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오류 파동으로 국제적 망신을 산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3일 논란 끝에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 상정됐다. 야당 의원들은 물론 여당에서도 "정부의 안일한 발상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 김동철 의원은 "자유무역협정은 어떤 다른 법률안보다도 국민경제와 일상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정부가 오류를 시정해 다시 제출을 했지만, 아직도 번역에 오류 내지 누락이 발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날림으로 처리하면 나중에 문제" vs "비준절차 미루면 우리가 손해"
김 의원은 "50개 이상의 조항에서 영문본에는 있는 'any'라는 형용사가 국문 번역본에선 누락됐다"며 "아무리 한-EU FTA가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이라 해도 법적인 흠결이 있는 상태에서 상정해 논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당 송민순 의원도 "영어본, 국문본, EU 각 국가에 따른 개별적인 언어 등 23개의 다른 언어의 정본이 존재하는데 번역에 따라 뉘앙스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며 "급하다는 이유로 날림으로 처리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송 의원은 "쉼표(,) 하나로도 완전히 뜻이 달라지기도 한다"며 "불확실성을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라도 협정문은 정확하게 직역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은 "중대한 실수이긴 하나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수준이고, 이미 EU 의회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비준된 사안"이라며 "우리도 비준안 상정은 물론 조속하게 처리해야 할 시점이 아니냐"고 말했다.
같은 당 김충환 의원은 "비준절차를 늦추면 우리 국익에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종훈 "애초부터 'any' 번역 안한다는 원칙으로…"
여야 간의 논란에 대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문학 소설에서도 직역과 의역을 염두에 두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any'라는 형용사 문제도 애초에 문맥상 반드시 필요하지 않으면 번역할 이유가 없다는 원칙을 세웠다"며 "전체 의역상 크게 해석의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양 측에서 FTA는 오는 7월1일 발효하도록 돼 있다"며 "우리 측에선 비준안을 통과시킨 이후에도 11개 법률안을 개정해야 하므로 이번 회기 내에 반드시 비준동의안을 처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속한 상정과 처리를 주문했다.
하지만 질타는 이어졌다. 민주당 최재성 의원은 "번역 오류로 망신을 당했는데, 원인제공을 정부가 하지 않았느냐"고 꼬집었고, 한나라당 김충환 의원조차 "그 동안 정부는 잘못된 번역본을 그냥 통과시키려고 했는데, 이런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박주선 의원은 "외통부는 (영문본과 국문본을 제외한) 21개 언어본을 수령한지 불과 1주일 만에 비준동의안을 다시 국회에 제출했다"며 "본 의원이 확인한 바 21개 언어본에 대한 우리 정부의 검증은 없었다, 정부가 이처럼 서두르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앞으로 한-EU FTA 협정문에서 또다른 오타나 번역 오류가 발생할 경우 김성환 장관은 물론 김종훈 본부장은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에 김종훈 본부장은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 앞으로 보다 충실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겠다"라고 답했다.
결국 비준동의안은 진통 끝에 여야 합의로 외통위에 상정됐다. 한나라당은 비준동의안을 다음 주 법안심사 소위 논의를 거쳐 오는 9일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통과시킨 뒤 본회의에 상정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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