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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8개월 8일 만에 복직, 대법 판결만 2번…어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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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8년 8개월 8일 만에 복직, 대법 판결만 2번…어쩌다?

[김선수, 노동을 변호하다] <12> 해고·복직을 둘러싼 법적 투쟁의 의미

해고 8년 8개월 8일 만에 법원이 복직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면, 당신은 어떤 심정일까. 법과 제도에 맞서는 개인은 피폐해질 가능성이 높다. 합리적인 결론을 얻기 위해 개인이 투여할 수 있는 자본과 시간은 한정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개인들은 자신을 둘러싼 부당한 환경에 저항한다.

법과 제도가 고도로 발달된 사회일수록 부당한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부당한 일에 대해 구제받기 위해 개인이 감당해야 할 절차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산과 같다. 김선수 변호사가 소개하는 이번 사례는 그런 개인들의 이야기다.

정부 산하 기관에서 해고된 후 두 차례 소송으로 자본과 시간을 허비해야 했던 원고의 사례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김 변호사는 "원고는 해고 후 시간강사로 전전하면서 온갖 고초를 겪었고, 생활상의 어려움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며 "경영 책임자의 편견에 기한 인사권 행사로 말미암아 원고가 감내해야 했던 고난의 역정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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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하는 사건은 의뢰인(이하 '원고'라 함)이 1999년 12월 31일 해고된 후 두 차례의 소송을 거쳐 해고된 날로부터 만 8년 8개월 8일 만인 2008년 9월 8일 복직 발령을 받은 사건이다. 1차 재판은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기하여 '서울지방노동위원회 → 중앙노동위원회 → 서울행정법원 → 서울고등법원 → 대법원'의 5단계를 거쳤고, 2차 재판도 '서울남부지방법원 → 서울고등법원 → 대법원 → 서울고등법원'의 4단계를 거쳤다.

한국 사회에서 해고자가 복직을 쟁취하기 위하여 얼마나 길고도 험난한 투쟁과 인고의 세월을 감내해야 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원고는 복직되기 직전에 자신을 해고했던 기관을 감독하는 기관의 감사로 임용되어 복직하자마자 퇴직했다. 9심의 단계 중에서 내가 대리인으로 관여한 것은 2차 재판의 맨 마지막 대법원과 파기환송심 고등법원 두 심급이다.

1차 부당 해고 구제신청 사건의 경과

원고는 1994년 9월 1일 문화관광부 산하 연구기관인 재단법인 한국문화정책개발원(이하 '개발원')에 연구원으로 입사하여 근무하던 중 개발원 경영 방침에 따라 1999년 1월 1일부터 연봉제 계약직으로 근무하다가 1999년 12월 31일 재임용 탈락 통보를 받았다. 기나긴 투쟁의 여정이 시작된 해고일이다.

개발원 인사 관리 규정은 직원의 임용은 계약제에 의하되 그 계약 기간은 초임은 1년, 재임용 이상은 2년으로 하고, 원장은 계약 기간 만료 1개월 이전에 근무 성적 평정 결과에 따라 재임용 여부를 결정하여 이를 통보하며, 그 재임용의 심사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인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그 재임용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인 근무 성적 평정의 시기, 방법, 평정의 공개와 이의 절차 및 평정에 의한 재임용 결정 기준 등에 관하여 직원 평정 규정 및 연구 결과 평가 운영 세칙 등을 두어 상세한 내용을 정했다.

원고는 재임용에 요구되는 연구 실적을 충족하였으나, 평가위원 중 한 명이 이례적으로 낮은 평가 점수를 주는 바람에 근무 성적 평정 결과 최하위 점수를 받게 되었다. 원고는 이를 원장이 원고를 해고하기 위해 부당하게 평정 업무를 처리한 결과로 보았다. 개발원은 계약 기간 만료 하루 전에 인사위원회를 열어 원고를 재임용에서 제외하기로 의결하였고, 계약 기간 만료 당일에 재임용 제외 사실을 통보하면서 재임용에서 제외된 이유에 관하여 설명해 주지 않았다.

이에 원고가 부당해고구제신청 절차를 밟아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부당 해고라는 확정 판결을 받았다.

2000년 3월 30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 해고 구제신청
2000년 6월 1일 서울지노위, 부당 해고 인정(구제 명령)
2000년 12월 12일 중앙노동위원회, 지노위 구제 명령 취소(구제신청 기각)
2001년 7월 20일 서울행정법원(2001구389), 중노위 재심 판정 취소(원고 청구 인용)
2002년 8월 29일 서울고등법원(2001누13081), 중앙노동위원회 항소 기각
2005년 7월 8일 대법원{2002두8640: 대법관 이규홍(재판장), 이용우, 박재윤, 양승태(주심)}, 중앙노동위원회 상고 기각(부당 해고 확정)

부당 해고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는 데까지 해고일로부터 5년 7개월 이상 걸렸다.

기간제 근로자 재임용 제외를 부당 해고로 인정한 중요한 판결

원고에 관한 대법원(2005. 7. 8. 선고 2002두8640) 판결은 기간제 근로자라도 재임용의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재임용 제외 조치가 부당 해고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위 판결은 "계약 기간을 정하여 임용된 근로자의 경우 그 기간이 만료됨으로써 근로자로서 신분 관계는 당연히 종료되고 재임용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면 (…) 당연 퇴직되는 (…) 것이 원칙이기는 하나, 임용의 근거가 된 법령 등의 규정이나 계약 등에서 임용권자에게 임용 기간이 만료된 근로자를 재임용할 의무를 지우거나 재임용 절차 및 요건 등에 관한 근거 규정을 두고 있어 근로자에게 소정의 절차에 따라 재임용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그 절차에 위반하여 부당하게 근로자를 재임용에서 제외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부당 해고와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근로자로서는 임용 기간이 만료된 후에도 재임용에서 제외한 조치의 유효 여부를 다툴 법률상 이익을 가진다."고 판시했다.

나아가 위 판결은, 원고는 합리적인 기준에 의한 공정한 심사에 의하여 일정한 등급 이상의 근무 성적을 거두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정의 절차에 따라 재임용되리라고 하는 정당한 기대권을 가졌음에도 연구 실적 평가 결과의 열람 및 재평가 요구, 재임용 탈락에 대한 재심 요청 등의 기회를 처음부터 봉쇄당한 채 당연 퇴직되고 말았으니 원고에 대한 재임용 거부는 사실상 해고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기간제 근로자의 재임용 기대권에 대해서는 대법원(2011. 7. 28. 선고 2009두2665) 판결 등에서는 한 단계 더 발전하여 "근로 계약, 취업 규칙, 단체 협약 등에서 기간 만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당해 근로 계약이 갱신된다는 취지의 규정이 없더라도 근로 계약의 내용과 근로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계약 갱신의 기준 등 갱신에 관한 요건이나 절차의 설정 여부 및 그 실태, 근로자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등 당해 근로 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근로 계약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 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근로자에게 그에 따라 근로 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이에 위반하여 부당하게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 해고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효력이 없고, 이 경우 기간 만료 후의 근로 관계는 종전의 근로 계약이 갱신된 것과 동일하다"고 판단했다.

위 판결(2002두8640)은 근로 계약 갱신에 관한 규정의 존재를 요구했으나, 이후 판결(2009두2665)은 그러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도 갱신 기대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진일보했다.

통폐합과 복직의 거부

원고가 법적 구제 절차를 밟고 있던 2002년경 문화관광부는 개발원과 1996년 4월 개원한 재단법인 한국관광연구원(이하 '관광연구원')을 통폐합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개발원은 2002년 9월 18일 이사회를 열어 해산을 결의했다. 2002년 12월 4일 개발원과 관광연구원이 해산되고 재단법인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이하 '피고 법인')이 설립되었다. 문화관광부는 피고 법인을 설립하면서 새로운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에 의하지 않고 민법 제32조에 의하여 법인을 설립하기로 하고 정부산하기관 경영 고시를 했다.

개발원은 2002년 12월 4일 원고를 제외한 직원 23명으로 하여금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하여 면직 처리했다. 피고 법인은 2002년 11월 30일 자 창립 이사회 의결을 거쳐 개발원 직원 23명과 관광연구원 직원 21명의 이력서를 받아 선별한 후 2002년 12월 5일 42명을 기존 직급을 인정하여 같은 직급으로 특별 채용 형식으로 임용하고 2명을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했다.

피고 법인 정관은 피고 법인이 설립 등기를 한 날에 개발원 및 관광연구원이 기부하는 업무, 재산 및 권리 의무를 승계한다고 규정하면서도 소속 직원의 근로 관계 승계에 관하여는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았다. 피고 법인 인사 규정은 "피고 법인의 설립 당시 개발원 및 관광연구원에 근무한 직원으로서 피고 법인에 채용된 경우에 경력은 개발원 및 관광연구원 최초 임용일 또는 해당 직급 임용일을 적용한다", "피고 법인 설립 당시 개발원 및 관광연구원에 근무한 직원으로서 피고 법인에 채용될 경우 해당 직급별 승진 소요 기간이 미달된 경우에는 직종별 차하위 직급부터 승진 소요 기간을 합산하여 계산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피고 법인 보수 규정은 "피고 법인 설립 당시 개발원 및 관광연구원에 근무한 직원으로서 피고 법인에 채용된 경우에는 이전의 보수를 기준으로 하여 기본 연봉을 조정할 수 있다. 다만, 개인별 연봉 조정액은 원장이 결정하되, 직종 또는 직급별로 동일한 기준에 의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개발원은 2005년 7월 8일 대법원의 1차 판결 선고 후 원고에게 2000년 1월 1일부터 개발원이 해산 등기를 마친 2002년 12월 4일까지의 임금 및 퇴직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피고 법인은 원고의 고용을 승계할 의무가 없다면서 복직을 거부했다.

▲ 대법원의 선고 장면 ⓒ뉴시스

2차 소송 제기와 1심과 2심의 엇갈린 판결

원고는 피고 법인으로부터 복직 거부 통보를 받고 피고 법인을 상대로 2차 소송을 제기했다. 청구 취지는 2002년 12월 5일부터 근로자 지위에 있음을 확인하고 그 이후의 임금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정부 산하 연구 기관이 통합될 경우 근로 관계의 승계 여부가 주된 쟁점이다. 이 쟁점에 대해서는 대법원(2002. 5. 14. 선고 2001두6579) 판결 등이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 등으로 새로운 특수 법인이 설립되어 종전에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던 법인 등 단체의 기능을 흡수하면서 그 권리 의무를 승계하도록 하는 경우에 있어서, 해산되는 종전 단체에 소속된 직원들과의 근로 관계가 승계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아니한 채 단순히 새로 설립되는 법인이 종전 단체에 속하였던 모든 재산과 권리 의무를 승계한다는 경과 규정만 두고 있다면, (…) 위 경과 규정의 문언만으로는 당해 법률에 따라 종전 단체에 소속된 직원들의 근로 관계가 새로 설립되는 법인에 당연히 승계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 사건에서 위와 같은 대법원 판결을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중요한 관건이다. 사안이 다르므로 달리 판단되어야 한다고 할 것인지 아니면 위 대법원 판결이 잘못되었으므로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고 할 것인지 하는 문제다.

1심인 서울남부지방법원은 2006년 9월 15일 원고 전부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2005가합16462 판결: 재판장 판사 이민걸, 판사 서아람, 판사 김수정). 1심 판결은 대법원(2002. 5. 14. 선고 2001두6579) 판결의 논지를 설명한 후에 "위와 같은 법리의 취지가 (…)다른 제반 사항을 전혀 고려함이 없이 종전 단체에 소속된 직원들의 근로 관계가 새로 설립되는 법인에 당연히 승계됨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위 경과 규정 이외에 제반 사항을 종합적으로 참작하여 종전 단체에 소속된 직원들의 근로 관계가 새로 설립되는 법인에 당연히 승계되는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면서 제반 사항을 종합적으로 참작한 결과 '원고도 개발원의 다른 연구원들과 마찬가지로 2002년 12월 4일 개발원에서 면직 처리됨과 동시에 12월 5일 피고 법인에게 당연히 재임용되었을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진행 중에 재판부는 6000만 원을 지급받고 2007년 5월 30일까지 사직하는 내용의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을 했다. 원고는 이를 수용할 수 없어 이의신청을 했다. 그런데 항소심은 2007년 7월 6일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다(서울고등법원 2006나97148 판결: 재판장 판사 박홍우, 판사 이정렬, 판사 김상동). 2심 판결은 피고 법인의 정관 및 취업 규칙상으로 피고 법인이 개발원 및 관광연구원에 근무한 직원들의 근로 관계를 승계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피고 법인이 개발원 직원들을 특별 채용한 2002년 12월 5일보다 2년 7개월 정도 후인 2005년 7월 8일에서야 원고를 개발원에 복직하라는 내용의 판결이 확정되었으므로 그 사이에 피고 법인의 인력 수급, 인사 관리 상황이 같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 법인이 원고에 대하여 근로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정만으로는 피고 법인의 행위가 형평성에 반하거나 신의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단계에서 사건의 수임과 결과

1심과 2심에서는 다른 변호사가 담당했는데, 원고는 2심에서 패소한 후 나를 찾아왔다. 1심과 2심의 결과가 다르기 때문에 대법원에 상고해서 최종적으로 대법원의 판단을 받는 일만 남았다. 내가 할 일은 1심과 2심에서 인정된 사실과 주장을 정리해서 상고이유서를 잘 작성하여 대법관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기왕의 대법원 판결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다. 다양한 이유에 의한 사용자 변경 시 근로 관계 승계의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근로기준법상의 '사업'이 존재하고 그 사업과 결합된 근로 관계가 존재하는 경우 당해 근로 관계는 근로기준법상 해고 제한 조항의 규제를 받는다. 대법원은 사업 양도 시 근로 관계의 원칙적 승계를 인정하고 있는데, 이는 사용자 변경 시 기존 근로 관계 보호를 목적으로 하며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해고 보호 제도의 흠결을 보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사용자 변경에 따른 고용 승계는 그 형식이 합병이든 사업 양도든 아니면 법률 제정 등의 형식을 취하든 상관없이 적용되어야 할 원칙이고, 무엇보다 노동법의 핵심인 해고 제한 법리와 상관관계 하에서 종합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떤 원인으로든 사용자가 변경되더라도 사업이 계속되는 한 원칙적으로 고용 관계는 단절되지 않고 승계되며, 이를 배제하는 합의가 있더라도 해고 제한 법리에 의해 정당한 이유가 없는 이상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 한편 기왕의 대법원 판결들은 법률의 제정 또는 개정의 방법으로 통폐합한 사안인데, 이 사건의 경우에는 행정 기관 내부의 방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어서, 기왕의 대법원 판례의 사안과는 다르다는 측면도 있다.

대법원은 2심 판결 선고일로부터 5개월 정도 지난 2007년 12월 27일 판결을 선고했다{2007다51017 판결: 대법관 안대희(재판장), 김영란, 김황식(주심), 이홍훈}. 보통의 예에 비추어 선고기일이 빨리 잡혔다.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할 거면 선고기일을 잡을 필요가 없다. 이렇게 빨리 선고기일을 잡은 것은 2심 판결이 명백히 잘못되어서 파기환송하거나 아니면 상고 이유가 명백히 이유 없어 기각하겠다는 것 둘 중 하나다. 바로 기각할 거면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하면 될 것인데, 다른 이유가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불안하지만 일말의 기대를 걸고 선고 결과를 기다렸다.

선고 결과는 파기환송이었다. 대법원은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 또는 이와 동등한 효력이 있는 법규에 의하지 아니하고 행정 기관 내부의 업무 처리 방침 또는 행정 조치 등에 의하여 새로운 법인이 설립되어 종전에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던 법인 등 단체의 기능을 흡수하면서 그 권리 의무를 승계함과 아울러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일정한 사업 목적을 위한 인적·물적 조직을 일체로서 이전받는 등으로 종래의 사업 조직이 유지되어 그 조직이 전부 또는 중요한 일부로서 기능을 할 수 있다면, 반대의 특약이 없는 한 해산되는 종전 단체에 소속된 직원들과의 근로 관계는 원칙적으로 새로 설립되는 법인에게 포괄적으로 승계되고, 종전 법인과 새로운 법인 사이에 근로 관계의 일부를 승계의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특약이 있는 경우에는 그에 따라 근로 관계의 승계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으나, 그러한 특약은 실질적으로 해고나 다름이 없으므로 구 근로기준법 제30조 제1항 소정의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고 법인이 개발원 및 관광연구원으로부터 종전 사업에 필요한 물적 조직을 그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일체로서 인수하였고, 인적 조직 역시 그 동일성을 유지한 채 피고 법인에 승계되어 개발원과 관광연구원에 소속된 직원들과 맺은 근로 관계는 원칙적으로 피고 법인에게 포괄적으로 승계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원고와 개발원 사이의 근로 관계 역시 피고 법인에게 그대로 승계되었다고 판단했다.

위 대법원 판결의 의의에 대해 이동훈 재판연구관은 "신설 법인이 해산 법인으로부터 업무, 재산과 권리·의무를 승계하는 경우와 같은 비영리 법인의 사업 양도에 있어서도, 노동법상 사업 양도에 관한 법리가 적용됨을 전제로, 원칙적으로 근로자와 해산 법인 사이의 근로관계가 신설 법인에게 포괄적으로 승계된다는 점을 판시한 데 그 의의가 있다. 또한, 이와 같은 근로 관계 승계 원칙의 적용이 배제되는 경우는 오로지 종전 법인의 해산과 새로운 특수 법인의 설립·통합이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 또는 이와 동등한 효력을 가진 법규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때에 한정됨을 명확히 한 점에서도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아니하고 행정 기관 내부의 업무 처리의 일환으로서 종전 법인의 해산과 새로운 법인의 설립을 추진함에 있어 그들 사이의 업무 및 권리·의무가 승계되는 경우, 종전 단체에 소속된 직원들의 근로 관계가 새로운 법인에 승계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여부". <대법원판례해설> 72호(2007 하반기), 법원도서관, 2008. 7, 291-318}.

나는 "공공 기관의 통폐합과 근로 관계의 승계"라는 제목으로 신인령 교수님 정년 기념 논문집인 <노동법의 이론과 실천>에 게재했다(2008, 151-170면). 근로 관계 승계의 법리는 통폐합이 법률에 의해 이루어지면서 고용 승계 조항을 두지 않은 경우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파기환송심 과정에서 해고 기간 동안의 임금 액수 문제와 관련하여 이런저런 공방이 오갔다. 마지막까지 사소한 트집을 잡는 태도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액수 문제만 남았으므로 조정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건만 굳이 판결까지 가게 되었다. 파기환송심은 2008년 8월 22일 판결을 선고했다(서울고등법원 2008나6610 판결: 재판장 판사 이혜광, 판사 문주형, 판사 김지철). 결과적으로 원고는 조정을 받은 것보다 나은 판결을 받았다.

복직과 법적 투쟁의 의미

피고 법인은 2008년 9월 8일 임금을 정산해서 지급함과 아울러 원고에 대하여 복직 발령을 했다. 공교롭게도 해고된 이후 8년 8개월 8일 만이다. 8자 3개가 겹치는 기간의 의미가 새삼스럽다. 중국과 중화문화권에서는 8자를 행운의 숫자로 여긴다. 8의 중국 발음 'ba'가 '돈을 벌다, 부자가 되다'는 의미의 '發財'(파차이)의 첫 발음인 'fa'와 비슷하기 때문이란다. 오죽하면 북경올림픽도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 8분 8초에 개막하였을까?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고, 또한 많은 단계를 거쳤지만, 마침내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끝났다. 원고가 얻어낸 두 번에 걸친 대법원 판결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차 대법원 판결은 계약직 근로자의 재임용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을 확대 인정하였고, 2차 대법원 판결은 정부 방침에 의해 공공 기관을 통폐합하는 경우 사업 양도 시 고용 승계의 법리를 적용하여 종전 근로자들의 고용 승계를 인정했다. 원고는 장기간 고통을 받았지만, 그로 말미암아 노동 관계 법리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원고는 해고 후 시간강사로 전전하면서 온갖 고초를 겪었고, 생활상의 어려움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분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1년에 한 달 정도 절에 들어가거나 미얀마 등지에 가서 수양도 했다고 한다. 경영 책임자의 편견에 기한 인사권 행사로 말미암아 원고가 감내해야 했던 고난의 역정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이 사회에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어디 한두 사람이겠는가? 그나마 법원에서 중요한 판결 2개를 받아내고 또 승소 판결을 받은 원고는 행운이 따른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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