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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비핵·개방·3000'의 포로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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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MB, '비핵·개방·3000'의 포로가 돼 있다"

[좌담]민주정부 10년 남북관계, 회고와 전망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법인 '광장'이 18일 계간지 <광장>의 창간준비 제2호를 발간했다. <광장>은 '북핵 이후의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질서재편'을 주제로 해당 호에 실린 문정인 전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 이해찬 전 총리, 임동원-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의 좌담 전문을 <프레시안>에 보내 왔다. 좌담회는 지난 달 20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광장> 사무실에서 열렸다. 다음은 <광장>에 실린 좌담회 전문이다. <편집자>

"민주정부 10년, 통일에 기여했다"

이해찬 : 오늘 좌담회는 계간광장 창간 준비호 제2호에서 특집으로 다룰 '북핵 이후의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 재편'이라는 주제를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이제 곧 북핵문제의 2단계 조치도 북한의 핵신고서 제출로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6자회담이 재개될 것이고 8월쯤이 되면 지금 정부의 정책도 전환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참석하신 세분께서는 지난 10년간 남북관계의 주역이셨고 경험도 가장 많으신 분들입니다. 좌담회는 민주정부 10년의 평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평가, 북핵 이후의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 다자안보체제의 구상에 대한 순서로 논의를 진행할까 합니다. 우선 임동원 세종재단 이사장님께서 지난 10년에 대해서 책도 최근에 쓰셨고 남북관계의 주역이었으니까 먼저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 ⓒ광장

임동원 : 지난 민주정부 10년의 남북관계는 그 이전 반세기 동안 지속되어 왔던 불신과 대결의 시대를 넘어 화해협력의 새 시대를 열고 민족의 희망을 세운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민주정부가 10년 동안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남북관계를 살펴보는 중요한 세 가지 틀이 작용한 결과라고 봅니다.

첫 번째, 북한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대북 시각입니다. 대북 시각은 민주정부 이전을 포함하여 지난 20년 동안 두 가지가 엇갈려 왔는데 하나는 북한은 곧 붕괴할 것이라는 이른바 '붕괴 임박론'입니다. 다른 하나는 북한도 중국, 베트남처럼 점진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점진적 변화론'입니다. 결국 어느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서 대북정책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 두 가지에서 계속 왔다 갔다 했습니다. 노태우 정부는 점진적 변화론에 토대를 두고 정책을 추진했지만 김영삼 정부는 붕괴임박론으로 돌아서서 남북관계를 깨뜨려 버립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10년 동안은 기본적으로 점진적 변화론의 입장에 섰습니다. 문제는 새 정부인데 아직 정부가 어떤 입장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어떤 대북정책을 취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북정책의 선택은 이론상 세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대결정책입니다. 이는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취하기 어렵죠, 잘못하면 전쟁으로 가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방관정책입니다. 무시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망할 때까지 무시하는 것으로 김영삼 정부가 이런 정책을 썼습니다. 다음으로 포용정책입니다. 노태우 정부와 민주정부 10년간은 이런 정책을 유지했습니다.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김대중 정부는 화해협력정책 또는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또, 노무현 정부는 평화번영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포용정책을 썼습니다. 이들 모두는 북한을 상대로 대화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돕고 남북관계를 변화시키자는 정책입니다. 이 세 가지 정책 대안 중에서 어느 정책을 취하느냐는 것인데 민주정부는 지난 10년간 포용정책을 통해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했고 또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세 번째는 북핵문제에 대한 입장입니다. 여기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남북관계를 북핵문제에 연계시키는 '연계전략'이 있습니다. 이는 북핵문제가 해결되어야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입장으로 김영삼 정부와 요새 나오는 '비핵·개방·3000'도 연계 전략입니다. 두 번째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취한 것처럼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는 '병행전략'입니다.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지난 10년간 우리 민주정부가 남북관계 발전에 있어서 큰 기여를 하여 불신과 대결의 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발전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에 대한 시각은 점진적 변화론에 입각해서, 정책은 포용정책으로, 핵문제는 병행전략을 통해서 이런 상황을 이끌어 내었고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 결과 남북 간에 긴장이 완화되고 남북 동포들 간에 적대의식이 수그러들고 신뢰가 싹트면서 민족 공동체 의식이 함양되고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우리 민주정부 10년은 그러한 점에 기여했다, 이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MB 대북정책, 북한에 대한 '무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정세현 : 보탤 것이 없습니다. 지난 10년간 남북관계를 결산해보면 이전에 비해서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변화를 보였고, 남북관계의 발전은 IMF 위기를 극복하는데 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을 잃어버렸다고 하는데, 저는 지난 10년간 남북관계에서 이루어진 개선이라는 것은 사실은 국제정세의 흐름으로 보아서 남북기본합의서의 연장선상에서 이미 90년대 초에 시작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탈냉전의 추세 속에서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혹은 통일 지향적으로 관리하는 역량을 남쪽은 이미 그 때부터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시절에 지도부들이 이런 문제에 대한 감각이 부족했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혔던 "어느 동맹도 민족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기조를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지난 10년 동안에 이루어졌던 남북관계의 개선 정도는 90년대 중반에 달성이 되었을 것이고, 그것을 1998년도에 민주정부가 이어받았다면 핵문제도 이렇게 복잡하게 20년 동안 끌어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최근에 정권의 성격, 정권 최고 지도부의 국제정세 판독 능력, 국제정세의 흐름 속에서 남북관계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 하는 식견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새 정부 들어서면서 실감하게 됩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무시'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그것이 앞으로 얼마나 큰 후회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 감을 못 잡고 있다고 보여 집니다. 따끔하게 충고하지 않으면 정말로 큰 일이 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잃어버린 5년이 될 것입니다. 특히 남북관계에서는 이미 그런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데,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국제정세를 읽어내고 그 속에서 남북관계를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국내정치나 국내경제에 도움이 되는지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김영삼 정부시절, 저도 청와대에 있었지만, 대통령이 시스템에 의해서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밖의 비선에 의해서 움직이니까 당시 안기부나 통일부의 정세판단이 소용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북한붕괴론에 가장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분이 김영삼 대통령이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정세를 냉철하게 읽지 못했습니다. 남북문제에 대한 지도자의 식견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정인 : 저는 지난 10년을 평가할 때 먼저 패러다임의 변화를 생각합니다. 패러다임은 사람들이 어떤 신념체계나 가치체계를 가지고 세상과 우리 주변을 보느냐 하는 것인데 과거에는 전쟁, 적대의 패러다임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평화, 공존의 패러다임이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보수적인 일부를 빼놓고는 남북관계를 적대적 관계라기보다는 공생의 관계, 공리와 공영의 관계로 본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고 남북관계 심지어 동북아를 보는 패러다임조차도 변화했다고 봅니다. 소위 전쟁과 대립과 안보의 패러다임에서 평화와 공영과 공생의 패러다임으로 변화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두 번째로 지난 10년은 감동의 10년이었습니다. 1차 정상회담이 성공적이었고 2차 정상회담도 감격적이었습니다. 저는 평양도 자주 가고 개성도 자주 갔지만 최근에 금강산을 직접 제차를 운전해서 가면서 휴전선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위적 장애물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과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은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분단의 장벽, 휴전선 철책을 넘어 이렇게 고속도로와 철도를 통해 남북을 오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감동의 10년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지난 10년은 국민의 정부에서 설정했던 햇볕정책의 3대 원칙이 지켜진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북한의 어떠한 군사적 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지켜졌습니다. 또한 통일방식에 대한 합의가 있었습니다. 흡수통일하지 않고 점진적 통일을 하자는 우리의 제안에 북측도 전향적으로 나왔습니다. 6·15 공동선언 제2항이 이를 압축해 주고 있습니다. 아직 심층적 공동연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통일에 관한 남북 간 합의의 가닥을 잡은 것 역시 또 하나의 성과라고 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교류협력이 강화된 10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남과 북의 교류와 협력은 되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도 결국은 포용의 길, 화해협력의 길로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류협력이라고 하는 역사의 경로와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10년을 평가한다면 한반도 문제에 우리가 좀 더 주도적인 입장에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전에는 한반도 문제를 생각할 때, '4대강국결정론', '세력균형결정론'에 빠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도 힘이 없고 미국이, 주변 4대강국이 어떻게 하느냐하는 전략적 상호작용 속에서 한반도 운명이 결정된다는 인식을 바꾸어 놓은 것이 지난 10년의 행보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1999년에 발표된 페리 프로세스에는 우리 임동원 이사장님도 직접 관여하셨습니다. 사실 페리 장관은 이에 대해 '페리·림, 임·페리 프로세스'가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저에게 밝힌 바 있습니다. 그 만큼 페리 프로세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 당시 외교안보수석인 임동원 이사장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참여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6자회담은 사실상 참여정부가 살린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만 저는 중국도 부차적인 역할에 머물렀다고 봅니다. 6자회담의 1차, 2차, 3차 라운드의 어려운 국면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미국, 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을 쫓아다니면서 설득하고 4차 회담,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만들어 낸 것은 참여정부의 공헌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4대강국 결정론, 세력균형결정론에 한반도 운명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마음을 잘 먹고 미래를 보는 비전이 있으면 한반도의 운명,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만들어 가는데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지난 10년의 중요한 교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세현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을 잃어버렸다고 하는데, 저는 지난 10년간 남북관계에서 이루어진 개선이라는 것은 사실은 국제정세의 흐름으로 보아서 남북기본합의서의 연장선에서 이미 90년대 초에 시작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탈냉전의 추세 속에서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혹은 통일 지향적으로 관리하는 역량을 남쪽은 이미 그 때부터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시절에 지도부들이 이런 문제에 대한 감각이 부족했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남북관계 개선이 경제성장의 발판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광장

정세현 : 지난 10년, 특히 6자회담과 관련해서 우리의 역할에 대해 한 가지를 보태고 싶습니다. 6자회담의 추동력을 이어가는 데 있어서 회담 주최국인 중국 보다는 사실 한국의 기여가 더 컸습니다. 그 힘은 남북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 발전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북한을 관리할 수 있게 되면서 생긴 것이고 그 힘을 가지고 미국을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대북제재 등 강경전략을 많이 구상도 하고 실제 이행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미국을 달래서 파국을 막고 6자회담의 생명력이 유지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 힘은 남북관계에서 나온 것입니다. 최근 이명박 정부는 "한미관계, 남북관계, 북미관계가 선순환되게 하겠다"고 했는데, 선순환의 단초는 남북관계입니다. 남북관계가 잘 굴러갈 때, 한미관계도 효율적으로 관리가 되면서 북미관계 개선에도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지, 한미관계를 앞세우기 시작하면 남북관계는 종속되는 것이고 북미관계는 따로 놀아 우리의 입지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6자회담 진행과정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이라는 것이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적어도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또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역할을 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쌀, 비료지원 등이 이어지면서 남북 장관급 회담이 정례적으로 개최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북한 사람들도 "그 때는 전망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도대체 미래를 예측을 못하니까 힘들다"고 합니다. 노무현 정부 말기까지 정확하게 3개월 마다 회담이 열리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남북대화가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시작해서 한미관계로 이어지고 그것이 북미관계로 연결되어 다시 남북관계로 선순환하도록 하겠다는 인식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해찬 : 지난 10년 동안 남북관계가 미친 영향들이 참 많지만 그 중 하나는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입니다. IMF 금융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세계 경제에 완전히 편입되었습니다. 글로벌 경제에 완전히 편입되어 자본이동이 자유로워지고 주식시장이 개방되었습니다. 과거처럼 단순히 수출만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금융시장이 국제화되는 과정에서 남북관계의 개선이 없었으면 이러한 변화가 정착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북한 변수가 계속 오락가락했다면 금융시장이 절대로 안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남북관계가 2000년부터 풀어지기 시작하니까 금융시장 환경이 좋아지고 IMF 위기를 극복해냈고 지금은 외환이 수천억 달러 들어와 있지 않습니까. 주식시장에 들어와 있는 외국자본만 3000억 달러가 넘을 것입니다. 이런 정도의 자금이 한국이 투자되어 있다는 것은 결국 남북관계의 개선 없이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것이 남북관계의 개선이 우리 눈에 안보이게 기여한 부분의 하나일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제가 과거 재야 운동할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남북관계와 정치 민주화는 밀접하게 이어진 문제입니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바로 독재의 토양이 만들어지고 남북관계가 개선될수록 정치적 민주화가 착근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이른바 '용공음해'를 방어도 못했었는데 남북관계가 개선이 되니까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에 전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치 민주화를 안정시키는데 남북관계가 기여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 중에 90년대 초반 남북관계의 환경이 좋았다는 말씀이 있었는데 제가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시고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중국 전국인민대표자대회 교석 상무 위원장을 예방했었는데 그 전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하여 북한에 대한 압박을 요청했었습니다. 교석 상무 위원장은 "귀국의 대통령은 상대국의 국익을 잘 이해를 못하고 요청을 한다"는 말씀을 김대중 대통령께 했습니다.

이는 중국의 국가적 이익은 개혁-개방을 추진하는데 있어 한반도의 평화가 매우 긴요하다, 한반도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중국의 국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고 언급한 것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동북아에서 어떤 행태로든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원하지 않는 중국의 자기 이해관계상 대북정책이 유연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동적인 능력이 없으니까 그 때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결국 2000년까지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2000년 쯤에 와서는 독일의 통일경험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봅니다. 제1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 대북식량 지원이 본격화되니까 '대북 퍼주기' 논란이 생겨났습니다. 당시 제가 당의 정책위원회를 맡고 있었는데 대북 식량지원 예산 약 5000억 원 정도를 통과시켜야 했는데 그것을 설득하는 일이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당시 대북지원의 필요성을 설득시킬 논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각했던 것이 동독이 붕괴되어 서독에 흡수통일 되면서 생겼던 실업과 고용문제, 통일비용 문제였습니다. 당시 독일은 1년에 1000억 달러 정도의 큰 비용이 들어갔는데 우리도 잘못하면 그런 상황을 맞게 된다, 우리가 북한을 포용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의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그런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는 독일의 경험이 있었으니까 훨씬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독일의 경험이 없었다면 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후에 총리로 재직할 때 독일에 가보니까 독일 사람들은 통일이라는 말만 같이 쓰고 내용은 달리하라,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독일처럼 흡수통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저에게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포용정책과 남북관계 개선이 우리 정치의 민주화, 경제의 세계경제화, 사회복지정책 전반이 다 무너질 수도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습니다.

"남북관계, 6·15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

임동원 :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은 남북관계가 미국관계 또는 북핵문제, 동북아 국제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 또 우리 내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 하는 이야기들을 했는데, 남북관계가 불신과 대립의 관계에서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옮겨질 수 있도록 한 것은 남북정상회담에서 6·15 공동선언의 채택입니다. 6·15 공동선언이 갖는 의의가 지난 10년 간 우리 민주정부의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출발점이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6·15 공동선언은 어떤 의의를 갖는 것인가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 저는 4가지로 요약해서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첫째, 6·15 공동선언은 앞으로 민족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이는 공동선언 제2항에 들어있는 내용으로 통일은 목표인 동시에 과정이며 점진적, 단계적으로 남북이 힘을 합쳐 평화를 만들어나가면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은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지 외부에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 것입니다. 남북 정상회담 당시 법적 통일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40~50년이 걸릴 것이라고 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잘될 경우에 10~20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오랜 시간이 필요한 법적 통일 이전에 '사실상의 통일 상황'을 먼저 만들어서 남북이 서로 오가며 돕고, 협력하는 이러한 방향에 합의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6·15 공동 선언은 민족의 나아갈 길, 평화와 통일의 길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이러한 합의가 없었다면 남북관계의 진전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둘째, 6·15 공동선언은 반세기의 불신과 대립의 남북관계를 끝내고 화해협력의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분단 60년을 시대 구분한다면 6·15 이전의 불신과 대립의 시대와 6·15 이후의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나눌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10년 전에 비해 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인데 공기의 고마움, 물의 고마움을 못 느끼듯이 남북관계 발전의 영향을 일상적으로 못 느끼지만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셋째, 아무리 좋은 선언, 합의라 하더라도 실천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도 남북기본합의서를 비롯해서 좋은 합의들이 있었지만 실천된 것이 없었고 오히려 불신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6·15 공동선언은 처음으로 합의사항을 실천에 옮김으로서 신뢰를 조성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공동선언 제5항에 보면 교류협력을 활성화해서 신뢰를 다져나가자고 합의했습니다. 이는 신뢰가 출발점이라고 본 것입니다.

넷째, 6·15 공동선언은 남과 북이 힘을 합쳐서 우리 문제를 결정한다면 그리고 주변세력을 설득한다면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가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선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운명은 외세에 의해 좌우되었는데 우리가 합의하고 결정하면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대외에 과시한 최초의 합의입니다. 이런 합의가 지난 10년 동안의 변화를 가져왔지 않았나 하는 점을 우리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정인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전 위원장. ⓒ광장

문정인 : 과거 정부 10년의 대북정책을 이야기하자면 대북정책의 공과(功過)에 대한 이야기, 특히 과(過)에 대한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과(過)의 대표적인 문제로 거론되는 '대북 퍼주기'라는 논리의 핵심은 결국 정부가 북에 대해 과도하게 퍼주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지난 10년 동안 남북협력기금으로 약 8조 원 정도가 조성이 되었습니다. 이중 4조 원 정도는 경수로 계정으로 북의 신포에 경수로를 지어주는 비용으로 배정되었습니다. 이는 미국이 우리에게 압력을 가해 김영삼 정부 때 약속한 것으로 그중에서도 1조3000억 원 정도 지출되었고 나머지는 차환 계정으로 조성해서 그 금융비용으로 나간 것입니다.

나머지 4조 원에서 2조3000억 원 정도를 대북 인도지원으로 지출한 것으로 압니다. 대북 인도지원인 쌀, 비료 지원을 '퍼주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4조 원의 나머지 1조7000억 원에서 7000억 원은 남북 도로, 철도연결 사업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 7000억 원 중에서도 5500억 원은 남측구간의 도로, 철도연결 사업에 들어간 것이고 실제로 북측 도로, 철도연결에 지출된 금액은 1천500억 원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밖에도 개성공단 조성 등에 2000억 원이 소요된 것으로 압니다. 이를 보고 대북 퍼주기라고 비난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번 2차 정상회담에서 북측은 10·4 공동 선언문의 제5항에 "공리, 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 하에서 남북 교류협력을 해나가자"는 문구를 넣자고 강력히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남측의 '퍼주기' 주장에 대한 간접적 항의라 할 수 있습니다. 북측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남측 사람들이 우리에게 준 것도 별로 없으면서 계속 퍼주었다고 주장하니 이런 어불성설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겁니다. 이에 대해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 논란이 되는 것으로 제1차 정상회담 당시 현대에서 북한에 지원한 4억5000만 달러가 있습니다. 이를 두고 '퍼주기'라 하지만 이는 현대의 상업적 계산에 따른 것입니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금강산, 백두산, 개성 등의 30년 조차권을 얻는데 그 정도 대금 지불은 비싼 것이 아닙니다. 만약 2차 북핵 위기가 없었고 미북 관계가 개선되었더라면 아마 현대는 정말 엄청난 돈을 벌었을 것입니다. 비즈니스는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 아닙니까. 1억 달러 현금 준 것을 퍼주기라고 주장할 수 있지요. 하지만 그 외에 현금을 준 것은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또 금강산 관광비용, 개성공단 우리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이런 것들을 퍼주기가 아니냐고 이야기 합니다. 이런 주장을 보수 측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보수가 지향하는 것이 자유주의 시장경제 아닙니까, 시장경제에서 관광객들이 자신들의 소비로 선택한 비용을 퍼주기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니 중국 등지에서 사업하기 어려워 개성공단에 들어 온 기업들이 오버 타임 근무수당 포함해서 북측 노무자들에게 한 달 급료 63불밖에 안주는 것이 퍼주기입니까.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비판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안보 불감증에 대한 비판이 있는데 이 또한 이해가 안가는 부분입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번 쇠고기 파동이 왜 생겼습니까, 국민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들이 전쟁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살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국민이 매일 생존을 걱정해야하는 이스라엘 같은 국가는 위정자들이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제대로 못 챙긴 결과입니다. 휴전선에서 대포 소리가 나도 정부가 책임지고 알아서 하겠지, 남북관계가 좋으니까 해결하겠지 하고 정부를 믿고 일상에 전념을 하는 국민들은 행복한 국민입니다. 아니 그것을 안보 불감증이라고 몰아세우는 논리를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안보에 대해서 민감증을 갖지 않도록 하고 생업에 종사해서 열심히 돈 벌수 있도록 만들고 나머지는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것이 현대 국가의 존재이유입니다. 아담스미스가 주장했던 자유방임국가에서도 국민의 안전 책임은 국가의 목표였습니다.

세 번째, 남남갈등을 만든 것이 햇볕정책, 평화번영정책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는 보수 비판세력들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 과거 정부의 대북 정책을 정쟁화하면서 발생한 현상입니다. 대북 포용정책이 남측에 분란을 가져오고 이념적 양극화를 가져왔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네 번째, 제2차 북핵 위기가 햇볕정책 때문에 생겼다는 비판 또한 기상천외한 주장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정부 관료 중에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미국의 정책실패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미국 스스로도 인정했기 때문에 지금 미국이 정책을 바꿔가고 있는데 그것을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 때문에 2차 북핵위기가 생겼다, 참여정부의 정책 때문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계속 증폭시키고 사실이 아닌 것을 계속 사실이라고 강조하면서 국민들을 오도해 왔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남북관계가 잘되니까 한미동맹이 잘 안 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남북관계를 개선한 것은 있었지만 '민족공조'한 것은 없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이 한미동맹에 균열을 가져왔다는 주장은 절대로 수용할 수 없습니다. 햇볕정책을 비판할 때 보통 이 다섯 가지 주장들을 하는데 이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완전히 가치 개입적이고 일방적이고 현실 왜곡적인 주장입니다.

물론 인정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과거 민주정부 10년의 대북정책으로 완전한 평화를 가져오지는 못 했습니다. 아직도 불완전한 평화로 적대적 관계에서 평화로 넘어가는 일종의 중간단계에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남북 경제협력, 교류협력이 더 잘 되서 남북이 사실상의 통일을 가져올 수 있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국제정세와 같은 외생변수의 원인을 탓하는 것은 아니고 이러한 한계를 인정합니다만 일부 보수 측에서 비판하는 햇볕정책의 과(過)에 대한 지적을 국민들도 다시 한 번 냉철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해찬 (재단법인 광장 이사장)

"남북관계와 정치 민주화는 밀접하게 이어진 문제입니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바로 독재의 토양이 만들어지고 남북관계가 개선될수록 정치적 민주화가 착근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이른바 '용공음해'를 방어도 못했었는데 남북관계가 개선이 되니까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에 전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치 민주화를 안정시키는데 남북관계가 기여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북핵문제의 아웃사이더"

이해찬 : 제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2000년 6·15 정상회담을 가지고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다가 부시 정부가 들어선 이후 봉쇄가 되었던 때입니다. 미국의 공격적인 정책 때문에 거의 5년을 보내고 최근 들어서 결국 미국의 네오콘들이 정책을 수정해서 북핵문제도 해결하고 남북관계도 개선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가고 있는데 이제는 한국 네오콘들이 득세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미 정책을 수정했는데 이제 한국 네오콘의 정책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난 5년 동안에 민족문제의 당사자들인 우리의 보수, 극우세력들은 사고의 전환을 이루지 못한 채 경직성을 보여 왔습니다. 반면 최근에 미국 아틀랜틱 카운실(atlantic council)의 특별 리포트 같은 것들을 보면 자신들의 정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방향 전환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극우적인 정책을 집행하지도 못하고 사고방식만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이 불과 3개월 만에 발생하고 북핵문제 해결에 아웃사이더가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것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이냐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정인 : 저는 이런 상황을 '엇박자의 운명'이라고 부릅니다. 한국을 둘러싼 지정학적인 엇박자의 운명이 마치 악령처럼 휩싸고 있습니다.

정세현 : 정세의 흐름을 읽어내고 거기서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지혜도 중요하지만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홍보논리와 정책논리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 브레인들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표를 모으기 위해 내놓았던 일종의 프로파간다(선전), 모략성 구호에 스스로 세뇌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프로파간다와 현실 정책을 구분할 수 있는 냉철한 이성이 부족한 것 같다는 것입니다. 홍보는 그렇게 했을망정 정책을 입안할 때는 냉철하게 득실을 따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화록에도 나와 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실제 계산을 해보면 미국의 존재가 필요하다, 미군이 남쪽에 있어도 좋다"는 발언을 합니다. 그렇다면 미군철수 주장을 왜하느냐 물었더니 그것은 우리 인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선전차원에서 하는 말과 전략차원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지, 어느 길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쉽게 말해 정책 브레인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현재 정부는 그런 것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문정인 :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는 남북관계, 주변 4강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대전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문제는 모든 정책이 반사적, 조건부적인 것 같습니다. 선거에서 이기는 데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참여한 사람들 자체가 대전략을 두고 정책을 보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에 엇박자가 나는 것입니다. 방미 후 한 달 있다가 중국을 방문해야 하는데 중국을 견제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미국과의 '가치동맹' 을 표방한다면 중국이 이를 환영하겠습니까. 결국 선거 공약을 만들 때부터 큰 그림이 없다보니까 이런 현상이 초래되고 있는 것입니다. 대외정책의 공약에 평화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다자안보협력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미국 공화당의 존 매캐인 대통령 후보도 다자안보와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명박 정부는 한미 동맹과 안보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해찬 : 이명박 정부의 정책 브레인들이 갖고 있는 기본 사고는 냉전시대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냉전시대의 사고대로 진행하다보니 이런 상황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구성원들은 과거 여권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물러났고 실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경험이 없는 세력들입니다. 사고는 냉전적 관점에 기반해 있지만 국정을 운영한 경험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 프로파간다를 집행할 역량도 없고, 그것을 수정할 정치적 지혜도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문정인 : 청와대 내에 북한 전문가가 전혀 없고 중국 전문가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 전문가만 모여 있습니다. 이것이 초래한 현상이 이른바 '사유의 존재론적 제약'입니다. 미국, 일본에서 교육받고 훈련받은 사람들이 갖는 인식의 지평 속에서는 북한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까지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 이해찬 전 국무총리. ⓒ광장

이해찬 : 지금 정부가 입장을 바꿔야 합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일종의 강령입니다. 6·15 정상선언은 실천 선언인 것이고 10·4 정상 합의는 이행을 위한 합의입니다. 지난 10년 동안에 여기까지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중에 쉬운 것부터 해결해 나가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행하는 것을 전임 정권의 성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기존 합의를 실천하는 것을 현 정권의 성과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것을 실천하는 것을 역대 정부의 후과(後果)처럼 인식하고 있습니다. 정권 초기에 기존 합의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임에 따라 대북관계가 완전히 경색된 것 아닙니까. 북측이 계속 이행하라고 하니까 이제는 합의를 이행하는 것도 아니고 부정하는 것도 아닌 어려운 상황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남북합의는 이전 정부가 토대는 다져 놓았지만 그 내용을 내가 실천해서 구체적인 성과는 우리가 올렸다는 자세로 빨리 전환해야 합니다.

문정인 : 아무리 당과 노선이 다르더라도 이전 정부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뽑았던 정통성을 가진 대한민국 정부입니다. 정부가 합의하고 남과 북의 총리가 서명한 사항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헌법,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밖에 안 되는 일입니다.

또 하나,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부시 대통령의 집권 1기에 보였던 일방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부시 1기의 정책은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의 마음자세가 없었기 때문에 일방주의로 비난받고 전세계에서 반미주의가 높아진 것 아닙니까. 지금 '비핵·개방·3000'이라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먼저 비핵이라고 할 때, 어디까지가 비핵인지 명확한 개념정의가 없습니다. 또 2·13합의의 1단계, 2단계, 3단계인지에 대한 분류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3단계 수준의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한 핵 프로그램과 핵무기의 해체를 해야만 3000으로 가겠다고 하다가 요즘 6자회담이 진전될 상황이 되자 2단계 수준인 핵 프로그램의 신고만 이루어져도 지원이 가능한 것처럼 입장을 바꿨습니다.

개방에 대한 태도도 문제가 있습니다. 중국도 강력히 이야기 했지만 개방을 하고 현대화를 하는 문제는 북측에서 결정할 문제이지 그토록 자존심이 강한 북측이 남쪽에서 요구하는 대로 받을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북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미국의 네오콘적인 일방적 사고만으로 북한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2차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개방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있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일인당 국민소득을 향후 10년 동안 3000불을 만들어 준다는 것인데 이는 문제의 핵심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북한에게 핵은 체제안보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체제안보, 국가안보사안을 일인 당 소득 3천불과 동일시 할 수 있습니까. 이는 등가성의 오류입니다. 북측 인사들은 미국과의 관계만 좋아지고 국제적인 여건만 갖추어진다면 우리도 1만 불 소득 시대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비핵의 대가는 체제보장, 북미관계 개선과 북일관계 개선, 그리고 북한을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국가로 만들어 주는 것인데 이에 대한 사려 깊은 생각도 없이 구호처럼 '비핵·개방·3000'을 꺼내놓고 오히려 이것에 포로가 되어있는 상황입니다.
임동원(세종재단 이사장)

"만약 우리가 네오콘에게 굴복했더라면 철도, 도로 연결도 못되었고 개성공단도 없었고, 금강산 육로관광도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6·15 공동 선언은 사문화되는 것이고 남북관계는 파탄이 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정부에 있을 때, 가장 어려웠던 일입니다. 그렇게 집요하게 네오콘들이 무모하게 2차 핵위기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포용정책 때문에 핵위기가 왔다고? 있을 수 없는 일"

임동원 : 북한 핵문제는 미국과 북한의 적대 관계의 산물입니다. 한국이 해결하고 중국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정상화될 때만이 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있습니다. 북핵문제 해결과 미북관계 정상화를 합의한 것이 제네바 합의이고 6자회담 합의입니다. 이들 두 합의의 핵심은 핵을 완전히 폐기하는 대신에 미북관계를 정상화하고 경제지원을 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공식입니다. 이것을 올바르게 이해해야지 '비핵·개방·3000'이라는 발상이 어떻게 나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대선용 구호로서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정책으로 받아들여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핵문제는 미북관계가 정상화될 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물론 우리는 북한의 핵개발을 반대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기브 앤 테이크'할 수 있는 수단은 없습니다. 우리가 미국을 도와서 미북관계 개선을 진전시키고 북한을 도와서 핵 폐기를 빨리 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은 남북관계 개선입니다. 남북관계가 잘 되어야 미국에도, 북한에도 말할 수 있는데 남북관계가 잘 안 풀리면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이는 과거 20년의 경험입니다.

2차 핵 위기가 우리의 포용정책 때문에 발생했다는 말은 있을 수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2차 핵 위기는 고농축 우라늄계획 의혹이 원인이 된 것이지만, 고농축 우라늄문제(HEU)는 결국 과장된 정보였습니다. 국민의 정부는 이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확증된 정보가 나온다면 그 때가서 검토해보자, 현재의 의혹만 가지고는 우리의 대북정책을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클라이막스는 2002년 여름이었습니다. 당시의 남북관계는 부시 정부 최초 1년기간의 경색국면을 넘어 순조롭게 풀리고 있었습니다. 아시안게임에 북측 응원단이 오고 남북한 철도, 도로 연결논의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네오콘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철도, 도로 연결을 추진하려면 비무장지대에서 지뢰를 제거하고 연결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비무장지대의 관할권을 가진 유엔군 사령관의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경의선 연결은 클린턴 정부 때 축복을 받으면서 승인을 받았는데 동해선은 당시 럼스펠드 장관이 반대했습니다. 북측은 양 노선을 동시에 연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측과 계속 협의를 하고 있었는데 미국 네오콘들이 고농축 우라늄 의혹이 있는데 무슨 남북관계 개선이냐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정도의 의혹만 가지고는 우리 정책을 변경할 수 없고, 남북 합의를 이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남북한 간에 합의된 날짜는 다가오고 결국 김대중 대통령께서 부시 대통령에게 요청했습니다. 한미정상회담 당시 한국을 방문한 부시 대통령이 도라산역에서 이 길은 평화의 길이라고 연설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연설을 근거로 계속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미 국방장관의 훈령을 받은 주한미군사령관이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HEU)을 개발하고 있는데도 이 사업을 꼭 추진해야 하느냐고 끝까지 물었습니다. 결국 9월18일 착공식 하루 전에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 논란이 한 달 이상 계속되었는데 만약 우리가 네오콘에게 굴복했더라면 철도, 도로 연결도 못되었고 개성공단도 없었고, 금강산 육로관광도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6·15 공동선언은 사문화되는 것이고 남북관계는 파탄이 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정부에 있을 때, 가장 어려웠던 일입니다. 그렇게 집요하게 네오콘들이 무모하게 2차 핵위기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문정인 : 제가 이명박 대통령께 제안하고 싶은 것은 현재의 어려운 정국을 전환 하고 좋은 통치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승계를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8·15 경축사에 이에 대한 공식적인 내용을 담을 필요가 있습니다.

정세현 : 북측에서는 6·15 공동선언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커다란 업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어서 10·4 실천선언을 합의했습니다. 북한의 최고 수반이 합의한 내용을 부정하고서는 어떤 관계도 풀어질 수 없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정말 필요합니다.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이 들어간 문서를 상대방이 부정할 때, 어떤 해결책이 있습니까. 더구나 북한의 정치문화에서 그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6·15와 10·4선언에 대한 존중의사 표명 없이는 남북관계가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문정인 :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2·13 합의 2단계가 마무리되면 바로 6자회담이 재개될 것입니다. 그러면 대북 경제, 에너지 지원이 6자틀 속에서 진행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설 자리는 더욱 없어지고 맙니다. 남북관계가 6자회담 틀 속으로 함몰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우리의 6·15 공동선언과 10·4 공동 선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수용할 수 없습니다. 더 늦기 전에 6자회담 진전과 보조를 맞추면서 남북한 간의 기존 합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겠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밝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이명박 정부는 일석이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원하는 것이 6자회담 틀에서도 이루어지고 남북관계의 틀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광장

임동원 : 이제 북핵 프로세스가 분수령을 넘을 단계에 와있습니다. 북한이 정식 신고서를 제출하면 미국은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를 취할 것이고 그것이 발효되는 45일 정도가 경과되는 것이 8월 중순 쯤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앞서 7월초 쯤 서둘러 우리의 입장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북핵 신고서를 제출하고 미국이 의회에 테러지원국 해제를 위한 레터를 제출하는 시기에 6·15 공동 선언을 준수, 이행하여 화해, 협력을 추진하자는 선언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해찬 : 지금까지의 말씀으로 민주정부 10년의 평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논의는 어느 정도 다루어진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북핵 이후의 단계,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정책과 미국의 정책을 논의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제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 이후 2단계 조치가 마무리 되면서 6자회담의 성격이 변해갈 것입니다. 전에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주한미대사로 재직할 당시에 같이 이야기 했었는데 북핵문제를 북핵문제로만 보지 말고 동북아 평화체제 차원에서 북핵문제를 하나의 단계로 보는 것이 좋겠다는 논의를 했었습니다. 결국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동북아 평화체제가 오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시간이 중국에 유리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있지 미국에게 유리한 상황은 아닐 것이고 미국이 동북아 평화체제를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만들어 낸다는 차원에서 북핵문제를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결국 유럽이든 우리든 20세기에 많은 전쟁을 치룬 지역입니다. 얼마 전 제가 러시아와 북유럽을 여행했었는데 EU는 사실상 국경이라는 것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길에서 군인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여권을 러시아에 입국할 때 보여주고 독일에서 귀국할 때 한번 보여주는 것 말고는 아무런 제한이 없는 상황으로 발전했습니다. 유럽은 이제 전쟁이 없는 지역으로 바뀌었는데 그에 못지않은 전쟁을 치룬 동북아는 여전히 막강한 화력이 집중되어 있고 국방비가 수백억 달러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만 해도 2007년 국방비가 24조 원(226억 달러)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북핵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동북아 지역을 다자안보체제,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려는 우리의 전략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입니다.

임동원 :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하고 다른 하나는 동북아 안보협력체제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아마도 우리가 리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6자회담의 9·19 공동 성명에서도 합의한 내용으로 동북아 안보협력체제 구축을 위해서 협의를 해나간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합의를 추진한다는 내용은 이미 다 들어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회담은 아마도 4자회담이 될 것인데 4자회담에서 주인인 우리가 주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미국, 중국이 주도하면 자신들의 국가 이익적 차원에서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평화체제를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체제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한반도 평화체제가 보장되려면 동북아 안보협력체제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사실 6자가 동북아 안보협력 체제를 논의하자는 것에 합의한 자체가 큰 진전입니다. 여태까지는 그러한 컨센서스가 존재하지 못했습니다. 6자회담의 초반 1, 2, 3차 회담은 네오콘이 주도했기 때문에 5자 연합전선, 다섯 나라의 연합전선으로 북한을 굴복시키려는 전략을 썼습니다. 될 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섯 나라들은 이에 반발했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미국의 이러한 태도에 특히 반발했습니다. 결국 북한이 핵보유 국가라고 선언한 다음에야 미국이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9·19 공동성명을 이루어내는데 참여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힘이 당시에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같이 미국이 하자는 대로만 하겠다는 식으로 간다면 남북 평화체제 구축문제도 진전이 있기 어려울 것입니다.
문정인(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13 합의 2단계가 마무리되면 바로 6자회담이 재개될 것입니다. 그러면 대북 경제, 에너지 지원이 6자틀 속에서 진행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 정부는 설 자리가 더욱 없어지고 남북관계가 6자회담 틀 속으로 함몰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더 늦기 전에 6자회담 진전과 보조를 맞추면서 남북한 간의 기존 합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겠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밝혀야 합니다."

"냉전적 사고로 대외정책 구상해서야…"

정세현 : 9·19 공동성명 제4항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성을 위하여 별도의 포럼을 구성한다고 되어 있는데, 6자회담 틀에서 별도의 포럼을 만든다는 것은 4자회담을 이야기 한 것이고 남·북·미·중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 4자 방식과 관련해서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남북 평화협정의 논의 과정을 보면 월남문제가 미국과 월맹 중심으로 풀리기 전인 70년대 초반까지 북한은 미군 철수를 전제로 남북 평화협정을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월남문제가 미국과 월맹중심으로 풀려나가는 것을 보면서 1974년 갑자기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제의하고 나섰습니다. 당시 미국은 공식적으로 미북 평화협정은 안 된다 어디까지나 남북이 먼저 문제를 풀고 미국은 휴전협정 당사자의 자격으로 그것을 지원하는 것까지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는 현재까지도 공식적 입장입니다. 이른바 2+2 방식에서 앞의 두 국가는 남과 북이고 뒤의 두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라고 천명해 왔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천명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국의 의도는 이를 적당히 섞어서 사실상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평화체제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지금 한국정부가 정신을 못 차리면 그러한 흐름으로 가서 현상유지, 분단 고착화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을 막는 방법은 미국이 공식적으로 이야기하고 약속한 그대로 흘러가도록 2+2의 기존 원칙을 미국에도 재약속 받고 남북관계의 관계를 심화, 발전시켜서 남북한 간에 확인하고 이를 공표해야 합니다. 제2차 정상회담 제4항에서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지만, 이에 대해 미국도 다른 소리를 못하도록 하고 북한도 약속을 확실히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핵문제가 분수령을 넘은 후 시작될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통일 지향적인 평화체제 쪽으로 틀이 잡힐 수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평화체제 구축 논의를 위해서도 이명박 정부는 6·15와 10·4선언을 확실히 승계한다는 점을 밝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평화체제 논의과정에서 이명박 정부는 엄청나게 큰 외교적 업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문정인 : 저는 조약이나 평화체제의 개념 문제를 좀 거론해야겠습니다. 평화체제는 어느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만들기 위한 일련의 규범, 원칙, 규칙과 절차들을 총괄하는 것을 한반도 평화체제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안에 어떤 것들이 있어야 하는가 하면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공동선언에 기초해서 남북한 간의 적대적 관계를 해소하고 서로 공존하고 통일로 향하는 신뢰의 규범이 구축되고 그것이 현실화되는 것이 제일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로 핵심적인 것은 북미관계의 정상화입니다. 2+2와 같은 형식에 대한 논의, 중국의 참여문제 같은 것보다 북미관계 정상화가 더 중요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미국 사람들의 인식이 전환되어야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민주당이나 공화당 모두가 미북관계 정상화를 협상의 결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잘못된 인식입니다. 민주당의 오바마 후보는 이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지도자라고 보고 있습니다만 지금 당장 관계를 정상화해서 평양에 대사관을 설치하면 모든 협의가 쉽고 북핵문제에 대한 감시, 감독도 더욱 편할 것입니다. 인권문제도 직접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해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맺었듯이 북미관계 정상화에 대한 기본조약을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조약에 우리가 참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러한 논의들을 전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세 번째로 4자, 남·북·미·중 정상들의 종전선언을 위한 정상회담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입니다. 중국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저는 휴전협정체제를 다시 4자가 참여하는 다른 평화협정체제로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북 사이에는 남북기본합의서가 있고 6·15 공동선언, 10·4 공동선언에 따라 움직여 나가고 남북연합 단계, 사실상의 통일단계로 나가면 이것이 평화를 담보해주는 것입니다. 북미 간에는 정상화하고 중국은 종전선언을 통해 중국과 미국이 관여되는 휴전협정체제가 종결되었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주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과 중국이 포함되는 4자 틀의 평화조약이나 협정은 반대입니다.

그 다음에 한반도 평화를 담보해주는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는 시작을 6자회담 참가국의 외무장관회담에서부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북아 전역에 있어서 피스 메이킹(평화 형성)하는 신뢰구축, 군비통제 심지어 군비 감축까지도 포함하는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가 구축이 된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평화체제가 가시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핵심은 남북관계 개선입니다. 남북관계에 신뢰가 있고 적대적 정책이 해소된 상태가 있어야 북미관계 정상화, 북일관계 정상화도 가속화되고 종전선언을 위한 4자 정상회담도 쉽게 마련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관계가 먼저 정상화되지 못하면 우리는 한미동맹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한미동맹이 강화되면 다시 미북관계 정상화의 가능성이 줄어들 우려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남북관계 개선도 없고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에 관한 내용도 없습니다. 오직 한미동맹 강화, 한·미·일 삼국 공조만 있다 보니까 결국 이 구도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고 한반도에서 긴장과 대립을 재생산하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외정책을 만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냉전적 사고가 고착화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북한은 없어야 될 국가이고 김정일 체제의 붕괴는 임박해있고 '중국 위협'은 실제 존재한다고 인식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정책적 선택은 한미 동맹강화, 한미일 삼각공조에 있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해찬 : 이명박 정부의 정책 담당자들의 사고는 냉전적 사고방식인데 실제로 정부를 운영하다보면 미국의 네오콘처럼 결국 정책이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지만 늦어질수록 우리 민족에게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 올 것입니다. 문제는 정책을 바꿔나갈 때, 제대로 인식을 하고 정책을 바꿔야 합니다. 제대로 인식을 못하고 바꾸면 다시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손실되는 기회비용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점들을 잘 고민해서 북미관계가 풀어져 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잘 이용해야 할 것입니다. 바쁘신 가운데에도 끝까지 열띤 토론을 이끌어 주신 참석자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좌담회는 민주정부 10년의 남북관계를 되돌아보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성찰을 모색해보는 뜻 깊은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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