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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위원장 자살, 부위원장 사망…대학은 책임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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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조 위원장 자살, 부위원장 사망…대학은 책임 없나?

[김선수, 노동을 변호하다] <13> 한국외대 노조 간부 해고 사건

검사 출신으로 변호사를 지내다 당선된 국회의원과 사석에서 대화를 하던 중에 이런 얘기를 들었다.

"지역구 사무실에 민원인들이 많이 찾아온다. 민원 내용을 보면, 상당수가 재판과 관련된 것이더라. '나는 억울하고 상대방의 잘못이 분명한데, 재판이 이상하게 간다'는 내용이거나, '분명히 재판에서 이겼는데, 힘센 상대방이 불복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보통은 힘없는 사람들과 재력 있는 사람들의 싸움인데, 조금만 알아보면 대형 로펌이나 전관들이 항상 끼어 있더라. 심경은 이해가 가지만, 국회의원이 나서서 해결해줄 방법이 없으니 그냥 좋은 변호사를 물색해주고 만다. 국회의원이 되니, 여러모로 재판 과정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심정을 알겠더라."

법정 싸움은 흔히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의 싸움이기 일쑤다. 힘이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외려 적당히 타협을 할 여지가 있다는 게 법률가들의 이야기다. 대표적인 게 사용자와 노동자의 법정 다툼이다. 부당 행위가 있고, 파업이 벌어지고, 해고가 잇따르고, 결국 법정 다툼으로 가는 내용의 신문의 사회면 기사들은 어떤 면에서 '소셜 클리셰(영화에서 사용되는 의미로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쓰여 뻔하게 느껴지는 장면)'에 가깝다.

대개 재력이 있는 사용자는 대형 로펌과 함께 '법정 다툼'을 벌이고, 노동자는 생활고에 내몰려 '법정 투쟁'을 한다. 그 와중에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다. 김 변호사가 이번에 풀어낼 이야기는 한국외대 노동자 해고 사태다. <편집자>

김선수, 노동을 변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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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대학노동조합 한국외국어대학교지부(이하 '외대지부')는 2006년 2월 28일자로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단체협약과 임금협약 갱신을 위해 대학 측과 단체교섭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2006년 3월 1일자로 취임한 신임 총장이 강경한 태도를 취하여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신임 총장은 2006년 3월 14일자로 단체협약 해지 통보를 하였고, 일부 조합원의 자격을 부정했으며, 단체교섭 중단 선언을 했다.

외대지부는 노동위원회에 조정 신청, 조합원 찬반투표 등 법률상 절차를 준수하여 2006년 4월 6일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7개월이 지난 후인 2006년 11월 7일부터는 전면파업을 변경하여 간부들만 참여하는 부분파업을 진행했다. 외대지부는 2006년 11월 16일 집행부를 교체하였고, 2007년 1월 22일 대학 측과 합의가 성립되어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파업을 종료했다.

단체협약과 임금협약 갱신을 위해 전면파업 7개월, 부분파업 2개월 보름이라는 장기간 파업을 했다. 대학 측이 노동조합을 손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강경일변도의 태도를 유지했던 것이 사태 장기화의 중요 요인이 되었다. 당시 일부 언론들은 '폭력노조', '억지파업', '학업차질' 등 원색적인 용어로 노동조합을 매도하는 한편, '인사권 양보 불가', '무노동 무임금' 등 원칙과 소신을 지킨 외대 총장이 노동조합으로 하여금 백기를 들게 했다고 치켜세웠다.

ⓒ한국외대

무수한 법률적 쟁송들

파업 중에 크고 작은 마찰들과 수많은 법률적 쟁송들이 전개되었다. 대학 측은 48명의 조합원에게 사용자의 지위에 있어 조합원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탈퇴를 요구하고 탈퇴하지 않는 조합원 22명에 대해 해고 등의 징계를 했다. 대학 측의 조합원 자격 부인에 대해서는 외대지부가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를 거쳐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다.

외대지부는 파업의 주된 방법으로 캠퍼스 광장에서 집회를 진행하고, 부서 사무실을 순회하면서 선전활동을 하였으며,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는 대자보를 작성하여 건물 벽에 게시하였다. 대학 측은 보직교수 등을 동원하여 조합원들의 부서순회를 막고, 노동조합의 대자보를 뜯어냈다. 그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여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학 측은 외대지부와 간부들을 상대로 업무방해금지 등을 구하는 가처분신청을 했고, 법원은 2006년 8월 28일 대학 측의 신청을 일부 인용하여 조합원들의 일정한 행위를 금하는 가처분결정을 하였다. 그 이후 외대지부는 가처분결정을 준수하고자 노력했다.

대학 측은 주요 노조간부들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외대지부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을 포함하여 7명의 간부들이 파업 종료 후에 약식 기소되어 재판을 받아야 했다.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재판을 받은 결과 해고사건이 항소심에 계류 중이던 2008년 5월 15일자로 선고유예의 형을 선고받았다.

이해하기 힘든 것은 학생회가 외대지부의 파업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다. 학생회는 심지어 외대지부와 일부 간부들을 상대로 수업을 방해받았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소송은 1심과 2심에서 원고 청구 기각 판결이 선고되었고, 대법원 계류 중에 소취하로 종결되었다.

한편 보직교수가 외대지부 여성간부에게 성희롱에 해당하는 발언을 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이에 대해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여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가해자가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기각되었다. 또 조합원을 폭행하여 상해를 가한 보직교수 1명은 기소되어 최종적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노조간부들에 대한 징계과정

대학 측은 노동조합 탈퇴를 요구한 조합원 중 탈퇴하지 않은 22명에 대해 징계절차를 진행하여 2006년 6월에 파면 1명, 해임 3명, 정직 18명의 징계를 했다. 나아가 대학 측은 노조간부 10명에 대해 2006년 10월 10일 징계위원회를 개최했고, 23명에 대해 2006년 12월 7일 징계위원회를 개최했다.

단체협약에는 쟁의기간 중에는 어떠한 사유에 의해서도 징계, 부서이동 등 제반 인사조치를 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또한 단체협약과 징계규정은 징계위원회는 총장이 임명하는 대학 측 위원 5인과 노동조합 위원장 및 위원장이 추천하는 4인 등 9인으로 구성하고, 징계의결은 재적위원 2/3 이상의 출석과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노동조합은 쟁의기간에 징계위원회를 개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보고 징계위원을 추천하지 않았다. 대학 측은 두세 차례 징계위원회를 연기하다가 총장이 임명하는 대학 측 징계위원 5명만이 참석한 상태에서 징계의결을 하였다. 대학 측은 징계결과를 통보하지 않고 있다가 2007년 1월 22일자로 합의가 성립된 이후인 2007년 2월 1일에야 징계처분 결과를 통지하였다.

피징계자들은 관련 규정에 따라 대학 측에 재심을 신청하였고, 대학 측은 2007년 2월 28일 사용자 측 징계위원만 참석한 상태에서 원래의 징계를 확정하는 재심결의를 하였다.

핵심 간부들 해고무효확인 사건의 수임

나는 파업 진행 중에 제기된 무수한 쟁송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2007년 4월 중순경 외대지부 간부 몇 명이 찾아왔다. 해고된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부위원장 및 정책부장 등 핵심간부 4명의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맡아달라는 것이다. 파업에 대해 누군가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면 빠져나가기 어려운 지위에 있는 핵심간부들이다.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에 대한 해고가 무효로 판단되면 나머지 간부들의 경우에는 당연히 동일한 결과가 나올 것이므로 선도적인 재판이다.

해고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구제방법 중에는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는 방법도 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를 거쳐 행정소송을 제기해서 대법원까지 가는 절차다. 의뢰인들은 이미 노동위원회에 실망하여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보고 바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나도 의뢰인들의 그러한 판단에 동의하였기 때문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으로 했다.

해고무효확인 및 해고 다음날부터 복직 시까지의 임금을 구하는 소송을 피고(학교법인) 소재지 관할법원인 서울북부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절차를 밟았고, 나의 의뢰인들과 같이 징계를 받은 다른 간부들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어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것인가 하는 점도 신중하게 결정해야 될 사항이다. 판사에 따라 가치관에 차이가 있고, 법원마다 분위기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원칙대로 피고 소재지 관할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의 쟁점들

파업이 장기간에 걸쳐서 행해졌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마찰이 많았기 때문에 징계사유도 많았다. 파업과정에서 이루어진 많은 행위들이 징계사유로 되었다. 또한 징계과정에서 단체협약과 징계규정에 정해진 절차를 위반한 부분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법적 쟁점이 매우 많았다.

우선, 징계절차의 정당성 여부다. △위법한 징계위원회 구성(노조 측 위원의 배제, 징계대상자들과 이해충돌 하는 자의 징계위원 선임, 노동조합에 통보한 징계위원의 임의 변경 등), △ 징계위원회의 의사정족수 미충족, △징계위원회의 의결 후 통보 기간의 미준수(직원징계규정은 징계위원회 의결을 통보받고 임용권자가 7일 이내에 징계처분을 하도록 규정하였음에도 징계위원회 의결 후 2개월 내지 3개월 만에 징계처분 통보), △단체협약 상 쟁의기간 중 징계금지 조항 위반 여부(대학 측은 쟁의행위가 정당하지 않으므로 위 단체협약 조항이 적용되지 않고, 또한 단체협약을 2006년 3월 14일자로 해지 통보한 이상 그로부터 6개월이 경과함으로써 단체협약이 실효되었으므로 위 조항이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등이 쟁점으로 되었다.

다음으로 면책합의 위반 여부다. 2007년 1월 22일 노사간에 체결된 보충합의서에 "학교는 파업사태와 관련하여 추가 징계를 하지 않는다."는 면책합의 규정이 있었다. 대학 측은 원고들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위 합의 전에 개최하였지만, 징계의결 통보를 그 이후인 2007년 2월 1일에 하였다. 위 합의 이후에 이루어진 해고는 면책합의에 반하여 무효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대학 측은 면책합의 이전에 이미 징계위원회에서 해고를 의결하였으므로 원고들에 대해서는 면책합의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징계사유의 정당성 여부다. 징계사유의 정당성은 결국 파업의 정당성 문제다. 쟁의행위의 정당성은 주체, 목적, 절차, 수단과 방법의 네 가지 측면에서 평가된다. 이 사건에서는 주체, 절차, 목적의 측면에서는 문제가 될 것이 없고, 수단과 방법의 측면에서 정당성 여부가 다투어졌다. 대학 측은 수많은 농성행위와 부서 순회선전 및 항의방문 활동, 대자보 부착 행위, 관리직 직원들과의 충돌 등등을 징계사유로 거론하였다. 이들 사유 하나하나에 대해 우리 입장을 설명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징계 재량권의 남용 여부다. 근로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직장 상실을 의미하는 해고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에게 중대한 잘못이 인정되어야 한다. 쟁의행위가 장기화된 데 대학 측의 책임도 있고, 원고들이 장기근속하면서 대학 발전에 기여한 점 등을 고려하면 해고는 지나치게 과중하다고 볼 수도 있다.

1심의 진행 및 결과

쟁점이 많으니 쌍방이 제출한 준비서면이나 증거서류의 양이 엄청났다. 2심까지 제출한 서증은 쌍방이 각각 100호증이 넘었다. 원고와 피고 측이 각각 증인도 1명씩 신청해서 신문했다. 원고 측은 2007년 1월 22일 노사합의를 한 후임 외대지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고, 대학 측은 인사담당 총무처장(교수)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대학 측은 조합원들이 집단으로 임원실이나 사무실 등을 방문하여 업무방해를 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당시 상황을 녹화한 녹화테이프 검증을 신청했다. 법원에서 판사들과 당사자들이 녹화테이프를 같이 보았다. 원고들이 당시의 상황을 판사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2007년 4월에 소장을 제출한 후 준비절차를 거쳐 9월 28일 변론기일에 검증 및 증인신문을 하고 바로 결심했다. 선고기일을 10월 26일로 잡았었는데, 재판부에서 연기하여 11월 9일 선고했다. 선고기일의 연기는 무슨 의미인가? 기록 분량이 많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으나,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선고결과는 원고들 승소판결이었는데, 판결문을 받아보니 판결이유가 단순했다(서울북부지방법원 2007. 11. 9. 선고 2007가합2807 판결: 재판장 판사 김기정, 판사 이국현, 판사 신동준). 그 많은 쟁점 중에 딱 하나, 징계위원회의 의사정족수 위반을 잡아 해고무효를 선언했다. 피고는 노동조합 측이 징계위원 선정권을 포기해서 할 수 없이 대학 측 위원만으로 징계위원회를 구성했다고 주장했으나 1심 판결은 노동조합 측이 징계위원 선정권을 포기한 것으로 인정하면서도 노동조합 측이 선정할 수 있는 징계위원을 사용자 측이 선정하여 의사정족수를 충족시켰어야 했음에도 의사정족수를 충족시키지 않은 채 징계의결을 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2심의 진행과 결과

ⓒ한국외대
대학 측은 판결 선고 후 판결문을 수령하기도 전에 바로 항소장을 제출하였다. 그만큼 불만이 많다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대학 측의 1심 대리인은 국내에서 유명한 대형로펌이었는데, 대학 측은 항소심에서 다른 대형로펌을 추가로 선임했다. 그럴 비용으로 사건을 원만하게 푸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1심부터 진행한 로펌이 주장할 사항들을 빠짐없이 주장했기 때문에 추가로 선임된 로펌이 새롭게 주장할 사항은 없었다.

2심 진행 중에 노동위원회를 거쳐 서울행정법원에 가 있던 다른 간부의 판결과 원고들보다 뒤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한 다른 간부들의 판결이 선고되었다. 위 판결들은 쟁의기간 중 징계 금지를 규정한 단체협약을 위반한 것으로 보아 해고를 무효로 인정했다. 원고들은 위 판결들을 2심에 증거로 제출했다.

2심에서 쌍방은 징계위원회의 의사정족수에 관한 법리와 쟁의기간 중 징계 금지를 규정한 단체협약의 효력에 집중하여 변론했다. 대학 측은 초심징계위원회의 절차상 하자는 새롭게 체결된 단체협약에 따라 구성된 징계재심위원회의 의결(징계재심위원회는 총장이 임명하는 대학 측 5인과 노동조합 측 4인의 위원으로 구성하며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에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의하는 것으로 개정되었음)에 의하여 치유되었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징계재심위원회가 새롭게 해고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원고들에 대한 해고는 정당하다고 추가로 주장했다.

쌍방 모두 추가로 수집할 수 있는 서류들을 서증으로 제출했다. 2007년 7월 11일 첫 변론기일에 바로 결심을 했다. 그리고 8월 22일 선고는 피고 항소기각이었다(서울고등법원 2008. 8. 22. 선고 2007나116763 판결: 재판장 판사 이혜광, 판사 문주현, 판사 김지철). 항소심 판결은 이유를 더 정치하게 가다듬었다.

우선 해고가 쟁의기간 중 징계를 금지한 단체협약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설시하고, 단체협약이 실효되었다는 피고의 주장에 대해서는 해당 조항이 규범적 부분이어서 새로운 단체협약이 체결될 때까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징계위원회 의사정족수 위반과 관련하여 노동조합 측의 징계위원 선정권 포기 주장에 대해 1심 판결과 달리 노동조합이 징계위원을 선정하지 않은 것은 대학 측의 단체협약 위반을 지적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징계위원 선정권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피고가 항소심에서 새롭게 제기한 징계재심절차에 의해 절차상의 하자가 치유되었다거나 별도의 유효한 해고가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유 없다고 배척했다.

3심의 진행 및 결과

대학 측이 대법원까지 가지 않고 2심 판결을 수용하여 원고들을 복직시켜 주길 간절히 바랐으나, 대학 측은 상고를 했다. 대리인은 2심에서 추가되었던 로펌이 맡았다. 3심은 상고인이 상고이유서를 제출하고 피상고인이 답변서를 제출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대학 측은 그동안 주장했던 내용을 정리해서 2심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취지로 상고이유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우리 측도 그 동안의 주장 내용을 정리해서 2심 판결이 옳고 대학 측의 상고이유가 없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제출했다.

대학 측은 상고이유보충서를 제출하여 법리적인 주장이 아니라 전면파업을 7개월 이상이나 했음에도 단순히 단체협약 조항 등의 해석에만 초점을 맞추어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한 해고를 무효라고 판결하면 강경 불법파업에 어느 누구 하나 책임을 지지 않은 채 대학만 많은 상처를 입고 만다는 정상론을 전개했다. 그리고 원고들의 복직을 반대한다는 취지의 대학 보직교수들의 탄원서와 총학생회의 성명서, 그리고 파업 기간 중에 외대지부의 파업을 일방적으로 매도한 중앙일간지 기사와 사설들을 참고자료로 제출했다.

원래 대법원은 법리적 판단을 하는 곳인데, 탄원서 등을 제출하면서 정상 주장을 펴는 것은 그만큼 법리에 자신이 없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대학 측의 상고이유보충서를 송달받고 대응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에 시간이 흘렀고, 그러는 중에 2월 12일 10시로 선고기일이 잡혀 버렸다. 심리불속행을 할 수 있는 기간을 지나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선고기일이 잡힌 상태에서 추가로 서면이나 참고자료를 제출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으므로 그냥 결과를 기다렸다.

선고기일이 생각보다 일찍 잡힌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기각할 것이면 심리불속행으로 처리할 수도 있었는데, 심리불속행을 하지 않은 마당에야 시일이 좀 걸릴 것으로 예상했었다. 빨리 기일을 잡은 것은 상고이유가 명확해서 파기하거나 아니면 기각하더라도 판결이유를 써야 할 필요가 있거나 둘 중의 하나로 보였다. 후자이기를 희망하면서 기다렸다. 사무실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연락을 기다렸는데, 문자메시지로 먼저 승소했다는 연락이 오고, 이어서 당사자들로부터 고맙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2007년 2월 1일 해고되고 꼬박 2년 만에 승소 확정 판결{대법원 2009. 2. 12. 선고 2008다70336 판결: 대법관 박일환(재판장) 양승태(주심) 박시환 김능환)}을 얻어낸 것이다.

판결문을 받아보니 원심의 일부 판단에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인정했다. 쟁의기간 중 징계금지를 규정한 단체협약 위반 부분 및 노동조합의 징계위원회 구성 권한이나 동의권의 포기·남용에 관해서는 원심에 위법이 없다고 판단했으나, 징계재심위원회의 재심 결의로 원래의 징계절차상의 하자가 치유되지 않았다고 본 원심 판단에는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아찔한 순간이다. 다만 대법원은 대학 측과 외대지부가 2007년 1월 22일 면책합의를 한 것은 면책합의 이후 징계재심위원회 결의 형식의 징계도 할 수 없다는 의미로 보아 결과적으로 재심결의가 무효가 되어 원심의 판단에는 위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다른 해고자 또는 피징계자들 사건은 2심 단계에서 우리 사건의 대법원 판결 선고를 기다렸다. 우리 사건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자 동일한 법리로 모든 해고자와 피징계자들이 승소판결을 받게 되었다.

전임 위원장과 부위원장에 대한 2차 해고와 소송 결과

대학 측은 승소판결을 받은 노조간부들을 복직시키는 과정에서 원직 또는 유사 직위에 복직시키지 않고 대기발령을 하거나 지방 소재 연수원으로 좌천성 발령을 하고는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다시 해고했다. 내가 대리했던 외대지부 전임 위원장과 부위원장(이하 '전임 위원장 등') 두 명이 2009년 9월경 다시 해고되었다고 사무실을 찾아왔다.

대학 측은 해고무효 확정판결을 받은 노조간부들에게 해고기간 중 임금을 지급해야 함에도 상당 기간 줄다리기를 하다가 지급했다. 또한 원직에 복직시켜야 함에도 2009년 3월 초에 전임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원직인 서울캠퍼스가 아니라 용인캠퍼스로 발령했다. 나아가 업무도 부여하지 않고 사무실 구석에 회의용 테이블과 접이식 철제의자를 놓고 거기서 근무하라고 지시했다. 업무처리를 위한 컴퓨터도 지급하지 않았다.

전임 위원장 등은 연차유급휴가가 많이 남아 있으므로 1주일 정도 연차휴가신청을 하고 휴가를 다녀왔다. 사무실 구석에 앉아 있는 것이 다른 직원들에게 보기도 좋지 않고 굴욕적인 처사로 여겨졌기 때문에 바로 앞에 있는 회의실에 머물렀다. 회의실은 회의할 때만 사용하는 곳이어서 전임 위원장 등이 머무른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전혀 없었고, 전임 위원장 등은 직속상관과 담당 직원들에게 자신들이 머무는 곳과 연락장소를 알려주었다. 대학 측이 전임 위원장 등의 회의실 사용을 점거라고 매도하면서 시말서 제출을 요구하여, 전임 위원장 등은 업무를 부여해줄 것을 요청하고 노조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전임 위원장 등은 2009년 6월경 다시 1주일 정도 연차유급휴가를 신청하고 휴가를 다녀왔다. 대학 측은 전임 위원장 등에게 아무런 업무도 부여하지 않은 채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다가 2009년 9월 초 해고했다. 해고사유는 무단결근과 근무지 이탈 및 복귀명령 불응이었다. 무단결근은 전임 위원장 등이 두 번에 걸쳐 사전허가를 받지 않고 휴가를 사용한 것과 하루 월차휴가원을 제출하고 노동청을 방문했던 것을 말한다. 근무지 무단이탈 및 복귀명령 불응은 근무 장소로 지정한 사무실에 근무하지 않고 회의실 또는 노조사무실에 머무르고 사무실로 복귀하라는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임 위원장 등은 이번에도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지 않고 바로 지방법원에 해고무효확인 및 임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리상 자명해 보였으나 대학 측은 해고에 앞장섰던 보직교수를 증인으로 신청하여 신문까지 했으나, 사실관계가 워낙 명백해서 증인도 엉뚱한 증언을 할 수 없었다. 1심은 2009년 12월 하순에 변론을 종결하고 2010년 1월 하순에 원고 승소판결을 선고했다(서울북부지방법원 2010. 1. 20. 선고 2009가합8998 판결: 재판장 판사 서창원, 판사 김경선, 판사 이동희). 이유는 전임 위원장 등이 연차유급휴가를 사용하면서 미리 신청을 하였으므로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무단결근이라 할 수 없고, 전임 위원장 등이 업무가 부여되지 아니하여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무실 앞 회의실이나 노조사무실에서 대기하였다 하더라도 대학 측으로부터 부여될 업무를 기다리는 데에 장애가 된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이것만으로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책임 있는 사유라고 하기에 부족하여 해고는 무효라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대학 측은 항소하면서 대리인을 1심에서도 대형 로펌이었음에도 다른 대형 로펌으로 교체했다. 2007년 해고사건을 진행할 때도 2심과 3심에서 다른 로펌을 추가로 선임한 바 있었다. 1심을 담당한 로펌은 2007년 사건 진행 시 2심과 3심에서 추가로 선임되었던 로펌이다. 그런데 그 로펌도 다시 교체한 것이다. 대학 측은 항소를 하면서 전임 위원장 등에게 1심에서 인용된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임금에 대해서는 가집행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강제집행하기로 했다. 집행문을 부여받아 집달관이 가서 이사장실 집기 등을 압류하려고 하자, 대학 측은 1주일 안에 지급하겠으니 압류 딱지를 붙이지 말아달라고 사정했다. 대학 측은 약속한 대로 1주일 후에 급여를 정산해서 지급했다.

항소심은 2010년 6월 말에 1차 변론기일을 열었다. 대학 측의 항소이유나 우리의 답변은 1심에서 이루어진 것을 반복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재판장은 예단을 거의 밝힌 상태에서 바로 선고기일을 잡았다. 그리고 2010년 7월 30일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다(서울고등법원 2010나25300 판결: 재판장 판사 문용선, 판사 김진석, 판사 김창형). 이유는 원심판결을 인용하는 몇 줄이다.

대학 측은 상고까지 제기했다. 뻔한 상고이유와 답변서가 제출된 후 대법원은 2010년 11월 11일 심리불속행으로 상고 기각 판결을 했다{대법원 2010다69339 판결: 대법관 김능환(재판장) 이홍훈(주심) 이인복}. 전임 위원장 등은 다시 해고된 후 1년 2개월 정도 만에 대법원까지의 절차를 거쳐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전임 선전국장의 2차 해고와 소송 결과

파업 당시 외대지부 선전국장(이하 '전임 선전국장')은 2006년 파업 관련으로 해고되었다가 2009년 6월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승소판결이 확정되었다. 대학 측은 전임 선전국장을 원직에 복직시키지 않고 2009년 8월 3일자로 대천 소재 수련원(서울 집에서 출퇴근하려면 왕복 4시간 20분 정도 소요)으로 발령했다. 전임 선전국장은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2학년인 두 딸을 둔 기혼여성으로서 지방근무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대학 측은 지방으로 발령하면서도 숙소나 교통비 등도 전혀 지원하지도 않았다. 인사담당 직원들조차 숙소나 교통비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건의했으나, 인사책임자인 행정지원처장이 이를 묵살했다.

전임 선전국장은 숙소와 교통비 문제만 해결해 주면 일단 수련원으로 가서 근무하면서 인사발령의 부당성에 대해 법적으로 다툴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대학 측이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아 서울캠퍼스로 출근했다. 그러자 대학 측은 인사발령을 거부했다는 점을 주된 사유로 해서 2009년 12월 31일자로 전임 선전국장을 해고했다. 전임 선전국장은 취업규칙 규정에 따라 연차휴가신청을 하고 5차례에 걸쳐 10일간의 연차휴가를 사용했는데, 대학 측은 행정지원처장이 연차휴가신청을 허가하지 않았음에도 일방적으로 출근하지 않았으므로 무단결근을 한 것이라는 점도 해고사유로 포함시켰다.

외대지부와 전임 선전국장은 해고통지서를 받자마자 사무실로 연락을 해왔다. 곧바로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여 2010년 1월 25일에 해고무효확인 및 임금 청구 소송을 지방법원에 제기했다. 두 차례에 걸쳐 쌍방의 서면 공방과 두 차례의 변론기일을 거쳐 2010년 6월 16일 1심판결(서울북부지방법원 2010가합655 판결: 재판장 판사 박순관, 판사 박근정, 판사 이영림)이 선고되었다. 원고 전부 승소다.

복직명령 불이행이 정당한 징계사유가 될 수 있는지 여부는 복직명령의 당부에 달려 있는데, 수련원으로의 복직명령은 업무상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인선과정에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근거를 가지고 전임 선전국장을 수련원으로 파견하였다고 보기도 어려우며, 전임 선전국장이 두 딸을 양육하는 기혼여성으로서 수련원에서 기거하거나 원거리 출퇴근 등으로 생활상 불이익이 발생하리라는 것이 충분히 예상되므로 복직명령은 정당성을 결여하였다고 판단했다. 무단결근 사유에 대해서는 연차휴가사용권을 적법하게 행사한 것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1심 판결이 지극히 당연하였음에도 대학 측은 항소를 제기했다. 항소심에서는 서면 공방이 두 차례 이루어진 후에 잡힌 첫 변론기일에 바로 결심했다. 대학 측은 해고 후에 전임 선전국장이 진보정당과 민주노총 등의 간부로 선출되어 활동하고 있어 승소하더라도 원직 복귀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로 조정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전임 선전국장은 조정에 응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고 재판부도 대학 측이 주장하는 사유가 타당하지 않다고 보아 조정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그대로 인용하여 대학 측의 항소를 기각했다(서울고등법원 2010. 12. 17. 선고 2010나62880 판결: 재판장 판사 황병하, 판사 이종림, 판사 장경식).

항소심 판결을 받고 대학 측이 상고할 것인지 기다렸다. 그동안 무조건 상고를 한 것에 비추어 보면 상고를 할 가능성이 많아 보였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대학 측이 상고를 제기하지 않아 항소심의 승소판결이 확정되었다. 해고되고 소송을 제기하고 확정되는데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1심 6개월, 2심 6개월 정도로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면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었을 것이다.

전임 홍보국장의 지방수련원 발령과 부당전보 구제신청 사건

대학 측은 2009년 12월 말일자로 전임 선전국장을 해고하면서 그 후임으로 파업 당시 외대지부 홍보국장(이하 '전임 홍보국장')을 발령했다. 전임 홍보국장 역시 2006년 9월에 해고되었다가 2009년 11월 대법원에서 승소확정판결을 받고 원직에 복직되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대천 수련원에는 전임 선전국장이 발령받기 전에도 해고무효확인 판결에 따라 복직되는 노조간부를 발령한 바 있었다. 대학 측은 해고무효확인 소송 결과에 따라 복직하는 노조간부들을 순서에 따라 대천 수련원으로 발령했다. 서울에서 원거리여서 출퇴근을 하기 곤란할 뿐만 아니라 교통비 등 지출이 훨씬 늘어나고 가족과의 생활이 어렵게 되며, 노동조합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게 된다.

대천 수련원으로 발령받은 전임 홍보국장은 일단 발령에 응하여 수련원으로 가서 근무하면서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시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대학 측은 2010년 7월 전임 홍보국장을 수련원 관리소장으로 발령했다. 원래 관리소장은 용역업체를 통해 지역 사람이 맡고 있었다. 건물 관리를 해야 하므로 여러 관련 자격증이 필요한데 그러한 자격증도 없는 전임 홍보국장을 관리소장으로 발령한 것이다. 전임 관리소장은 이후에도 수련원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종전과 마찬가지로 거의 전반적인 관리업무를 담당했다.

내가 수임했던 노조간부들은 모두 민사소송을 제기했었다. 그런데 전임 홍보국장은 노동위원회에 부당인사발령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나는 노동위원회 단계에서는 관여하지 않았다. 지방노동위원회는 2010년 9월 부당인사발령과 부당노동행위를 모두 인정했으나, 중앙노동위원회는 2010년 11월 부당노동행위 부분에 대해서는 초심결정을 취소하고 기각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에 대해 대학 측은 부당인사발령 부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전임 홍보국장은 부당노동행위 부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나는 두 건의 행정소송 사건을 수임해서 진행했다.

두 건의 행정소송은 서울행정법원의 다른 재판부에서 진행되었는데, 부당인사발령 사건이 먼저 선고(서울행정법원 2011. 8. 26. 선고 2011구합8963 판결: 재판장 판사 오석준, 판사 양순주, 판사 이재홍)되었고 이어서 부당노동행위 사건도 선고(서울행정법원 2011. 9. 22. 선고 2011구합9188 판결: 재판장 판사 진창수, 판사 곽형섭, 판사 홍석현)되었다. 둘 다 원고 청구기각이었다. 부당인사발령으로 인정되기는 하지만 부당노동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부당인사발령사건에 대해 대학 측은 항소를 제기했고, 부당노동행위 사건에 대해 우리 측이 항소를 해야 할 지를 결정해야 한다.

노동위원회는 사용자가 구제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는데, 부당인사발령에 대한 구제명령의 불이행과 관련하여 대학 측은 1차로 500만 원의 이행강제금을 납부했다. 노동위원회가 10월 말까지 이행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2차로 5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고 대학 측에 통보했다. 이에 대학 측은 전임 홍보국장에게 10월 말일자로 복직시키겠다면서 이행강제금 부과를 막을 수 있도록 합의해달라고 요청했고, 노조와 전임 홍보국장이 이 요청을 받아들여 합의했다. 전임 홍보국장은 부당노동행위 사건에 대해 항소하지 않았고, 대학 측은 부당인사발령 사건의 항소를 취하했다.

황망한 노조지부장 자살 소식

파업 후 5년여 기간 동안 무수한 징계와 법적 투쟁이 뒤따랐는데, 노동자 측의 완벽한 승소로 결론 났다. 흔치 않은 일이다. 대학 측이 그만큼 무모하게 징계하였음을 의미한다. 잘 맺은 단체협약 조항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파업과 그 후의 탄압과정에서도 외대지부의 조합원 수에는 전혀 변동이 없었다고 한다. 조합원들의 단결된 힘이 뒷받침되었기에 소송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변호사로서 사건을 수임하여 처리하다 보면 의뢰인의 태도가 재판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음을 경험한다.

그런데 2012년 12월 25일 당시 외대지부 위원장의 자살 소식이 날아들었다. 2006년 파업 당시 정책부장을 역임했고 내가 대리했던 네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소송 진행 과정에서 몇 차례 만나 의견을 교환했는데, 차분하고 꼼꼼하면서도 원칙주의적 입장을 유지하여 외유내강(外柔內剛)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전임 선전국장 전에 대천 수련원으로 발령받았는데, 일단 근무지에 부임하여 성실하게 근무했다. 그 후 서울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던 중 위원장직을 맡아 어려운 처지에 있던 노동조합을 이끌었다. 위원장에 당선된 이후 수련원 발령 간부의 마지막 사건 진행 중 사무실을 방문했었다. 위원장 취임을 축하하고 어려운 짐을 지게 된 것을 위로했었다. 그런데 자살 소식을 듣고 황망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위원장 빈소를 지키던 수석부위원장이 12월 26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사망했다는 비보가 다시 들려왔다.

대학 측이 노조간부들을 막무가내로 해고하고, 대형로펌을 선임해서 재판절차를 끝까지 끌고 간 것이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노조간부들이 승소하여 정의를 확인한 것은 의미 있겠지만, 해고자들과 노동조합이 겪은 고생은 어디서,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 노조간부 두 사람의 죽음은 어디에 하소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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