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안철수 대망론? 정치가 그렇게 쉬우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안철수 대망론? 정치가 그렇게 쉬우면…"

[좌담] '박원순 바람', 정치권 빅뱅의 시작인가?

끝났다. 그런데 이제 시작이다. 서울시장 선거는 26일로 마무리됐지만, 2012년 총선과 대선으로 가는 길은 이제부터가 본게임이다.

최초의 무소속 후보의 당선, 그 뒤에 있었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그에 맞섰던 어제까지의 '대세' 박근혜. 2012년은 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2탄이 될까,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질까.

김호기 연세대학교 교수와 이철희 민주정책연구원 상임부원장이 선거 직후인 27일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은 이번 선거가 '인물 구도' 보다는 '심판의 선거'였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특히 양극화의 시대,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20-40대가 계급 투표의 성격을 띤 세대 투표를 했다고 이들은 설명했다.

이런 큰 흐름은 2012년에도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누가 그들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는 불투명하다. 진행되고 있는 통합 논의의 향방도 주요 변수다. 안철수도, 문재인도, 손학규도, 유시민도, 정동영도 "보여줘야 한다"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자신의 역량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고민을 드러내 검증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똑같은 1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다음은 27일 오전 서울 중구 장충동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진행된 좌담의 전문이다. 진행은 임경구 <프레시안> 편집국장이 맡았다.

"서울시장 선거, 인물 선거 아니라 '反MB' 선거였다"

프레시안 :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대한 총평부터 시작하자.

김호기 : 다섯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시민 정치가 본격 등장했다. 스스로 등장했다기보다 등장을 강요 받았다. 다시 말하면 기성 정당이 대표성의 위기를 겪은 것이다. 안철수 현상, 곧이은 박원순 바람. 그리고 마침내 박원순이 승리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두번째로는 선거 지형에서 수도권과 지방이 나뉘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수도권은 지역주의로부터 상당히 벗어났다. 수도권만 놓고 보면 세대와 계급의 변수가 중첩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젊은 세대의 다수가 우리 사회의 약자이면서 동시에 젊은층의 상당수가 중산층의 자녀다. 계급과 세대가 독립적 변수가 아니라는 얘기다.

셋째, 드러난 구도와 감춰진 구도의 이중적 구도로 진행된 선거였다. 박원순 대 나경원이 드러난 구도였다면, 감춰진 구도는 박근혜 대세론과 안철수 대망론의 대립이었다. 이 두 구도에서 결과적으로 박원순의 시민정치와 안철수의 대망론이 승리했다.

네번째로 일반적인 각도는 심판론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 온 일련의 정책들에 대한 거부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드러났다. 이 심판론은 향후 총선과 대선에서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거티브 선거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초기의 상당한 지지율 격차를 나경원이 추격해 올 수 있었던 데는 두 가지 원동력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과 네거티브의 '약발'이다. 그런데 국회의원 선거라면 네거티브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을지 모르나 서울시장 선거는 그 성격이 다르다. 시민들은 그 정치적 의미를 생각한 것이다.
▲ 김호기 연세대학교 교수.ⓒ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최종 투표율이 48.6%였다. 그리고 결과는 7.2%포인트 차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수치부터 해석해보자.

이철희 : 전체적으로 이번 선거는 인물 선거는 아니었다. '반(反)MB' 정서가 국민적 대세였다. 그 대세를 거스를 수 있는 후보를 한나라당이 내놓지 못했다. 그렇다고 나경원 후보가 한나라당의 변화를 상징하는 후보도 아니었다. 박근혜가 뛰어들었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지도 못했다. 그저 지원에 그쳤다. 결국 야권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도였다. 그 구도를 박원순이 어느 정도 잘 담아냈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상대적으로 미래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

더욱이 20-30대에게 일종의 '투표 행동주의' 정서가 강해졌다. 투표로 내 의사를 밝히겠다는 것이 유행처럼 불고 있다. 촛불의 경험은 촛불로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결국 투표가 페이퍼스톤(종이돌)이라는 생각하게 된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전부터 형성돼 온 전체적인 흐름이 다시 확인된 선거였다.

김호기 : 기본 구도는 지난해 6.2 지방선거 당시 만들어진 구도의 연장선에서 치러진 선거였다. 인물이 아닌 정당에 투표를 하게 돼 있는 광역의원 선거에서 일종의 세력의 득표율을 조사해 봤었다. 한나라당, 자유선진당이 포함되는 '성장 연합'과 나머지 야당이 포괄되는 '복지 연합'이 얻은 광역 의원 득표율이 45 대 55였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의 보수 우위 구도가 2010년 지방선거 때는 균형의 구도로 만들어졌다. 오히려 진보가 조금 더 힘을 받는 형국이었다. 다만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직년 지방선거와 차이점이 있다면 박원순으로 대표되는 시민정치의 등장 혹은 부상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는 기본적으로 정당 간의 싸움이었지만 이번에는 성장 연합과 복지 연합의 구도에 덧붙여 기성 정당정치 대 시민정치 간의 경쟁도 있었다.

"시민정치와 정당정치 대립시키는 것, 오히려 위험하다"

▲ 이철희 민주정책연구원 상임부원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해 지방선거가 복지연합, 혹은 야권연합의 깔끔한 단일화에 실패한 선거라면 이번 선거는 경선과정을 거치며 나름대로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었다. 이런 점에서 시민정치와 기존 정당정치의 결합 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 아닐까?

이철희 : 시민정치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는 데는 큰 틀에서 동의한다. 그러나 어떤 시민정치가 될 것인지는 조금 더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 이전부터 사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아젠다는 늘 시민단체가 먼저 제기했다. 정당, 특히 야권은 뒤쳐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복지 이슈가 대표적인 예다. 시민운동이 그동안도 상당히 정치적인 역할을 해 왔다는 얘기다. 다만 이번 선거를 통해 좀 더 분명한 현실 정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일 뿐이다.

시민정치와 정당정치가 어떻게 결합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은 있다. 정당정치가 현재 위축된 것은 사실이나, 그 두 영역이 반드시 그렇게 대립적인 것일까. 정당이 시민 앞에 무너졌다고만 해석한다면 그때 무너진 것은 야권일 뿐이다. 한나라당은 여전히 버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과 시민을 대립시키는 것이 오히려 야권 내부에 대립선을 만들어내 야권이 하나로 통합되는데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위험한 일이다.

또 한 가지, 박원순만 보더라도 그는 시민후보의 성격과 야권 단일후보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민주당과의 경선 때는 시민후보의 성격이었지만, 그때 역시 민주당이 아닌 다른 야당들이 그를 도왔다. 이미 정당후보의 성격도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단일후보가 되면서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갖게 됐다. 그 두 가지 성격이 겹쳐져 지금의 지지율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존의 정당이 가지고 있는 영역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지난 2007년 대선만 보더라도 열린우리당이 해체되면서 그 지지층이 여러 곳으로 흩어졌다. 현재의 민주당으로 온전히 옮겨오지 않았다. 통합의 과정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정치와 정당정치를 대립시켜 서로 제로섬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적절치 않다.

김호기 : 낙선운동 사례에서 보듯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는 이미 준정당적 역할을 해 왔다. 시민단체가 주도했던 금융실명제, 소액주주운동, 상가임대차보호법 등이 다 정치적 사안이다. 다만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시민운동 진영의 확실한 내적 분화가 이뤄졌다. 순수한 시민운동과 시민정치의 영역으로 나뉘었다. 자연스러운 분화다.

정당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은 처음에는 실망에서 불신으로 바뀌었고 일부 시민들은 환멸까지 느끼게 됐다. 대안세력에 대한 갈망이 나오게 된 이유다. 대안세력은 리더, 비전, 시민사회와 적극적 소통이 필요한데 우리 정당은 그 모든 면에서 부족했다. DJ정부 때까지만 하더라도 새로운 인적 자원의 수혈이 이뤄졌으나 노무현 정부 이후에는 그렇지 못했다. 무상급식과 같은 비전도 시민사회가 먼저 제기했다. 소통의 측면도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잘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보수 진영이 뉴라이트와 같은 단체들과 생산적 소통을 했다. 그러면서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쌓여간 것이다.

현재는 정당과 시민사회 사이에 시민정치가 매개자 역할을 하며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조직이 '내가꿈꾸는나라'나 '혁신과통합' 같은 것이다. 시민정치는 독재시대의 '재야'의 21세기 버전이다. 이런 구도는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여전히 정치의 핵심 주체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단중기적으로는 시민정치에 부여된 고유한 역할이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정당정치와 시민운동의 생산적 분업 구조로 가야 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계급 투표와 세대 투표는 중첩돼 있다"

프레시안 : 보수 신문들이 정당정치의 붕괴를 대서특필하는 건 의도된 곡해가 있어 보인다. 그렇더라도 정당정치가 위기에 처한 건 현실이고, 박원순 후보가 민주당의 외피를 입고 나왔다면 결과가 어땠을까도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시민정치라는 추상적인 영역이 정당정치를 비껴선 곳에서 어정쩡한 상태로 계속 남아 있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는 이견이 크지 않을 듯 싶다.

이철희 :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었다면 박원순이 민주당 후보였어도 동일한 성과를 얻었을 것으로 본다. 야권 단일후보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지와 지금의 민주당, 혹은 과거의 민주당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상징할 수 있는 인물이었는지가 그 조건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오히려 이번 선거는 중산층 아래의 아젠다를 꺼내놓지 못했다. 현재를 복지 대 반복지의 구도로 본다면 이번 선거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중산층 아래 계층과 계급의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 비정규직 문제는 선거 테이블에 올려놓지도 못했고, 한미 FTA도 피해갔다. 정당이 중산층의 이해와 요구에 지나치게 좌지우지 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정당은 투 트랙으로 가야한다. 시민운동 진영이 제기하는 중산층 문제를 신속하게 흡수하면서 동시에 더 아래 계급에 뿌리 내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중산층에만 주목하면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재현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김호기
: 이번 선거는 2단계로 진행됐다. 경선 과정에서는 정당정치와 시민정치의 대립이었지만 그 뒤부터는 보수 대 진보의 구도였다. 이때 진보는 시민정치와 정당정치가 결합된 다국적 연합군의 성격이다. 실제로 이인영, 박선숙, 우상호와 같은 기존 정치인의 기여가 작지 않았다. 손학규, 유시민, 이정희도 마찬가지다.

프레시안 : 강남 3구의 결과가 보여주듯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명백한 계급 투표를 했다. 반면 박원순에 표를 던진 20~40대의 표심을 계급투표로 볼 수 있을까? 이철희 부원장의 지적처럼, 박원순 캠프에서 중산층 이하에 해당하는 선거 의제를 거의 내놓지 못한 점은 선거 캠페인의 문제를 넘어 시민정치가 가지는 현실적 한계로 보이기도 한다.

김호기 : 계급과 세대 투표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중첩돼 있다. 보통 세대 투표는 물질주의 가치와 탈물질주의 가치의 충돌이다. 전자는 경제적 안정을 중시하고 후자는 자아 실현을 중시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꼭 그렇지 않다. 20~40대에게 가장 큰 것은 안정이다. 그들 대부분이 스스로를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20대와 30대는 스스로를 '루저'로 규정한다. '위너'는 극소수다. 계급적 요소가 세대 투표에 상당히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한국적 특수성이다.

"통합이 그 자체로 야권의 재구성 담보하는 것 아냐"

이철희 : 여론조사에서 제일 당혹스러운 대목이 저소득층이 보수를 지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득이 아니라 자산을 집어넣어서 조사해 보면 결과가 다르다. 자산이 있는 계층과 없는 계층의 지지정당이 확연히 다르다. 자산이 있는 50~60대는 소득이 없어도 버틸 여력이 있다. 그런데 지금의 40대는 다르다. 중산층으로 진입할 연령대인데 못 들어가고 있다. 양극화에서 탈출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20~30대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선 후 '다음 세대에서는 나아질 것 같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이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세대 투표 내에 계급 투표 성격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을 담아내는 정치세력이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야권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통합은 그 자체로 재구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통합은 형식일 뿐이다.

김호기 : 통합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다. 보수는 이익을 중시하나 진보는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비전과 정책, 노선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선거 승리를 위해 무조건 통합하자는 것은 과도한 정치주의적 논리다. 보수세력에 맞서는 정치적 통합을 모색하면서 한편으로는 인적 자원의 쇄신, 비전과 정책 개발, 시민사회와의 적극적 소통의 노력도 필요하다.

이철희 : 현 집권세력에 대한 분노도 극에 달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맞서는 야권에 대한 불만도 깊다. 두 가지를 같이 해소해야 한다. 야권을 향한 불만이 꼭 야권의 분립에서 오는 건 아니다. 일대일 구도가 되면 무조건 이기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분열을 해소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분노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짚어봐야 한다. 정치권이 그 과제는 외면하고 너무 쉬운 길로 가려는 것 아닌가 싶다. 통합의 내용을 무엇으로 채울지부터 답을 해야 한다.

김호기 : 맞는 말이다. 야권통합에서 방법론보다 중요한 건 콘텐츠다. 우리사회가 직면한 핵심 문제들에 대해 내용을 채워야 한다. 일자리, 주거, 교육, 노후 뿐 아니라 대외관계 문제도 그렇다.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최대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또 이 지점에서 서울시장 선거에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시장 선거는 자치단체장 선거이면서 동시에 대선과 같은 큰 선거의 축도판이기도 하다. 시정에 대한 비전 외에 국가에 대한 비전도 함께 결합돼 제시되야 하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그 점에서 미흡했다.

이철희 : 야권의 큰 과제는 이미 정해졌다. 혁신이다. 혁신은 민주당만의 과제는 아니다. 통합을 핑계로 혁신에 소흘했다는 것을 민주당도 인정해야 하고, 진보정당도 왜 위축됐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혁신, 결국 인물 교체에서 시작돼 인물 교체에서 끝난다"

프레시안 : 지금까지는 왜 혁신을 제대로 하지 못했나? 또 지금의 정당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지는 게 혁신인가?

이철희 : 통합이 대세로 제기되는 과정에서 민주당이 변화를 도모하면 '너희는 통합 안 하려 그러지'라는 식으로 왜곡되는 데 대한 내부 우려가 있었다. 하다 못해 인재영입위원회조차 마음 편히 만들지 못했다. 민주당의 통합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당이 정말 혁신의 의지가 있었는지 정직하게 고민해볼 대목이다. 그 자체로 혁신의 동력이 과연 생겨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통합의 계기를 혁신의 동력으로 삼자는 것이 민주당 주류의 문제 의식이었다. 이번 시장 선거를 거치면서 이제는 민주당의 통합 의지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 해야 한다. 총선부터 역산해 보면 통합이든 혁신이든 내년 2월까지는 마무리해야 한다. 11~12월 농사에 따라 총대선의 결과가 달라진다.

ⓒ프레시안(최형락)


김호기 : 혁신은 결국 두 가지다. 인물의 혁신과 비전·정책의 혁신이다. 비전만 먼저 보면 민주당도 더디지만 꾸준히 좌클릭을 해 왔다. 유권자도 알고 있다. 오히려 문제는 인물의 혁신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새 인물의 수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인물의 혁신을 위해서는 세 그룹이 정립돼야 한다. 손학규, 정동영, 정세균으로 대표되는 60~70년대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세력이 첫째다. 둘째는 486 그룹이다. 이들의 보다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 중간 참모 역할에서 벗어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해야 한다. 그동안은 차세대로 자기 안주해 온 면이 없지 않다. 셋째로는 이 두 그룹이 포괄하지 못하는 외부 세력이다. 하승창, 김기식, 김민영과 같은 사람들이 내년 총선에 출마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들 세 그룹 사이의 생산적 긴장, 협력적 관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그것이 혁신의 과제다. 사실 정치란 시민의 면에서 보면 정책과 비전보다 먼저 인물이다.

이철희 : 여론조사를 해 보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책적 차별점은 과거에 비해 많이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꼭 차별이 '진보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차별화에는 진보화도 있고 중도화도 있다. 사안별로 대응해야 한다. 인물의 면에서는 오히려 다른 컨셉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중성을 가진 명망가도 필요하지만 그들은 주로 중산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주목 받는 사람들이다. 그보다 더 아래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을 대변하는 사람을 정당에 끌어들이는 것이 사회적 기반을 갖춰가는 과정이다.

민주당만 놓고 보자면, 세대교체는 기본이고 세력교체가 필요하다. 세력교체는 보다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정책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중심을 잡는 것이다. 또 복지 시대에 걸맞는 시대 교체도 필요하다. 이 세 가지가 혁신의 내용인데, 결국 그것은 인물 교체에서 시작해서 인물 교체로 끝난다. 사람이 곧 정책이다. 집권을 했을 때 노동부 장관으로 심상정을 기용하느냐, 기업가 출신을 기용하느냐는 엄청난 차이다.

"문재인, 안철수, 손학규 치열하게 서로 경쟁하라"

프레시안 : 야권의 세력과 인물을 편의상 쉽게 구분하자면 손학규로 대표되는 민주당, 문재인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밖의 친노세력, 장외의 안철수 아닐까? 이 셋의 각축 구도로 좁혀진 것 아닐까 싶은데.

ⓒ프레시안(최형락)
김호기
: 진보개혁세력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리더십의 재구성이다. '포괄적이면서도 경쟁적 리더십' 얘기다. 박근혜라는 유력한 리더가 있는 저쪽에 비해 민주진보세력은 오히려 풍성하다. 그것이 장점이다.

손학규는 오랫동안의 정치행정 경험이 뛰어나다. 중도계층에게 어필한다. 문재인은 친노라는 핵심 지지계층을 기반하고 있고 중도와 진보 모두에게 매력적이다. 안철수는 세대교체의 선두주자다. 20~40대로부터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또 개인적으로는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4가지 키워드, 소통, 창의성, 복지, 사람중심의 이 모든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대변하하고 있는 사람이 안철수다. 이 셋이 생산적으로 경쟁해야 한다. 장내에서든 장외에서든. 덧붙이자면, 유시민이나 최근 진보적 성향을 강화한 정동영도 기회는 있다. 이들의 경쟁을 통해 오히려 후보들의 역량을 높일 수 있다.

이철희 : 김어준 총수가 쓴 <닥치고 정치>를 최근 읽었다. 그 책은 결국 '씨바 문재인'이었다. 왜 문재인인지를 잘 설명했다. 그러나 매력으로 승부해서는 안 된다. 그들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어떻게 감당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손학규에게 주어진 역할은 야권통합 완수다. 물론 사인하는 사람은 달라지겠으나 완성하는 것은 손학규의 역할이다. 민주당 내부에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도 손학규의 과제다. 문재인은 현재 이반하는 부산경남(PK)을 현실 정치세력으로 담아내야 한다. 열린우리당 때 상당히 근접했으나 실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를 위해 문재인 역시 통합에서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치권 전체를 혁신시켜야 한다. 안철수의 경우에는 너무 뒤로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 능동적으로 액티브하게 20~30대의 가치를 세력화해야 한다.

김호기 : 진보개혁진영의 승리를 위해서는 이중 전략이 필요하다. 이른바 '갈라치기' 전략과 중도통합 전략이 동시에 필요하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그것이 드러났다. 진보개혁세력의 벡터적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일방적 좌클릭이나 일방적 중도지향 전략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의 생산적 결합이 필요하다.

"안철수 내년에도 혜성처럼 등장해 돌풍 일으킬까? 불가능하다"

프레시안 :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대 안철수'의 구도가 부각됐다. 이건 얼마나 지속가능할까?

이철희 : 박근혜가 가지는 안정적 기반은 분명히 존재한다. 앞으로는 박근혜 대 반(反)박근혜의 구도다. 왜 '反박'이냐면, 안철수라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긴 했으나 아직 안정적이지 않다. 나머지 이들에게도 아직 기회는 열려 있다. 왜냐면 안철수는 아직 '反박'이나 '反MB'의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지 못했다. 삼성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긴 하나, 우리 사회의 가치가 한 두 가지 영역에 한정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과제가 적지 않다. 총선 거치고 대선이 임박해 올 때 지금처럼 다시 혜성같이 등장하면 대중들이 따라올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도 마찬가지다. 무엇인가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서울에서 8일이나 지원 유세를 했다는데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전혀 내놓지 못했다. 박근혜는 수첩이 아니라, 한나라당 내에서도 개혁적 보수와 수구적 보수의 전선을 분명하게 그었어야 한다. 한나라당을 천막당사에서 구해내면서 리더십을 인정 받았지만 다시 한 번 한나라당을 개혁할 과제가 박근혜 앞에 놓여 있다. 그 성과에 확장성이 달렸다.

김호기 : 최근에는 PK의 중요성을 많이 얘기하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수도권이다. 누가 수도권의 맹주냐. 2007~2008년에는 이명박이 수도권의 맹주였다. 그래서 한나라당이 이긴 것이다. 그런데 2008년 이후에는 수도권에 맹주가 없다. 이 점에서 박근혜는 힘이 상당히 부족하다. 이번 선거가 그 증거다. 여전히 수도권은 무주공산이다. 둘째로 안철수만 놓고 보면 그의 미래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 어떤 변수가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미칠지에 달렸다. 세대 변수가 가장 중요하다면 안철수 대망론은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계급 변수가 더 중요하게 부각된다면 안철수 외에 다른 대안이 나타날 수 있다. 결국 선거를 기본적으로 결정짓는 것은 구도다. 그 구도에 따라 달라진다.

ⓒ프레시안(최형락)
이철희
: 대망론을 대세론으로 바꾸려면 안철수 본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안철수의 메시지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 최근의 편지였다. 그러나 이 편지에도, 박원순과 단일화할 때도 우리사회의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고민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해법도 제시되지 못했다. 로자 파크스를 언급했지만, 인종주의 문제는 미국을 내전으로까지 끌고 갔던 이슈다. 우리사회에서 그만한 위치에 있는 문제를 단지 참여로 풀 수 있을까.

수도권 맹주를 얘기하니 덧붙이자면, 손학규는 4.27 분당 승리를 통해 가능성을 이미 보여줬다. 수도권만 놓고 보면 손학규가 제일 근접해 있으며 이미 표로 검증도 받았다. 안철수의 경우는 PK이면서 수도권 정서에 맞다. 4~5% 박원순이 우위라는 우리 예측과 실제 격차 7%포인트 사이의 2~3%를 안철수가 만들어냈다면 상당한 힘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손학규는 이미 한 번 검증됐고, 안철수는 덜 됐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안철수가 중요한 계기에 자신의 가능성을 빠르게 보여줘야 한다?

이철희 : 어느날 갑자기 원래 가졌던 대중성만으로 현실 권력을 쟁취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은 지도자를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당장 내일 모레 대통령을 뽑는다면 국민의 안철수에 대한 판단은 지금과 다를 수 있다.

김호기 : 안철수가 가진 것은 세 가지다. 기업인으로의 안철수, 교수 안철수, 그리고 지난 24일 편지를 들고 나오면서 비로소 정치인 안철수가 확인됐다. 기업인이나 교수도 마찬가지지만 정치가 역시 어느날 단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상당한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대통령은 국가 운영을 위한 비정과 정책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고, 권력 투쟁을 위한 규범적 마키아밸리즘에 대한 훈련도 필요하다.

프레시안 : 야권의 통합 과정에서도 안철수의 역할이 있을까?

이철희 :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강제된 역할은 아니고 본인이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안철수의 과제는 정치를 통한 해법에 대해 인식을 보다 분명히 해야 한다.

김호기 :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정치에 뜻이 있다면 총선에 출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의도 정치에 대해 국민의 실망과 불신, 환멸도 있지만 여의도 정치에도 명암이 있다. 한미 FTA만 하더라도 결국 여의도 정치에서 결정해야 한다. 2012년 대선에 관심이 있다면 내년 총선에 출마해 짧은 기간이라도 정치적 훈련을 받아야 한다.

"박근혜와 맞서 문재인이 졌다? 오히려 가능성 확인했다"

프레시안 : 부산동구청장 선거를 보면 문재인 이사장이 적극 뛰었지만, 예상보다 낮은 득표율을 보였다.

이철희 : 예상된 성과를 얻었다고 본다. 부산시장 선거와 구청장 선거는 다르다. 부산에서도 동구라는 상징적 지역에서 36%를 얻었다면 다음 총선에서는 해볼만하다. 현재 부산 유권자가 지금의 민주당에 줄 수 있는 표는 그 정도가 최대치였다. 그것을 51%까지 늘리려면 민주당이 바뀌어야 한다. 오히려 이번 동구청장 선거에서는 충분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김호기 : 동구청장 선거는 일종의 예고편이다. 본편은 내년 총선에 있다. 구청장 선거는 PK의 꿈틀거리는 민심이나 정서를 다 반영하기에는 너무 작은 선거였다. 박근혜와의 경쟁에서 문재인이 패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번 결과가 문재인에게 교훈을 줬을 것이다.

프레시안 : 서울시장 선거가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상당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위기 요인에 대한 차분한 진단과 대안 모색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김호기 : 이번 선거에서 주목할 대목이 하나 있다. 조국, 김여진, 김제동, 김어준과 같은 이들의 역할이다. 그들의 활동을 하나로 표현하자면 '투표 행동주의' 또는 '정치 행동주의'다. 그런 점에서 진보적 정치세력에게 주문하고 싶다. 진보개혁정당이 가져야 할 태도는 일종의 '시민 행동주의'다. 시민들이 보여준 '정치 행동주의'를 거꾸로 이제 정치가 보여줘야 한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 사회가 가진 자원과 가치의 배분이다. 이를 잘 하기 위해서는 결국 비전의 혁신, 정책의 구체화, 소통의 강화가 필요하다. 감동의 정치는 다른 것이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 시민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야 한다.

이철희 : 크게 보면 지금 위기의 문제는 야권의 분립, 정치적 정체 이 두 가지다. 분립에는 통합이라는 과제가 이미 도출됐다. 오히려 혁신의 실종이 우려스럽다. 통합을 위해서도 혁신이 필요하고 혁신을 위해서도 통합이 필요하다. 동시에 추진하면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은 상대적으로 소흘했던 혁신의 과제를 다시 한 번 꺼내 놓고 정면으로 부딪혀야 한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프레시안(최형락)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