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희망버스'가 사회주의를 꿈꾸냐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희망버스'가 사회주의를 꿈꾸냐고?

[기고] 김대호-김기원 주장에 대한 반론

오늘도 김진숙지도위원은 크레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고, 희망퇴직을 거부한 수십명의 정규직 해고자들은 정리해고 철회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국회는 최근 한진중공업 사태의 해결을 위한 청문회를 8월 17일에 열기로 합의하였다.

이런 가운데 몇몇 연구자들은 시장경제하에서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는 점을 양비론적 입장을 제기하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그렇게 큰 악덕일 수는 없으며 희망버스가 지나치게 재벌기업을 몰아세워 이 때문에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조선산업과 한진중공업 사태에 관해 의견을 밝혀온 필자로서는 이런 분들이 제시하는 논거 가운데 사실에 부합하지 않거나 부적절한 내용이 적지 않아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의견을 제출한다.

첫째, 한진중공업 사태는 개별 기업의 사적인 문제인가? 지역사회의 문제인가?

예를 들어, 내가 일하고 있는 기업이 해외에 지금보다 열배나 되는 새로운 공장을 설립한 뒤, 어느 날 갑자기 해외공장의 물량감소로 어려워질 수 있으니, 기존의 국내기업을 구조조정하고 이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 대다수를 감원시켜야 한다면, "이런 해외공장 이전을 비난하고"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이 상식적인가? 아닌가?

한진중공업에서 대량감원 문제가 가시화된 것은 2010년 초부터이나 실제로는 이미 2009년에 1080여 명이 감원되었다. 물론 이들의 대부분은 하청노동자들이다. 그 뒤 1,2차에 걸친 대량해고가 올해 초까지 이어졌다. 이처럼 한진중공업은 이미 3년전부터 적어도 2000명 이상의 노동자를 해고하였는데, 이는 개별기업에서 의도적으로 실업을 발생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량감원은 기업이 구조조정을 의도할 때 동원되는 일반적인 방편이다.

그런 점에서 한진중공업은 대량해고를 통한 비용절감을 노리며, 비용절감은 곧 기업이익의 확대와 직결된다. 하지만 수천명의 정리해고와 그로 인한 대량실업의 발생은 지역사회에 해고 비용을 떠넘기는 것이다.

해고자와 그의 가족들이 로봇이 아닌 이상 일용할 양식을 위한 매일매일의 생존을 영위할 수밖에 없고, 이는 지역사회가 그 만큼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떠안는 꼴이 된다. 결국 한진중공업은 대량해고의 비용을 지역사회에 전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지적에 동의한다면 지금의 사태를 발생시킨 '원인 제공자'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묻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지난 2001년 대우자동차 강경투쟁의 무용론을 들면서 "(한진중공업)노조의 타협은 이해할 만하며 최선을 다했다"라며 이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업에 따른 제도적 장치가 극히 열악한 우리 사회에서 급작스런 대량해고는 먹고 살 길을 막아버리는 것이기에 해고된 당사자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더러워서 혹은 암울한 전망 때문에 희망퇴직에 응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도 있지만, 먹고 살기 어렵기가 마찬가지라면 악 소리라도 한번 지르고 잘리는 것도 '현실'이다. 알다시피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자 94명은 후자를 택했다. 쌍용차 투쟁이 그랬고 이번 한진중공업 사태가 그렇듯이 정리해고투쟁이 매번 끝장투쟁의 형태로 될 수밖에 없는 것도 결국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둘째, 한진중공업의 경영상태에 관하여

한진중공업의 대량해고사태는 한진중공업의 무리한 해외투자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우리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노사분규를 기억하고 있다. 사실 이 분규의 배경에는 조선불황과 그에 따른 구조조정 문제가 깔려있었다. 당시 조선불황을 학습한 빅3(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는 지난 90년대 말부터 시추선 등 해양플랜트 비중을 늘리는 대신 조선부문의 비중을 줄이기 시작했다(최근에는 풍력, 태양광 등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일본 조선업체의 경우 원전 부문으로까지 진출해 있다).

반면 한진중공업은 2000년대 초 조선 붐이 시작되자 수빅조선소를 중심으로 조선부문에 무려 1조1000억 원이라는 초대형 해외투자를 집중하는 이른바 '몰빵투자'에 골몰하였다. 필리핀은 조선산업에 요구되는 숙련노동력과 조선 인프라 자체가 전무한 황무지나 다름없는 곳이어서 고부가가치 선박의 건조가 쉽지 않다. 그 만큼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진중공업은 수빅조선소의 1단계 공사를 끝내고(2007년), 2단계 공사가 진행될 무렵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세계 조선시장은 사상 초유의 불황을 맞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빅3는 해외공장(블록공장)의 물량을 줄이거나 해외투자(수리조선소) 축소 등의 방식으로 대응한 반면 한진중공업은 정반대로 수빅조선소에 수주 물량을 집중하는 한편 영도조선소의 구조조정을 앞당기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영도조선소의 구조조정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1,2차에 걸친 대량감원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작금의 이러한 상황은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사태가 수빅조선소에 대한 잘못된 해외투자에서 기인한 바가 크며, 나아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와도 무관한 것임을 시사한다. 사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 법리에 따른 법원의 판결인 만큼 그 판결이 객관적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적으로 중대한 정리해고의 문제를 법원의 판단에 기대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쨌든 여기서는 한진중공업의 경영상태와 관련한 몇 가지 사실만 간추려 보자.

필자가 보기에 한진중공업은 지난 3년간 평균 영업이익이 3250억 원(2008년 3659억원, 2009년 3904억 원, 2010년 2186억 원)에 달한다. 이러한 영업이익은 대부분 조선부문에 만들어낸 이익이다. 나아가 한진중공업 경영진은 지난 해 12월 시가 170억 원에 달하는 주식배당을 할 정도로 경영상의 여유가 넘친다.

그런데 방송통신대 김기원 교수는 한진중공업의 경영상태와 관련하여 "한진중공업이 지난 해 적자를 기록했고 주식 배당도 실질적인 혜택이 없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소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작년 한진중공업의 당기순손실 517억 원은 무엇을 말하는가? 알다시피 한진중공업은 수빅 등 무리한 투자를 지속하면서 차입금(약 3조 원으로 추정)도 크게 늘어났다. 그 결과 지난 2년간 이자비용으로 지출한 금액만 3721억원(2009년 1796억 원, 2010년 1925억 원)에 이른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나 다름없는 형상이다. 요컨대 회사는 배를 만들어 많은 이익을 남겼지만 대부분을 이자로 날리는 바람에 적자가 발생했다.

주식 배당에 관해서도 시점에 따라 해석은 크게 달라진다. 지난 3년(2009~2011년)간 한진중공업의 주가가 저점이었던 시기는 2009년말~2010년초로 대략 2만 원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 1차 정리해고가 봉합된 2010년 3월 이후 한진중공업의 주가는 상승세를 지속했으며, 감소세를 보인 것은 근래 들어서다. 한진중공업의 주가는 1차 정리해고를 계기로 비용절감에 대한 상당한 기대감, 조선시황의 회복 요인 등이 겹치면서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회사가 2차 정리해고를 재빨리 처리했더라면, 김진숙과 희망버스라는 걸림돌이 없었더라면 한진중공업의 주가는 좀 더 상승했을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한진중공업의 주가 상승은 대량해고에 기댄 탓이 크다.

한진중공업의 누적된 영업이익률은 빅3의 두배에 이를 정도로 생산성도 매우 높다.

그런데도 한진중공업이 2009년과 2010년 두 해 연속 수주 '0'를 기록하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믿기 어렵다(반면 수빅조선소의 건조 물량은 2010년까지 총 18척이었고, 향후 2011~2012년까지 35척을 인도할 예정이다). 한국의 재벌기업이 그러하듯 한진중공업그룹의 계열사인 영도조선소와 수빅조선소는 법적으로는 서로 다른 기업이나 실체적으로는 같은 기업이다.

수빅조선소는 한진중공업이 100%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인데다 한진중공업의 300~500명의 핵심인력이 수빅 건설 초기부터 상주해 있을 정도로 인적 물적 자원을 자유롭게 이동, 지원한다. 선박 수주를 위한 영업팀 또한 통합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중공업 영업팀이 수주한 선종에 따라 현대중공업, 미포조선, 삼호조선소 등으로 할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조건하에서라면 2010년도 수빅조선소의 신규 수주가 31척이고, 영도조선소의 신규 수주가 0척이라는 주장은 동일 기업내에서 제시된, 그야말로 장부상의 수치나 다름없다. 한진중공업으로서는 수빅의 31척에 영도의 0척을 더해 총 31척은 변함이 없으며, 기업회계상으로도 지분법에 따라 수빅의 손익을 한진중공업의 손익으로 잡고 있기도 하다.

셋째, 희망버스-3자개입 금지와 정리해고에 관하여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하여 나타난 새로운 사회현상이다. 3차까지 이어진 희망버스가 지지부진하던 한진중공업 투쟁에 중요한 촉발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렇게 되자 일각에서는 희망버스를 비난하며 한진 노사문제에 제3자 개입금지를 주장하고 있다. 사실 3자개입 금지는 지난 80년 국보위 시절에 노조활동을 탄압하기 위해 입안된 대표적인 노동악법 조항이었으며, 1997년 노동법 개정을 통해 폐지된 것이다. 제3자 개입금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지원을 막고 있다는 점에서 반인권적 성격을 지닌다.

이 때문에 과거 오랫동안 국제노동기구(ILO)는 제3자 개입금지의 인권침해 요소를 지적하며, 한국정부에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노사 문제에 있어서 노와 사 이외에는 모두가 제3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제3자 개입 금지가 논의 되려면 먼저 수천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한진중공업이라는 사적 기업을 비호하고 있는 정부의 개입부터 중단해야 할 것이다.

희망버스에 관해 또 한가지 지적할 것은 정리해고에 관한 시각이다. 김기원 교수는 "희망버스를 주도하는 분들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구호로 내걸고 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은 자본주의 시장체제가 아니다. 국가가 계획에 의거해 노동력을 배분하는 사회주의 체제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심히 과장된 느낌이다. 필자가 부산역과 영도거리에서 본 수많은 사람들(그 중에서 휠체어를 타고 온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남지만) 중에 사회주의를 꿈꾸며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조직화하려고 온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들 중 몇몇은 그저 트위터로만 보아온 오십이 넘은 중년의 한 아줌마 노동자를 응원하러 온 것은 아닐까? 아니면 요 몇 년 사이 청년알바에서 사내하청까지 온갖 비정규직이 판을 치는데다 생활의 무게는 점점 팍팍해지는데 어디 풀 곳은 없고 그러다 한진중공업 사태가 터지자 이참에 희망버스를 탄 것은 아닐까?

만약 이런 식으로 사회주의체제가 규정된다면 미국은 벌써 사회주의국가로 불려야 마땅하다.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미국이 지난 3년간 양적완화라는 명목으로 쏟아 부은 돈만 무려 3000조 원에 이르며, 이 돈으로 미국정부는 금융기업과 제조업을 살리고, 일자리 창출에 밀어 넣었으니까.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유연성은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도 그 스펙트럼이 매우 크다. 시장논리를 강조할 수는 있겠지만 규제와 계획이 없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것도 도대체 가능할 리가 있겠는가?

김대호 소장은 정리해고를 좀 더 적극적으로 변호한다. 그는 영도조선소의 물량 부족을 걱정하면서 "필리핀에 조선소를 건설, 운영하는 것은 회사 문을 닫는 것보다야 백번 잘한 일 아닌가? 이는 대부분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좋은 것 아닌가?" 라고 하면서 "정리해고를 극악한 악덕으로 여긴다면 기존 고용은 유지될지 모르지만 신규 고용은 여간해서 창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고 말한다.

필자는 앞에서 한진중공업의 수빅 투자가 애시당초 '역주행' 부실투자였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으니 이에 관한 반박은 논외로 치자. 만약 이 시점에서 영도조선소의 대량감원이 예정대로 진행되고,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2015년까지 영도조선소가 완전히 정리된다면 누구한테 좋은 일일까? 그것은 아마 한진중공업의 대주주 및 일부 경영진들로 이들은 추가적인 주가상승으로 한 몫을 챙길 것이다. 또 한 부류는 정리된 영도조선소 부지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토건족과 부동산업자들일 것이다. 지금의 영도조선소 부지는 조망권이 아주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정리해고를 악덕으로 여겨 신규고용이 창출되지 않는다는 논리는 더욱 이상하다. 정리해고를 미덕으로 여기면 신규고용이 창출된다는 건가? 그래서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가 보장되면, 한진중공업에서 신규고용이 창출될 것으로 보는가? 오히려 한진중공업은 초대형 투자에도 불구하고 조선불황이 닥치자 수빅조선소와 2만 명의 필리핀노동자의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국내 영도조선소의 대량감원에 나선 것이 아닌가?

혹시 2차 정리해고 이후 조선시황이 좋아지면 신규고용이 창출될까? 신규고용은 늘 수 있겠지만 이 경우 비정규직으로 대체될 가능성은 99% 이상이라고 본다.

그 외에도 조선노동력은 숙련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은데, 이들에 대한 대량해고는 노동시장 측면에서 볼 때 그 만큼의 숙련노동력의 반영구적 상실을 의미한다. 이는 일종의 시장실패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유럽의 주요 조선국가들은 지난 70-80년대 조선 불황기 때 20만 명 이상의 조선 노동력을 노사합의하에 정리하였다가 커다란 실패였음이 드러났다. 1990년대 조선시장이 회복되었지만 이미 사라진 노동력을 다시 불러올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