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이던 1984년 10월 16일 형제복지원에 입소해 1987년 또 다른 시설로 옮겨진,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이 다시 입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 이제라도 시설은 어떻게 생겨났고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개인을 부수어 갔는지 물어야 하는 때이다. 살아남은 자와 다른 사회 구성원이 소리를 들으려 하고 여러 질문들을 곱씹을 때, 답이 아닌 '길'이 보일 것이라 믿는다. 그 소리가 우리 사회에, 우리의 가슴에 퍼지도록 인권오름과 탈(脫)시설 운동을 하는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이 함께 형제복지원 '사건'을 둘러싼 역사적·현재적 쟁점을 짚어보고자 기획 연재한다. <편집자>
1987년 형제복지원이 세상에 알려진 지 26년이 지났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왜 이 사건이 다시 거론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아마 당시의 정치적 상황, 그리고 여기에 박인근이라는 개인의 인적 배경이 더해져 이를 빠른 시간 내에 최소한으로 무마하려 했던 국가의 의도가 크게 작용했을 듯하다. 또 다른 한편 피해자들이 자신의 의사를 강하게 주장하기 어려운 주변인이라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조직화·집단화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 이들은 개인적으로도 어디에 어떻게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항변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지내왔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26년 만에 갑자기 한 사람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자칫하면 아무도 듣지 못할 수도 있었던 이 절규에, 다행히도 조그마한 사회적 반향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의 얘기가 조금씩 모이고, 이에 따라 사건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문제의 원인과 배경에 대한 진단이 이뤄지고, 누구에게 이 엄청난 인권 침해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인가 하는 논의도 제시되었다. 이제 더 구체적으로, 법적으로 이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면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가 하는 생각도 가다듬어야 할 때다. 여기에는 물론 특별법 제정을 통한 해결 방식도 포함된다.
다른 과거 청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사건의 진실을 낱낱이 밝히는 것이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3500명 이상이 대부분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수용되어 있었고, 강제 노역은 물론 일상적인 폭행과 가혹 행위가 자행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531명이 사망했다는 대강의 얼개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의 인권 침해 수준은 결코 가볍지 않다. 당시 원장이던 박인근이 국고 횡령과 외화 밀반출 등의 혐의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하나, 이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뿐 사안의 전체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이제라도 실종자를 포함하여 사망자의 정확한 수와 원인, 강제 수용 과정과 불법 감금 여부, 폭행과 강제 노동을 포함해 일상에서 이뤄진 인권 침해, 국가 예산은 물론 수용자의 임금에 대한 횡령 여부 등 모든 사안을 철저히 조사하여 진상을 밝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재승 교수가 제안한 '진실에 대한 권리'가 그 법적 근거로 제시될 수 있다. 유엔인권위원회의 '불처벌 투쟁 원칙'을 비롯해서 몇몇 국제 조약들은 대규모의 인권 침해가 자행된 사건에 대해 피해자의 알 권리를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미주의 인권 법원은 이러한 권리를 판결을 통해 법적으로 인정한 바도 있다.
나아가 국내법의 시각에서도 헌법상의 재판 청구권이나 인간의 존엄에 대한 일반적인 기본권으로부터 이러한 '진실에 대한 권리'를 도출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사안의 진실을 충분히 조사하여 이를 알려줄 것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권리는 단순히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을 넘어 법적인 권리의 하나로 파악될 수 있고, 반대로 국가는 이를 보호하고 실현할 법적인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 1987년 2월 3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형제복지원 사진. ⓒ동아일보 지면 캡처 |
진상 조사와 가해자 처벌
현실적으로 이러한 진상 조사는 어떻게 가능할까. 가장 좋은 것은 아마도 지금 부활이 논의되고 있다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일 것이다. 객관적인 진실 규명과 이를 통한 과거 청산의 의지가 가장 높은 국가 기관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다면 가능한 다른 방안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하거나 국회에 국정조사를 청원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공신력 있는 국가 기관으로 하여금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소송을 포함하여 이후에 이루어질 법적 구제에서 중요한 하나의 판단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진상 조사는 가급적 빨리 언제라도 이루어지면 좋을 것이지만, 부득이하게 특별법 제정 시까지 미루어진다면 이것이 법률안의 첫 번째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검토되어야 하는 것은 가해자 처벌이다. 과거 청산 사건에서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과 이로 인한 사회 혼란을 방지하고 가능한 합의에 기초한 문제 해결을 통해서 앞날을 위한 가치를 보전해 가자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는 가능하다면 형사 판결을 통한 국가와 사회의 가치 표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의와 도덕의 기준에 대한 분명한 판단이 오히려 불필요한 이념적·정치적 논쟁을 막아 줄 수 있고, 장래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명시적인 가치와 행동의 기준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 사건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시효이다. 이 사건 범죄 행위 중 가장 무거운 살인죄에 대해서도 이미 공소 시효는 한참 전에 만료되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특별법을 통해 공소 시효를 연장하는 규정을 둘 수 있는가 하는 점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기간이 지난 공소 시효를 연장하는 것(이를 '진정소급효'라 한다)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학설의 일반적인 입장이고 또 판례의 태도이다. 물론 광주민주화운동특별법의 공소 시효 연장 규정에 대해 이를 합헌이라고 본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다. 하지만 이 결정에서도 위헌 의견이 5명으로 다수였으며, 소수 의견도 진정소급효 자체가 합헌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절대적인 공익적 필요가 있는 경우 소급효가 허용될 수 있다고 보았음을 주의해야 한다.
더욱이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입장에 대해서는 '공익'을 이유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소급효를 허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 심각한 반론이 있다. 형사법에서 소급효 금지를 통해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자는 것이 본래 취지이며, 이것은 공익과 같은 국가 권력의 행사 근거를 이미 염두에 둔 것이므로 이를 이유로 다시 소급 효법을 제정할 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이 사건 범죄를 '국가 범죄'로 보고 이에 대해서는 아예 공소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사건 범죄 행위를 국가 범죄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데에 있다. 이 사건이 포괄적으로 국가 범죄의 성격을 띠고 있고 박인근이 국가 예산을 지원받기도 하였으며 원생들의 수용 과정에 국가가 직접 간여한 정황도 있기는 하지만, 살인이나 폭행, 강요, 감금 등과 같은 주된 범죄 행위의 직접적 행위자는 불가피하게 개인인 박인근과 그 추종자들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근대 형법의 기초 원리, 즉 행위자에 대해서만 책임을 묻는 '자기 책임의 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형사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따라서 특별법에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공소 시효의 연장 또는 정지 규정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렇다면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소송을 통한 방법과 특별법을 통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소송을 통한 피해자 배상
소송을 통한 피해자 배상은 민법의 불법 행위에 근거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즉,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 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불법 행위의 규정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때 그 가해자의 고의 또는 과실, 가해 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서 피해자가 입증하여야 한다. 형제복지원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개별적으로 민사 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는 저들이 자신에게 가한 손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형제복지원 사건의 경우 2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점에서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 시효가 문제 된다. 민법은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 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내, 불법 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내에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3년의 소멸 시효 기산점은 피해자나 그 법정 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때이고, 안다는 것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인식을 하였다는 뜻이다. 사람이 상해를 입거나 사망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날 손해 발생을 안 것으로 되며, 후유증 등의 예견할 수 없었던 손해가 나중에 발생되는 경우와 같이 확대되어 나타나는 손해는 그러한 사유가 판명되어 새롭게 발생된 손해를 안 날로부터 별도로 시효가 진행된다. 또한 손해를 안다는 것에는 가해 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 관계의 인식도 포함하게 되므로 사망자의 사인이 판명되지 않았다면 손해를 알았다고 할 수가 없게 된다.
가해자를 안다는 것은 손해배상 청구의 상대방이 되는 자를 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불법 행위자가 사망한 경우 그 상속인이 포함된다. 또한 손해 발생을 알아도 가해 행위가 불법임을 알지 못하면 시효는 진행되지 않는다. 따라서 3년의 소멸 시효에서 시효 진행이 시작되는 것은 가해 행위가 불법 행위로서 이를 원인으로 하여 손해배상을 소구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아는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손해 및 가해자를 인지하게 된 시기는 주장하는 사람이 입증해야 한다. 10년의 소멸 시효 기산점은 불법 행위를 한 날인데, 이것은 현실적인 손해가 발생한 날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것은 피해자가 손해의 결과 발생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가 여부와는 상관없이 가해 행위로 인한 손해가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볼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하게 된다.
이와 같이 개별적인 민사 배상 소송의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소멸 시효라는 부분에서 많은 걸림돌이 예상된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비정상적인 시대와 정권이 만들어낸 엽기적인 인권 침해 사건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 회복과 배상을 위한 특별법이 더 절실해 보인다. 26년이 흐른 지금 피해자들은 사망했거나 정신적·신체적 장애들로 인해 제각각 흩어져 있어 그들의 현재 상황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증거 자료들을 수집해서 개별적인 소송을 제기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시간과 노력들, 그리고 현실적으로 돌파해야할 소멸 시효의 법리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별법 제정을 통해 형제복지원이라는 시설 내에서 이루어진 광범위한 불법 행위의 진상들을 공신력 있는 위원회를 통해 규명하여야만 하고, 이를 근거로 하여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 회복과 배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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