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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만큼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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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만큼 정치적이다

[기고] 용산참사 판결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보며

첫번째 이야기, 용산참사 재판에서

10월 28일 수요일 오후 2시 중앙지방법원에서 용산참사 철거민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다. 2명에게 징역 6년, 5명은 징역 5년, 집행유예는 2명,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3명의 철거민들은 법정 구속됐다. 얼마 뒤면 딸 결혼식을 앞둔 아버지도 용산사건의 후유증으로 지팡이를 짚고 재판받으러 법원에 왔다가 법정에서 구속됐다.

"저기 떠들고 구호외친 사람 잡아서 구속시켜!"

검사 구형내용을 그대로 베낀듯한 판결에 항의를 하며 재판정을 퇴장하던 방청객에게 판사가 외친 말은 "저기 떠들고 구호를 외치며 퇴장하는 사람 잡아서 구속시켜"라는 악다구니 소리였다. 왜 그렇게 들렸을까? 나에게 판사의 그 목소리는 법정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판결의 부끄러움과 치부를 감추려는 몸부림이었다.


▲ 용산 농성자들에 대한 유죄판결 이후 혼절한 유가족ⓒ프레시안

판결문에서 가장 가소로운 소리로 들렸던 것이 "철거민들의 불법행동은 대한민국 국가 법질서의 근본을 유린하는 행동으로 법치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으며 중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구절이었다. 누가 반사회적이고, 누가 대한민국의 상식과 정의를 파괴하는지 판사 자신의 양심에게 물어볼 일이다. 법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땅의 법률은 상식을 유린하고 정의를 파괴하고 불의를 정당화한다. 만인에게 평등한 게 아니라 만 명에게도 평등하지 못한 게 대한민국 법률이다.

아비를 죽였다는 죄목, 지존파의 절규는 대한민국의 현실

누군가 옆에서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너희 사법부가 이건희, 정몽구와 같은 재벌들, 높은 권력자들에게 그 엄정하다고 하는 법치주의의 잣대를 제대로 들이댄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가? 재벌들에게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무죄, 이러저러한 경제적 사회적 공헌을 이유로 정상 참작하여 집행유예 등등 그리고 가진 것 없는 철거민들에게는 목숨 잃고 다치고 구속된 것도 억울한데 제 아비를 죽였다는 죄목을 씌우고 중형을 선고한다. 지존파의 절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슬프지만 진실이다.

고무줄 판결이 사법부 존립근거 스스로 위협

망루에서 화염병을 본 적이 없다는 특공대원들의 진술은 부정하면서 화염병이 발화와 참사의 핵심원인라고 우긴다. 누가 던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철거민들이 던졌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법률의 이름으로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사상의 중범죄를 엄정하게 처벌하겠다고 판결한다. 이런 판결을 하고도 국민들이 사법부를 정의의 심판자라고 신뢰하기를 바란다면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이다.

여러 여론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정부기관 중에서도 아주 낮은 중하위로 나타난다. 누가 그 불신을 만들어내는가? 바로 사법부 자신이다. 정치 권력자와 재벌과 같은 경제 권력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기는 태도, 정의와 진실의 기준이 아니라 정치논리에 근거한 고무줄 판결이 스스로의 존립근거를 위협하는 것이다. 10월 28일 사법부의 판결은 사법부를 살인하는 판결이다.

거창하게 민주주의를 언급할 필요도 없어

26일 월요일부터 용산범대위 대표자 5명이 용산참사 해결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문규현 신부가 용산참사 해결을 촉구하는 단식을 하다가 쓰러져서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고, 청와대와 정운찬 국무총리, 서울시는 서로 폭탄 돌리기 하듯이 책임을 미루는 상황에서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단식농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노숙농성에 들어가자마자 경찰은 곧바로 단식자 전원을 연행하였고, 48시간을 30분 앞두고 석방하였다. 불법집회를 했다는 것이 혐의였다.

그 대표자들은 이전에 1인시위를 하다가도, 기자회견을 하다가도 불법집회라고 연행되었고, 또 용산참사 해결촉구 3보1배를 하다가도 연행되었다. 이제는 단식을 하겠다고 거리 그것도 인도에 주저앉았다가 또 연행된 것이다. 거창하게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것도 없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입을 틀어막고, 오로지 정부방침에 순종할 자유 비판하지 않을 자유 그리고 숨 쉴 자유만을 주겠다는 것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역시 그들의 결속은 강했다

그리고 28일 용산 재판 결과가 나왔다. 사실 재판 전에 조금은 기대한 것이 사실이다. 워낙 힘들게 버티고 있는 유가족들에게 재판 결과가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10개월째 이명박 정부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지쳐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주 가끔씩 보이는 의로운 판사들의 판결을 보면서 그 행운이 우리에게도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한나라당, 사법부의 정치적 담합과 결속은 강하고 굳건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로 끝났다. 희망은 민중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것이지 누군가의 선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달은 것이 그나마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두 번째 이야기, 미디어법 판결이 있었던 헌법재판소 앞에서

하루 뒤인 10월 29일 목요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에서 신문법, 방송법 등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청구에 대한 선고가 있었다. 구름처럼 많은 언론사의 취재경쟁 그리고 조마조마하며 기대하는 사람들이 헌법재판소 앞으로 몰려들었다. 방청인원이 한정된 - 용산참사의 선고재판도 방청객을 한정하였다 - 탓에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핸드폰 DMB를 켜고 헌재의 선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환호는 분노로, 기쁨은 절망으로

신문법, 방송법에 대한 선고에서 질의응답 기회 박탈 등 의원들의 법률심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이 인정되었고, 대리투표 등의 행위에 대해서는 위법한 것이라고 인정되었으며, 일사부재의의 원칙에 근거하여 재표결을 한 것도 위법하다고 헌법재판소는 결정했다.

각각의 쟁점에 대한 입장을 통해 총체적으로 신문법과 방송법이 위법한 결정과정을 거치면서 의원들의 권한을 침해한 것으로 결정한 것이다. 이 과정을 방송을 통해 듣고 있던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만세를 외쳤다. 한사람은 피켓을 들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눈물이 난다고 하였다.

그러나 바로 몇 분 뒤, 각 법률의 처리 과정에서의 권한침해와 위법한 사실을 인정하지만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신문법, 방송법의 효력을 무효화시키는 요청은 기각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고 당황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법률가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의 환호는 분노로, 기쁨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누구는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이러저러한 혈중알콜조사를 해보니 음주를 하고 운전한 것은 분명한데 결론적으로 음주운전이 아니라고 판정한 것과 다를바 없다, 이러저러한 조사를 해보니 위조지폐인 것은 분명한데 이 위조지폐를 유통시켜서 사용할지는 당신들이 알아서 해라' 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규탄하였다.

토지공개념, 관습헌법, 종합부동산세, 국제중...

헌법재판소는 87년 민중항쟁의 결과로 탄생한 소중한 제도적 성과이다. 그러나 제도가 그런 과정을 거쳐서 탄생하였다고 하여 그 실천이 항상 올바르거나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헌법재판소를 대표로 하여 사법부가 보여주고 있다. 사법부의 보수화, 특히 사법 상층부의 정치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사법부가 정의와 진실의 잣대로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의 의중과 기득권 집단의 이해를 옹호하는 것이 1차적인 잣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90년대 초반에 헌법재판소는 토지공개념 관련 3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유의 핵심은 사유재산의 보호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근본 정신을 훼손하는 입법이라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사회적 공평이라는 헌법적 정신은 이들에게 2차적일 뿐이다.

멀지 않은 시간인 바로 몇년전에 헌법재판소는 행정수도 이전 입법에 대해 관습헌법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가면서 위헌 판결을 했다. 헌법재판소가 새로운 헌법을 제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뿐인가, 종합부동산세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는 위헌판결을 하였고, 정반대로 교육형평성과 평등교육을 침해한다고 위헌소송을 낸 국제중학교 사건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들은 '그만큼' 정치적이다

헌법재판소와 용산참사 1심 재판부의 판결들을 관통하는 기조는 단 한가지이다. 사회정의와 공정함이 아니라 기득권과 권력자의 이해관계가 사법결정의 1차적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서글프지만 10월 28일 용산참사 1심 판결과 29일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 확인한 사법현실은 - 비록 몇몇 의로운 사법부의 성원이 있지만 -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의 모습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느끼고 있는 것이 이명박 정부 2년의 시간이다. 결국 이러한 부당하고 불의한 현실을 바꾸는 것은 기득권 세력을 압도하는 민중들의 정치적 힘과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고 확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법부를 비롯한 그들도 힘이 있다면 우리를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만큼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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