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재임용제는 원래 정년 보장으로 인한 교수의 무사안일을 타파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과거 군사 독재 시절에는 정부나 사학 재단에 비판적인 교수들을 축출하는 수단으로 악용됐다고 김선수 변호사는 지적한다. 통계를 봐도 1976년 2월 최초로 실시된 재임용 시 국·공립대학 교수 4260명 중 212명(4.97%)이 탈락했고, 사립대학 교수 5511명 중 104명(1.89%)이 탈락했다고 한다. 그러나 1986년 이후 10년간 탈락률은 0.5%. 지금은 더 낮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독재 시절보다는 덜하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수치만 달라졌을 뿐, 재임용 탈락 사례 주인공의 상당수가 '입바른 교수'들이었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재단 비리에 맞섰던 대학 교수가 재임용에 탈락했다는 소식은 단골 뉴스가 됐다. 대한민국 '1등 대학교'라고 하는 곳에서 '선배의 친일 행적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재임용에 탈락한 교수도 있다. 교수협의회를 구성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징계당하는 사례도 있다. 무엇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교수노조는 불법 단체다.
교수 재임용 탈락 사건 등을 맡아온 김선수 변호사가 '노동자 교수'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교수 재임용제의 도입 및 1997년까지의 경과
교수 재임용제가 도입되기 전에 대학 교수들은 교육공무원법과 사립학교법에 의해 형의 선고, 징계처분 또는 기타 법정사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해직되지 아니하고 정년까지 신분 보장을 받았다. 인사제도도 연공서열제로 정해진 근무기간이 경과되면 자동적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유신 시절인 1975년 7월 23일 개정되고 1976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교육공무원법(법률 제2774호)과 사립학교법(법률 제2775호)에 의하여 교수 재임용제가 도입되었다. 교육공무원법 제9조 제3항은 "대학에 근무하는 교원은 다음과 같이 기간을 정하여 임용한다. 교수 및 부교수 6년 내지 10년, 조교수 및 전임강사 2년 내지 3년, 조교 1년"이라고 규정하고, 부칙 제3조는 "(…) 재임용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대학에 교수재임용심사위원회를 두되, 그 조직·기능 및 운영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했다.
사립학교법 제53조의2는 "대학(사범대학 및 초급대학을 포함한다)에 근무하는 교원은 직명별로 10년 이하의 범위 안에서 당해 대학을 설치·경영하는 학교법인의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기간을 정하여 임면한다"고 규정하고, 부칙 제2조는 "이 법 시행 당시 대학(사범대학 및 초급대학을 포함한다)에 근무하는 교원은 1976년 2월 말일부로 제53조의2의 규정에 의하여 재임면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교육부는 1981년 말에 '대학교원 재임용 심사평정표'를 작성하여 전국 국·공립 및 사립대학에 시달·시행했다. 이에 의하면 교수 재임용 시에는 항목별 평정 결과와 더불어 최근 3년 이내(재임용일 기준) 2편 이상의 연구실적물을 심사·평가한 결과와 학생지도 및 수업상황, 법령준수 및 기타 사항 등에 관한 관련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심사하여 판정하게 되어 있고, 종합적인 심사자료를 토대로 당해 대학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각 대학장이 재임용 또는 재임용 추천을 하게 되어 있다. 교육부는 1984년 9월 1일 '국·공립대학교원 인사관리지침'을 제정·시행하였는데, 여기에서는 재임용 시기를 매년 3월 1일과 9월 1일로 하고, 재임용 대상자는 개인별로 총·학장 책임 하에 '대학교원 재임용 심사평정표'의 평점으로 엄정히 심사하여 재임용한다고 규정했다.
1990년 4월 7일 개정된 사립학교법(법률 제4226호) 제53조의2 제3항은 "대학교육기관의 교원은 당해 학교법인의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기간을 정하여 임면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10년 이하의 범위 안에서'라는 제한을 철폐하고, '임면한다'는 의무조항을 '임면할 수 있다'는 선택조항으로 변경했다. 1991년 3월 8일 개정된 교육공무원법(법률 제4348호) 제11조 제3항은 "대학에 근무하는 교원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기간을 정하여 임용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법률에 규정되어 있던 임용기간을 대통령령에 위임했다.
이에 따라 교육공무원임용령에서 신규채용(기간을 정하여 임용된 자가 그 기간이 만료되어 다시 임용되는 경우를 제외한다)되는 교수 및 부교수에 대하여는 3년의 범위 내에서 1차에 한하여 당해 대학의 장이 정하는 기간, 부교수에 대하여는 6년 내지 10년의 범위 내에서 당해 대학의 장이 정하는 기간(부교수를 기간을 정하여 임용하는 경우에는 위 1차에 한하여 3년의 범위 내에서 기간을 정하여 임용하도록 하는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 조교수는 4년 이내, 전임강사는 2년 이내, 조교는 1년으로 각 대학교수의 임용기간을 규정했다.
1997년 1월 13일 개정된 사립학교법(법률 제5274호) 제53조의2 제3항은 "대학교육기관의 교원은 당해 학교법인의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기간을 정하여 임면할 수 있다. 이 경우 국·공립대학의 교원에게 적용되는 임용기간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규정하여 임용기간을 국·공립대학 교수와 동일하게 규정했다.
▲ 선배의 친일 행적을 비판한 후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던 전 서울대 미대 조교수 김민수 씨가 서울대총장을 상대로 낸 교수 재임용 거부처분 취소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1심과 같이 원고승소 판결을 받은 뒤 서울대 본관 앞에 설치된 복직 촉구 농성장을 찾아 서울대 측의 복직 관련 결정을 초조히 기다리고 있다. 1998년 재임용에서 탈락했던 김 씨는 7년간 싸운 끝에 2005년 복직했다. ⓒ연합뉴스 |
교수 재임용제의 본래의 취지 및 악용
원래 교수 재임용제는 정년 보장으로 인한 교수의 무사안일을 타파하고 연구분위기를 제고하는 동시에 대학교육의 질도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대학교수의 경우 그 직무와 책임의 특수성 때문에 신분이 강하게 보장되어 있어 한번 임용되면 능력이나 자질에 하자가 발견되더라도 정년까지 퇴직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임용하여 그 기간 중 능력이나 자질에 하자가 있는지 여부를 감별하여 재임용하도록 함으로써 신분 보장에서 초래되는 폐단을 보완하고자 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
교수 재임용제는 정부나 재단에 비판적인 교수들을 축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1976년 2월 최초로 실시된 재임용 시 국·공립대학 교수 4260명 중 212명(4.97%)이 탈락했고, 사립대학 교수 5511명 중 104명(1.89%)이 탈락했다(별도로 2.4%는 사표를 제출했음). 1986년부터 1997년까지 116명의 전임교원이 재임용에서 탈락했는데 국·공립대학 12명, 사립대학 104명으로 평균 탈락율은 0.5%였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사립대학에서 교수 2명, 부교수 17명, 조교수 35명, 전임강사 45명이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교수 재임용제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게 문제 있는 교수들을 걸러내는 장치로 기능했다기보다는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학원민주화에 앞장선 교수들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된 교수가 그 부당성을 주장하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대법원은 임용기간이 만료됨으로써 대학교원으로서 신분관계가 당연히 종료되고 재임용 여부는 임용권자의 자유재량행위에 속한다는 이유로 적법요건을 구비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재임용거부의 정당성에 대한 심사 단계로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재임용거부 결정 및 통지는 교원에 대하여 임기만료로 당연퇴직 됨을 알려주는 데 지나지 아니하여(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 약칭 '교원지위향상법') 소정의 '징계처분 기타 그 의사에 반하는 불리한 처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논리에 따라 국공립대학 교수의 경우에는 행정처분성이 부정되어 각하 판결이 선고되었고(대법원 1997. 6. 27. 96누4305 판결 등), 사립대학 교수의 경우에는 소의 이익이 부정되었다. 교원징계재심위원회는 '의사에 반하는 불리한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심청구를 각하했다. 그 결과 재임용에서 탈락한 교수는 사법적 심사를 받아볼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이런 상황은 김대중 정부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과거독재정권에서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된 교수들과 사학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가 학교법인에 의해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된 교수들이 이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재임용 거부 사건의 담당
나는 1997년에 교수협의회 활동 관련으로 재임용에서 탈락한 세종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사건을 수임해서 1997년 5월 1일 소송을 제기했다(서울고등법원 97구18488). 1998년에는 안성산업대학교에서 교수협의회 활동으로 재임용에서 탈락한 교수 사건(서울고등법원 98구3114)도 수임해서 진행했다. 두 사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종전 판례의 취지에 따라 재임용거부 처분은 교원지위향상법 소정의 불리한 처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적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에 나아가지도 않은 채 문전에서 걷어찼다.
세종대 교수는 서울고등법원에 기간제 임용의 근거규정인 사립학교법 제53조의2 제3항 등에 대해 위헌제청신청도 하였는데 법원을 이를 기각했다.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 상고를 제기함과 동시에 위헌제청신청 기각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했고(대법원 1998. 8. 25. 선고 98두8926 판결), 헌법재판소는 합헌결정을 했다{헌법재판소 1998. 7. 16. 선고 96헌바33·66·68,97헌바2·34·80,98헌바39(병합) 결정}. 당시 이미 전국의 많은 교수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내가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98헌바39)은 다른 사건들에 병합되어 함께 선고되었다.
위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이재화·조승형·정경식·고중석 재판관은 기간임용제를 채택함에 있어서는 교원의 신분보장을 위하여 적어도 재임용의 거부사유와 재임용 거부에 대한 구제절차를 반드시 함께 규정하여야만 교원지위 법정주의를 규정한 헌법 제31조 제6항의 헌법정신에 합치되는데, 재임용 거부사유와 재임용을 거부당한 교원의 구제절차를 규정하지 아니한 채 사립학교법이 기간임용제를 규정한 것은 헌법 제31조 제6항에 위반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위 두 사건을 진행하면서 교수재임용제의 법리적인 문제점 및 구제절차 등에 대해 논문을 쓰기도 했다. 1998년에 서울대노동법연구회 기관지에 '교수재임용거부에 대한 판결례의 검토라는 제목으로 게재했고(<노동법연구> 제7호, 서울대학교노동법연구회, 1998), 2001년에는 법과사회이론학회의 기관지에 '교수재임용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교수재임용에 관한 판례의 문제점'이란 제목으로 게재했다(<법과 사회> 20권, 법과사회이론학회 등, 2001).
세종대학교 김동우 교수 재임용 탈락 사건
김동우 교수는 파리8대학 조형미술학과와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미술대학교 조각과에서 공부하고 15년 동안 유럽에서 활동한 후 1996년 귀국했다. 대리석으로 투박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동양적 여인상을 빚어왔다. 조각가들에게 꿈의 무대로 알려진 파리 FIAC(Foire Internationale d'Art Contemporain) 전시회를 비롯한 수많은 국제전에 초대되었고, 갤러리 현대에서 개인전을 다섯 차례 가졌다.
김동우 교수는 1998년 3월 1일부터 세종대학교 회화과 조교수로 임용되어 근무했다. 3년간 근무하되 전임시간 12시간을 채울 수 없으므로 1년에 작품 한 점씩 제작하기로 했다. 첫해인 1998년에 심혈을 기울여 <모자상>을 제작했다. 그런데 1989년 2월경 이사장이 이를 보자고 하여 작품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5등신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8등신으로 고치라"고 요구했다. 김 교수는 서구적인 인체미보다 한국적인 미를 추구하였고 날씬한 여체의 비례가 아닌 만물의 어머니인 대지를 상징하는 건강한 인체 비례를 도입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사장의 요구에 따르지 않고 작품을 완성해서 예정대로 본관 정원에 설치했다.
위 일이 있고 난 후 학교 측으로부터 1999년 3월 1일부터 3년간 근무한다는 서약서를 제출할 것을 요청받아 서류를 보충하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는 설명을 듣고 이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이 부분에 대해 법원은 1999년 3월 1일부터 2002년 2월 28일까지 3년의 기간을 정하여 회화과 조교수로 다시 임용되었다고 인정했다. 대학 측은 김 교수에게 연구업적과 강의평가 등 재임용 탈락 사유가 없음에도 2001년 12월 27일 교원인사위원회의 심의 결과 최초 임용 시 약속한 바 있는 조소 활성화를 못했다는 등의 이유로 재임용거부 처분을 했다.
김 교수는 2002년 2월 28일자로 재임용이 거부되었고, 이에 대해 3월 12일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 재임용거부 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재심청구를 했다. 교원징계재심위원회는 2002년 4월 29일 재임용거부 통지가 교원지위향상법에서 정한 불리한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하결정을 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법률적 구제절차를 밟기로 하고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원래 금속법률원의 박훈 변호사 등이 담당했는데, 김 교수의 부탁을 받고 나도 추가로 선임되어 공동으로 진행했다.
박훈 변호사는 당시 법원의 태도에 비추어 승소판결을 얻기는 쉬운 일이 아니므로 적극적으로 투쟁할 것을 조언하였고, 김 교수는 복직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3년 6개월 동안 학교 앞 등에서 1인 시위를 했다. 황철민 감독은 2002년에 김 교수의 1인 시위 과정을 담아 세종대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 <팔등신으로 고치라굽쇼?>를 제작하기도 했다.
1심 패소와 항소심 승소
서울행정법원에서 진행된 1심 재판에서 교수재임용제와 이에 대한 대법원 판례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나아가 세종대학교의 각종 규정을 살펴보면 기간제교원의 경우 공정한 심사를 거쳐 재임용될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서울행정법원은 종전의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그대로 답습하여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서울행정법원 2003. 2. 12. 선고 2002구합22066 판결 : 재판장 판사 한강현, 판사 정태학, 판사 김성욱). 임용기간의 만료로 교원으로서 신분관계가 종료하고 재임용거부는 교원지위향상법 소정의 '의사에 반하는 불리한 처분'에 해당하지 않고, 학교의 정관이나 인사규정에 재임용의무를 부여하는 근거규정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항소를 제기했다. 항소 직후이자 참여정부 출범 2일 후인 2003년 2월 27일 헌법재판소가 기간제교원 임용의 근거조항인 사립학교법 제53조의2 제3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위 사건은 아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가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으로 1998년에 합헌결정을 한 후 5년이 안 된 시점에 입장을 변경한 것이다(헌법재판소 2003. 2. 27. 선고 2000헌바26 결정). 위 결정은 "객관적인 기준의 재임용 거부사유와 재임용에서 탈락하게 되는 교원이 자신의 입장을 진술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재임용거부를 사전에 통지하는 규정 등이 없으며, 재임용이 거부되었을 경우 사후에 그에 대해 다툴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전혀 마련하지 않고 있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현대사회에서 대학교육이 갖는 중요한 기능과 그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교원의 신분의 부당한 박탈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요청에 비추어 볼 때 헌법 제31조 제6항에서 정하고 있는 교원지위법정주의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1998년 결정의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으로 된 것이다.
김 교수 사건의 항소심에서는 위 헌법불합치 결정을 원용하여 재임용거부 처분이 교원지위향상법 소정의 불리한 처분에 해당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한편 2004년 4월 22일에는 서울대 미대 김민수 교수의 재임용탈락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되었다(대법원 2004. 4. 22. 선고 2000두7735 전원합의체 판결). 위 전원합의체 판결은 종전 입장(대법원 1997. 6. 27. 선고 96누4305 판결)을 변경하여 기간제로 임용되어 임용기간이 만료된 국·공립대학의 조교수는 교원으로서 능력과 자질에 관하여 합리적인 기준에 의한 공정한 심사를 받아 위 기준에 부합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임용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재임용 여부에 관하여 합리적인 기준에 의한 공정한 심사를 요구할 법규상 또는 조리상 신청권을 가지며, 임용권자가 임용기간이 만료된 조교수에 대하여 재임용을 거부하는 취지로 한 임용기간만료의 통지는 위와 같은 대학교원의 법률관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은 김민수 교수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승소판결을 선고했다(서울고등법원 2004. 6. 9. 선고 2003누4494 판결: 재판장 판사 이동흡, 판사 배준현, 판사 곽상현).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논지를 거의 그대로 원용하여 재임용거부 통지는 교원지위향상법 소정의 불리한 처분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복직 합의와 소취하
학교 측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했다(대법원 2004두7191). 대법원에 계류 중일 때인 2005년 1월 27일 국회는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법원 판결을 반영하기 위해 사립학교법(법률 제7352호)과 교육공무원법(법률 제7353호) 및 교원지위향상법(법률 제7354호)을 개정했다. 사립학교법과 교육공무원법에는 계약제 임용 시 임용기간 만료 통지, 재임용 심의 신청, 재임용 여부 및 재임용거부 시 거부사유 통지, 교원에게 의견 제출 기회 부여, 불복절차(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의 심사청구) 등에 관하여 규정하였고, 교원지위향상법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심사대상에 교원에 대한 재임용거부 처분을 명시적으로 포함했다.
한편 세종대학교의 법인 비리에 대해 교육부가 감사를 실시하여 비리를 확인하고 2005년 5월 20일 법인에 7명의 임시이사가 파견되었다. 임시이사진은 2005년 8월 29일 이사회를 개최하여 김동우 교수와 1990년도에 교수협의회 결성을 주도하여 해직되었던 응용통계학과 이원우 교수 및 영문학과 이종일 교수를 2학기부터 복직시키기로 의결했다. 내가 1997년에 대리했던 역사학과 교수의 경우에는 이미 다른 대학에서 근무 중이어서 굳이 세종대학교에 복직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김동우 교수는 2005년 2학기에 복직하였고 그에 따라 2005년 9월 23일 소를 취하함으로써 3년 6개월에 걸친 투쟁을 마무리했다.
독재 치하에서 재임용 탈락한 교수들에 대한 구제
독재 치하에서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된 교수들을 구제하기 위해 2005년 7월 13일 '대학교원 기간임용제 탈락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법률 제7583호)'이 제정되어 2005년 10월 14일부터 시행되었다. 위 법률은 그 적용대상으로 재임용제를 처음 도입한 1975년 7월 23일부터 2005년 1월 26일(개정 사립학교 시행일 전일)까지 임용기간 만료(해임, 파면 또는 면직된 후 이를 다투는 소송과정에서 임용기간이 만료되어 소의 이익이 없다는 판결을 받은 경우 및 해임, 파면 또는 면직된 후 이를 다투는 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받았으나 임용기간 만료라는 사유로 재임용되지 아니한 경우를 포함한다), 재임용 심사기준 미달 등의 사유로 재임용되지 아니한 교원으로 했다.
재임용 재심사 및 소송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교원소청심사특별위원회(위원장 유선규, 상임위원 정동훈·조흥래, 위원 강경선·도재형·전경옥·조상희)를 설치했다. 재임용 탈락 교원에 대한 재임용 재심사 기준으로는 재임용 탈락이 학생교육에 관한 사항, 학문연구에 관한 사항, 학생지도에 관한 사항, 재임용 관련 학칙 또는 규정에서 정하고 있는 사항 등 정당하고 객관적인 사유에 따라 이루어졌었는지 여부로 규정했다. 심사기간은 재임용 재심사를 청구한 날부터 180일 이내에 재임용 탈락의 타당성 여부에 대하여 결정하도록 했다.
교원소청심사특별위원회는 2006년에 <재임용 재심사 백서>를 발간했다. 적용대상 기간에 총 492명(4년제 대학 360명, 전문대학 132명)이 재임용에서 탈락했는데, 그중에서 96개 학교의 309명의 해직교수들이 교원소청심사특별위원회 설치 후 6개월 동안 재심사를 청구했다. 처리 결과는 127명 취소, 79명 기각, 91명 각하, 12명 취했다. 백서 작성 당시 재심사 결과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건수는 교원이 제기한 것이 50건, 학교법인이 제기한 것이 36건으로 밝혀졌다.
법원이 국민의 권리구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안에서 헌법재판소가 적극적인 위헌 결정을 함으로써 권리구제의 공백을 보충하였고, 나아가 과거의 부당한 권리침해와 사법부의 잘못을 입법을 통해 시정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비정상적인 시기의 사법부까지 가담한 왜곡이라도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다는 역사적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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