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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며댄 '전제' 깔며 여론조작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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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며댄 '전제' 깔며 여론조작 하지 말라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45>거짓말, 대통령이 솔선하는가

김대중 대통령과 동명이인(同名異人)인 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이 미국의 저명한 신문인 월 스트리트 저널(WSJ)의 기사를 잘못 해석하고, 이를 전제로 해서 고약한 칼럼을 썼다가 망신살을 뒤집어 쓴 것은 그가 주필로 있던 1997년 12월 24일이었다. 그 닷새 전인 12월 19일,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가 제 1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전임 김영삼 정권이 떠넘긴 'IMF사태'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고된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그 때였다.

당선 사흘 뒤인 12월 22일 WSJ는 그런 김대중 당선자의 힘든 행로를 분석하고 전망하는 칼럼을 싣는다. <한국의 위기는 앞으로 시행해 나갈 정책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Korea Crisis May Hinge on Policy Battle)>는 제목의 기사였다. WSJ는 'IMF구제금융 준수약속'과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사면촉구'등 DJ의 조치들에 대한 신뢰와 함께, 한국 내 투자가와 보수 엘리트들의 우려도 함께 전한다.

▲ 1997년 12월 22일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칼럼. ⓒ프레시안

결론적으로 WSJ는 DJ가 시장경제주의자들을 참모로 두고 있다는 점과, 당선 후 취한 조치들을 근거로 "시대에 적합한 인물임을 입증하리라는 희망을 준다"며 기사를 끝맺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WSJ 보도 이틀 뒤, 이례적으로 1면에 <즉각 실천해야 산다>는 김대중 당시 주필의 '긴급제언'을 실으면서, WSJ 보도 내용을 사정없이 왜곡한다. '긴급제언'의 중요한 부분은 이렇게 되어있다.

<미국의 언론들은 김대중 당선자를 아직도 의혹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22일자 월 스트리트 저널은 김 당선자를 가리켜 「인기주의자(populist)」「예측하기 어려운(unpredictable)정치인」이라고 표현하고 그의 경제 정책을 「근거 없는(unfounded)」것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그의 측근들을 「인기위주의 국회의원과 좌파 성향의 학자」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 월가(街)의 교과서나 다름없는 이 신문의 이런 성격규정은 그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김 당선자와 그의 정부 그리고 한국에게 대단히 불리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 김 당선자는 이 같은 인식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

▲ 김대중 당시 주필 칼럼. ⓒ프레시안

내용의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이 칼럼은 터무니 없는 '곡필'이었다. 우선 'populist'란 단어의 미국에서의 뜻은 한국에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몇 몇 이야기가 나오지만 대체로 '전체 인민의 이익증진을 추구하는 사람' 정도가 될 듯 싶다. 그저 '인기를 추구하는 사람'과는 다르다.

감대중 당시 주필이 '마음먹고' 쓴 것으로 보이는 '예측하기 어려운(unpredictable)정치인'의 'unpredictable'은 몇 사람이 찾아보았으나, 원문 기사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다. 어디에서 왜 차용해 왔는지 그 자신 말고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김 당시 주필이 "DJ의 경제정책이 근거 없다"며 인용한 대목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원문은 이렇게 되어있다.

<Concerns over Mr. Kim's economic policy, to be sure, may prove to be unfounded>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번역할 수 있는 문장이다. <김대중 당선자의 경제 정책에 대한 우려는 분명히 근거 없음이 입증될 것이다> 이 정도가 바른 해석이다. 이 말을 어찌하여 <그의 경제정책을 근거 없는(unfounded)것으로 보고 있다>고 둔갑시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짐작컨대 혹시 'concern(over)'(우려)이라는 말의 뜻을 제대로 모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김대중 당시 주필 그는 누구인가.

그 무렵만 해도 그는 이 나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었고, 영어에도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초대형 거물 기자'였다. 몰랐을까, 고의로 그랬을까, 둘 중의 하나다. 허나 그는 원문에도 없는 'unpredictable'이란 단어를 차용해 오기까지 했다. 작심하고 여론을 조작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도덕한 목적으로, 잘못된 전제를 깔고 조작된 전제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제는 진실이어야 했다.

지난번 칼럼에서도 이야기 한 이른바 유체이탈(幽體離脫)식 언행으로 최근 거듭거듭 화제가 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도 여론조작에 집착한 나머지 틀리거나 조작된 전제를 바닥에 까는데 이골이 나 있다. 거짓말 밥 먹듯 하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자신은 정직한 사람이라고 시치미 떼는 대목을 보면, 인간적으로 말해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진정시키기 힘들다. 그런 그가 최근 필리핀 국빈 방문길에서도 억장 무너지는 전제를 깔았다.

"4대강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한국도 국토의 상당부분이 방콕처럼 침수되어 국민들이 고통 받았을 것"이라고 필리핀의 대학생들에게 자랑했다. 물론 국내여론 호도용 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말은 바로 해야 했다. 4대강 지천(支川)에서는 그간 크고 작은 홍수가 적지 않게 일어났으나, 4대강 본류에서는 거의 홍수가 없었던 사실을 모르는 사람 이 나라에 별로 없다. 4대강 사업과 홍수예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도 이미 밝혀졌다. 정부 기록만 살펴봐도 다 나와 있다.

그는 4대강 사업이 홍수를 막아줬다고 '결사적으로' 강조함으로써, 그 사업이 쓸모 많은 사업이었다는 전제를 깔고, 조작된 여론을 일으키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거짓을 전제로 깔고서라도 자기가 잘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는 듯하다. 귀국해서는 "옳은 일은 반대가 있어도 해야 한다"고 했다. 역시 4대강 이야기였다. "지금 우리가 잘 해 보려고 어려운 때에 몸부림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곡동 땅 부동산 실명제법 위반에 대해서는 아직껏 입을 다물고 있다. 땅값은 자신이 대고 아들에게 명의 신탁했다는 '범죄행위'인데도 말이 없다. 나쁜 짓 하고 거짓말도 한 사건이다.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지금 정말로 몸부림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른 욕심이라면, 바른 몸부림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른 것을 옳은 것으로 속이면 죄가 된다. 잘못된 전제까지 깔아야 하는 욕심이라면 그 역시 죄악의 길로 접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야말로 성경 말씀대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가 되기 십상이다. 김대중 전 주필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소동'으로 지목되기도 하는 이른바 '괴담'들 가운데도 전제가 잘못 깔려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MB의 특보 한 사람이 그렇게 이 정권 들어 생겼다는 몇 가지 '괴담'을 소개하면서, 인터넷과 SNS가 무차별적인 선동의 공간이 되고 있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그가 열거한 괴담은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 ▲천안함은 남한 자작극이다 ▲4대강 하면 강이 다 파괴된다 ▲한미 FTA 하면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 된다 등 네 가지였다.

그러나 이 '괴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코 수긍할 수 없는 고약한 전제들이 교묘하게 깔려있음이 엿보인다. 우선 괴담을 증폭 조작해 나열함으로써 인민재판식 비판여론을 유도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충격적이지는 않아도 다소 과한 내용을 일단 던짐으로써 국민들이 반사적으로 부정하는 과정을 통해 세뇌되는, 치밀한 의도도 목적으로 숨어있는 것 같다. 네 가지 모두 정부가 이끄는 대로 따르는 게 옳다는 인식을, 국민들 뇌리에 '전제'로 주입하는 것 같다. 한 마디로 정부나 일부 언론이 일으키는 '괴담소동'에는 여론 조작의 의도가 짙게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그들 괴담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인식이다. '여론전'이나 '심리전'이 중요한 게 아니다.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그 동안 필자도 누차 지적을 했고, 한미 FTA도 최근 들어 정부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와 '천안함'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라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 이야기의 흐름은 대체로 하나로 모아진다. 먼저 미국산 쇠고기가 절대로 안전하다고 동의하는 데는 아직 문제가 있다고 본다. 통계적 가능성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국민의 동의 없이 MB가 혼자 수입을 결정한 것도 잘한 일이라고 동의하지 않는다. 인접국과의 협상을 보아가며 '수입내용과 조건'을 조정해 가겠다던 정부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촛불시위는 국민들의 정당하고도 당당한 의사표시였다. 한미FTA에서도 보았듯이 특정국가에 치우치는 외교통상에는 문제가 있다고 믿는다.

천안함 문제는 정부가 과학적으로 국민들을 꼼짝 못하게 납득시키는 '증거'가 필요해 보인다. 믿지 않으면 무조건 '종북 좌빨'쯤 되는 듯이 몰아쳐서는 안 된다. 천안함 선체와 '1번' 글씨가 쓰인 어뢰부품에서 추출한 이른바 '흡착물질'은 국방부 합조단이 발표한 '폭발 후 형성되어 한꺼번에 달라붙은 산화 알루미늄'이 아니라, '수산화 알루미늄 계열인 알루미늄 황산염수 수화물'이라는 학자들의 지적이 나왔다.

모의 폭발실험에서 추출한 흡착물질의 EDS(에너지분광분석) 데이터는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합조단은 과학적 반론을 내 놓아야 한다. '흡착물질'이 폭발 때 흡착된 산화 알루미늄이 아니라면, '1번'이라는 글씨가 쓰인 어뢰가 천안함을 파괴했다고 합조단이 주장한 물증이 없어진 셈이다. 과학적인 설명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대목이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본다. 정부는 바른 것을 전제삼고 바른 이야기를 해야 한다. 믿게 해 줘야한다. 틀리거나 꾸며댄 전제를 깔고 여론을 조작하거나 밀어 부치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죄악이다. 국민들의 삶이 고달파질 수도 있다. 더구나 대통령이 솔선해 거짓말을 해대는 것은 더더욱 온당한 일이 아니다. 나쁜 짓은 나쁜 짓 대로 하면서 여론 쪽 만을 손질하고자 한다면 그야말로 큰 일이다.

종편들이 방송을 시작했다. 바른 소리 더 줄이고, 거짓말 더 해도 괜찮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지 정말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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