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업무 관련 스트레스로 기관사 자살, 산재 아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업무 관련 스트레스로 기관사 자살, 산재 아니다?

고 황선웅 기관사 유족, 산재 신청…고 이재민 기관사는 산재 불승인

'공황장애 등 업무상 스트레스로 자살한 기관사는 산업재해를 당한 것이 아니다.' 근로복지공단의 논리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일까. 지난해 3월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이재민 기관사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승인을 거부했다. 노조와 이 기관사의 유족 등은 행정법원에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고, 현재 법정 투쟁을 진행 중이다.

이재민 기관사가 사망한 지 1년도 안 된 지난 1월 19일. 공황장애에 시달리던 황선웅 기관사가 출근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황 기관사의 유족과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서울도시철도노동조합이 14일 황 기관사에 대한 산업재해 신청을 위해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본부 앞에 모였다. 황 기관사의 유족인 부인과 처남도 초췌한 얼굴로 집회에 참가했다. 이미 이재민 기관사에 대한 산재 불승인을 겪은 후라 더욱 절박한 표정들이었다.

도시철도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근로복지공단은 고 이재민 기관사 유가족의 산재 신청을 불승인함으로써 신경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는 기관사의 아픔을 외면했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는 기관사들이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근로복지공단이 고 황선웅 기관사 유가족의 산재 신청을 인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죽은 자를 위한 산재 인정 투쟁. 어려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 고 황선웅 기관사 산재 신청에 앞서 서울도시철도노조가 집회를 열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병원 "고인 사망은 업무와 관련해 발생"

황 기관사의 자살은 황 기관사 개인의 문제일까? 황 기관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26일 전인 지난해 12월 24일, 내과 진료를 받았다. 당시 진료 기록을 보면 "업무적 스트레스 많이 받고 힘들고 우울증적인 증상 있다고 하심. 불면증이 있다고 하심"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는 이러한 근거 등을 토대로 황 기관사의 사망이 업무와 관련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서울성모병원은 "황선웅의 재해 전 질병의 상태는 임상적으로 주요 우울장애, 상세 불명의 불안장애로 추정됨. 이러한 사실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 의해서도 확인"됐다며 "이런 불안장애 등은 재해가 발생하기 4개월 전에 있었던 출입문 끼임 사고와 관련돼 있으며 이후 이런 증상을 악화시킬 만한 조직 문화와 환경이 있었다고 판단한다"고 소견을 냈다.

황 기관사는 지난해 9월 18일 지하철 운행 중 출입문 끼임 사고를 경험했다. 이것이 이후 우울 증상, 불안장애로 나타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서울성모병원은 "여러 역학 조사의 결과 등을 볼 때, 지하철 기관사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트라우마)나 공황장애와 같은 불안장애의 유병률이 높다"며 "이 질환이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되며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 불안장애 및 우울 증상이 있는 상태에서 자해 행위가 발생한 점을 고려하면 망인의 사망은 업무와 관련해 발생했다고 판단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관련해 서울성모병원이 서울도시철도공사 기관사들을 상대로 지난 2007년 실시한 정신건강 실태 조사는 주목된다. 이 조사에 따르면 기관사들은 일반인에 비해 2배에 가까운 우울증, 4배에 달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7배나 높은 공황장애로 고통받고 있다. 이 조사 결과는 국제 학술지에 발표되기도 했다.

또 지난해 9월 한림대학교 산학협력단 주영수 교수 팀이 실시한 '서울시도시철도공사 정신건강 실태 조사 및 개선 방안 연구'에 따르면 기관사는 스트레스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상 스트레스로 자살한 기관사가 산재 인정을 받은 사례도 있다. 2003년 공황장애를 겪다가 삶을 마감한 고 서 모 기관사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승인을 해줬다. 그러나 서 기관사의 경우를 제외하고, 그와 유사한 사례들은 번번이 산재 승인을 거부당했다. 역시 2003년에 사망한 임 모 기관사, 그리고 지난해 사망한 이재민 기관사가 그랬다.

이재문 도시철도노조 위원장은 "근로복지공단은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생각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 지하철 기관사가 어둠 속에서 전철을 운행하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산 사람은 산재 승인해주고 죽은 사람은…"

윤성호 도시철도노조 사무국장은 "2003년 당시 서 기관사 사건 때는 조사관들도 기관사들의 삶에 대해서 함께 슬퍼하면서 일했는데, 서 기관사 한 명에 대한 산재 승인이 난 후부터 근로복지공단은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해 산재 승인을 내주지 않고 있다"며 "이재민 기관사의 경우도 산재 승인이 날 듯하다가 어느 순간 '승인이 안 되겠다'고 해서 황당했다"고 말했다. 윤 사무국장은 "자신들의 '실적'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산재 승인을 어떻게 해서든 내주지 않으려는 논리만 개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는 사이에 노동자들은 계속 죽어나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문 위원장은 "억울한 죽음"이라며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이번 산재 신청이 반드시 승인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황선웅 기관사뿐 아니라 도시철도를 평생 직장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근무 조건이 개선되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재 신청을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한 황 기관사의 처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 혼자 오고 싶었는데 누나(황 기관사의 부인)를 한 번은 데려오고 싶어서 설득했다. 그래도 여기에는 직장 동료들의 끈끈한 사람의 정이 아직 있는 것 같다. 매형의 동료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매형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제일 가슴 아픈 일은 사람들이 이 일을 남 일처럼, '내 일이 아니다'라는 시선으로 보는 부분이었다. 부디 내 아버지고 내 남편이라는 시선으로 이번 일을 봐줬으면 한다.

오늘도 누나를 데리러 매형 집에 갔다가 조카를 떼어내려니 조카가 울더라. 오늘은 유치원에 데려다 주지 못한다고 하니까 깜짝 놀란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약이라고 하는데, 시간은 약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들은 매형을 보고 싶어 하고, 더 그리워한다.

근로복지공단에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일하다 다치고 상해를 입으면 산재 승인을 해줘야 당연한 것 아닌가. 매형 일을 겪으면서 2011년도, 2012년도 산재 승인된 내역을 봤다. 현재 살아 있는 분들은 산재 승인을 받았는데 오히려 일하다 돌아가신 분은 산재 승인률이 낮더라.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서 좀 더 진정성 있게 서류를 검토해주시고, 이 사람의 내면까지 들어가 보셨으면 한다. 앞으로 누나, 조카와 열심히 살겠다. 어느 누구 부럽지 않게 살기를 매형도 하늘에서 바라고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① "동료들 연이어 자살…이젠 나도 날 못 믿겠다"
② 사람 잡는 1인 승무제…공황장애 15배, 트라우마 8배
192명 사망 '대구 참사', 승무원 1명만 더 있었어도…
④ 자살한 기관사의 마지막 기록, "미친 듯이 지적 확인"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