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가 '10.26 서울시장 선거로 본 시민정치의 의미와 한국 정치 변동의 기대'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지난 9일 열었다. 홍윤기 동국대 교수의 사회로 하승창 박원순 캠프 시민참여본부장, 한귀영 한겨레사회연구소 연구위원, 강원택 서울대 교수, 신진욱 중앙대 교수가 머리를 맞댔다.
참석자들은 2040의 반란이라 불린 이번 선거를 통해 유권자가 정치권에 던지고자 한 메시지와 양대 선거를 앞두고 이 메시지를 읽어야만 하는 정치권의 과제, 새롭게 부상한 시민정치의 역할에 대해 3시간 여에 걸쳐 토론했다. 이날 토론회의 주요 내용을 <프레시안>이 정리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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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택 "87년 이후 지역구도, 수명 다 했다"
홍윤기 : 지난 10.26 서울시장 선거로 본 시민정치의 의미와 한국정치의 변동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다. 강원택 교수가 먼저 시민정치와 정당정치의 두 범주에게 미칠 영향을 얘기해달라.
강원택 : 이명박 대통령, 한나라당의 실정에 대한 불만의 표출보다는 보다 근원적인 변화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라고 본다. 서울시장 선거 결과도 그렇지만, 그 이전에 터져 나온 안철수 열풍도 그와 관련이 있다. 어느날 갑자기 안철수라는 인물에게 수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제1야당인 민주당은 시민들이 가진 불만의 수혜자가 되지 못하고 후보를 내줘야 했던 것이 그 변화를 상징한다.
지금의 변화는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1987년 이후 형성된 지역주의적인 정당 구도, 그 이후로 보면 1990년 3당 합당 이후 형성된 정당 질서가 그 수명을 다한 것으로 해석된다. 3당 합당 이후 정당정치에 담겨진 색채는 두 가지다. 첫째는 지역주의 구도 아래의 영남 대 호남의 지역당 구도가 정립된 것이다. 또 한 측면으로는 대북문제와 반공주의를 중심으로 또 다른 형태의 보수 대 진보의 구분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지금은 영호남의 갈등을 일상에서 느끼기는 어렵다. 87년 이후 체제에서는 호남 유권자가 가진 여러 형태의 소외감, 정치적 불만이 축적되었다가 민주화 공간으로 표출돼 나왔고 이를 이른바 '3김'이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갈등은 영남 대 호남이 아니라 서울과 수도권 대 나머지 지방의 문제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었는데 정당이 대표하는 그릇은 여전히 지역주의 형태에 머물러 있다.
반공주의 측면도 마찬가지다. 그동안은 효과적인 통치의 기재로 반공이 활용됐고 김대중 정부 이후 10년 동안은 교류와 협력에 무게가 실렸다. 그러나 또 지난 4-5년 간은 적대적 대북정책을 국민들이 경험했다. 양쪽을 다 경험하면서 요즘 조사를 보면 균형감 있는 대북정책을 원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일정하게 지원도 하되, 북한 인권 문제나 북핵 문제도 적절하게 제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결국 정치적인 하부구조는 고용, 퇴임 이후, 건강 등 실질적 생활정치의 이슈로 이미 옮겨왔는데 상부구조는 여전히 20년 전의 틀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하부 구조 간의 부조응이 사람들로 하여금 여야를 막론하고 기존 정치권을 벗어난 새 변화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또 그 욕구가 안철수라는 인물을 통해 표출됐다.
이런 변화를 입증할만한 증거는 여러 군데에 있다. '3김' 시절에도 지지정당이 없다는 비율이 35-40% 정도 됐다. 그러나 그때는 그들 가운데도 마음 속으로는 지지 정당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다시 말해 정당과 유권자의 연계가 잘 이뤄진 것이다. 최근에는 아젠다가 바뀌면서 그런 연계도 많이 약해졌다. 즉, 지금의 50-60%의 '무당파층'은 과거와는 다른 의미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변화가 정당의 위기냐. 그렇게까지 보기는 힘들다. 이번 보궐 선거의 투표율은 50%에 육박했다. 여전히 기존 제도를 통해 정치적 의사 표현의 욕구를 해소할 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또 정당정치의 위기라고들 하는데 한나라당은 여전히 굳건한 지지층을 갖고 있다.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야당을 요구하는 것이지, 정당정치 전체를 부정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신진욱 "시민정치의 등장, 'MB 실정' 보다는 구조적 기반 있는 현상"
홍윤기 : 무당파 시민후보가 야권의 통합후보로 나온 선거였다. 그 과정을 통해 시민운동의 저력이 폭발적으로 분출됐다는 데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고 있다.
▲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프레시안(최형락) |
이를 이끌어낸 힘은 무엇일까. 여론의 힘이었다. 박원순이 시민운동이라는 제3영역의 후보인가. 그렇지 않았다. 후보 개인의 카리스마, 선거운동 진영의 조직적 힘, 과거에 비해 유난히 효과적이었던 선거 전략과 같은 이유로 박원순이 최종적으로 시장이 된 것이 아니다. 선거의 전 과정에서 집권 세력과 싸워 여론을 움직이고 궁극적으로 표로까지 연결시킨 힘은 개별화된 시민의 자발적 목소리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987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투표율은 꾸준히 하락해 왔다. 그런데 2008년 이후 그런 흐름이 반전되고 있다. 시민들이 정치에 냉소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와 함께 벌였던 시민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직접행동, 정치적 표현에 특별히 더 적극적인 계층이 정당정치나 선거에 대해서도 더 적극적인 것이 확인된다. 그런 점에서 지금 시민들이 기존 정당을 변화시키고 해체시켜 재편성시키는 적극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민정치의 주요 주체 세력이 누구냐. 지난 몇 년 간의 여론조사와 투표성향을 관찰해 보니, 연령, 지역, 직업에 따른 균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연령의 측면에서는 이번 선거를 보면 30대-20대-40대의 순서로 박원순 시장 지지율이 높았다. 기존에 보수로 불렸던 50대에서도 한나라당 지지층이 일부 빠져 56%만 나경원 후보를 지지했다. 나 후보에 대한 압도적 지지는 60대 이상에서만 나타났다. 지역의 면에서도 강남3구+1의 형태가 유지됐다. 지난 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1이 중랑구였다면 이번에는 용산구였다. 강남 대 비강남의 지역균열이 과연 거주 지역의 독립적 효과인지 아니면 계급적 변수와 같은 기타 요소가 작용돼 외화된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직업 변수에 대한 유일한 조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투표자 설문인데, 그 결과를 보면 화이트칼라와 학생 층에서 70% 가량이 박원순을 지지했다. 자영업자와 주부 층에서는 나 후보가 52%로 나타났다. 박원순 후보가 기존의 정당 체제를 흔들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지지 성향의 구조를 볼 때는 2008년 이후 여러 선거, 의식조사에서 나타난 차이들이 일관되게 반영된 것이었다. 종합해 보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 성향을 띄고 비정당적 시민정치에 가장 적극적이며 선거에 가장 활동적으로 개입하는 계층은 20-40대, 화이트칼라와 학생, 중간 소득층인 것이다.
한편에서는 이를 '계급투표'로 보기도 하는데 이 계층의 진보적 정치성향을 계급투표라고 한다면 그것은 전통적인 사회과학에서 설명하는 계급투표의 개념을 지나치게 확장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이 중간 계층은 그들만의 경제적 이익을 쫓기보다 저소득층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저소득층보다 더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를 중산층 운동으로 폄훼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일면적 평가에 불과하다. 이 계층은 탈물질적 가치 지향과 당면한 정치현실, 사회현실에 대한 도덕적 판단, 냉정한 개인적 이해관계와 경제적 계산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런 시민정치는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지구적인 현상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 기반이 있는 현상인 것이다.
안철수 지지층이 무당파, 중도라고 하는데 이것도 단언하기 어렵다. 오히려 현실 비판적, 개혁적 성향이 다수일 수 있다. 서울시장 선거 초기 박 후보 측이 상당히 무색무취 모습을 보이자 지지율이 떨어졌다.
한귀영 "단순 세대갈등 아닌 계급균열 요소 등장…진보의 기반이 변하고 있다"
홍윤기 : 내년 총선이나 대선까지 이런 흐름이 이어질까?
한귀영 : 지난 지방선거와 이번 10.26 서울시장 보궐 선거가 큰 틀에서 다르지 않았다. 지난 지방선거 투표 결과를 분석해 본 결과,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세대 갈등이었다. 그런데 세대 갈등이 나타나는데 계급적, 계층적 균열 요소가 있었다. 당시에도 2040 세대에서 한명숙 지지율이 높게 나타났다. 세대 안에서도 고학력층 중심으로 야권 후보 지지성향이 강했다. 그런데 경제활동 중심 연령층인 30-40대에서는 특히 'U자형' 구조가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학력층 뿐 아니라 저학력, 저소득층에서도 야권 후보 지지 성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2002년 대선과 다른 점이다.
지난 지방선거 이후 투표 성향을 보면 계급균열 요소가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세대 갈등으로만 볼 때 놓치는 부분이다. 직업별로 볼 때 보수의 주요 기반인 자영업자층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내일신문>의 자영업자 조사를 보면 80%가 월평균 120만 원 이하 소득자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자영업자층에서도 저소득 계층은 야권 후보 지지가 높게 나타났다. 과거와 분명 다른 현상이다.
이런 변화가 함의하는 바는 이른바 진보세력의 핵심 기반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권에 무슨 의미를 던지고 있을까. 민주당이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고학력, 화이트칼라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제 정책에서는 흔들리는 현상들이 나타났다. 서민보다는 중산층 중심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단적인 예가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다. 노무현 정부가 사회경제적 개혁보다는 정치적 개혁에 집중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구조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도) 과거와 달리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진보적 의제에 맞춰야 하지 않나 싶다.
강남의 높은 투표율과 보수 후보 지지 성향은 2008년 서울교육감 선거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강남 3구만 보면 2008년 공정택 지지가 55.9%, 2010년 오세훈 지지가 56.2%, 지난 10.26에서 나경원 지지가 56.7%였다. 응집력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역시 지켜야 할 것들이 있음으로 나타나는 결과다. 반면 금천에서는 투표율이 낮다. 왜 그럴까. 정치권의 책임이다. 기존의 갈등에서 배재된 저소득층을 새로운 갈등축을 만들어 정치로 끌어들였어야 했다. 박원순도 마찬가지였다. (저소득층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계층적 갈등의 징후들은 분명히 나타나는데 그것들이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세대를 통해 우회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양극화 등 사회구조로 인해 경제적인 문제가 세대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프레임 중 하나가 탐욕 대 정의였다. 2040세대가 탐욕에 대한 공분을 하나의 공감대로 형성했다. 그 공감대에는 물론 트위터 등 문화적 요소도 결합돼 있었다.
정리하자면, 2002년 대선과 이번 보궐 선거를 비교해 볼 때 2002년에는 40대가 양쪽이 비슷하게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40대에서도 20대 못지 않게 야권 후보 지지가 나타났다. 현재의 40대는 2002년 386세대의 확장이다. 또 한 가지, 2002년 당시에는 고학력 중심인 386의 지지였다면 이번에는 양극화 심화 속에서 저소득층까지 야권 지지에 가세했다. 세대 전체에서 반(反)MB 현상이 나타났다. 2002년과 10.26 모두 구체제에 대한 2040세대의 반란인 것은 맞지만, 2002년에는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반란이었다면 이번에는 양극화, 즉 경제적 문제에 대한 반란이었다.
▲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프레시안(최형락) |
홍윤기 : 저소득층이 야당 보다는 한나라당을 지지해 온 고정관념이 이번 투표를 통해 깨졌다고 했는데, 그런 현상이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이어질까?
한귀영 : 계층 갈등을 말하는데 있어 조심스러운 부분이 분명히 있다. 전체 데이터만 놓고 보면 고소득, 화이트칼라의 진보 지지가 분명히 높다. 그러나 그것을 세대라는 층위에서 미시적으로 들어가보면 다른 경향이 나타난다는 얘기다. 계층 문제를 핵심적으로 느끼는 층은 40대 이하다. 크게 보면 50대도 포함된다. 내년 이후에도 한국 정치를 좌우할 요소라고 본다.
하승창 "정당정치와 시민정치 대립되는 것 아냐"
홍윤기 : 마지막 패널이다. 박원순 캠프에서 시민참여본부장을 맡았던 하승창 더 체인지 대표다. 선거 과정을 돌아본다면?
▲ 하승창 더 체인지 대표. 전 박원순 시장후보선거캠프 시민참여본부장.ⓒ프레시안(최형락) |
새 시도도 없지는 않았다. 선거 캠프를 꾸리는 방식, 멘토단의 활용, 타운홀 미팅, 상근 변호사 등이 이전 선거와 달랐다. 소셜 미디어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캠프에서는 의외로 이를 적극 활용하지 않았다. 소셜 미디어의 위력은 캠프 내 부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과 캠프와의 결합 정도에서 나온다. 한나라당이 그 부분을 좀 오해했던 것 같다. 팔로워를 많이 가진 멘토단과 선거 캠프의 결합은 가치의 결합이었고 그 점에서 승부가 갈렸다.
경선이나 본선 투표 성향을 보면 민주당이든 한나라당이든 세대적으로는 똑같이 50-60대 기반임이 재확인됐다. 나경원 후보 측의 공세 수단은 주로 구미디어였다. 반대로 박원순 측은 다 소셜 미디어였다. 기존 정당은 개인보다 집단이 우선이고 박원순 캠프는 특정 개인의 네트워크 중심이었다. 민주당과 경선 날에도 민주당은 동원할 숫자가 계량이 되는데 우리는 안 됐다. 우리 캠프도 그런 데 익숙하지 않았다. 촛불시위 때도 기존 시민운동이 그런 변화에 조응하지 못하는 것이 드러나지 않았나. 그 후 3년 동안도 그 변화들이 시민사회 진영이 잘 훈련돼 오지 못했다.
이번 선거가 끝나고 정당정치와 시민정치가 마치 다른 것처럼 사용되고 있으나 사실 그건 아니다. 시민정치는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을 극복하기 위해 내놓은 개념이었다.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번 선거로 둘 사이의 대립이 확인된 것이 아니라 정당의 구조적 변화 요구가 나타난 것이다. 시민운동진영이 독립적 세력으로 생존이 가능한가를 이제 검토하기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 새 정당체제 구축에 시민정치가 어떻게 기여하라 것인지는 남은 문제다.
"20대 투표율, 계속 올라갈 것"
홍윤기 : 앞서 강원택 교수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욕구였다고 평가했는데, 서울시장 선거를 제외하면 기타 지역에서 8:0으로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이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서울에서 한나라당이 잃은 만큼 지방에서 만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신진욱 교수나 한귀영 박사가 얘기한 주체의 결집도 역시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유지될지 의문이다.
강원택 : 첫째 왜 박원순이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박원순이라는 인물이 무엇을 의미하나. 우리가 '3김' 욕을 많이 하지만, 그 시절에는 나름 새로운 정치세력을 효과적으로 정당정치 내로 편입시켜 왔다. 그 첫째가 민주화운동세력이다. 88년 총선에서 노무현이 들어갔고, 92년에는 김근태, 이재오, 이부영 등이 제도 정치권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정치화된 세력은 이른바 386이다. 젊은 피 수혈이라는 이름 아래 노무현 돌풍과 함께 대거 정치권으로 들어갔다. 또 다른 형태의 세대 포괄이었다. 그 다음으로 부각되는 세력이 시민운동진영이다. 민주화운동과 함께 자연스럽게 성장한 참여연대, 경실련 등이 있었고 그들은 정치권의 예비군이었다. 박원순은 그 세력의 상징이었다. 그 세력 내에서 자연스럽게 훈련 받은 김기식, 하승창 등이 정치권에 들어가야 한다.
다만 시민세력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이번 선거 역시 정당 조직이 없었다면 승리하기 어려웠다. 민주당 지지표가 박원순에게 가면서 이긴 것이다. 둘째로 시민후보나 무소속이 지방선거 수준에서 승리하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중앙정치에서도 무소속이 이기기는 쉽지 않다. 총선, 대선과 지방선거 또는 보궐 선거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선거다. 보궐선거나 지방선거야 중앙권력을 놓고 싸우는 선거가 아니어서 사람들이 쉽게 불만을 표출한다. 내가 오랫동안 한나라당을 지지해 왔어도 한나라당 정부에게 경고 메시지는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총선과 대선에서도 똑같이 던져? 그건 다르다. 시민운동이 독자적으로 독립할 가능성이나 힘이 부족한 이유다.
또 시민운동의 독자세력화가 가능하려면 제도적 변화가 불가피하다. 비례대표가 대폭적으로 확대되거나 혹은 독일식 100% 비례대표제가 도입된다면 5%의 진입장벽만 넘으면 독자세력화가 가능하다. 지금은 서울에 중앙당을 두고 1000명 이상의 당원을 가진 지구당이 5곳 이상 되어야 한다. 지방선거 수준에서는 지역당을 허용하는 방법이 있으나 그것은 정당법도 고쳐야 한다.
앞서 나온 얘기 중에 세대 격차 얘기를 해 보자면, 세대 격차는 지난 2002년 대선 때부터 이미 나타났다. 다만 그때는 이념적 형태, 특히 미국과 관련된 이념적 격차였지만 점차 실질적인 생활의 문제와 관련된 격차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선거의 세대 격차가 더 심각한 것이다. 더욱이 20대가 정치적으로 각성하고 있다. 그 전까지는 주로 인터넷 등 문화적 영역 안에서의 의사 표현에 그치고 직접 참여의 필요성은 못 느끼던 20대가 참여를 통한 정치의 위력을 깨달았다. 당장 시립대 등록금이 반이 되지 않았나. 내년 선거에서도 20대의 투표율은 올라갈 것이다. 이런 변화는 이명박 정부가 만들었다기보다는 신자유주의 흐름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에 기여했다면, 특권층만 골라내 인사를 하다 보니 특권층에 대한 거부감을 확대 재생산 되도록 만들어낸 면은 있다. 정치적으로 극적인 형태로 계급 간 갈등을 보여준 것이다.
좀 구체적으로 내년 총선과 대선의 결과를 예측해 보자면, 자연스럽게 야권이 이긴다고 보기는 다소 어렵다. 한나라당은 기본은 할 것이다. 물론 야권이 현재보다는 많은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은 크다. 지난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싹쓸이한 2008년 총선의 결과가 전무한 일이면서 후무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한나라당이 현재보다는 의석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야권에서 복수의 후보가 나온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통합이든 연대든 일정하게 성공한다면 내년 총선에서는 여소야대가 될 것이고 이명박 정부의 집권 말년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국정주도권을 복수의 야당이 장악하면서 현 정부의 실정을 부각시키려 할 것이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내년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상대적 진보'라는 기반 잃어버린 민주당, 호남당 되나?"
홍윤기 : 지방에서 한나라당이 다 이겨 대세를 잃지 않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나?
강원택 : 얼마 전에 부산에 다녀왔다. 비록 부산동구에서 지긴 했지만 그 결과를 놓고 부산지역 민심에 변화가 없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본다. 부산동구가 과거에는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중심지가 주로 해운대, 동래 쪽으로 넘어가 노년층이 많다고 한다. 또 하나의 현상보다는 흐름이 중요하다. 김두관이 무소속으로 나왔지만 모두가 다 아는 친노인데 경남에서 당선됐다. 김정길이 민주당 간판 달고 부산시장 선거에 나가 45%를 얻었다. 엄청난 변화다. 더욱이 부산은 저축은행, 동남권 신공항 등 여러 불만이 쌓여가고 있고 문재인이라는 상징적 인물이 있다. 조국도 부산, 안철수도 부산이다.
3당 합당 이후 한나라당이 그동안 견고한 지지를 누린 것은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를 모두 가져서였다.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합치면 대구경북 정도 되는데 나머지 경남부산 만큼의 우위를 한나라당이 누려 온 것이다. 그런데 그 경남부산이 흔들리고 있다. 총선에서 의미 있는 숫자의 의석을 차지하고 대선에서 상당한 이탈표가 나온다면 3당 합당 이후 만들어진 정치 질서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계속 강조하지만 오히려 지금 문제는 민주당이다. 과연 변화가 가능할 것인가,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한심하다. 그동안 민주당이 가져 온 색이 두 가지였다. '상대적 진보 + 호남'이었다. 지금은 '상대적 진보'라는 이름을 차지할 대체 세력이 많이 등장했다. 박원순, 문재인 등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이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도 못 낸 것도 그 이유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현재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호남 뿐이다. 호남당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탈호남' 할 것인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수도권을 전부 빼앗겨, 현재 현역 의원 대다수는 호남이 기반이다. 그런데 다른 야당에 상식적으로 이해될 만한 의석을 줄 수 있을까? 그런 리더십이 민주당에 있나? 민주당은 모두의 지지를 얻을만큼 신망 있는 정당도 아니고, 기득권을 쉽게 양보할만큼 약한 정당도 아니다. 상당히 애매하다. 이들을 얼마나 압박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홍윤기 : 시민정치세력은 그렇다면 민주당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강원택 : 시민정치가 서울시장 선거는 이겼지만 우위에 서 있는 점령군의 입장에서 민주당더러 '자리 내놔라, 니네 끝이다' 이런 식은 곤란하다. 위기감이 공유되어야 한다. 힘을 합치지 않으면 못 이긴다. 그것이 서로 된다면 일정한 정도의 타협과 양보가 모두 가능하겠지만 어느 한쪽이 내가 주도권을 쥐고 가겠다는 태도는 안 된다. 조금 더 현실적 인식이 필요하다.
"내년 총선 대선도 경제 양극화 균열축 피할 수 없다"
홍윤기 : 이번에는 한귀영 박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10.26으로 나타난 변화의 욕구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프레시안(최형락) |
한귀영 : 쉽게 단언하긴 어렵지만 1987년 체제, 즉 민주-반민주의 구도가 마지막으로 2002년 대선에서 표출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양극화가 이번 10.26 재보궐 선거에서 상당 부분 표출됐고 이는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2002년 선거에서 핵심적으로 드러난 균열축은 탈권위주의, 정치적 자유였지만 그 당시 실제로 중요한 이슈는 경제 양극화였다. 2002년 초까지도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경제 양극화 문제가 주요하게 등장했었다. 그런데 막상 선거 국면으로 들어서니 노무현이라는 정치개혁을 표방하는 강력한 인물과 결합되면서 균열축이 바뀐 것이다. 노무현 당선 이후, 2003년 초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대중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경제였다. 이미 2002년 대선에서 등장했던 경제 이슈를 정치가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 통치의 가장 주요 문제도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 그 균열축이 2007년 대선에서는 성장 대 분배로 등장했던 것이다. 내년 선거도 그런 흐름을 피할 수 없다.
홍윤기 : 2007년 이명박을 당선시킨 배신감이 이번에도 다시 표출됐다는 얘긴데, 그 배신감이 내년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얘기인가?
한귀영 : 훨씬 더 뿌리 깊은 배신감이라는 의미다.
하승창 : 결국 '안철수 현상'의 함의와도 관련된 것으로 본다. 2000년대 이후 사람들의 관심은 전체적인 경제성장보다는 자기 삶의 공간에서의 문제에 집중됐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과거 뉴타운 바람으로 나타난 것이고 이번에는 거꾸로 복지로 표출된 것이다. 시민들은 오래 전부터 준비가 다 돼 있었지만 그 표를 던질 세력이 있느냐가 문제였다. 내년 선거도 현재의 정당과 세력이 그 욕구에 맞춰 스스로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느냐에 승부가 달렸다. 지금까지는 이명박 대통령의 전횡을 막는 것이 중요하니 일단 뭉치면 뽑아주겠다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뭉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서울을 빼고 모두 한나라당이 이긴 10.26 재보궐 선거에서 드러났다.
신진욱 : 유권자층의 변화에 대한 열망은 내년 총대선에서 선거 결과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느냐다. 이는 결국 정당정치, 시민정치의 에너지가 얼마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느냐와도 맞물려 있다. 그를 위해 우선 첫째, 경제와 복지 문제의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현실비판적 감성을 다시 확인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또 두 번째로는 야권연대 논의,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무지개 연합군의 경험을 얼마나 실천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가 과제다. 셋째로 여전히 중요한 것은 후보다. 여러 시대적 변화를 담아낼 후보가 누구인가에 따라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귀영 : 사실 큰 틀에서 보수 세력은 한나라당이라는 중심성이 확실하다. 그런데 이른바 진보 진영은 2002년 이후 오히려 민주당이 외부 에너지를 흡수했을 때 주목 받았다. 2002년 대선 역시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소속이었지만 외각에 있었고 외부의 대중 에너지와 만날 수 있어서 대중의 힘이 들어왔다. 2004년 총선 때도 열린우리당이 과반의 의석을 획득했지만 당시에는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의 힘과 맞물려 야권 전체가 대중적 열정을 불러 일으켰다. 2007년 선거는 워낙 한쪽이 무너진 선거였지만 문국현이라는 실험이 있었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시민정치는 계속 기존 정당체제와 맞물리면서 특히 야당을 압박해 대중의 지지를 받아 왔다.
하승창 : 시민정치의 미래를 내다보기에는 변수가 현재는 워낙 많다. 다만 우리 사회를 새롭게 만들어보려는 욕구는 분명하게 확인됐고 그에 부응하려는 노력도 어떤 식으로든 전개될 것으로 본다.
한귀영 : 아젠다가 대통령 지지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책 <진보 대통령 대 보수 대통령>을 최근에 냈다. 이 책을 쓰면서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국정 주요 아젠다를 분석해 봤다. 확실히 노무현 정부에서는 시민사회 요구를 수용한 아젠다가 제법 있었다. 그 아젠다에 얼마나 주력했는지는 별개 문제지만 4대개혁 입법이나 언론개혁이 그런 경우였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그렇게 외부에서 수용된 아젠다가 거의 없다. 본인이 직접 제기하는 것 중심이다. 시민정치가 박원순과 같이 독자적으로 후보를 내고 세력화를 한다는 데 개인적으로 회의적이다. 결국 기존 정치세력이 보지 못하는 아젠다와 이슈를 주도적으로 제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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