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국의 무덤(graveyard of empires),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은 '제국의 무덤'인가. 아프간은 기원 전 알렉산더 대왕 이래로 19세기엔 영국을, 20세기엔 소련을 몰아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떻게 될까.
CNN이 입수하여 지난 1월 보도한 나토(NATO)군 비밀보고서에 따르면, 미군과 다국적치안유지군(ISAF) 사망자 수는 1년 새 26%, 아프간군 사망자 수는 64%, 아프간 민간인 희생자 수는 60%나 늘었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은 이런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이던 지난해 말 시사주간지 <타임(Time)>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문제 때문에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때문에 오바마 정권인수팀의 공식 웹사이트(change.gov)에도 신행정부의 7대 외교현안을 제시하며 아프간 사태를 1순위로 올려 놓았었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이러한 정책 우선순위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외교전문가 리처드 홀브룩(Richard Holbrooke)을 아프간·파키스탄 특사로 임명했고, 홀브룩은 곧바로 활동을 개시했다.
현재 아프간에서는 '미군의 공세 → 민간인 희생 → 반미감정 고조 → 탈레반 득세 → 전황 악화'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밀림의 늪에 빠졌던 베트남 전황과 놀랍게도 유사하다. 파키스탄과 중앙아시아의 보급로는 날이 갈수록 상실되고 있다. 알 카에다와 다른 속성의 탈레반도 예전의 힘을 회복하고 있다. 다국적 민간연구소 '국제안보개발협의회(ICOS)'는 지난해 말 탈레반이 아프간 영토의 72%에서 '영구적인 거점'을 확보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2월 12일은 홀브룩 미 아프간 특사가 아프간을 방문하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그 전날 카불의 정부청사 건물 세 곳에서 자살폭탄테러와 총격이 있었다. 최소 26명이 숨지고 50명 이상 부상했다. 과연 아프간은 이번에도 '제국의 무덤'이 될 것인가.
오바마는 아프간 전략의 대 전환을 꿈꾸고 있다. 그 전환은 어떤 방향일 것인가. 그리고 그 방향의 적실성은 타당한가. 그 방향전환이 대 한반도에 미칠 함의는 어떠한가. 좁게는 한국군의 아프간 재파병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 문제가 걸려있다. 넓게는 북핵문제 해결이다. 과연 어떠할까.
2. 이라크와 무엇이 다른가
로버트 게이츠(Robert Gates) 미 국방장관, 홀브룩 특사 등 미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라크전보다 아프간전 수행이 훨씬 더 어렵다는 데 동의한다. 국가라기보다는 부족들의 연합체라는 정치적 성격 때문이다. 남부 파슈툰족 지역에서는 수도 카불에서 누가 권력을 쥐든 아무 상관이 없다. 심각한 부패와 세계 최대의 마약산지라는 특성 때문이다. 불법 거래는 저항군들의 충분한 자금보급원이다.
아프간의 지정학적 환경 또한 간단치 않다. 해발 1천미터가 넘는 험준한 고원지대다. 사회간접자본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그래서 '도로가 끝나는 곳에 탈레반이 있다'는 말까지 있다. 여성차별과 문맹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다 남동쪽 국경은 파키스탄이, 서쪽 국경은 이란이, 북쪽 국경은 러시아 영향권 국가들에 맞닿아 있는 것도 문제다. 특히 파키스탄의 경우 정부는 미군에 협조적이지만, 실상은 알 카에다 저항군들이 도망가는 은신처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극심한 긴장관계는 늘 미국을 난처하게 한다. 이것이 이라크와는 다른 아프가니스탄의 전제조건이다.
3. 오바마 행정부는 아프간 전의 목표를 어떻게 변환하려 하는가
2월 11일자 <뉴스위크(Newsweek)>는 "70% 이상이 오바마 행정부를 지지하고 있지만, … 2010년까지 아프간전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미 중간 선거에서는 아프간 전쟁이 `오바마의 전쟁'으로 둔갑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이라크전이 '부시의 전쟁'이라면, 자칫 '오바마의 전쟁'이 될 것이다.
유임된 게이츠 국방장관은 1월 말 아프간 전에 대한 최소한의 원칙을 천명했다. "아프간이 더 이상 미국과 동맹국들을 공격하려는 테러리스트와 극단주의자들의 기지가 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 민주주의 국가건설 등을 포함한 발전(development)보다는 전쟁수행을 강조하고, △ 부패한 카르자이 정부보다는 지역 지도자들과 공조체제를 구축하며, △ 향후 2년간 3만 명 규모의 추가파병을 단행하고, △ 주요 동맹국들에게 국가건설 및 경제발전의 임무를 이양하는 것 등이다. 당연히 한국은 미국이 역할분담을 꿈꾸는 동맹국이다.
대통령에 대한 보고는 이 기조 하에서 진행되었을 것이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지난 2월 8일, 오바마 대통령은 외교안보팀의 대 아프간전 전략 구상에 제동을 걸었다. 그 이유는 '일관된 계획이나 탈출 전략이 없다'는 점, '막연히 3만 명에 이르는 병력의 급파와 증파만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오바마는 이라크전 관련 국방장관 및 미군 합참 지휘부들과의 첫 회의에서, "최종 계획은 뭐냐?(What is the endgame?")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증파 이전에 전략 재검토를 지시했다. 하지만 현실적 과제를 기준으로 아프간전 목표를 낮춰 잡는 당초의 계획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인권, 시장경제에 기반한 새로운 국가건설보다는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한 좁은 의미의 전쟁 차원이다. 다만 오바마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전쟁 프레임만큼은 바꾸고 싶어한다.
4. 전략적 논쟁의 쟁점은 어떠한가
전략적 쟁점은 크게 세가지다. 이에 앞서 미국은 지난해 이라크전 전략변화가 이라크전에서의 성공을 가져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라크전의 전략변화가 아프간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한다. (<포린폴러시(FP)> 1·2월호와 <뉴스위크> 2월 11일자, <뉴욕타임스> 1월 25일자 등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정리했다.)
첫 번째 쟁점은 추가파병 규모에 대한 논쟁이다. 증파 자체가 무용하다는 입장에서부터 3만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입장까지 각양각색이다. 증파에는 확실한 전제조건이 요구된다는 입장도 있다. 이를테면, 시가전 중심인 이라크전과는 달리, 산악 게릴라전 중심인 아프간전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증파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추가파병은 부시 정부정책의 단순 연장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핵심 전략변화 없이 증파만을 고집하는 것은 실패의 연장일 뿐이라고 말한다.
좀 더 광범위하게 병력파병 전에 "현대적이고 굳건한 국가(modern cohesive Afghan state)를 만드는 데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앤드류 바세비치 교수가 있다. "추가 파병이 안정화의 기초를 만들 수는 있지만 정부 개혁 없이는 이런 군대의 존재는 철저하게 무의미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는 아프간 전문가 제이 알렉산더 테어(J. Alexander Their)다. 어쩌면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과 가장 동일할 수 있다. "3만 병력의 급파에 동의하기 전에, 그들의 임무가 무엇이고, 최종 탈출계획은 어떤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한 이는 국방전문가 래리 코르브(Larry Korb)다. (<더 타임스> 2월 8일자)
두 번째 쟁점은 군작전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느냐에 대한 전통적 논쟁이다. 군작전 범위는 전투에 한정되는가, 아니면 민사 작전과 국가 재건 및 새 정부 수립에까지 이어질 수 있는가. 이를 짧게 정리하면, 전방위 작전이냐 아니면 전통적 전투에 한정되느냐의 논쟁이다. 미 국방전문가들은 이라크전의 사례를 들어 전방위작전을 선호한다. 군의 제한적 역할을 강조하는 진보적 입장에서는 신식민주의의 변형이라고 비판하며, 우파적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고서는 국가건설 과제 수행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포린폴러시> 1·2월호)
<뉴스위크> 국제판 편집장인 파리드 자카리아(Fareed Zakaria)는 핵심 임무를 중심으로 한 재래식 전투개념을 선호하는 듯하다. 그래서 미국의 기본목표를 미국과 동맹국들을 공격하려는 테러리스트와 극단주의자들의 기지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교육, 여성들 글 깨우치기, 행정서비스의 중앙통제, 마약퇴치, 자유민주주의 구현 등의 가치는 장기간에 걸쳐 실현할 사안이며, 핵심임무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는 것은 패배주의적 발상이 아니며, 성공을 위한 현실적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게이츠 국방장관의 주장을 인용하며 이에 동의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현지 작전을 책임지고 있는 데이빗 페트레이어스(David Petraeus) 장군은 전방위작전을 주장한다. 그가 주장하는 저항세력 퇴치의 기본개념은 '소탕하고, 유지하고, 건설하는 것'이다. 좀 더 살피면, 한 지역에서 저항세력을 몰아내고 그들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점령한 다음, 주민들이 정부를 지지하게끔 공공사업과 정부 조직을 건설한다는 의미다.
<포린 폴러시>와의 인터뷰가 이를 잘 드러낸다. "현재 연합국의 목적은, 이 나라의 안보를 공고히 하고 극단주의자들의 근거지 확장을 막자는 것만이 아니다. 경제발전, 민주제도 확대, 법치주의, 사회기반시설,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아프간을 지원하는 일이다. (...) 우리가 수행하는 작전이 단순한 '테러대응 작전'이 아니라 '반군대응 작전'인 것은 이 때문이다" (<포린폴러시> 1·2월호)
세 번째 쟁점은 알 카에다와 탈레반을 구분할 것인지, 공동의 적으로 몰 것인지의 문제이다. 역시 아프간전의 궁극적 목표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이라크에서의 분리대응에 따른 성공사례를 아프간에도 적용할 수 있느냐는 관점에서도 유용한 논쟁이다.
"탈레반의 일부 대원은 골수 이슬람 극단주의자지만 다른 대원들은 어느 정도의 권세, 다시 말해 돈과 영향력 획득에 관심이 많다. 알 카에다와 탈레반을 똑같이 생각하는 현재의 관념을 벗어 던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탈레반 중에서도 가장 강경한 물라 오마르의 '퀘타 슈라'도 여러 차례 아프간 정부에 교섭을 타진하면서 자신들을 알 카에다와 동일시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자카리아의 말이다. 전략적 목표를 축소하고 현실적으로 접근한 다음 분리대응을 통해 조기탈출을 꾀하는 방책이다. 미국의 불신을 사고 있는 카르자이(Hamid Karzai) 대통령도, 테러리스트 네트워크에 속하지 않은 알 카에다 세력과 화해를 요구한다. (<워싱턴포스트> 2월 8일자) 파키스탄 외무장관 메무드 쿠레시(Shah Mehmood Qureshi)도 탈레반 온건주의자들과의 정치적 협력을 요청한다. (<워싱턴 포스트> 2월 10일자)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행정부측 인사들은 아직까지 이 점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 홀브룩 특사의 최근 발언은 알 카에다와 탈레반을 구분하지 않는다. 조지프 바이든(Joseph Biden) 미 부통령도 마찬가지다. 지난 2월 6일에서 8일 열린, 뮌헨 미-유럽 연례국제안보회의(MSC)에서, 바이든 미부통령은 러시아에 대해 "무엇보다 나토와 러시아가 탈레반과 알 카에다를 패퇴시키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 그 증거다.
속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지난 2월 9일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회견 중 발언도 유사한 맥락인 것 같다. "아프간과 파키스탄 사이 국경지역에서 탈레반과 알 카에다가 활동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은신처들을 없애는 노력을 하지 않았으며, 이 노력들은 우리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게 해줄 것이다." 일단은 두 집단을 구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건 탈레반과 강경 탈레반을 일치시키지도 않는다. 전략목표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전투와 협력의 대상이 역시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5. 한반도에 미칠 영향
지난 11일 한ㆍ일 외무장관 회담이 서울에서 열렀다. 이 회담에서 한ㆍ일 양국은 아프간 공동지원 프로그램에 합의했다. 양국의 공적개발원조(ODA) 기금을 활용해 아프간에 직업훈련센터를 건립하고, 콩 품종 공동개발 등 대민 협력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하자는 데 합의한 것이다. 왜 하필 이 시점에서 이런 합의가 있었을까. 그것도 미국과의 합의가 아닌, 미국을 제쳐둔 상태에서 한ㆍ일 양국간의 협의로 이 문제를 거론했을까. 미국의 한ㆍ일 양국에 대한 아프간 파병 혹은 지원요청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다. 이번 주초부터 시작될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미 국무장관의 한ㆍ중ㆍ일ㆍ인니 순방에 대한 대응이다. 그래야만 했을까.
앞서 본 바와 같이, 오바마 행정부의 대 아프간 정책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략과 정책의 변환이 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은 분명하다. 현재까지 분명한 사실은 미국은 아프간 문제해결에 다자적 전략을 채택하고 확대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동맹국들에게 "명확하고 성취가능한 목표(clear and achievable goals)"를 제시하고, 전략에 대한 책임감을 요구한다.
첫째, 미국이 전략적 목표의 수준을 낮추고 재래식 전투중심의 전략을 채택한다면, 우리 정부에 대한 미국의 요구 수준이 낮아질 것이다. 전투병 중심의 파병 요구보다는 좁은 의미의 의료, 공병, 재건 등 민사 작전 중심의 지원 업무를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미국이 이른바 전방위 전략을 채택하고 전략적 수준을 높여나가고, 증파의 범위를 대폭 확대시킨다면, 이라크전에서의 사례에서 보듯 한 지역을 책임지는 형태의 전투, 민사, 재건 등을 포괄하는 파병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 정부 부담이 당연히 늘어나야 한다.
셋째, 이미 아파치 헬기의 아프간 투입에서 보듯,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이 갖는 치명적 약점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노 대통령과 당시 반기문 외교부장관은 국회의 동의도 없이 고작 전략대화의 형식으로 주한미군의 성격을 대북억지력에서 동북아 신속기동군으로 풀어버렸다. 주한미군에게 미국이 희망하는 전입전출의 자유를 대통령의 결단만으로 허용한 것이다. 이 문제는 전시작통권환수문제 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안보문제 만큼은 자신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과장하듯 보수우익계열은 이 문제만큼은 지금까지도 거론하지 않는다. 아파치 헬기를 빼가건 주한미군을 아프간에 증파하건, 이 문제는 더 이상 우리가 거론할 틈새가 없다. 아프간 전략의 변화에 따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좀 더 유연해질 수 있고, 이에 따라 주한미군의 대북억지력은 역시 신축적일 수 밖에 없다.
넷째, 힐러리 국무장관은 오는 19일 방한해서 북핵문제 등을 포함한 대북정책에 대해 나름대로의 정책을 제시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취임후 100일 이내에 북한에 특사를 파견할 것을 관련 싱크탱크로부터 제안 받은 바 있다. 스티븐 보즈워스(Stephen Bosworth) 전 주한미대사가 대북 특사로 내정되었음이 언론을 통해 예고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김대중 정부 시절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과 윌리엄 페리(William Perry) 대북 조정관 사이에 합의되고 김대중 대통령이 "그토록 내 생각과 일치할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라고까지 표현했던 '페리 구상'을 실천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야말로 오바마 대통령이 말한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대북정책'에 부합할 것이다. 당시 페리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포용정책을 위한 포괄적 접근방안'이라는 임시 구상의 토론과 보고에는 당시 보즈워스 주한미대사도 적극 참여한 바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임동원, <피스메이커> 426면 이하) 힐러리 국무장관이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북핵폐기와 북ㆍ미수교 및 평화협정 체결은 빅딜의 대상이 될 것이다. 미국은 북핵문제가 대 이란정책이나 대 아프간 정책에 장애물이 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을 것이다. 북핵문제로 인해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1순위인 대 아프간 전략에 대한 초점이 분산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정부와 일본정부가 아프간 협력을 담보 삼아 대북 강경정책을 요청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결코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자신들이 이미 정해놓은 정책적 목표와 우선순위를 바꿀 만한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군의 아프간 파병사례를 되돌아보자.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 2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동의·다산부대를 아프간에 파견했다. 동의·다산부대는 아프간의 바그람 미 공군기지에 주둔하며 각각 의료지원과 건설공병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2007년 2월 당시 바그람 기지를 극비 방문한 딕 체니(Dick Cheney) 미국 부통령을 노린 이슬람 테러조직의 폭탄 테러로 동의부대 윤장호 하사가 희생되었다. 같은 해 7월에는 아프간의 탈레반 무장세력이 샘물교회 선교단 23명을 납치한 뒤 피랍자들의 석방조건으로 한국군의 연내 철군을 주장했다. 외신에 따르면 어느 정도의 금전적 거래와 함께 12월 중순 동의ㆍ다산부대는 전원 철수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적 노력은 전략적 목표에 대한 재검토와 함께 이제 시작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미국이 꿈꾸는 동맹국들의 아프간 증파는 단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영국은 5개 중대 병력의 증파만을 얘기했을 뿐이고, 프랑스와 독일은 추가파병 가능성의 배제 혹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우리는 이미 지난 1월 21일 이용준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아프간을 다녀왔다. 언론에 공개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비추어볼 때, 미국의 재파병 요구가 있었다는 점, 여기에 대해 한국 정부로서는 적극적 대응의 필요성이 존재했다는 점까지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나토 동맹국들의 미지근한 태도 또한 우리 군의 역할과 파병 범위에 최소한의 영향을 미치게 되었음을 예상해야 할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미국의 공식적이고 구체적인 지원 요청이 없었다. 현재로선 아프간 재파병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불과 며칠 뒤면 힐러리 국무장관의 입을 통해 밝혀질 것이다.
물론 정부로서는 한반도 국익이라는 전략적 관점, 파병의 목표ㆍ시기ㆍ규모ㆍ지역 등이라는 전술적 관점 등을 종합 검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프간 재파병에 대한 공론화를 힐러리 국무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해 비로소 시작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까. 지난 노무현 행정부의 대미 밀실 외교의 전통은 새 정부에서도 계속 되어야 하는가. 주권자인 시민이 참여하고, 결정하는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의 관행을 지금부터 쌓아나갈 수는 없는 것인가. 고작 외국의 자료를 검토하는 데 불과한 이 글이 시민의 자기결정에 한 판단자료가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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