충청도민들을 압박했다. 보수 언론들도 세종시 수정안이 나오자마자 이를 대서특필하며 이에 대한 우호여론을 형성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놀라울 정도로 현명했다. 수도권에 거주하면서도 수도권 이기주의에 편승하지 않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정안에 대한 지지층이 줄어들고, 원안에 대한 지지층이 많아졌다. 수도권 정치인들도 슬슬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왜 갑자기 세종시 수정안을 들고 나왔을까. 그는 대선을 전후하여 수십 차례 원안 고수 의지를 밝힌 바 있었다. 그의 말대로 국익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의도가 있었을까.
필자는 세종시 수정안이 대통령의 애국심의 산물이 아니라 대선전략의 산물이라고 보고 있다. 아래 그림은 이 대통령이 왜 그렇게도 노골적으로 수도권 중심적인 정책을 추진하려 하는지 그 의도를 엿보게 해 준다. 역대 대통령 그 누구도 그만큼 노골적으로 수도권 중심적인 정책을 추진하지는 않았다.
▲ ⓒ홍헌호 |
이 그림을 보면 2010년이 바로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구 비중이 역전되는 해임을 알 수 있다. 20세 이상 유권자의 인구 비중 변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시장이라는 자리에 있었던 이 대통령은 이 그래프에 아주 익숙할 것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상대로 수많은 악연을 쌓아 온 친이세력들에게도 이 그래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들에게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분리시키고, 비수도권을 영남(친박)과 호남(민주당)으로 분리시키는 것만큼 유리한 대선전략도 없다. 원안 고수를 다짐하던 이 대통령이 180도 태도를 바꾼 이유도 친이세력들의 이런 차기 대선전략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매우 유감스럽게도 국민들은 이들의 이런 전략에 힘을 실어 주지 않았다. 국민들은 오히려 박근혜 전 대표에 동조했다. 이 대통령은 고민에 빠졌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분리시키는 대선전략을 고집하는 것이 우선이냐, 아니면 눈앞에 닥친 한나라당 내분을 수습하는 것이 우선이냐, 장고(長考) 끝에 그는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 내분은 곧 레임덕의 가속화를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방패로만 활용된 정운찬, 남은 것은 상처 뿐
정운찬 전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그는 세종시 수정안이 자신에게 명분과 실리 모두를 안겨주리라 기대했던 것 같다. 서울대·수도권 중심주의에 파묻혀 살아온 그에게는 의견을 주고받는 사람들도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행정부처 분산의 비효율을 주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들의 의견이 대부분의 지식인들에게 공유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는 또 이번 기회가 대권을 움켜 쥘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겼을 것이다. 김문수 경기도 지사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수도권 이기주의를 자극, 높은 지지를 얻어왔다. 정 전 총리는 김 지사보다는 더 세련된 형태로 '국익'을 내세워 수도권 표를 긁어 모을 수 있다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 전 총리의 이런 기대는 산산히 부서졌다. 국민들은 그를 외면했고 이 대통령과 친이세력들도 그를 철저히 이용만 했을 뿐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이른바 친서민정책'을 정 전 총리가 취임하기 바로 전에 터트렸고, 그의 교체가 확실해진 이후에 다시 터트렸다. 왜 그랬을까. 이 대통령은 정 전 총리가 이회창 전 총리처럼 힘을 얻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 대통령은 오로지 정 전 총리를 방패로만 활용했다. 입으로는 정 전 총리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겠지만 그에게 실질적인 힘을 실어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국민들 예상대로 정 전 총리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쓰라린 상처와 오명(汚名)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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