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는 8일 코레일과 함께 '철도공사의 지주회사제 전환을 위한 합동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수서발 KTX 운영사 설립 절차에 돌입했다. 속도전이다. TF 단장은 김경욱 국토부 철도국장과 김복환 철도공사 경영총괄본부장이 공동으로 맡는다.
그러나 수서발 KTX 운영회사(이하 '수서발') 설립이 편법·위법이라는 주장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지난 정부에서는 '수서발' 설립을 위해 철도사업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관련 기사 : [단독] 정부, 3년 전 '수서발 KTX' 법 개정 필요성 지적했다) 국토교통부는 "법 개정이 필요 없다"며 논리를 뒤집었다. 이는 정부의 자기 모순에 다름 아니며, 수서발 설립 논란이 편법으로 졸속 추진되고 있다는 시민단체 등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서울역발 KTX'와 '수서발 KTX'를 동일 노선에서 동시에 운영하는 것 자체에 대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국가 소유의 한 철도 노선에서 사실상 민간의 지분 취득 가능성이 열려 있는 '제2의 운영회사'(수서발)가 추가될 경우, 한미FTA에 규정해 놓은 철도 관련 조항의 '빗장'을 정부가 스스로 푸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한미FTA 후퇴' 논란이다.
▲ 정부의 수서발 KTX 운영 회사 설립 추진으로 '철도 민영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뉴시스 |
국토부, <프레시안> 기사에 반박하며 외교부 자료 내놓았지만…
국토교통부는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이 통과된 직후인 지난달 27일 보도자료를 내고 "<프레시안> 등의 '수서발 KTX 출자회사 설립은 불법' 제하의 기사와 관련해 수서발 KTX 출자회사 설립은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을 위반한 불법이 아니다"라고 반박하며 두 개의 자료를 참고용으로 첨부했다. 그중 하나는 지난 2012년 1월 13일 외교부가 낸 '철도 민영화와 한미FTA' 관련 검토 자료였다. (관련 기사 : "수서발 KTX 자회사는 불법", '민영화 반대' 소송 이어지나)
국토부는 외교부의 이 자료를 인용해 "한미FTA 부속서 1(현재 유보)은 '경제적 수요 심사에 따라 국토부(건교부) 장관의 면허를 받은 법인만이 2005년 7월 1일 이후에 건설된 철도 노선의 철도 운송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정부가 철도 운영권 부여에 대한 권한을 확보하고 있음을 명확히 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자료에서 외교부는 "민간에 실제로 운영권을 허용할 것인지 여부는 전적으로 국토부의 정책 결정 사항으로서 한미FTA상 래칫(역진 방지 조항, 일단 자유화된 내용을 후퇴시키는 방향으로는 개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허점이 있다.
첫째, 이 논리는 국토부가 철도 운영 사업에 외국계 자본이 들어올 수 없도록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국토부 장관이 면허를 부여한 수서발 회사의 소유 구조에, 외국 자본이 섞인 민자가 들어온다면?
정부는 '수서발'이 '철도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코레일이 확보하게 될 '지분 30% 미만' 외에 '70% 이상'의 지분이 외부 자본(비코레일 자본)에 노출되는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일단 면허를 허용한 후에 민간 자본의 유입을 막는 것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국토부 장관이 내주는 면허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 만약 민간 자본이 들어올 경우 국토부 장관이 이를 빌미로 면허를 취소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은 여전히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
두 번째 부분은 더 중요하다. 한미FTA 협정문에는 분명 국토부 장관이 부여할 수 있는 면허의 조건으로 "2005년 7월 1일 이후 건설된 노선"의 경우만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수서발이 운영하게 될 노선의 대부분은 2005년 6월 30일 이전에 건설된 경부선이다.
코레일 독점 노선 위에 숟가락만 얹고 '신규 사업자'라고?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운수노조) 법률원은 8일 '철도 민영화의 법률적 쟁점 관련 검토' 결과를 내고 외교부의 논리를 반박했다. 이 검토 결과에 따르면, 한미FTA 부속서에 따라 2005년 6월 30일 이전에 건설된 노선에 대해서는 코레일의 독점적 운영권이 보장된다고 볼 수 있다. 수서발 KTX 노선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택~동대구 노선(경부선)은 2005년 6월 30일 이전에 건설된 노선이다. 이에 따라 해당 노선에서는 코레일의 독점 운영권이 보장된다.
그러나 수서발 KTX 운영 회사에 대해 외교부는 "운영권을 일정 기간 민간에 부여"하는 것일 뿐, 소유권 또는 지분 이전 등의 '민영화'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논리 자체에 모순이 있다. 운영권을 민간에게 부여하는 것은 국토부 장관이 할 수 있지만, 그것은 2005년 7월 1일 이후 신설된 노선에서만 가능하다. 수서역에서 평택역까지 생기게 될 신설 노선에서는, 그 운영권을 민간이든, 코레일 자회사든 국토부가 부여하는 게 맞다. 그러나 2005년 6월 30일 이전에 건설된 경부선의 경우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법률원은 "어떤 철도 노선의 철도 운송 서비스를 공급한다는 것은, 출발지가 어디이건 상관없이 그 노선의 시설을 활용하여 철도 운송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탑승 장소나 하차 장소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 중간의 경유 노선의 철도 운송 서비스 공급이 아니라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법률원은 이어 "(현재 국토부의) 주장에 의하면, 새로 역사만 약간씩 장소를 달리하여 약간의 추가 노선을 부가하면 (…) 기존 노선의 철도 운송 서비스 공급이 아니라는 기이한 결과가 되는 바,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행정부가 임의로 2005년 6월 30일 이전 노선의 철도 운송 서비스에 대하여 출발지와 약간의 추가 노선이 있다는 이유로 시장 접근을 허용하는 것은, 철도 운송 서비스에 대한 한미FTA 부속서의 '현재 유보 조항'이 철회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법률원의 해석이다.
▲시민단체들이 철도 민영화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
"한미FTA 후퇴시킬 것…박근혜 정부 '철도 민영화'는 헌법 위반"
그렇다면 행정부(국토부)는 한미FTA 부속서 유보 조항이 철회될 수 있는 '수서발'을 설립할 수 없다. 조약의 체결과 비준에 대한 국회의 동의권은 국회의 입법 기능에 속한다. 한미FTA의 경우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즉, 국토부가 경부선 위를 달리게 될 '수서발' 설립을 추진하는 것은 이미 지난 2011년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한 국회의 동의를 일탈하는 행위다. 따라서 "중요 조약에 대한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60조 제1항에 정면으로 반하게 된다"는 것이 법률원의 해석이다.
법률원은 "만약 (행정부가) 이것이 국회 동의권 침해가 아니라고 본다면, 정부는 조약 체결의 순서와 형식만을 바꿈으로써 (언제든) 국회 동의를 완전히 잠탈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고 덧붙였다.
법률원은 나아가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와 관련된 우려도 제기했다. 법률원은 "문제 노선의 철도 운송 서비스 사업에 관한 법적 분쟁이 종래에는 대한민국의 사법 관할권에 놓여 있다가, 정부가 이를 개방하고 난 후('수서발' 지분 구조가 민간 및 외국 자본에 개방될 경우)에는 ISD에 따른 중재 기구의 관할에 놓이게 되므로 이는 사법 관할이라는 주권의 제약에 해당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를테면 미국 자본이 수서발 KTX 운영 회사 지분을 사들인 후 "수서발 회사는 (과거 철도공사가 독점 운영해왔던) 다른 노선에 대해서도 국토부 장관에게 면허를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이를 거부하면 국제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 정부가 이미 허용한 '수서발 케이스'는 그러한 분쟁에서 미국 자본에 좋은 사례가 된다.
이러한 해석을 토대로 법률원은 "현재 박근혜 정부, 즉 국토교통부 논리대로라면 국회의 동의를 요하는 조약 내지 협정에 대하여 유보를 결부시켜 국회의 동의를 득한 후 바로 다음 날 행정부가 임의로 그 유보의 법적 효과를 철회하고, 그 이후 국회가 이에 대하여 입법으로 규제할 수도, 법원이 사법으로 관할할 수도 없는 법적 상태를 가져온다"고 지적하고, '수서발' 설립 논의는 국회에서 이뤄져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