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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군단이 정당을 파괴할 거라고? 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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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군단이 정당을 파괴할 거라고? 천만에!"

[기고] <나꼼수>가 괴벨스가 될 수 없는 이유

문자음이 울렸다. 푸르다 못해 검은 태평양을 마주한 절벽 위에서 스마트폰의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민주통합당 당대표/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모바일투표"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문자였다. 처음 하는 모바일 투표라 약간 긴장도 했지만 비까지 맞으며 선 자리에서 불과 1분도 안되어 투표를 끝냈다. 권리를 행사했다는 만족감, 결과에 대한 궁금함 그리고 너무 쉽게 투표가 끝난데 대한 약간의 허탈함마저 들었다. 그날 나는 이웃나라의 먼 섬 오키나와(沖繩)에 있었다.

민주통합당의 이번 선거는 그 규모와 영향력으로 봐서 세계 최초, 최대의 모바일 선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몇몇 사소한 사례들은 있었다. 그러나 집권의 가능성이 큰 제 1야당의 당내 선거에 근 80만 명에 달하는 유권자가 참여하고 그 중 압도적 다수가 핸드폰으로 투표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역사에 매우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은 분명하다. 아무리 부정적으로 봐도, 어떤 다른 시각의 분석을 곁들인다 해도 그렇다. 이제 유권자는 투표장을 직접 찾지 않고도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정치적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기술적 장애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작은 시행착오가 있을 수도 있으나 큰 의미가 있는 정도는 아니다. 이미 오래도록 시행하고 있는 부재자 투표보다 사실 신뢰도가 더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여러 번 시행하면 더 효율적이고 더 신뢰도가 높은 방법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 같은 정보통신(IT) 기기들과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의 등장은 민주주의를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이번 선거는 그 규모와 영향력으로 봐서 세계 최초, 최대의 모바일 선거라고 볼 수 있다. ⓒ연합뉴스

많은 사람들은 IT기기와 SNS의 만남이 원래 '민주주의'가 의미하는 주권재민의 사상을 복원하고 고대 그리스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를 꽃피워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낡고 무능하고 무엇보다 부패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오로지 시민의 참여만이 민주주의를 진보케 할 수 있는데, 이제 이를 성취할 요긴한 수단이 마련된 것이다. 그것은 참여 뿐 아니라 저항도 가능하게 했다.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2011년 올해의 인물로 "저항자들(Protester)"을 선정했다. 그 저항자들은 아랍의 봄부터 그리스까지,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부터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까지 기존의 정치체제를 부정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요구하는 민중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까지의 저항자들과 달랐던 것은 1인 미디어라고 할 수 있는 IT 기기들과 SNS로 무장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시간과 장소를 넘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소통하며 연대의 전략과 대안을 마련하는 데까지 나가고 있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지난 인류역사에서 다수가 소수에게 지배받을 수밖에 없었던 몇몇 중요한 이유들을 극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불안감을 혹은 노골적 적대감을 감추지 못한다. 정치학을 전공하는 학자와 정치평론가들의 의견도 모두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오키나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은 모 보수신문은 전문가의 의견을 빌어 SNS 선거의 문제점을 짚어냈다. 여러 비판들을 요약하면 크게 세 가지다. 첫째, SNS는 진보와 젊은 층이 장악하고 있다. 그 안에는 중간지대가 없고 극단만이 있다. 소통보다는 자기 재강화 효과가 크고 정치가 감정적, 부정적, 선동적이 될 것이다. 따라서 SNS는 정치적, 이념적 양극화를 강화할 것이다. 둘째, 대중 정당이 사라지거나 약화될 것이다. 정당원이 되는 것이 무의미해지고 정당 간 차별성도 사라질 것이다. 결국 정치적 책임이 있는 정당은 사라지고 포퓰리즘이 난무할 것이다. 셋째, 모바일 투표와 같은 SNS 정치는 민주주의의 여러 원칙에 어긋난다. 해킹문제, 사용자층의 평향성, 비밀투표가 무시되거나 매표의 위험 등이 존재하므로 총선이나 대선같은 법정 선거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이런 비판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비판들 역시 정치적 편향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정치적 실제는 늘 진공상태와 같은 실험적 상황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SNS의 세계가 보다 진보적인 것은 현실 정치의 상황을 반영한 것뿐이다. 주류 미디어가 보수일색이거나 보수정권에 장악된 상태에서 SNS는 일종의 대안적 역할을 하고 있다. 접근 문턱이 낮은데도 정치적인 쏠림이 있다면 그것은 실제로 시민의 정치적 의사와 입장이 그렇다는 의미이다. 미국의 티파티(Tea Party)운동 등의 경우와 같이 상황에 따라서는 SNS의 공간도 보수적일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 공영방송의 장악 등이 SNS 공간의 정치성을 규정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어떤 인터넷과 SNS 대책을 내놓아도 효과가 없는 데 대한 가장 단순한 답은 여기에 있다.

정당은 사라지지도 무의미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참여가 강화되어도 대의제 민주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치란 결국 공동체에 관한 결정과정이며 여기에는 오로지, 유일한 정답이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목소리와 생각이 경쟁하며 권력을 맡고 거기에 책임을 지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렇다면 정권을 장악하고 운영하며 책임을 지는 집단의 존재는 불가피하며 지극히 현실적이다. 정당은 진화하고 변화할 뿐 사라지지 않는다. 정당들이 포괄정당(catch all party)화 되면서 차이점들이 사라진다고 비판한 것 또한 오래되었다. 그러나 녹색당, 해적당처럼 현실에 도전하는 대안들 또한 새로운 정당이다. 차이점이 전혀 없어 보이던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념적 대립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극렬하다.

SNS의 활성화로 정당의 특징이 사라진다는 것 또한 기우에 불과하다. 아직 결과를 알 수는 없지만 보다 많은 시민의 참여로 인해 민주당이 호남당으로 안주하거나 신자유주의에 투항한 열린우리당으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당내 선거의 개방이 당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논의는 유럽과 미국의 사례를 들어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계급적 대중정당이 아닌 민주당에게는 오히려 당의 이념적 노선과 대중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또한 모바일 투표 등으로 인해 당원이나 정당엘리트의 역할이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종이 당원, 토호화된 대의원, 기회주의적 정치꾼은 사라질지 모른다. 그러나 대중에게 중요한 의제(agenda)를 제기하고 이를 구체화하며 지지를 동원하는 당원과 정당지도자의 역할은 보다 더욱 중요하게 될 것이다.

서구에서도 모든 성인이 완전한 참정권을 갖게 된지 한 세기가 안 되었다. 세금을 내지 않는 자가 투표하는 것, 여자가 투표하는 것, 교육받지 않는 자가 투표하는 것 그 모두를 불온시 하던 시절이 있었다. 모든 후보자의 이름이 한 종이 위에 인쇄되어 있어 누구에게 표를 던졌는지 알 수 없게 한 비밀투표 제도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투표하기 위해서 둔탁한 펀치기로 종이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 나라가 있고, 아직도 투표하기 위해 몇 달 전에 미리 등록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나라가 있다. 어느 가난한 사막국가가 아니라 미국의 얘기다. 그 나라에서는 아직도 투표일이 공휴일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현실에 동반한 여러 제도는 당시에는 늘 혁신적인 것이었다. SNS정치와 모바일투표에 대한 불신과 의심은 기술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민중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SNS가 선동적이고 결국 정치를 포퓰리즘에 빠지게 한다는 비난은 정보와 표현의 독점을 잃는 자들의 공포심에서 나온다. 그들은 기득권을 잃을까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SNS공간에서의 불합리한 선동은 곧 집단지성의 반발과 합리성에 의해 치유될 수 있다. 그래서 나꼼수는 괴벨스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오류와 실패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치유하고 수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힘이다. 시간이 걸려도 결국 다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모두가 평등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우리는 그 오류와 실패에 도전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어떤 제도의 선택이 어떤 기술적 조건이 자동으로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SNS와 IT기기들이 민주주의의 충분조건도 수호천사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를 자기들만의 잣대로 정의하는 자들과 싸워나가는 것이며 그들의 거만한 목소리를 거부해 나가는 것이다.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가치를 계속해서 확장시키며 권력이 모두에게 있다는 원칙을 깊고 세련되게 다듬어 가는 것이다. 우리의 손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그 어떤 선배들보다 좋은 수단이 주어지지 않았는가.

동중국해를 거슬러 올라오며 나는 희망을 가져본다. 내가 수 천리 밖에서 던진 한 표가 건강한 결과로 나를 기다리기를. 오래된 생각과 시야로 결코 예상할 수 없던 그런 결과가 기다리기를. 우리가 민주주의의 미래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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