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뉴올리언스 비극'은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증명한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뉴올리언스 비극'은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증명한다"

美 철학자 마이클 샌델 "연대가 무너진 곳에 비극이 온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발생한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의 비극은 '미국 문명의 위기'를 상징하기보다는 지난 20여 년간 계속된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한국철학회가 주최하는 다산기념철학강좌 9번째 강사로 초청돼 우리나라를 찾은 미국 하버드대학교 마이클 샌델 교수(정치학)는 5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부시 정부의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 뉴올리언스 비극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신자유주의가 사회적 연대 가능하기 위한 근본 토대를 무너뜨려"

카트리나가 덮친 뒤 뉴올리언스의 무정부 상태를 염두에 두고 '이것이 '미국 문명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는 지적에 대해 마이클 샌델 교수는 "그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해석을 제시했다.

샌델 교수는 "미국 내에서는 행정부가 늑장 대응을 했고 이렇게 늑장 대응을 하면서 흑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뉴올리언스의 하층 계층이 큰 피해를 입고 있어서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큰 피해를 입은 희생자가 가난한 흑인에 집중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십만 명에 이르는 재난 피해자 중에는 부유층을 포함한 중산층 이상도 많기 때문에 행정부가 인종 차별 같은 이유로 의도적으로 늑장 대응을 했다는 것은 무리한 비판"이라고 지적했다.

샌델 교수는 오히려 지난 20여 년 가까이 미국 정부가 추진해 오고 우리나라도 따라가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중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우리는 뉴올리언스에서 허리케인이라는 자연의 재앙이 곧 인간의 재앙으로 이어지는 비극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며 "이 인간의 재앙의 직접적인 계기는 허리케인이었지만, 그 근원에는 하층 계급 특히 흑인 계층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부시 정부의 신자유주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샌델 교수는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연대하기 위해서는 교육, 의료, 복지 서비스 등 삶에 필요한 기본 요소들이 계층, 인종을 초월해서 평등하게 제공돼야 한다"며 "가난한 사람들, 흑인이라는 이유로 이런 것들까지 제공받지 못한다면 연대성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미국이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처럼 삶에 필요한 기본 요소들이 빈부, 인종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공급되는 사회였다면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하는 뉴올리언스의 비극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샌델 교수는 "미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교육, 의료, 복지 분야에서 정부의 책임을 감소하고 시장에게 모든 것을 맡겨 왔으며 그 결과 이번 비극이 초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인 결과 사회 구성원들이 연대하기 위한 미국 사회의 토대가 근본부터 무너졌고 그것이 이번 뉴올리언스의 비극으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이라크 침략 '정당성 없는 전쟁'"

마이클 샌델 교수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샌델 교수는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폭격은 그 곳이 테러리스트들의 근거지였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정당성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라크 침략의 경우에는 부시 행정부가 내세운 이유는 다 거짓이거나 설득력이 없음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샌델 교수는 이라크 침략의 부당함을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첫째,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대량 살상 무기를 전쟁의 이유로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둘째, 테러리스트들이 이라크에서 온 것도 아니고 사담 후세인이 그들을 지원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유도 설득력이 없다. 셋째, 부시 행정부는 이슬람권 국가들의 서구식 민주화 역시 중요한 이유로 내세웠지만 이것은 그 정당성의 유무와 관계없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로 판명되고 있다.

샌델 교수는 "이렇게 불합리한 이유와 비현실적 목적을 위해서 수많은 생명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전쟁이 진행되고 있지만 참담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력한 법·제도적 규제 하에서 배아 연구 진행돼야"

부시 행정부에 비판적인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교롭게도 2002년부터 부시 행정부의 생명윤리 정책을 자문하는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샌델 교수는 "인간 배아 연구에 대한 연방 정부의 지원 여부 등을 결정하는 위원회 표결에서 인간 복제, 유전자 조작은 반대했지만 난치병 치료를 위한 배아 연구는 부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하지만 그런 부분적 연구를 위해서는 강력한 법·제도적 규제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에서는 샌델 교수의 주장보다도 더 엄격하게 배아 연구에 대한 연방 정부의 지원이 전면 금지됐다. 샌델 교수는 "내가 소속돼 있는 하버드대에서도 기업의 지원을 받아 줄기세포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며 "법적 규제 때문에 공공의 지원을 받는 실험실이 아닌 별도의 실험실을 따로 마련해 연구를 하는 실정"이라고 미국 분위기를 소개했다.

그는 "한국의 경우에는 별다른 법·제도적 규제가 없는 상태에서 황우석 교수의 성과에 지지를 보내는 분위기인 것 같다"며 "황 교수의 연구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라도 생명윤리를 고려한 구체적인 법·제도를 만들고 그 통제 하에서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마이클 샌델 교수는 미국의 정치철학 논의를 주도하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철학자이다.

샌델 교수는 1982년 29세 나이에 자유주의 정치철학을 대표하는 존 롤스의 철학을 비판하는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Liberalism and the Limits of Justice)>를 써 정치철학의 대가로 떠오른다. 그 후 그는 <민주주의의 불만(Democracy's Discontent)> 등의 논쟁적인 저서를 통해 자유주의와 구별되는 공화주의의 학문적 토대를 닦는데 주력해왔다.

샌델 교수는 구체적인 삶의 가치와 동떨어진 개인을 가정하는 자유주의의 기본 가정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삶과 행위를 통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공동체에 기반을 뒀지만 비판적 성찰을 잃지 않는 개인'을 대안으로 주장해왔다. 그는 이런 '공동체적 개인'의 연장선상에서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 시장에 대한 비판, 세계화에 대한 반성적 수용 등을 강조해왔다.

특히 샌델 교수는 "민족, 국가에 갇힌 공동체나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추상적인 세계 공동체는 바람직한 공동체주의의 방향이 아닐 것"이라며 "지역의 언어, 문화, 역사, 전통 등 특수성과 세계적인 보편성을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주의를 모색하고 있다"고 공동체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설명했다.

샌델 교수는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동안 5일 서울대학교 박물관 강당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 시장의 도덕적 한계'라는 강연을 시작으로 네 차례의 대중 강연을 한다. 특히 6일 오후 2시에는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줄기세포, 인간복제 및 유전공학의 윤리'라는 주제로 인간 배아 연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