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이 도시히코(福井俊彦) 일본은행 총재가 사퇴 압력에 몰리고 있다. 고수익을 내기로 유명한 펀드에 투자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펀드 흐름에 영향력 가진 중앙은행 총재가 펀드 투자하다니…"
일본 정부는 투자 시점이 그가 일본은행 총재에 취임하기 이전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며 적극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거취는 일본 내에서는 물론 국제적인 논란으로도 비화되고 있다. 그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3대 중앙은행장에 속하기 때문이다.
16일 미국의 불룸버그 통신과 뉴욕타임즈(NYT)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일본 아사히 신문의 사설을 인용하면서 '후쿠이 스캔들'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블룸버그 통신은 "적어도 일본 경제에서 펀드의 흐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일본 중앙은행의 총재가 된 후에는 '개인 투자'라고 해도 그 처리에 매우 신중해야 했다"는 아사히 신문의 사설을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낸 지적"이라고 소개했다.
NYT도 "일본 국민은 수 년간의 저금리로 투자수익을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 나라의 중앙은행장은 연 수십 퍼센트의 수익을 냈다면, 이에 따른 신뢰 상실은 당연하다"는 아사히 사설의 비판을 전했다.
"취임 즉시 펀드를 환매하지 않은 이유 석연치 않아"
후쿠이 총재의 처신은 그가 투자한 펀드가 최근 내부자 거래 혐의로 구속된 무라카미 요시아키(村上世彰)가 운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 왜 취임 즉시 펀드를 환매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도대체 일본 은행 총재가 펀드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느냐"면서 "백지신탁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무라카미 펀드'에 투자한 경위에 대해 후쿠이 총재는 일본 통상산업부(현 경제산업부) 관료 출신인 무라카미가 펀드 매니저로 변신하면서 자금유치가 어렵다고 도움을 요청해, '격려차' 1000만 엔을 투자 형식으로 지원해줬을 뿐이라고 해명했으나, 검찰이 무라카미에 대해 내부자 거래 혐의로 조사를 시작한 지난 2월 갑자기 환매를 요청한 것으로 드러나 그 배경에 의혹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는 투자할 때마다 고수익을 올리는 뛰어난 실적을 보이면서 지난 99년 50억 엔으로 시작한 펀드 규모를 6년만에 4000억 엔대로 급격히 불려 '일본 최고의 펀드 매니저' '마이다스의 손'으로 매스컴의 찬사를 받아 왔으나, 지난 5일 도쿄지검 특수부에 의해 '증권거래법상 내부자 거래 혐의'로 구속수감되면서 하루 아침에 범죄자로 전락했다.
이 때문에 NYT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재직 당시 개인적인 투자를 단기 국채와 양도성 예금증서(CD)에 국한했던 사례를 들면서, 후쿠이 총재가 연 20%라는 고수익률을 올리는 '공격적 펀드'에 투자한 동기에 의문을 제기했다.
NYT는 "후쿠이 총재의 도덕성 상실이 일본은행의 신뢰에까지 타격을 미치고 있다"며 "지난 13일 일본 닛케이지수가 9.11 테러 사태 이후 최대 폭으로 하락한 요인과 무관하지 않다"고 맹공격했다.
블룸버그 "후쿠이 스캔들로 일본은행 독립성 훼손돼"
블룸버그 통신은 후쿠이 총재가 '무라카미 스캔들'에 연루돼 있으면서도 물러나지 않아 일본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일본 정부가 그의 유임을 지지하면서 정치적으로 빚을 지게 된 후쿠이 총재가 금리정책 결정을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단행하기 쉽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야당은 정책 결정상의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즉각 후쿠이 총재의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는 15일 "후쿠이 총재의 투자가 총재 취임 이전으로, 설사 일본은행 등의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정책 결정의 중립성 유지를 위해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일본 경제가 오랜 디플레이션을 탈피할 조짐을 보이는 시점에서 '제로금리' 정책을 폐기하려는 일본은행의 결정이 상당기간 연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15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어 경기회복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판단을 유지하면서도 '제로금리 정책'을 고수하기로 결정한 것이 '후쿠이 스캔들'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관측이다.
블룸버그 통신 역시 "후쿠이 총재의 스캔들이 전해지면서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일본의 금리인상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있다"면서 "일본의 중앙은행은 또다시 경제회복의 방해물이 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이 통신은 "90년대의 경기침체를 초래한 80년대말의 금리 인상과 2000년의 금리 인상처럼 적절한 시기를 놓친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의 위험은 정치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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