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제 살리기'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25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을 처리, 전체회의로 넘겼다. 민주당 의원들은 비준동의안 상정의 적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소위에서 퇴장했다. 가결은 한나라당 과 친박연대 의원들만의 몫이었다.
하루 전인 지난 24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석래 회장 등 경제5단체장들은 여의도에서 한미FTA 비준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한나라당, 민주당 등을 돌며 한미FTA 선 비준을 요청했다. '경제살리기' 명분이었다.
2. NAFTA가 바뀌고 있다
지난 19일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캐나다 정부를 향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 협상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취임 후 첫 외유지로 캐나다 오타와(Ottawa)를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스티븐 하퍼(Stephen Harper) 총리와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캐나다 무역관계에 혼란을 초래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 NAFTA에 노동ㆍ환경 조항을 강화하는 쪽으로 협정 개정 협상을 시작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시절이던 지난 2008년 2월 28일 '위스콘신 공정 무역 캠페인에 보내는 서신'을 통해 NAFTA의 재협상을 주장했다.
"NAFTA가 투자자자들에게는 광범한 권리들을 부여하는 한편, 노동자의 권리와 환경보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단지 립서비스만 했을 뿐이다. 10년 후 CAFTA(중미자유무역협정)는 동일한 수많은 문제점들을 배태하였고, 내가 당시 이 협정에 반대하였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장 우선적으로 나는 이 나라의 대통령 자격으로 캐나다 수상과 멕시코 대통령과 만나, 함께 NAFTA를 고칠 것이다."라고 했고, 첫 정상회담에서 실행에 옮겼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한미FTA에 대한 반대 혹은 재협상 발언은 후보시절의 단순한 '선거용'이었을 뿐이라고 평가절하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공정무역주의자'다. 최소한 후보시절 공약만큼은 일관된다.
3. '실패한 다른 협정'
지난 20일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미 국무장관이 방한했다. 클린턴 장관은 양국 외무장관 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미FTA에 대해 언급했다.
"양국의 호혜적인 무역확대를 위한 협력방안을 협의했다"고만 밝혔다. 자유무역협정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명환 외교장관의 발언과는 강조점이 달랐다.
클린턴 장관은 상원 청문회 서문답변에서 한미FTA에 대해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대통령 당선자 오바마는 부시 행정부가 협상했던 한미 FTA에 대해 반대해왔고, 계속 반대한다. 왜냐하면 한미 FTA가 한국에서의 미국 서비스 및 기술 산업에 유익한 향상을 일부 포함하고 있을지라도, 교섭자들이 미국 자동차와 트럭 그리고 다른 제조물품들에 대한 공정한 조치를 제공하는 협상을 성취하는 데는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 한국 시장에서 미국의 접근을 막는 데 사용된 불명확한 관행들에 대해 고심했던 초당파적 걱정을 했던 10년에도 불구하고, 이 FTA는 이 부분에서 진정한 진보를 제공하는 협상성과를 얻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한미FTA에 대한 반대 입장은 클린턴 국무장관에게도 그대로 유효하다. 앞서 본 '위스콘신 공정무역 캠페인에 보내는 서신'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FTA를 '실패한 다른 협정'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재협상을 하겠다는 것이 오바마 행정부이고, 민주당 의회다.
4. 다시 ISD가 문제다
그런데도 외교통상부와 한나라당은 재협상은 없다고 강변한다. '경제살리기'를 위해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 일까. 재협상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마치 패배주의자인 것처럼 매도하는 시각까지 있다. 전세계적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에 대한 외눈박이들이다.
문제는 재협상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 물론 당장 재협상 요구가 있을 것 같진 않다. 통상협정에서는 NAFTA가 먼저고, 안보에서는 아프간전쟁이 먼저다. 북핵이건 한미FTA건,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우선순위에서 선순위가 아님은 확인되고 있다. 재협상에 대한 대비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다시 강조컨대, 아무리 선비준해봤자 재협상은 필수다. 문제는 어떻게 방어하며 협상의 균형을 조정할지에 있다. ISD야 말로 투자자 절대 보호에서 공정무역으로 균형추를 옮겨 올 수 있는 핵심 사안이다. 자동차로 대표되는 미국의 일방적, 강압적 요구를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미국은 종국적으로 자동차에 대한 쿼터를 요구할 태세다. 일정 부분 보호무역주의 경향은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의 직접개입만큼이나 시대적 흐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제정치보다는 국내정치가 우선일 수밖에 없는 국제관계의 현실 때문이다.
앞서 인용한 '위스콘신 공정무역 캠페인에 보내는 서신'을 보자.
"외국법정에서 직접적으로 미연방정부를 제소하는 권리를 외국 투자자들에게 주도록 하는 여러 FTA들의 조항에 관해, 나는 이같은 권리가 단연코 제한되어야 한다고 확신하며, 공공 안전을 수호하거나 혹은 공익을 도모하기 위해 규정된 어떠한 법률이나 법규들은 배제할 것이다."
오바마도 ISD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도 지난해 8월 대선을 앞두고 정강정책안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정리했다.
"외국 투자자들에게 미국 국내 투자자들 보다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우리의 필수적인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를 요구하는 … 쌍무적 통상 협정을 협의하지 않을 것이다."
ISD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반대 이유나 국내 진보진영의 반대이유나 하나도 다르지 않다. 공공성이라는 관점, 헌법이라는 관점, 사법주권이라는 관점, 이 점에서 한 치도 어긋남이 없다. 좀 더 낮은 단계의 통상협정으로 가서 서로간의 균형을 조정할 여지가 남아 있다. 왜냐면 한미FTA에 반대했던 국내 논쟁의 대부분이 바로 ISD에 있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재협상을 잘만 활용한다면, 본래적 의미의 통상무역협정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미국 우위의 편향성을 재조정할 수 있다. 우리도 불평등을 소리높여 외쳐 새롭게 균형을 확보해야 한다. 선비준 요청보다는 이 부분에 대한 인적, 논리적 대비가 먼저다. 협상팀 교체는 선결과제다.
5. 선비준은 스스로에 대한 족쇄
그럼에도 지금 정부와 한나라당 국회는 선비준을 통해 스스로를 구속하려 한다. 미국 새 정부나 의회에 대해선 어떠한 압력으로도 작용하지 못하리란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오죽했으면, 조선일보조차도 미국의 기류를 전하며 신중론을 얘기했다. 그럼에도 오늘 25일 국회는 스스로를 옭아매는 절차를 진행했다. 재협상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인데도, 선비준을 하면 '재협상의 요구도 차단하고, 죽어가는 경제가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날 것'처럼 포장했다.
한나라당 집권 1년, 국민들은 '신뢰'를 얘기했다. 들은 척도 않았다는 증거 중 하나가 한미FTA의 소위 통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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