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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민주주의 2.0'으로 가는 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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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민주주의 2.0'으로 가는 우회로?

[시민정치시평] '현실적 복지 대 전면적 복지'의 구도 이후

대선 이후 '멘붕' 상태가 이제 걷히는 것 같다. 대선 이후에도 불구하고 엄존하는 사태에 다시 냉철하게 모두가 직면해가고 있다. 노동의 엄연한 현실 앞에서 '다시 희망버스'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 현상이 되겠다. 이제 차분히 대선을 돌아보면서, 진보개혁세력의 패배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이제 성찰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측면에서의 성찰이 필요하나, 여기서 나는 프레임 경쟁의 구도가 미묘하게 변화했다는 점을 부각시켜 보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대선은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와 반(反)박정희 세력을 대표하는 노무현의 최측근인 문재인의 대결로 치러졌다. 역사적 박정희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이 각각 두 중요후보에 강력한 '후광 이미지'가 미치는 속에서 치루어진 선거였다.

'복지 대 반복지세력'의 구도에서 '현실적 복지세력 대 전면적 복지세력'의 구도로

▲박근혜 당선인 ⓒ뉴시스
여기서 박근혜는 조국근대화의 위업을 성공적으로 성취한 지도자로서의 아버지의 이미지를 적극 차용하고 나아가—반박정희 진보세력에게는 진정성이 없고 허구적이기는 하지만 민생, 재벌개혁, 경제개혁, 양극화 해소 등의 의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의 해결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보수 대 진보'의 구도가 '복지반대세력 대 복지세력'의 대립구도에서 '현실적 복지세력 대 전면적 복지세력'의 대결구도로 치환할 수 있었다. 여기서 현실적 복지라고 하는 것은 야권이 약속하는 것처럼 전면적 복지정책을 다 수용하지는 못하지만 '복지병(病)'에 빠지지 않으면서 국가재정적자를 고려하여 복지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결국 박근혜는 박정희가 보유한 성공한 경제적 지도자의 이미지에 박정희의 최대의 약점인 현실적 복지와 현실적 경제개혁의 리더로서의 이미지를 결합할 수 있었다. 이명박에 의해 추락한 보수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그와의 '거리두기'전략을 통해서 극복해나가고자 했다.

반면에, 야권 후보 문재인은 보다 전면적인 복지 확대, 재벌개혁 등 보다 철저한 경제개혁 등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 시기에 드러난 '통치세력으로서의 공신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지 못하였다.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 사후 그의 진정성이 대중에 의해 광범위하게 공감되게 되면서, 그의 통치세력으로서의 정치적 공신력은 회복되었지만 경제적 공신력을 이번 대선에서 그를 따르는 문재인 후보가 충분히 재구성해내지 못하였다. 이것은 반박정희세력이 노무현 정부 하에서 상실해버린 '통치세력으로서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해소시켜 주면서, 대중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는 과제를 충분히 대중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과제를 둘러싼 각축에서, 문재인은 패배하고 박근혜가 승리를 했던 것이다.

두 거대한 주체 사이에 선 박근혜 정부의 딜레마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당선되었다는 것이 향후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며 박정희의 현재적 부활이 곧 상승곡선을 그리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등장은 비록 박정희의 후광이 중요한 한 요인을 이루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가 그 후광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오히려 남한사회의 보수적 헤게모니를 균열시키게 될지, 아니면 박정희에 이어 남한사회의 보수적 헤게모니를 강화하게 될 지는 현재로서 단언할 수 없다. 박근혜의 등장이 남한에서 반독재운동으로 균열되었던 보수의 헤게모니가 보전(補塡)되게 된다면 일본의 '1955년 체제'와 같이 보수패권적인 체제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박정희 체제를 통해서 한국사회에는 두 거대한 사회주체가 출현했다고 본다. 한편에서는 박정희체제의 막강한 전략적 지원 속에서 성장한 거대한 '계급적·사회적 기득권세력'이며, 다른 한편에는 박정희체제의 억압을 뚫고 성장한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갖는 대중'이다. 2012년 대선에서의 박근혜의 각종 '전향적' 공약들은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갖는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실정(失政)에 의해 자신들의 삶이 피폐해진 대중들의 좌절과 분노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좌절과 분노의 대중을 획득하기 위해 박근혜 후보는 보수후보로서는 일종의 '최대주의적 공약'을 내걸었던 것이다. 일종의 강제된 '보수의 진화'이다. 그러나 그 공약들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가 만들어낸 '거대한 계급적·사회적 기득권세력'의 특권적인 기득권 구조의 개혁과 변화 위에서 비로서 가능한 것이다. 즉 자신의 아버지가 만든 기득권 세력을 넘어서야 실현되는 공약을 들고 그는 국민 앞에 서 있다.

'보수의 진화'에 대응하는 두 가지 병행전략

이는 박근혜가 당선을 위해서 전략적으로 천명한 민생, 경제개혁, 재벌개혁의 과제들은 보수적 지배블록 내에서의 갈등과 딜레마를 촉발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준다. 바로 여기에 박근혜 정부의 딜레마와 도전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대선 이전에 엄존했던 쟁점들—철탑농성과 정리해고 노동자의 자살 등—을 가지고 치열하게 싸워야 하지만, 동시에 그가 공약한 것을 액면 그대로 실현하도록 요구하는 것 자체가 폭넓은 국민적 투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 점에서 '보수의 진화'에 대응하는 두 가지 병행전략이 필요한 셈이다. 박근혜 정부가 대선경쟁 과정에서 천명한 정책들이 단순히 쇼에 해당하는 것이었으며 '보수의 성형수술'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점이 밝혀진다면, 오히려 보수의 정치경제적 신뢰성이 더욱 균열되어 진보개혁적·좌파적 세력이 대중의 핵심요구인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주체로 다시 서서 한 단계 높은 급진민주주의적 질서를 출현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기를 빈다. 그것은 한국사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가 앞으로 진화해간다면 당연히 중도자유주의세력이나 진보좌파세력 모두 앞으로 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명박이 5년 전에 국민을 '홀린' 이른바 '선진화'라는 것이 진정으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명박은 그것을 당선되기 위한 트릭으로 사용한 후 헌신짝처럼 버렸고, 그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대중들이 큰 고통을 받고나서야 분노하고 좌절하게 되면서 그 '분노와 좌절의 위협'이 박근혜를 최대주의적 공약으로 불가피하게 나아가게 했다고 생각한다. 보수의 최대주의적 공약은 분노와 좌절을 경험하는 대중의 최대주의적 분노에 의해서 강제된 것이다.

나는 남한 사회의 계급적·사회적 기득권세력의 천민성과 졸부(猝富)적 성격을 고려할 때, 박근혜 정부가 자신의 공약들 자체만을 올곧이 실현하기도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물론 나는 박근혜 정부를 박정희 정부의 부활로만 보는 것에는 반대하지만—보수헤게모니를 강화하는 경로로 나아가기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후자의 경로가 장기적으로 실현된다면, 반(反)박정희 진보세력에게는 박근혜 정부 5년이 한 단계 높은 민주주의와 사회진보로 가는 준비기였다고 평가될 것이다. 돌이켜 보면, 79년 박정희가 측근에 의해 살해되고 박정희 체제가 붕괴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를 향한 대중적 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직행(直行)'하지 못하고 80년 '신군부정권'이라고 하는 우회로로 진입했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실현했다고 하면 이제 남한 사회는 사회경제적 의제를 포함하는 한 단계 높은 이른바 '민주주의 2.0'으로 가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출현은 어떤 의미에서 '민주주의 2.0'으로 가는 대중적 동력이 부족하여 박근혜 정부라고 하는 우회로로 들어선 것일 수도 있다. 역사만이 남한 사회가 어떤 경로를 겪고 있는지 밝혀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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