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으로써 '뉴라이트'는 의미를 상실했지만, 식민지근대화론 등 뉴라이트 운동의 이론을 제공한 학자들은 활동 무대를 정치와 교육으로 옮겼다. 이들은 여전히 학계에서 소수자이지만 정치를 이용해 교과서 제작에 뛰어들었고, 결국 '뉴라이트 사관'을 공교육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교과서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던 연세대 이준식 교수는 "제도권 교육 밖에서 변죽만 올리던 뉴라이트가 권력을 등에 업고 제도권 교육 안으로 들어가 학생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쓴 교과서가 국가의 공인을 받았다"며 교학사 교과서 검정 통과를 '국치'에 비유했다. 소설가 장정일은 "사소한 것이 쌓이면 신화가 된다"고 했다. 토씨 하나 바뀔 뿐인 역사 서술이 전체적인 맥락을 얼마나 왜곡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문장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교과서 전쟁'이 격렬해지고, 교육 현장에서의 역사 왜곡 현상들이 눈에 띠게 부각됐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 5.16쿠데타를 일으키던 당시의 박정희 전 대통령 ⓒ연합뉴스 |
"5.16 개혁 실시, 별 효과 못봐"→"5.16 개혁 실시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정의당 정진후 의원은 지난 8월 30일 검정에 통과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들을 분석한 결과 "'5.16 군사정변'에 대한 서술이 심각하게 우경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10일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중 2010년 7월 30일 검정에 통과되었다가 2013년 8월 30일 수정본으로 검정을 통과한 ㈜미래엔, 천재교육, 비상교육, ㈜지학사 등 4권의 교과서의 5.16서술 부분을 분석했다.
정 의원에 따르면 미래엔의 한국사 교과서는 "5.16 군사 정변과 민주주의의 시련"을 "5.16 군사 정변과 자유 민주주의 시련"이라고 수정했다. 민주주의를 '자유 민주주의'로 바꾼 것이다. 지난 2011년 이명박 정부가 교과서 서술지침에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 민주주의'로 변경해 역사학자들이 반발하는 등 사회적 논란이 있었는데, 이번 미래엔 교과서 서술 변경은 결국 이명박 정부의 '지침'이 통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교과서 수정 논란이 점화되고 박근혜 정부에서 완성된 모양새다.
천재교육 출판사의 경우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는 서술이 "1961년 5월 박정희를 비롯한 일부 군인 세력이 장면 내각의 무능력, 사회 무질서와 혼란 등을 내세우며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서술로 바뀌었다. 5.16 쿠데타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긍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비상교육 출판사의 경우 "(5.16의 개혁 등을) (…)실시하였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는 기술이 "(5.16의 개혁 등을) (…)실시하였다"로 변경됐다. "군사 정부는 1963년에 민간에게 정부를 이양하겠다고 발표하였지만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시킨 상황에서 비밀리에 민주 공화당을 만들어 세력을 모았다.(…) 개정된 헌법에 의해 1963년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가 당선되었다"는 서술은 아예 박정희의 혁명 공약 내용으로 대체됐다.
교학사 교과서는 "5.16 군사 정변은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였다. 하지만 반공과 함께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강조하였다. 대통령 윤보선은 쿠데타를 인정하였다. 육사 생도도 지지 시위를 하였다. 미국은 곧바로 정권을 인정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의원은 "마치 장면 정권의 무능에서 비롯된 5.16쿠데타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정권인 것처럼 호도하도록 서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박근혜 정부 눈치보기에 급급해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거의 대부분의 교과서를 친박정희에 대한 서술로 5.16을 미화시키고 있는 현상"이라며 "한국사 교과서 검정제도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은지 철저히 검증해야 하지만, 이번 검정을 담당한 국산편찬위원회는 교과서 검정 자료 제출이나 교과서 평가점수 등 모든 것을 숨기기 바쁘다"고 비판했다.
▲ 최근 '박정희 서술'을 상당부분 바꾼 천재교육 교과서 ⓒ정진후 의원실 |
일제강점기 부분은 68페이지…이승만 이름만 40번 언급
이명박 정부 시절 '건국절 제정' 논란에서 본격적으로 촉발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미화'도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준식 교수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교학사 역사교과서 긴급분석 토론회'에서 발제문을 통해 교학사 교과서의 이승만 관련 사실 왜곡과 미화 부분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일제강점기에 68페이지의 분량을 할애했는데, 그 가운데 절반 정도만 독립 운동과 관련된 서술이 들어있다. 그 가운데 이승만 이름은 11페이지 걸쳐, 40차례나 언급된다. 이승만이라는 이름을 작은 제목에 명기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독립운동은 이승만에 의해 다 이루어졌다고 착각할 수 있을 정도이고, 착각을 유도하도록 의도적으로 쓰였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이처럼 한 사람의 행적을 과도하게 부각시키는 교과서는 공산주의 국가의 교과서 말고는 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이승만을 독립운동의 유일한 영웅으로 미화하기 위해 뉴라이트 교과서는 여러 무리수를 두고 있다. 단순한 착오에 의한 오류는 빼고도 임시정부 관련 서술에는 의도적 조작과 악의적 왜곡이 여럿 눈에 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것이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과 관련된 기술이다.
교학사 교과서에는 "독립 운동가들은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 공화제 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252쪽)"고 써 놓고 네 페이지 뒤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 공화정체 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정식으로 출범하였다(1919. 9.)(256쪽)"라고 기술했다. 공화제와 공화정체, 그리고 수립과 정식 출범이라는 표현의 차이를 빼고는 같은 내용이다. 결정적 차이는 시기가 4월과 9월로 다르게 적혀 있는 부분이다. 4월과 9월의 차이는 결국 이승만의 존재 여부다. 상해의 임시정부가 한성성부·대한국민의회와의 통합을 이룬 뒤인 1919년 9월에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이다.
이 교수는 "1919년 4월에 임시정부가 출범한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으니까 진짜 임시정부의 역사는 이승만과 더불어 9월부터 시작되었다고 쓰고 싶었던 것으로 여겨진다"며 "이는 임시정부를 포함한 독립운동사의 왜곡·조작 서술의 궁극적 목적이 '건국 대통령'·'반공 대통령' 이승만을 미화하려는 데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건국 노력'을 다룬 7절에서 정점을 이룬다. 한 쪽 반을 1940년대 이승만의 행적으로 채워놓았다. 이 교수는 이를 "위인전 식의 서술"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일제말기 외교활동의 성과는 모두 이승만의 공으로 돌린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단적인 예로 1945년 한국광복군이 미국 정보기관 전략사무국(OSS)과 함께 벌인 국내진공작전을 들 수 있다. 교과서에는 "OSS부대와 한국광복군의 협력은 그(이승만의 노력-인용자) 성과(293쪽)"라고 쓰여 있는데, 이승만이 1940년대에 미국 정보당국과 특수부대 문제를 협의한 것은 사실이지만 OSS는 1943년에 이미 이승만과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끊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1945년에 이루어진 OSS와 한국광복군의 공동작전은 이승만이 아니라 중국에 있던 임시정부 요인들의 공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근본적으로는 학생들이 배울 교과서에 특정 인물을 노골적으로 '국민적 영웅'이라고 쓰는 것 자체가 비교육적이다. 미워하면서 배운다더니 북한 비판을 열심히 하던 끝에 김일성 우상화를 흉내라도 내고 싶어졌는지 모를 일"이라고 비판하며 "영웅 만들기에 근거라도 있으면 그나마 참을 수 있지만 몇몇 단편적 사실에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를 잔뜩 덧붙인 영웅 만들기이니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미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교과서 관련 논란의 수습은 이제 교육부의 공으로 넘어갔다. 이 교수는 "교육부가 뉴라이트 교과서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똑같이 헌법과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는 셈이 된다. 교육부는 뉴라이트 교과서의 검정을 즉각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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