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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만 144명, 가습기살균제가 갈라놓은 부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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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만 144명, 가습기살균제가 갈라놓은 부부는…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9>]이혼의 아픔

2011년 11월 11일 정부가 동물실험 결과에 따라 가습기 살균제 6개 제품의 판매금지 조치를 발표하던 기자회견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정부 발표 내용 가운데 피해 대책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자 연단에 뛰어 올라가 "피해자들은 어쩌란 말이냐? 알아서 제조사에 소송하라니, 말이 되는 소리냐?"라며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을 향해 피해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정부를 질타한 피해자 A씨가 있었다.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이를 제지하고 A씨를 연단에서 끌어내리려 하자 그는 완강하게 버티면서 "나는 아이를 잃었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어린이가 죽고 가정이 파탄 나고 있는 줄 아느냐?"고 몸부림치며 항의했다.

그의 울부짖음은 그날 저녁 방송 뉴스로 생생하게 전달되었고 가습기 살균제로 아이를 잃은 많은 부모의 절절한 심정을 대변했다. A씨는 필자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접하고 가장 먼저 만난 피해자 가족 중 한 사람이다. 사건 발생 초기부터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활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앞장서 온 피해자 가족이다.

정부가 손 놓은 사이…사망자 144명으로

정부가 피해자 문제에 대해 전혀 손을 쓰지 않는 사이 환경보건시민센터에 피해 사례가 계속 접수되었다. 300건이 넘는 피해 사례를 6차례에 걸쳐 중간중간 계속해서 공개했다. (2012년 말에 정부와 시민단체에 접수된 피해 사례를 한데 모아 관련성을 공동조사하기로 합의하여 이후 조사가 진행 중인데, 2013년 11월 1일 기준으로 접수된 피해 신고 사례는 모두 541건이고 이 중 사망자가 144명이다.)

너무 많은 피해 신고 사례를 접하다 보니 개별 사례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를 들을 여력이 없었지만 가족을 잃는 황망한 과정에서 이혼으로 가정이 파탄 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다. 특히 어린아이가 피해자인 경우 부모가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매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아이가 세상을 떠나버리면 남은 가족은 견디기 힘든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 지난해 11월 1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신천동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빌딩의 한 식당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 회원이 옥시레킷벤키저 관계자를 만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A씨의 경우도 하나뿐인 아이를 가습기 살균제로 잃는 과정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고 아이와 같이 살았던 집에서 있기 어려워 집을 옮기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이후 몇 달이 지나는 동안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그가 이혼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A씨의 부인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접수되었다. 주소지가 친정집으로 되어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라는 생활 용품은 아이의 생명을 앗아가더니 남은 부부의 연마저 이렇게 갈라놓아 버렸다.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 가족인 B씨의 사례를 통해 필자는 그동안 이 사건을 다루면서 들었던 여러 의문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의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1995년 본격적으로 가습기 살균제가 시판된 이후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2011년까지 17년 동안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을 텐데 왜 2011년에서야 알려지게 된 것과 질병관리본부가 추산한 것처럼 겨울철에 800만 명이 넘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가 있었다면 접수된 541건의 피해 신고 사례보다 훨씬 많은 피해자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이다.

B씨의 사례는 자식이 가습기 살균제로 사망했지만 피해 접수를 하지 않은 경우다. '그런 일을 당하고 어떻게 피해 접수를 하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럴 수 있겠다'싶은 생각이 들었다.

B씨는 2006년 3살 된 아들을 잃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간질성 폐렴이었는데 대학병원 중환자실에는 그의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 여럿이 같은 증상으로 입원해 있었다. 그리고 하나씩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이가 하나만 있는 집에서 아이가 죽게 되면 열에 아홉은 이혼합니다. 아이가 죽은 이유가 무엇이든 부부간에 불화가 생기게 마련이고 대부분 이를 극복하지 못해요."

본가(친정)와 처가(시댁)에서 도와준다지만 부부간의 불화가 양가 집안 싸움으로 번지기 쉽고 결국 갈라선다는 것이다. 아이가 여럿이었다면 남은 아이들 때문에라도 부부간 불화를 극복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아이를 갖게 되기도 하지만, 하나뿐인 아이를 잃은 경우에는 부부간의 갈등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B씨의 경우도 그랬다고 한다.

이혼 후 시간이 지나 그는 재혼해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2011년 8월 31일 정부발표를 통해 2006년에 아들이 죽은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B씨는 새롭게 꾸린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전처와의 사이에 생겼던 아들의 피해 사례를 신고하지 않기로 했단다. 그는 당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죽어간 다른 아이들도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며 알려지지 않은 피해가 많이 있을 거라고 했다. 필자는 B씨의 아들 사망 사례를 가명으로 접수했지만 그가 죽은 아들의 병원 기록을 제출하지 않아 판정은 현재로서는 하기 힘들게 됐다.

둘째 아들 사망 후 별거한 부부

C씨의 사례는 아이가 둘 이상 있는 가정의 경우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어떻게 부부 사이를 갈라놓았는지 보여준다. 전라도에 살던 그는 일하러 다녔던 경상도에서 부인을 만나 아들 둘을 두었다. 영민했던 둘째 아들을 끔찍이 아꼈던 C씨는 그가 원인 모를 폐질환으로 사망하자 삶의 의욕을 잃었다. 그는 집을 나와 버렸고 고향인 전라도로 돌아왔다.

작년 8월 초 필자가 환경 노출 조사를 위해 혼자 사는 그의 컨테이너 집을 방문했다. 마침 중학교에 다니는 큰아들이 그곳에 와 있었다. 별거 상태인 부부 사이를 하나 남은 아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가정의 끈을 이어주고 있었다. 어떻게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는지 묻다가 필자는 C씨와 큰아들, 그리고 부인도 모두 폐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들 모두가 가족 단위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이자 피해자라고 판단했다. 필자는 그 자리에서 C씨에게 부인과 전화를 연결해달라고 요구했다.

가습기 살균제 구입 과정과 사용 과정을 더 자세히 조사해야 하니 부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는 이유를 댔다. 스피커폰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필자는 C씨와 부인 그리고 아들이 모두 함께 이른 시일 내에 서울의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진행하는 검진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별거 중인 이들 부부는 얼떨결에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그의 집을 나오며 이들 부부가 둘째 아들의 사망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가정의 화목을 되찾기를 바랐다.

D씨는 하마터면 부부가 갈라설 뻔했던 위기를 겪었다. 건강하던 D씨는 직장 출근길에 갑자기 쓰러졌다. 그 뒤 병원에서 한때 사경을 헤매다 폐를 이식한 후에 겨우 살아났지만 수술 후유증이 심하다. 직장에 다니는 일은 꿈도 못 꾸고 집에서도 목발을 짚어야 한다. 겨울이면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들락거려야 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돌봐주지 못할 상황이라 본가 어머니가 와서 집안일을 봐준다. 아내가 직장에 다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하자 부부간에 불화가 심해졌다.

작년 초 국회에서 피해자 모임이 있을 때 나온 그의 표정이 어두웠다. 이혼할지도 모른다며 한숨을 쉰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간간이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하곤 했는데 점차로 그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몸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지만 부부 사이는 회복되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건강한 딸아이가 가운데서 엄마와 아빠의 손을 꼭 잡아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습기 살균제로 손녀를 잃은 할머니 E씨는 하마터면 아들 내외가 파경까지 할뻔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예쁘고 건강했던 세 살짜리 딸을 잃은 아들 내외는 하루가 멀다 하고 투닥거렸다. 키가 170이 넘는 며느리는 체중이 40킬로그램 대로 바짝 말라갔다. 아들 내외와 같이 사는 할머니는 며느리를 친정으로 보내 심신을 달래고 오도록 했다. 이후 다행히 새로운 아기가 생겼고 아들 내외도 잘 지낸다. 2011년 8월 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알려졌고 딸이 죽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나 힘든 과정을 거친 아들 내외는 딸 이야기를 일체 못하게 한단다. 너무나 원통한 할머니는 "내가 나서겠다"고 하며 피해 신고를 했고 광화문 일인시위와 국회 피해자 모임에도 몇 차례 참가했다.

가습기살균제로 망가진 가족…심리적 지원 필요

가습기 살균제는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만 해친 게 아니다. 원인이 알려지기 전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리고 원인을 알게 된 이후에는 왜 그런 제품을 사다 썼느냐고 하는 질책의 말들이 살아남은 가족과 친척들 서로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다. 그리고 적지 않은 부부들이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지 못했다. 살아남아 환자로 살아가고 있는 피해자들의 가정도 조마조마한 경우가 많다. 부모 친척이 도와주는 것도 한계에 달하고 경제적 어려움은 더해간다.

건강하고 정상적인 부부들도 헤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가습기 살균제가 할퀴고 간 가정들의 가족관계는 더욱 위태위태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위한 물질적 지원과 구제는 물론이고 '가습기 살균제 환경성 질환 환경보건센터'와 같은 기구를 만들어 피해 조사와 환자 관리와 함께 흔들리는 가족관계를 잡아주는 사회 심리적 지원 프로그램이 가동되어야 한다.

지난해 마지막 날, 기획재정부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환경부와 합의하여 보완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예산에서 요양급여와 사망조의금 30억 원을 삭감해 버렸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소비자와 제조사 간의 분쟁이므로 국가가 세금을 과도하게 지원해선 안 된다'는 이유다. 기획재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작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공청회에서 기획재정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 사건의 원인이라는 보건복지부의 역학조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이 문제가 논쟁 중인 사인이라서 법원이 판단할 문제'라는 시각을 국회에 보낸 공식 문서에 드러냈다.

그러면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 구제법을 만들면 안 된다'는 논리를 편다. 최소 144명의 무고한 국민을 죽이고 수백 명을 다치게 한 사건을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관료라는 사람들은 '소비자와 제조사 간의 분쟁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장치를 정비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담당 부처인 환경부와 국회 담당 상임위원회의 활동에 사사건건 제동을 건다.

가습기 살균제로 사망한 1~5세의 영유아와 30대 산모 중에는 제대로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증상 발생 2~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사례가 많다. 이런 경우는 병원비가 얼마 되지 않는다. 앞서 살펴보았듯 많은 가정이 이 사건으로 파탄 났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병원비만 지급하는 환경부의 예산 초안에 여야 합의로 유족조의금과 요양수당을 추가하자고 했던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유족조의금과 요양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국민 혈세를 잘못 쓰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환경부 장관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금은 나중에 제조업체에 구상권을 청구해 반환받겠다고까지 한 마당인데도 말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서울대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과 공동으로 지난해 12월 15일 전국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국민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응답자의 84.9%가 '국회에 계류 중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안을 제정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 대다수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더욱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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