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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씨, 중소기업 등골 좀 그만 빼먹으세요"

[삼성을 생각한다] "경제 생태계 포식자가 된 재벌"

대한민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는 손꼽히는 뉴스메이커다. 최근 삼성전자와 관련한 보도 가운데 특히 두 개가 눈에 띈다. 하나는 삼성전자가 2분기에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영업이익을 냈다는 보도다. 다른 하나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과 LCD공장 등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의 질환을 얻은 후 산업재해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노동자 및 이미 사망한 노동자들의 유족들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조건으로 산재 인정 노력 포기를 설득하고 있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는 보도다.

시장경제 규칙 거침없이 어기는 삼성전자

언뜻 보면 삼성전자의 명암을 보여주는 것 같은 보도들이지만,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면 할수록 사정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삼성전자가 얻은 사상최대 규모의 영업이익조차 삼성전자의 밝음이 아니라 어두움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얻은 것으로 발표한 분기 영업이익 5조 원은 가히 천문학적 금액이다. 대한민국 기업 가운데 연 매출이(영업이익이 아니다)1조 원을 넘는 기업이 몇 개나 될까를 생각해보면 삼성전자가 얻은 영업이익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삼성전자가 얻은 영업이익 가운데 상당 부분이 중소기업의 희생에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겨레21>818호를 보면 이런 사실이 실증적으로 드러난다.

<한겨레21>에 따르면 기업 수익성 지표인 매출액영업이익률(영업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눈 값)의 경우 삼성전자가 8.23퍼센트를 기록했는데 삼성전자의 부품업체는 평균 5.66퍼센트에 그쳤고, 올 1분기에는 삼성전자가 14.56퍼센트, 삼성전자 부품업체는 4.87퍼센트로 지난해보다 오히려 그 격차가 더 벌어졌다 한다. 2007년 당시 삼성전자와 부품업체 간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의 차이는 2.9퍼센트 포인트에 불과했다. 기업 수익성 평가의 또 다른 지표인 매출액순이익률(순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눈 값)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다. 순이익만이 문제가 아니다. 기업의 성장성을 평가하는 매출액증가율 역시 삼성전자가 작년에 23.06퍼센트인데 반해 부품업체는 5.24퍼센트에 불과한 실정이다.

삼성전자의 매출과 이익은 유례없이 좋아지고 있는데 정작 삼성전자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의 매출과 이익은 오히려 악화되는 이 기묘한 현상의 근본원인은 무리한 납품단가 인하 및 원가상승분에 대한 미반영, 중소기업에 불리한 결제조건 등 중소기업에 대한 삼성전자의 불공정거래행위이다. 쉽게 말해 삼성전자는 마땅히 중소기업에 돌아가야 할 매출과 이익의 상당 부분을 빼앗아 자신들의 매출과 이익 증대에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기실 삼성전자가 하도급업체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불공정거래행위는 공정하고 정상적인 시장경제의 작동을 방해하는 교란행위이다. 따라서 징벌적 손해배상과 같은 제도를 도입해 이를 바로잡을 책임과 의무가 경제경찰인 공정거래위원회에 있다. 놀라운 것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장경제의 규칙을 유린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횡포에 대해 '오불관언'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1997년 체제 성립 이후 한국사회의 최대 현안이라 할 양극화의 유형 가운데 하나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다. 이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연관 고리가 끊어진지 오래다. 대기업이 아무리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매출과 영업이익을 많이 거두더라도 중소기업에게는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급주의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그 주된 원인은 대기업의 불공정거래행위이다.

중소기업이 고용과 투자, 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 대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기술력과 부품 경쟁력이 필수적이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행위는 국민경제에 큰 해악을 끼칠 뿐 아니라 종국에는 대기업 자신의 장기지속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세계적 기술력을 자랑하는 삼성전자가 하도급업체에 대한 불공정거래 행위에도 발군의 실력을 보이는 것은 심히 유감이다.

윤리와 도덕은 어디에?

한편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과 LCD공장 등에서 일하다 중병을 얻어 산재인정을 받기 위해 힘겹게 애쓰는 노동자들과 이미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들을 사실상 돈으로 매수하려 했다는 보도는 세계 초일류를 지향하는 삼성전자의 윤리의식과 도덕관념이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를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꽃다운 나이의 처녀들이 채 피기도 전에 시든 비극적 사건들 앞에서도 삼성전자는 산재처리가 회사에 미칠 영향에 대해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린 것인데, 이 같은 삼성전자의 행태는 '윤리 의식의 부재', '도덕 관념의 붕괴' 바로 그것이다.

▲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고(故) 박지연 씨의 영정과 오열하는 유족들. ⓒ이상엽

삼성전자가 하도급업체들과 중병을 얻은 노동자들에게 보이는 비정한 행태의 최종적이고도 가장 큰 책임은 삼성전자의 실질적 지배자인 이건희 전 회장에게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설사 이건희 전 회장이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에 대해 부당한 대우를 하도록 지시하거나 교사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현실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이상 이 전 회장이 결과적으로 이를 승인한 셈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 전 회장은 사회 각 부문이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그는 국민들이 정직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버전을 바꾸어 이 말을 이 전 회장에게 돌려주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건희 씨!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등골 좀 그만 빼먹으세요. 이건희 씨! 당신네 공장에서 일하다 짧은 생을 마감한 가여운 노동자들과 아직도 투병 중인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배상을 해주고 작업환경 좀 개선시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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