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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당한 시민혁명, 누굴 위해 피를 흘렸나"

[시민정치시평] 이집트 민주화의 걸림돌은 군부 집단

2011년 '아랍의 봄'(또는 튀니지의 나라 꽃인 재스민에 빗댄 '재스민 혁명')은 이른바 중동전문가들조차 내다보지 못했던 놀라운 정치현상이다. 10년은 보통이고 30년 또는 40년에 이르는 장기 독재와 부패를 겪으면서 쌓이고 쌓였던 분노는 아랍 민중들로 하여금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도록 만들었다. 아랍의 봄바람에 독재자가 물러난 국가는 모두 4개국(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예멘).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아랍민주화는 제 자리 걸음이거나 겨우 몇 걸음마를 뗀 상태일 뿐이다.

시리아에선 지금껏 1만5천명 넘는 희생자를 낳았으나 긍정적인 변화가 없다. 다른 아랍국가들도 겉으로는 안정된 듯 보이지만 안으로는 저마다 부글부글 끓는 실정이다. 아랍의 권력자들은 기만적인 민주화 조치와 사탕발림으로 모처럼 피어난 아랍의 봄을 변질시키려 드는 모습이다. '이집트 역사상 고대 파라오 이후 최대 부패집단'이라는 소리마저 들었던 무바라크의 30년 독재체제가 무너진 이집트 상황이 바로 그러하다.

이집트 민주혁명의 승자는?

2011년 2월11일 무바라크가 물러나고 500일이 지나는 동안 "이집트가 민주국가로 거듭 났느냐"고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대답은 "아니오"이다. 지금 카이로의 정치 기상도는 먹구름이다. 군부가 모하메드 후세인 탄타위 장군을 우두머리로 한 군 최고위원회(SCAF)를 중심으로 과도기의 정치 일정을 주무르면서 이집트 민주화의 햇살을 가로막아온 탓이다. 군부는 계엄령만 선포하지 않았을 뿐이지, 1979년 12월 전두환-노태우의 신군부와 다름없는 살벌한 모습이다.

30년 독재자 무바라크를 쫓아낸 이집트 혁명의 주역은 크게 3부류로 나뉜다. △민주화를 열망하며 거리에 나섰던 청년층과 중산층 시민들 △전반적인 사회개혁을 바라는 좌파세력, △중도보수적 정치세력인 무슬림 형제단 등이다. 청년층은 민주화 시위를 촉발시켰다면, 중산층과 좌파세력이 시위대에 힘을 보탰었다. 무슬림형제단은 처음 며칠 동안은 "민주화 요구 시위가 무바라크의 탄압에 밀려 실패할 것"이라 판단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가 나중에야 시위대에 합류했었다.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이집트 민주시민의 눈길로 보면, 이집트 민주혁명의 결과는 참담했다. 혁명의 주력군이었던 개혁파 후보 함딘 사바히는 21.5%로 3위에 그쳐 6월 중순에 치러진 결선투표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 요인은 개혁세력의 표가 사바히 후보로 집중되질 못하고 여러 다른 군소 후보로 나뉜 데다 이집트의 낮은 정치의식 수준 탓으로 풀이된다. 무슬림형제단 출신의 무함마드 무르시 후보와 무바라크 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샤피크 후보, 이렇게 2명이 대선 결선투표에 올랐던 데엔 조직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 지난 16~17일(현지시간) 이집트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모함메드 무르시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기뻐하고 있는 지지자들. ⓒAP=연합뉴스

이를 두고 일부 평론가들은 "이집트 혁명의 승자는 무슬림형제단과 군부"라고 말했다. 보수적인 무슬림형제단은 제도정치권(의회와 행정부)을 장악했다는 의미에서 승자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집트혁명의 현실적인 승자가 누구냐는 물음에는 군부를 꼽을 수밖에 없다. 무바라크 퇴진 뒤 이집트 정치일정을 이끌어온 집단이 바로 군 최고위원회(SCAF)이고, 그동안 누구보다 군부를 비판해온 '자유이집트연합'을 비롯한 개혁세력이 총선과 대선에서 잇달아 패배했기 때문이었다.

민주화 거스르는 군부의 꼼수

지난날 무바라크 30년 독재를 물리적으로 떠받쳐온 공범자였던 군부가 민주화일정을 주무르면서 몰상식한 일들이 한둘 벌어진 게 아니다. 때로는 노골적인 밀어붙이기로, 때로는 속 들여다보이는 꼼수로 민주화를 거스르는 여러 조치들을 내놓았다.

군부의 입김 아래 놓인 이집트 헌법재판소는 "정당 후보만 입후보가 가능하도록 한 선거법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려주었고, 군부는 이를 빌미로 야권 세력이 상하원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한 의회 기능을 마비시켰다. 무바라크 정권을 무너뜨린 이집트 민주화 혁명의 첫 정치적 열매가 채 여물기도 전에 땅에 떨어져버린 셈이다.

군 최고위원회(SCAF)는 "대통령선거 때까지 상황을 관리만 하고 민선정부에 실권을 넘기겠다"고 말해왔다. 6월24일(현지시간) 무슬림형제단 출신인 무함마드 무르시(61)가 득표율 51.7%로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뒤에도, 이집트의 새 대통령이 제 밥그릇을 챙길 수 있으리라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SCAF는 오는 7월1일부로 새 대통령에게 정권을 이양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넘겨줄 권한이 거의 없어 보인다.

SCAF는 대선 결선투표(6월16~17일)를 앞둔 시점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를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 만드는 여러 초헌법적 조치들을 발표해왔다. 이에 따라 군과 정보기관원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거리의 시민들을 체포 구금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게 됐고, 군 인사권과 예산 편성권을 포함한 군사와 관련된 모든 결정권을 SCAF가 갖도록 하는 등 군부의 권한을 늘렸다. 대선 이후에 새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는 군 인사권을 포함한 통수권을 새 대통령에게 넘기지 않으려는 꼼수였고 "계엄령만 선포되지 않았을 뿐 사실상 사법적 쿠데타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따랐다.

"미국도 민주화의 걸림돌"

해마다 이집트에 군사원조 13억 달러를 제공하며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의 태도도 문제이다. 이스라엘 안보를 위해 이집트의 중립화를 유지하는 것이 최대 관심사인 미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집트 군부의 정치 주도권을 인정하는 모습이다. 미 워싱턴의 이런저런 연구소에서 일하는 이른바 중동전문가들의 관심은 이집트 정부가 이스라엘과의 평화조약(1979년)을 깰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이어갈 것인가에 모아질 뿐, 이집트가 민주화로 나아갈 것인가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와 관련, 미국의 양심적 지식인 노암 촘스키(매사추세츠공과대학 교수)는 이집트 일간지 <알마스리알욤>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바라는 것은 이집트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이스라엘 안보와 같은 중동지역에서의 미국의 오랜 전략적·경제적 이해관계일 뿐"이라며 "미국도 이집트 군과 마찬가지로 이집트 민주화의 걸림돌"이라 비판했다.

"누굴 위해 피를 흘렸나"

촘스키의 우려대로 2012년 이집트 정치상황은 실망스럽게 흘러가고 있다.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독재자는 물러나라! 우리에게 빵과 직업을 달라!"고 외치며 이집트가 새 국가로 거듭나길 꿈꾸었던 젊은이들도 허탈감을 지우지 못한다. 그러면서 이런 물음들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혁명이었나. 우리가 피를 흘린 것이 지난날 무바라크 독재의 하수인이었던 군부와 보수적 종교집단인 무슬림형제단을 위해서였는가?"

탄타위 장군을 비롯한 이집트 군부 지도자들은 무바라크 1인이 쥐고 있던 권력을 이어받은 새로운 집단 독재권력이다. 이집트의 새 대통령과 그의 정치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은 지난날 무바라크 독재 시절에도 그랬듯이, 지금의 실세인 군부와의 정치적 거래를 통해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려 들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그 밀실거래의 희생양은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이집트 민중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이집트혁명은 미완성인 상태이고 현재진행형이다. 기득권을 챙기려는 이집트 군부의 횡포, 그리고 군부와 무슬림형제단의 밀실 거래와 야합은 정치발전과 경제민주화를 열망하는 개혁세력의 저항을 부를 것이 틀림없다. 이집트와 한국의 시차는 7시간이다. 어느 날엔가 자고 일어나면 우리는 이집트에서 제2의 민주화 혁명의 불길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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