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역주행시대와 구동존이(求同存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밖의 서거와 5월 29일 서울광장의 수십만의 추모인파는 87년 체제에 대한 MB식 도전에 실질적인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6월 항쟁의 승리로 이룬 87년 체제는 비단 직선제쟁취라는 정치적 민주화만을 결실로 거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87년 체제는 정치적 민주화와 더불어 비록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노동자들의 노동권, 농민의 생존권, 그리고 광범위한 서민과 중산층의 복지라는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초석을 놓은 전환기를 마련했었다.
그러나 6월 항쟁 22주년을 맞는 오늘 이명박 정부는 실질적 민주주의에서의 진전은 고사하고 이른바 공안정국을 통해 87년 체제의 등장과 함께 정치영역에서 실질적으로 퇴장했던 '민주 대 반민주' 전선을 광범위한 영역에서 되살리고 있다.
사회 공론장의 대표적 상징으로 자리매김 되어 왔던 서울광장의 봉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시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마스크집시법, 유모차처벌법, 인터넷실명제, 미디어법 등은 시민의 기본권 보장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민주적 가치를 부정하고 오히려 국가가 사회를 통제하는 권위주의시대로 돌아가려는 대표적인 악법에 다름 아니다.
뿐만 아니다. 경인운하추진과 4대강유역개발정비의 미명으로 밀어붙이는 한반도운하 사업은 경제성장 모델을 70년대 토건식 개발독재 모형으로 후퇴시키고 있다. 복지비용은 줄어들고 종부세는 무력화되었으며 재벌을 위한 법인세 인하조치는 그야말로 상위 1%만을 위한 거꾸로 가는 부자정권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지난 10년 동안 인내와 헌신으로 정착시켜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다시 냉전적 대결과 반목으로 회귀하고 있다. 즉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와 평화는 변함없이 확고해야 한다'는 국민의 합의와 '최소한의 사회복지와 사회안전망 확충'에 대한 중산층과 서민들의 기대는 '권위주의와 냉전', 그리고 '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꺾여 버렸다.
이러한 정치실패는 결국 MB 지지기반의 광범위한 이반과 급속한 지지율 저하, 4월 재보선에서 MB식 정치에 대한 국민적 심판과 더불어 6월 광장의 촛불을 일으켰다. 반MB 국민전선의 토양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다하겠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진보개혁세력은 6월 광장의 촛불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단일한 진영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오늘의 진보개혁진영은 MB식 정치에 대한 대안으로 자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MB정부가 탄생한 후 후퇴만을 거듭하는 소위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를 바로잡아 세워야 한다.
'민주회복 국민위원회'의 당면한 과제는 22년 전 6월 항쟁의 피와 땀의 결실인 87년 체제를 지켜내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세는 민주주의회복을 위한 반MB전선만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현 단계 반MB전선의 요체는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양산하는 MB식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진보적 사회정책연합을 통해 대안적 정치세력을 구축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87년 체제가 생산해낸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를 계승함과 동시에 진일보시키는 작업인 것이다.
이른바 사회양극화해소를 위한 진보정책연합은 결국 공적 영역의 회복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고 MB식 신자유주의 정치로 인해 허물어진 한국사회를 복원하는 중요한 원칙을 제공해줄 것이다. 이것은 민주당만으로 혹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모두에게 공동의 과제일 수밖에 없으며 서로가 크게 다르지 않은 공통된 과제로 구체화할 수 있는 그런 대(大)정책들이다.
그러나 그동안 진보정치세력은 서로의 차이를 강조하고 결별하는데 너무 익숙해왔다. 몇몇 정당 지도자들의 당파적 결정에 의한 분당 및 신당창당의 반복, 혹은 민노당과 진보신당 사이의 종북주의 논쟁은 분열과 결별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다시 말해 87년 민주화 승리 이후 진보개혁진영은 단 한 번의 통합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파는 부패해서 망하고 좌파는 분열해서 망한다"는 옛말을 그대로 실천해온 것이다. 진보진영이 분열할 때 대중들은 우리로부터 이탈하며 결국 MB식 정치만이 살아남을 뿐이다. 따라서 진보개혁진영은 사회양극화해소를 위한 진보적 정책연합을 구성함에 있어서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즉, 차이는 유보하고 공통점을 확대발전시키는 넓은 진보로 세력을 재구성해나가야 하며, 이는 당면한 반MB 진보연대의 실천과제이기도 하다.
Ⅱ.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연합의 길
이제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연합을 기초로 어떻게 진보개혁진영이 단결해 이명박 정부와 보수세력에 맞서 승리를 견인할 수 있는가에 대해 얘기해보자. 이를 위해 조금 철지난 감이 없진 않지만 지난 4·29 재보선의 평가부터 살펴보자. 4·29 재보선은 한국사회 진보개혁세력에게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첫째, "MB식 정치는 아니다"는 정치적 심판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단결하면 승리한다는 교훈을 주었다는 점이다.
4·29 재보선은 MB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였다. 한나라당에게 0대 5라는 참패를 안겨준 이번 재보선은 분명 MB정권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러나 보다 주의 깊게 짚어봐야 하는 대목은 선거가 "MB식 정치냐 아니냐"라는 질문지에 국민들이 단지 "MB식 정치는 아니다"고만 판정해 주었을 뿐이라는 점이다.
이는 정치노선과 정치세력이라는 양 측면에서 MB식 신자유주의 정치노선을 심판하고 퇴출시킬 수 있는 통일적인 정치적 대안이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MB식 정치는 행정부 출범초기의 집권 정치연합을 유지하지 못하고 해체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4·29 재보선이 '단결하면 승리한다'는 교훈을 진보개혁세력에게 안겨주었다는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는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단일화를 통한 진보개혁세력의 단결은 승리를 가져온다는 점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이번 재보선 중 울산 북구에서 민주당 후보의 사퇴에 이은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후보단일화가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점 또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단일화에 이은 반MB진영의 정치적 승리를 어떻게 향후 지속적으로 발전·확대 시킬 것인가에 있다. 4·29 재보선에서 승리한 각 정당이 그 승리를 당파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존립과 독자적 발전에 대한 유권자의 위임으로 아전인수 한다면 진보개혁진영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정치지형을 의제적으로 다당제화해서 결과적으로 진보의 분열을 정당화하고 보수·수구적 정치세력의 정치적 재기와 독주에 협력하게 될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향후 민주당의 행보는 대단히 중요하다. 4·29 재보선 당시 민주당은 한마디로 말해 반MB진영의 구심 역할에서 낙제 점수를 보여줬었다. 전주지역 공천을 둘러싼 당 지도부의 분열과 DY의 무소속 출마는 그 진의야 어떠했던 간에 민주당이 과연 대안정당일 수 있는가에 심각한 의심을 품게 했다. 부평과 시흥에서의 민주당의 승리 또한 수도권 개혁블럭 유권자들이 출구(exit)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MB심판의 선택지로 민주당을 활용한 것이지 진정한 대안정당으로 신뢰하고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조문정국을 맞아 민주당은 약 5년 만에 처음으로 한나라당에 앞선 당지지율과 서울광장에서 끓어오르는 민심에 다소 고무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발 빠르게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고 보수적 입장으로 회귀하려했던 뉴민주당선언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촛불민심을 자신의 지지세로 결집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일각에서는 서울광장의 민심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향후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에서 독자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진단마저 제기하고 있다. 물론 민주당이 6월 광장의 성과를 고스란히 품에 안을 수 있는 전망이 전혀 불투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민주당이 현재 6월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라'는 서민과 중산층의 목소리를 그대로 받아 안을 때만이 가능하다.
모든 진보개혁세력이 공유할 수 있는 의제를 제안하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포함한 제반 진보적인 사회세력과 소통하며 반MB전선을 폭넓게 재구성하려고 노력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이에 실패하게 된다면 국민들은 민주당을 차갑게 외면하고 현재의 지지율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버릴 것이다.
6월 광장의 성과를 아전인수로 해석할 경우 촛불 민심이 차갑게 등을 돌릴 것이라는 점은 민주당뿐만 아니라 민노당과 진보신당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울러 현재 회자되고 있는 친노진영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도 여론의 차가운 뭇매를 맞게 될 것이다. MB식 정치에 분노한 시민들이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등으로 분열되어 있는 진보개혁진영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회의적임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Ⅲ. 2010 지방선거와 '진보적 연립자치'의 방향
그렇다면 진보개혁진영은 '반MB 진보개혁연대'의 통합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 수 있는가?
첫째, 시기적으로는 2010년 지방선거를 단기적 목표지점으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10월 재보선을 목표지점으로 순행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통합의 형식으로 연립(자치)정부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통합의 진원지를 우선 수도권 개혁블록의 형성에 두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10월 재보선과 2010년 지방선거가 진보개혁진영의 통합의 기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조건 승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2년의 대통령선거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 교두보를 마련해야 하기도 하지만 본질은 절박한 국민의 생존권이 이명박 식의 통치로 파탄 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서이다.
게다가 지방선거는 아래로부터의 통합을 통해 종국적으로 상층부의 통합을 이룰 수 있는 민주주의적 연대의 좋은 시험장이 될 수 있다. 반MB 정치통합의 사회적 요구가 높은 이 때 우리는 가장 하위의 지방정부 단위부터 서로의 정치적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분모를 확대해나가는 연립자치를 실현해야 한다. 그리고 다가올 2012년 대선에서는 명실상부한 진보개혁진영의 연립정권을 실현해야 한다. 물론 그 전까지 진보개혁진영이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될 수만 있다면 연립정권이 아니라 진보개혁진영의 단일정부가 구성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통합의 내용은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진보적 사회정책연대라는 점은 이미 앞서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 구동존이(求同存異로)의 지혜가 이 과정에서 더 없이 중요한 자세임은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통합은 어떤 형식적 틀을 지닐 수 있는가. 한마디로 표현하면 연립자치, 즉 각 지방정부를 진보개혁세력의 연립정부로 구성하자는 것이다.
연립의 지분은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각 정당 혹은 정파가 얻는 국민적 지지도를 기준으로 하면 될 것이다. 아울러 광역의회 또한 연정을 구성할 것을 목표로 교통정리를 해나가면 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합의를 기초자치단체와 기초의회로 확산시켜 나가면 된다.
이 밖에 진보적 연립자치를 목표로 형식적 틀은 다양하게 고민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및 필요하다면 진보적 시민단체를 포함해 대표자 연석회의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 10월 재보선을 위해 가장 바람직하게는 아래로부터의 후보단일화를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학습과 훈련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연립자치를 실현하는 중요한 실험장소가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연립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각 정당은 현재의 정당의 울타리를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이 과정에서 각 당은 파당적 이해를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특히 민주당의 선명한 정치노선은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통합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험지가 될 것이다.
물론 진보적 연립자치를 전국적으로 실현해나갈 수 있다면 좋은 일이나 그 마저도 난관에 봉착한다면, 수도권에서나마 후보단일화를 통해 진보개혁진영의 통합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수도권이 개혁블록 형성의 핵심적 지역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롭다는 것 외에 향후 대선과 총선 가두에서 반MB 정치의식이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개혁의 진원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수도권에서의 승리는 진보개혁진영에게 모멘텀을 부여할 것이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내년 지방선거를 평가하는 리트머스지로 작용할 것이며, 따라서 진보개혁진영은 무조건 단일화된 후보를 내놓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모든 정당과 정치세력이 일체의 기득권을 포기해야함은 두말한 나위가 없다 하겠다.
이상의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을 포함한 진보개혁세력은 민주주의회복과 양극화해소를 위한 진보적 사회정책 과제의 도출과 해결을 위한 건설적 토론과 대안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 과정에서 넓은 진보로의 재구성을 추진하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야 한다.
첫째, 현시점 한국사회 진보개혁세력에게 요구되는 것은 진보적 사회정책연합을 기치로 반MB 진보연대를 넓은 수준에서 재구성하는 것이다. 둘째,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반MB 연립자치의 승리로 몰고 가야 한다. 10월 재보선에서의 후보단일화와 내년 지방선거에서 연립자치를 위한 연합공천과 후보단일화를 실천해야 한다. 셋째, 최소한 진보개혁진영은 수도권 개혁블록의 형성 즉 수도권 선거연합에 합의해야 한다. 수도권의 승리는 전국승리의 키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모든 정당 및 정파는 자신의 당파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민주당을 비롯한 모든 정당과 정치세력의 기득권 포기는 진보연대 구축에 있어서 민감하지만 과감하게 접근해야 하는 통합의 전제조건이다.
코리아 연구원(www.knsi.org) 은 통일외교안보 및 사회통합 문제에 대한 정책대안제시를 목적으로 설립된 네트워크형 싱크탱크다. 이 글은 연구원 홈페이지에서도 동시에 볼 수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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