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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증세는 보편적 복지의 최소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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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부자 증세는 보편적 복지의 최소 조건"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8>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복지가 이처럼 대대적인 유행이 되기 전, 복지는 진보정당의 주전공이었다. 제1야당의 지도부 가운데 한 사람이 최근 들고 나온 부유세도 사실은 이미 2002년 민주노동당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때는 외로웠다.

비록 지금은 당적이 다르지만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를 주목한 것은 그래서다. 이미 지난해 사회복지세라는 복지만을 위한 목적세 도입 법안을 발의한 바 있는 조승수 대표는 최근에는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과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라는 내용의 공동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조 대표는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을 모색하는 연쇄 인터뷰, 여덟 번째 손님이다. 대담은 지난 9일 김윤태 고려대 교수가 진행했다. 편집자.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1> "복지국가 단일정당 못 만들면 한나라당에 필패한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2> "작은 차이 때문에 'MB후예'의 재집권을 용인할텐가?"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3> "증세 없는 보편적 복지는 허구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4> "장래희망이 '기초생활수급권자'라는 아이에게 우리는?"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5> "2012년 민주진보정부, 아! 이건 된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6> "'돈부터 내라'면 복지 자체가 안 된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7> "지출구조 개혁이 우선, 마지막 기댈 수단이 증세"
▲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프레시안(여정민)

"박근혜 복지도 가짜고 민주당 복지도 허구다"

김윤태 : 최근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과 증세 없는 보편적 복지는 허구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같이 열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부유세를 주장하고 조승수 대표는 사회복지세법안을 이미 발의한 바 있다. 복지를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해 달라.

조승수 : 다소 거친 표현이지만, 복지 주장은 가짜 복지와 진짜 복지로 구분할 수 있다.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서는 3가지가 필요하다. 철학, 재원 대책, 그리고 실현을 위한 정치전략. 이를 놓고 크게 세 가지 입장이 있다.

복지를 말하면서도 재원은 함구하거나 얼버무리는 박근혜식 복지가 하나다. 박근혜 전 대표는 여야를 통틀어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다. 그러나 대표적인 가짜 복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장주의, 이명박 대통령의 '747 경제성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최근에는 "복지는 돈 문제가 아니라 관심"이라고까지 하지 않나. 복지 실현 의지가 없다는 얘기다.

이와 조금 결은 다르지만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증세 없이 복지국가가 가능하다는 것은 허구다. 강한 집권 의지를 드러내는 것은 좋지만 표를 의식하고 있다. 그 점에서 박근혜식 복지의 연장선상에 있다. 1차 발표라고 최근에 내놓은 재원마련대책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부가 임시투자 세액공제가 일몰제 법안이니 폐지를 확정하자는 것을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다. 비과세 감면을 얘기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런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 철회는 동의하면서도 소득세, 법인세의 최고구간을 높이는 것은 반대한다.

말과 행동이 같지 않다. 사실 비과세 감면은 4~5조 밖에 되지도 않고, 농어민이나 일정 소득 이하 근로자 등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성과도 불확실하고 실현 가능성도 낮다. 그렇게 보면 결국 세금이 정부 수입의 대부분인데, 증세 없이 복지를 확대한다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 논의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세 번째로 재원 마련 없이 실현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논쟁이 열린 마당에 더 적극적으로증세와 재원을 얘기해야 한다. 물론 그 전 단계가 부자감세 철회고, 그 뒤에 부자증세와 보편증세의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

"부자증세, 보편적 증세로 가기 전 단계"

▲ ⓒ프레시안(여정민)
김윤태
: 조승수 대표의 입장은 결국 세 번째인 셈이다.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여론조사를 보니 "세금을 올려도 복지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 약간 더 높게 나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증세 반대 여론이 비등하게 높다. 그들을 설득할 논리는 무엇이 있나?

조승수 :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현재 증세에 대한 거부감은 (지금 세제에) 익숙해진 측면이 있고, 복지 시스템이 너무 약해서 돌아오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의미한 것은 최근 <한겨레>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 복지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50%가 넘었고, 그 전의 통계청 조사에서도 우리사회가 불공평하다는 의견이 70.1%나 나왔다는 점이다. 사회복지세나 부유세가 부자증세라는 점을 주목했으면 하는 이유다. 부자증세는 사실 보편적 복지제도의 최소 조건이지 충분 조건은 아니다. 굳이 개념적으로 얘기하자면 선별적 복지다. 수혜자와 납세자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단계적으로 가자는 이유는 증세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부자증세를 통해 우선 국민의 5대 불안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면 국민들 스스로 '이런 복지국가라면 세금을 더 내겠다'고 나올 수 있다. 보편적 증세를 통한 보편적 복지까지 가기 전까지는, 부자증세를 통해 복지에 대한 체감을 실현시키는 것이 현실적이다.

김윤태 : 조승수 대표가 대표 발의한 사회복지세법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조승수 : 진보신당이 최근 '사회연대 복지국가' 구상을 내놓았다. 재원만 놓고 보면 1차로만 대략 60조 원이 필요하다.

복지에는 한국적 특성이 감안돼야 한다. 그 중 핵심이 바로 노동시장 양극화다. 노동시장을 제대로 개혁하지 않고서 복지국가로 갈 수는 없다. 노동시장에서 얻는 근로소득이 1차 분배고 조세는 재분배, 즉 2차 분배기 때문이다. 1차 분배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노동시장에 우선 20조 원을 투입해야 한다. 녹색 일자리, 복지 일자리를 70만 개 늘리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40만 개, 총 11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또 서민의 5대 불안, 보육에서 노후까지를 해결하는 데 40조 원이 든다. 둘을 합치면 60조 원이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의 조세 부담률을 적용하면 우리도 80조 원을 걷을 수 있다. 북유럽형 복지국가로 가려면 우리 경제 규모에서는 대략 100조 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60조 원은 1차로 실현될 수 있는 재원 규모다. 이는 우리 국민들이 겪고 있는 사교육비 지출 부담, 민간 의료보험 부담, OECD 최고 수준인 집값만 해결해도 보편 증세에는 동의해줄 수 있다. 사교육비만 연 21조 원이고, 민간 의료보험이 25조 원이나 된다.

그런 조세 개혁을 위한 1단계로 사회복지세를 얘기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 400만 원 넘는 소득세, 5억 원 이상의 법인세를 납부하는 개인과 법인에게 15~35% 정도 누진세를 부과하자는 얘기다. 전체적으로 보면 고소득자의 5%, 기업의 1%만 해당된다. 그리고 이 돈은 사회복지 목적으로만 지출하도록 했다. 걷은 돈의 절반은 지방자치단체에 교부하고 나머지는 중앙정부가 복지 분야에만 쓰자는 얘기다. 돈의 용처는 추가적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사회복지세는 사실 '마중물'이다. 왜냐면 1차로만 60조 원이 필요한데 사회복지세로 얻을 수 있는 것은 15조 원 뿐이다.

사회복지세는 과세 여건이 이미 마련돼 있다. 다음 총선에서 여기에 동의하는 세력이 다수당이 된다면 바로 실현이 가능하단 얘기다. 반면 부유세는 일종의 보유세기 때문에 실현에 앞서 최소 2~3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증세는 집권 초기에 실현하지 않으면 어렵다. 국민들의 복지에 대한 체험 없이 모두 준비해서 집권 후반기에 보여주겠다고 하면 또 '거봐라. 똑같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그에 앞서 마중물로 사회복지세는 당장 실현 가능한 제도로의 의미가 크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복지의 공공성 훼손시켰다"

김윤태 :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의 복지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최근 민주당이 보편적 복지를 강령에 넣었고 무상 시리즈를 통해 보편적 복지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조승수 : 최근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프레시안> 인터뷰를 보니 "복지국가 하루 하다 쓰러지는 것이 아니지 않냐. 투입은 얘기 하지 않고 산출만 말하고 있다"고 하더라. 어떤 정당이 정책을 바꾸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역시 그 정당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가를 통해 볼 수밖에 없다.

민주당 정부 10년을 얘기하려면 고용시장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시장 중심의 노동정책을 두 정부 모두 그대로 가져왔다. 대표적인 것이 비정규직법이다. 당시 민주노동당이 사용사유제한을 강력하게 얘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지금 비정규직법은 차별 시정 부분에서의 효과는 없지 않지만 최근 늘어나고 있는 간접고용은 전혀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 홍익대 청소 노동자가 대표적인 사례다.

또 복지의 공공성을 상당히 훼손시켰다. 양적으로는 늘어났는지 모르지만 두 정부 모두 전통적인 가족 복지에 여전히 큰 축을 두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의료 민영화다. 기존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도 전혀 줄이지 못했다. 사실 통계조작도 있었다. 주택융자는 엄밀히 말하면 OECD 기준으로 '사회복지 지출'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분야까지 다 포함시켜 복지 지출을 25%까지 올렸다고 주장했다. 솔직하지 못하다. 그 전 정부에 비해 다소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두 정부에서도 복지 지출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것은 이른바 '비전 2030'이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추진된 것도 불행한 일이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봐도 문제다. 2030년까지 약 1100조 원 이상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했으면서도 재원 마련 방안은 지금 민주당의 주장과 똑같다. 세출구조 개혁, 비과세 감면 축소만으로 된다는 것이다. 물론 조세제도 개혁을 언급하긴 했지만 복지 확대를 위해 꼭 필요한 증세 얘긴 전혀 없었다. 장밋빛 청사진을 그려 놓았지만, '비전 2030'은 민주정부 10년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 ⓒ프레시안(여정민)

김윤태 : 두 정부가 신자유주의적인 성격이 너무 강했다고 평가하는 것인가?

조승수 : 노무현 전 대통령도 회고록에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받아들인 것이 뼈아프다고 했다. 그런데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분들은 정작 아직도 명쾌하게 정리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문제가 있었다' 내지는 함구다.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복지를 위해서는 좋은 일자리가 가장 우선인데, 지금 우리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 임금의 50%도 못 받는 구조로 엄청나게 늘어나 있다. 이것 자체가 두 정부의 뼈아픈 실패라고 본다.

김윤태 : 노동시장을 보면 그렇지만 기초생활보호제도 등 김대중 정부가 복지의 틀을 마련하고 노무현 정부 역시 복지재정을 늘려 와 복지국가의 초기로 볼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조승수 : 영세민 보호제도로 국민기초생활제도를 도입하나 것은 분명 진전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력과 비슷한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그 제도는 너무나 기초적인 것이다. 또 제한적인 제도다. 주요 작동 원리도 시장주의적 접근이다. 그것을 놓고 보편적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토대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힘들다고 본다.

"부유세 얘기했던 민노당의 조심스러운 태도, 납득 안 된다"

김윤태 : 진보신당이 얘기하는 사회연대 복지국가 구상은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를 모델로 한 것인가?

조승수 : 그렇다. 스웨덴은 국민소득 1만 달러 도달했을 때 복지제도의 기초를 시행했다. 일정 수준이 지나면 경제력이나 소득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 제도를 실현시키는 사회적 합의다. 결국 정치 주체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금 정도의 소득과 경제력에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고도 성장은 불가능하다. 현재와 같은 기본 성장 구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좀 더 안전한 사회로 가야한다. 시장질서에 기초한 선별적 복지로는 우리 사회 양극화 구조가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김윤태 : 이명박 대통령은 '스웨덴 국왕조차 스웨덴식으로 복지 재정을 늘리면 안 된다고 얘기했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조승수 : 북유럽은 서구에서 안정적인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기존의 복지 체제가 가져 온 한계를 보완하자는 논쟁은 벌어지고 있지만 그것을 한 번도 복지를 제대로 해보지 않은 우리나라와 바로 비교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식의 소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직원들한테 '왜 스웨덴의 발렌베리는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지 연구 좀 해봐라'고 했다는데, 그런 시각으로는 아무리 연구해도 답이 나올 수 없다.

복지국가 역시 나라마다 특수성과 조건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이 가장 잘 검증돼 있는 안전한 사회다.

김윤태 : 증세에 대해서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과는 또 다른 입장인데?

조승수 :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얘기하는 것은 소득세 최고구간과 법인세 세율을 올리는 증세다. 이는 사실 보편적 복지를 위한 본격적인 조세 제도로서의 증세라고 보기에는 그 규모나 내용이 약하다. 부유세는 대통령 선거 때의 공약이었지만 사실상 민주노동당의 당론이나 다름없는데, 이 후속 작업을 하지 못했다. 뼈아픈 실수다.

최근의 민주노동당은 조심스러운 듯한 태도다. 증세가 필요하긴 하지만 실현 가능하려면 국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납득이 안 되는 지점이다. 어쨌든 민노당은 소수정당이다. 소수정당은 어떤 제도가 실현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그 제도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고 쟁점화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꼭 사회복지세에 동의해 달라는 것은 아니지만 복지 재원 관련 다른 안이라도 적극 내놓아야 한다는 의미다. 민주당까지도 복지 논쟁에 뛰어든 상황에서 민주당을 견인해 나가는 역할을 진보정당이 해야하는 것 아닌가. 지금은 너무 점잖은 야당을 하려고 한다.

"유시민, 파티에 차려진 식단에 동의하면 본인이 와야한다"

▲ ⓒ프레시안(여정민)
김윤태
: 야권연대와 진보대통합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민노당,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이 한 데 모여 진보대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은 제외하고 있다. 반면에 민주당 일부는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연대와 통합을 주장하는데 어떻게 보는가?

조승수 : 최근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연석회의가 만들어져 있다. 과거 진보정당 운동의 오류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만의 '도로 민주노동당'의 통합이 아니라 새로운 진보 세력이 대거 참여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양적인 규모 뿐 아니라 기존에는 진보정당 운동에 참여하지 않던 세력이 함께 하고 있다. 한국 정치는 여전히 3정당 구조가 유효하고 필요하다. 다른 말로 하면 진보정치세력의 독자성이 아직은 유효하고 중요하다.

2011년까지 새 정당을 건설하자는 데는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뤘다. 신자유주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비정규직 철폐 등에 동의하는 세력이라면 다 함께 하기로 했다. 민주당과는 연대는 할 수 있지만 통합은 어렵다고 본다. 국민참여당 역시 우리가 제시하나 기준에 동의하면 가능하겠지만 그쪽이 먼저 정리해야 한다. 내가 채식으로 식단을 차렸는데 그 사람이 채식에 동의하면 오는 것이고 육식을 해야겠다고 하면 못 오는 것이다. 과거 10년의 정부 문제를 스스로 정리하고 와야지 정리하지 않고 '초대 받지 못했다'고 말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김윤태 : 국민참여당이 앞서 제시한 기준들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선거를 앞두고 정책연합이나 후보 단일화 논의는 가능한 것인가?

조승수 : 물론이다. 6.2 지방선거는 사실 야권연대의 실패였다. 과정을 보면 그렇다. 5+4도 결렬됐다. 다만 결과적으로 몇몇 곳에서 조정이 되면서 성공한 것처럼 비춰졌을 뿐이다. 야권연대라 하더라도 가치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정치세력과도 정책연합이나 후보 단일화는 유연하게 할 수 있다.

"민주당과 연대, 진정성만 확인되면 단계적 접근도 가능"

김윤태 : 민주당이 한미 FTA나 비정규직 문제에 뜻을 같이 한다면 통합도 마다하지 않는다?

조승수 : 같은 얘기다. 지난 지방선거 때도 '반MB 가치 연대'를 제안했는데 그쪽에서 지방선거와 한미 FTA가 무슨 관계냐고 나왔었다. 총선은 전국 선거다. 내용이 제대로 논의되는 연대가 되어야 한다. 만일 민주당이 진보진영의 가치와 원칙에 동의한다면 그야말로 진보와 보수의 구도로 바로 가는 것이다.

사실 연대는 상대가 있다. 자기 주장을 100% 관철시킬 순 없는 것이다. 선거 국면에서는 조금 수위를 낮추는 것도 열어놓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정책 중심의 가치 연대가 되어야지, 무조건 '이명박을 넘는 것'만이 선이라고 주장해서는 곤란하다. 모든 세력이 모여 국민의 정부를 만들고 참여정부를 만들었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배신감을 느꼈던 오류를 또 반복할 수는 없다. 물론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저지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중요하기 때문에 진정성이 확인된다면 단계적 접근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사실 우리 정치 지형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른바 양당 구조로 수렴되는 정치가 된 것이다. 한쪽이 굉장히 강하면 다른 한쪽도 큰 세력을 중심으로 모이자는 의견이 강해진다. 이 상황에서 민주당 정부 10년을 반성하라고 말할 필요는 없을지 몰라도 앞으로 당신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는 분명히 하자는 얘기다. 그리고 나서 정책적 연대가 가능할지 후보 단일화까지 갈 수 있을지를 판단해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같은 얘기인지도 모르지만 '먼저 반성부터 하라'고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진보정당, 과거 부정적 유산 잘 정리 못 하면 존재 사라질 수도"

▲ ⓒ프레시안(여정민)
김윤태
: 진보진영 내부 통합의 전망은 어떻게 보나? 민주노동당에서 분당해 나오면서 불거졌던 종북주의 논쟁의 상처도 서로 컸다.

조승수 : 내부 논의가 한편으로는 활발하고 한편으로는 복잡하다. 우리 당이 독자존재의 의미가 있고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존재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정치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한국 사회의 정치적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3월 27일 당대회에서 1차적으로 정리될 것이다. 그리고 올해 여름이면 큰 틀의 판단이 내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진보정당의 역사가 사실 그리 깊지 않다. 또 분단이라는 특수하고 열악한 조건이 있다. 영국 노동당은 창당 50년 만에 집권했다. 브라질의 노동자당(페테당)도 20년 만에 집권했다. 진보정당의 집권은 사실 쉬운 문제는 아니다. 또 한국 사회는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진보정당이 태동하자마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지지층도 만들어야 하는 동시다발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 진보진영 스스로 자기 혁신을 하지 않으면 결국 소수자로 전략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사실 종북주의와 패권이 다른 것이 아니다. 오랜 민주화 운동의 경험에서 나타난 이른바 운동권적인 노선 대립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또 각 개인이 개인으로 일어서야 하는 조건이다. 인터넷이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보더라도 과거처럼 대의나 명분에 대한 공감과 공분보다는 작은 정서적 수단이 사회적으로 작동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세대의 이런 정서적 변화를 수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통적으로 진보 정당의 지지 기반인 노동자 조직이 그 예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낮은 조직율을 보이고 있지 않나. 그나마도 대기업 남성 노동자 중심이다.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부정적 유산을 어떻게 잘 정리하고 새로운 시대 조건에 맞는 현대적 진보정당으로 거듭날 것인지 자기 노력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빠른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존재를 확인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한국 정치가 다시 보수 양당 구도로 갈 수도 있는 중차대한 시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김윤태 : 복지국가에 대한 구상은 앞서 들었으니, 그 외에 꿈꾸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있다면?

조승수 : 생태에 기반한 복지국가다. 초록 복지국가가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최근의 구제역 사태에서도 바로 그 부분이 빠져 있다. 복지국가 시스템을 통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대량생산 시스템으로는 결국 사람이 행복할 수 없는 조건이 된다. 당장 모든 국민에게 채식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정치적으로 생태에 관한 철학과 개념이 도입될 시기다. 평등 없는 생태는 공허하고 생태가 없는 평등은 죽음의 욕망이다.

김윤태 : 긴 시간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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