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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남자 승무원 2명의 '11년 법정 투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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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한항공 남자 승무원 2명의 '11년 법정 투쟁기'

[김선수, 노동을 변호하다] <15> '노동법원'이 꼭 필요한 이유

부당 노동 행위가 발생하면 노동자들은 노동위원회나 법원을 찾는다. 그러나 노동위원회는 한계가 있다. 준사법 기관의 성격을 갖는다고 하지만 행정위원회일 뿐이다. 노동위원회 판정을 들고 다시 서초동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법원이 노동 문제에 딱히 특화돼 있는 곳도 아니다. 노동 문제와 관련돼 지나치게 경직된 결론이 나오는 일이 많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김선수 변호사가 이번에 소개하는 사례는 대한항공 남자 승무원 노조 설립 관련 해고 사건이다. '4패 후 1승'으로 결국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내긴 했지만, 복직해야 할 노동자는 이미 정년 퇴임을 앞둔 상황이었다. 씁쓸한 일이다.

김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소개하며 "해고 노동자가 소송을 통해 승소하고 그 기간 중의 임금을 완전히 보상받기란 참으로 길고도 험난한 과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에서 원고들이 노동위원회 판정과 법원의 판결 또는 결정을 받은 것만 해도 15가지였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을 통해서 노동 사건을 신속한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전문성 있는 참심형 노동법원을 설립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고 했다. <편집자>

김선수, 노동을 변호하다
(1)
전태일을 생각하며 변호사를 꿈꾸다
(2) 노동 변호사를 야유한 노동자들, 그 실체는…
(3) 회사는 왜 캐디를 '사장님'으로 만들어줬나
(4) 건설 노동자는 병원 노동자에게 '로열티'를 지급하라?
(5) 통상임금 논란, 원조는 25년 전 이 사건!
(6) 1992년, 여의도광장에서 '노동자 대회' 열린 이유는?
(7) 신영철 대법관, 노동자 옥죄는 '이것' 해결해줄 수 없나?
(8) 힘들게 대기업 합격, 그런데 출근은 하지 마라?
(9) "전두환 신군부 때문에 퇴직금 소송만 10년"
(10) "21세기, 이게 대한민국 공무원의 현실이라니…"
(11) 어느 날 캠퍼스에서 사라진 그 교수들, 왜?
(12) 8년 8개월 8일 만에 복직, 대법 판결만 2번…어쩌다?
(13) 노조 위원장 자살, 부위원장 사망…대학은 책임 없나?
(14) 법원 무시하는 사장, 스스로 권위 깎는 법원

노동조합 만들기 위해 후원금 모으고 해고자에게 지급

의뢰인(이하 '원고') 2인은 1978년 또는 1979년부터 대한항공에서 남자객실승무원으로 근무해왔다. 2000년 초까지 남자객실승무원은 청원경찰로 지정되어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조종사(운항승무원)들이 1999년 8월 운항승무원노동조합 설립총회를 개최한 후 노동조합 설립을 위하여 기장 125만 원, 부기장 100만 원씩을 모금한 다음 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하여 2000년 5월 말 행정관청으로부터 운항승무원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았다.

이를 목격한 50여 명의 남자객실승무원들은 2000년 5월 말경 독자적인 노동조합 설립을 준비하기 위해 가칭 객실노동조합설립추진위원회('노추위')를 결성했다. 원고들의 선배가 위원장을 맡았고, 원고 중 한 사람은 부위원장을 맡았으며, 나머지 원고와 원고들의 후배 두 사람이 적극 참여했다. 노추위는 2000년 6월 남자객실승무원들 친목모임 홈페이지에 노추위 설립을 공지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268명으로부터 1인당 100만 원씩의 후원금을 모금했다. 그런데 남자객실승무원의 청원경찰 신분이 2000년 6월 29일 해지되었고, 회사에 조직되어 있던 기존 노동조합은 2000년 7월 가입 범위를 남자객실승무원에 대해서도 확대했다. 한편 사업 단위의 복수노조 금지가 2006년 12월 말까지 연장되었다.

이에 노추위는 2000년 7월에 우선 기존 노조에 가입하되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하면서 단계적으로 독자적인 객실노동조합을 설립하기로 했다. 그리고 8월에 공개 설명회를 개최하여 후원금을 노추위 활동 관련 피해자에게 생계비 및 소송비로 지원하기로 하고 원고들 명의의 통장에 보관했다. 남자객실승무원들은 기존 노동조합에 가입하였고, 2000년 10월 기존 노동조합의 '여승무원지부'가 '객실승무지부'로 변경되었다. 노추위 위원장은 기존 노동조합의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는데, 2001년 2월 초순경 기존 노동조합 위원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하였으나 무산되었다. 회사는 2002년 5월경 이런저런 사유를 내세워 노추위 위원장을 해고했다.

이에 원고 등은 후원금을 노추위 위원장의 생계비 및 변호사 선임 비용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2002년 6월부터 9월경까지 후원금 납부자 160명으로부터 서면동의서를 받거나 구두동의를 받아 해고된 노추위 위원장에게 후원금 중 2억3100만 원을 송금하였다. 노추위 위원장은 해고에 대해 부당해고 구제신청 절차를 밟았으나,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서울행정법원(2003. 11. 13. 선고 2003구합3277 판결)에서 패소했으나, 서울고등법원(2005. 4. 29. 선고 2003누22409 판결)에서 승소하였다가 대법원(2005. 10. 13. 선고 2005두5093 판결)에서 파기환송 되어 결국 파기환송심인 서울고등법원(2006. 4. 18. 선고 2005누24010 판결)을 거쳐 대법원(2006. 7. 28. 선고 2006두7584 판결)에서 패소 확정되었다.

원고들에 대한 업무 정지와 대기발령

후원금을 냈던 일부 남자객실승무원들이 후원금을 노추위 위원장에게 지급하는 것에 반대하고 후원금을 반환해달라는 등 문제를 제기했다. 회사는 2003년 5월경 후원금에 대해 진상을 조사해달라는 진정서가 접수되었다면서 6월경 원고들에 대해 비행근무 제외 조치를 취하고 남자객실승무원 400여 명을 대상으로 자체 면담을 실시했다. 나아가 회사는 본사 차원에서 조사를 실시하여 원고 등에게 소명서를 제출할 것을 촉구하였고, 이에 원고들은 투서 내용에 대하여 확인하거나 시인할 의무가 없다면서 소명을 거부했다.

그러자 회사는 2003년 6월 19일자로 원고들에 대해 본사 대기발령을 했다. 이에 대해 원고들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 업무 정지 및 부당 대기발령 구제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었다.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었다.

▲ 서울시 중구에 있는 대한항공 빌딩 ⓒ뉴시스

형사고소 당하고 손해배상청구 소송 제기 당하고

회사는 2003년 9월 19일 자격심의위원회를 개최하여 원고들에 대해 파면을 의결했다. 한편 남자객실승무원 15명(원고들의 입장에서는 회사와 일정한 관련이 있고 회사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보였다)이 2003년 11월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노추위 위원장과 부위원장(원고 중 1인)을 횡령 혐의로 고소하였고, 50명이 2004년 2월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노추위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상대로 후원금의 반환을 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회사는 2003년 12월 22일 다시 자격심의위원회(재심의)를 열어 원고들에 대하여는 파면을, 원고들의 후배 2명에 대하여는 권고사직을 의결했다. 원고 등이 회사 내의 상벌심의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여 형사고소 및 민사소송이 진행 중임을 고려하여 심의를 연기했다가 2005년 9월 15일 상벌심의본위원회(재심)를 속개하여 원고들을 파면한 원심을 확정하고 9월 22일자로 원고들을 파면했다. 원고들의 후배 2명에 대해서는 권고사직에 응하지 않자 10월 4일자로 역시 파면했다.

노추위 위원장과 부위원장에 대한 형사고소 사건과 관련하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은 2005년 1월 31일 횡령 혐의로 공소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서울남부지방법원은 2006년 5월 4일 무죄를 선고하였고(서울남부지방법원 2006. 5. 4. 선고 2005고단278 판결), 이에 검사가 항소하였으나 항소 기각되었으며(서울남부지방법원 2006. 9. 6. 선고 2006노605 판결), 검사가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어 확정되었다(대법원 2007. 2. 8. 선고 2006도6352 판결). 남자객실승무원 50여 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2006년 11월 17일 기각되었고(서울남부지방법원 2006. 11. 17. 선고 2004가단13155 판결), 항소 기각(서울남부지방법원 2007. 7. 5. 선고 2007나212 판결)된 후 상고를 포기하여 확정되었다.

해고에 대한 불복 절차에서 4패

원고들은 후배 2명과 함께 2005년 11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2006년 4월 원고들의 후배 2명에 대해서는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기각했지만 부당해고 구제명령을 하는 한편, 원고들에 대해서는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은 모두 기각하였다. 원고들과 후배들 및 회사가 각각의 패소부분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했으나 중앙노동위원회는 2006년 12월에 모든 재심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원고들과 후배들이 중앙노동위원회위원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회사는 피고보조참가인으로 소송에 참여했다. 1심(서울행정법원 2008. 1. 15. 선고 2007구합764)과 2심(서울고등법원 2008. 11. 20. 선고 2008누5331 판결)에서 원고들과 후배들이 모두 패소(원고들 청구 기각)했다.

상고심에서 1승

노동위원회 구제신청과 재심 그리고 1심 및 2심의 재판 진행은 다른 법률사무소에서 담당했다. 노추위 위원장과 부위원장(원고)을 상대로 제기되었던 민사소송과 형사소송도 역시 다른 사무실에서 담당했다. 원고들은 2008년 11월 말경 2심 판결문을 송달받고 12월 초경 사무실로 찾아와 대법원 상고심을 맡아달라고 의뢰했다. 원고들의 후배들은 부당해고에 대해 노동위원회에서 구제명령이 있어 회사에서 급여를 지급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고를 하지 않고 원고들만 상고를 제기하는 것으로 했다.

2008년 12월 초경 상고장을 제출하고 상고이유서를 작성했다. 징계사유의 범위, 징계사유의 근거 규정 및 정당성, 징계재량권의 남용 여부가 주된 상고 이유였다. 심혈을 기울여 핵심을 뽑아 정리해서 29쪽의 상고이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회사 측 대리인은 55쪽에 이르는 답변서를 제출했다. 그동안 주장했던 내용을 반복해서 분량으로 밀어붙이는 인상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2009년 4월 9일로 선고기일이 잡혔다. 상고장을 제출하고 거의 4개월만이다. 심리불속행 기각이라면 선고기일이 별도로 잡히지 않을 것이므로 선고기일이 잡혔다는 것은 심리불속행 기각은 아니라는 의미다. '굳이 기각판결을 하려고 이렇게 빨리 선고기일을 잡았나?' 불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선고 결과는 파기환송{대법원 2009. 4. 9. 선고 2008두22211 판결: 대법관 박시환(재판장), 박일환, 안대희(주심), 신영철}이었다. 판결문을 수령해보니 징계사유의 범위나 근거규정 및 정당성에 관한 우리 주장을 모두 배척한 후에 징계재량권 남용 주장을 인용해 주었다.

대법원에서 재량권 남용 주장을 인용해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법원은 "해고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행하여져야 그 정당성이 인정되는 것이고, 사회통념상 당해 근로자와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인지의 여부는 당해 사용자의 사업의 목적과 성격, 사업장의 여건, 당해 근로자의 지위 및 담당직무의 내용, 비위행위의 동기와 경위, 이로 인하여 기업의 위계질서가 문란하게 될 위험성 등 기업질서에 미칠 영향, 과거의 근무태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6. 11. 23. 선고 2006다48069 판결 등 참조)"고 일반적인 법리를 전개한 후에, 이 사건에서 원고들에 대한 해고가 징계재량권을 일탈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한 원심 판단은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면서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적시했다. 이 결과를 받아보고는 어떠한 사건도 미리 포기해서는 안 되고 최선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파기환송 후에도 힘든 과정

대법원 판결이 워낙 구체적으로 판결 이유를 적시하였기에 파기환송심에서 쉽게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회사는 대법원 판결까지의 과정에서 징계사유 중에 판단을 누락한 부분이 있고, 원고들이 후원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새로운 증거가 있다면서 증인을 신청하겠다는 등 공세적으로 나왔다. 회사 주장에 대해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대법원 판결에서 이미 충분히 고려된 사항이라는 점과 새로운 사실을 파기환송심에서 주장하는 것의 부당성만 간단하게 지적했다. 다행히 재판부가 회사의 증인 신청을 채택하지 않고 결심을 하고는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원용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을 선고해주었다(서울고등법원 2009. 8. 26. 선고 2009누9491 판결).

회사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할 것으로 기대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취지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판결했으므로 상고해봐야 아무런 효과도 없을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는 기간을 꽉 채우면서 상고를 제기했고, 법원장을 역임한 변호사를 내세워 27쪽에 이르는 상고이유서를 제출했다. 파기환송 판결의 기속력의 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다는 상고이유까지 개진했다.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아 5쪽의 간단한 답변서를 제출하고 기다렸다. 이제나 저제나 불안하게 기다렸는데, 2010년 1월 14일자로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되었다(대법원 2010. 1. 14. 선고 2009두17636 판결).

해고된 후 4년 4개월 만의 성과다.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한 후 중앙노동위원회, 행정법원과 고등법원 등 4패 뒤에 대법원에서 1승을 한 후 그 승리가 그대로 확정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7번의 심급을 거쳤다.

재차 민사소송

해고무효확인 소송이 원고들 승소로 확정되었으므로 원고들은 원직 복직되어야 한다. 원고 중 한 명은 다른 곳에 취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2010년 3월 23일자로 의원 퇴직했다. 또 다른 한 명의 원고는 2010년 4월 30일이 정년퇴직일이어서 구체적인 복직도 없이 4월 30일자로 정년퇴직하게 되었다. 결국 원고들은 원직에 복직해서 근무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해고 다음날부터 퇴직 시까지 약 5년간의 급여 및 최종 퇴직 시점을 기준으로 한 퇴직금의 계산 문제가 남았다. 이에 대해 원고들과 회사 사이에 이견이 생겼다. 만약에 처음부터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 신청을 하지 않고 법원에 해고무효확인 및 임금지급 청구소송을 제기했더라면 이 문제는 법원 판결에 의해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는 바람에 대법원까지 두 번이나 가서 해고가 무효임이 확정되었음에도 급여 계산의 문제는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원고들은 해고되지 않고 계속 근무했더라면 지급받았을 수 있는 급여 항목을 모두 및 각 급여 지급월 이후 기간에 대한 지연이자(상법 소정의 연 6%)를 지급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증명우편을 발송했다. 그런데 회사는 원고들이 요구하는 급여 항목 중 상당 부분을 제외하고 일방적으로 계산해서 원고들 계좌로 입금하였고, 이자는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원고들은 2010년 5월 31일 다시 급여 차액과 지연이자 및 부당해고로 인한 위자료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문제가 된 급여 항목은 비행수당 추가분, 출장비, 호봉승급분, 중식비, 실적수당(야간근로수당, 휴일근무수당, 기내판매수당), 생수비, 안전장려금, 연차유급휴가수당, 항공권, 부모 사망 경조비, 장기비행 표창 등이었다.

처음에는 청구액수를 기준으로 해서 단독재판부에 배정되었는데 청구취지를 확장하니 합의부 관할로 되었다. 재판장은 대리인들이 원하면 합의부로 이송해주겠다고 했으나, 원고와 피고 측 모두 그대로 재판을 받겠다고 하여 단독재판부에서 재판을 진행했다. 급여 항목 하나하나에 대해서 쌍방이 치열한 법리 논쟁을 벌여 재판은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소장 접수 후 5개월이 지난 2010년 11월 1일에야 첫 기일이 잡힌 이후 몇 차례 변론기일을 진행하고 2011년 5월 16일에 결심했다. 5주 후로 잡힌 선고기일을 한 번 변경하더니 결국 변론을 재개한 후 다시 기일을 열어 각 항목에 대한 양측의 입장을 다시 듣고 한두 가지 사항에 대해 석명을 구했다. 그리고는 화해권고 결정을 하겠으니 검토해보라고 했다.

후에 송부되어 온 화해권고 결정은 지연이자 총액을 일응의 기준으로 한 금액을 지급하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회사가 처음부터 지연이자 상당액을 포함하여 최소한 확실한 금액을 미리 지급했다면 소송을 제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쌍방이 화해권고 결정을 송달받고 14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2011년 9월 3일자로 화해권고 결정(서울남부지방법원 2010가단39493, 판사 양민호)이 확정되었다.

원고들은 노추위를 결성한 이후부터 계산하면 11년 만에, 그리고 해고된 이후부터 계산하면 6년 만에, 해고소송이 확정된 때로부터 계산하면 1년 8개월 만에 회사와 모든 법적 분쟁을 종결하게 되었다.

노동법원 도입의 필요성

해고 노동자가 소송을 통해 승소하고 그 기간 중의 임금을 완전히 보상받기란 참으로 길고도 험난한 과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에서 원고들이 노동위원회 판정과 법원의 판결 또는 결정을 받은 것만 해도 15가지였다. 그러니 해고 노동자가 어떻게 쉽게 법적 투쟁의 길을 걷겠다고 작정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마지막 대법원 단계에서 해고소송에서 승소했기에 그나마 명예와 금전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었지, 만약 대법원에서 패소하였다면 상대방의 변호사보수 중 법정 분마저 물어줘야 했을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노동사건을 신속한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전문성 있는 참심형 노동법원을 설립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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