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스터에서 어학을 마치고 쾰른에 정착하여 처음에는 기숙사에 살다가 공공 임대 주택(사회주택)을 받아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기숙사가 아닌 보통 주택에 살게 되었다. 나중에 학업을 마치고 베를린의 대사관에서 근무할 때에는 제대로 급여를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공공 임대 주택을 신청할 수 없어서 일반 주택을 얻어 살았다.
재산이 없고 소득이 많지 않거나 장애가 있거나 실업자인 경우, 독일 국적이 없더라도 누구나 공공 임대 주택을 신청하여 받을 수 있다. 여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간단히 말해 사회적 약자임을 증명하는 WBS(사회주택 거주권 증명서)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해당 구청에 소득 증명서 등 10여 가지가 넘는 서류들을 제출하여 심사를 거친 후에 받을 수 있다. 대신 이것을 받아 공공 임대 주택에 들어가면 일반 주택과 똑같은 집인데 훨씬 적은 월세를 내고 살 수 있다.
이외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주택 정책으로 수입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매월 집세의 일부를 지원해주는 '집세 보조금(Wohngeld)' 제도가 있다. 과거 서독 지역에서는 1965년부터, 동독 지역은 통일 후 1991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다만 이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법에 규정된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독일에는 전세 제도가 아예 없다. 모든 임대 방식은 월세로만 존재한다. 가끔 독일 친구를 비롯하여 외국인 친구들에게 우리의 전세 제도를 설명하면 아주 희한하게 생각하였다. 특히 전세를 살다가 나갈 때 전세금을 모두 돌려주는 것에 대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곤 하였다. 이런 것을 보면 전세 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아주 예외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겠다.
과거 급속한 경제 성장과 인플레를 경험하면서 집값이 계속해서 오르고, 전반적으로 자본이 부족하여 이자율이 높았을 때에는 전세 제도가 가능하였고, 나름대로 잘 작동하였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계속 내려가고 있고, 자본이 풍족하여 저금리 현상이 지속하면서 그러한 전세 제도는 이제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워 보인다.
▲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이 68주 연속 올라 역대 최장 상승 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은 송파, 서초, 강남 등이 0.26% 이상의 오름세를 보였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2 일 오후 강남의 한 부동산 모습. ⓒ연합뉴스 |
월세가 불쌍하다고? 독일에선 일반적!
독일에서 집을 구하는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여러 가지 지역 신문의 임대 광고나 인터넷 임대 사이트를 이용해서 원하는 장소와 가격대의 집을 찾는다. 물론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중개업소가 우리처럼 많이 눈에 띄지는 않았던 것 같다. 괜찮아 보이는 집을 발견하면 미리 약속을 하고, 직접 방문하여 둘러볼 수 있다. 집이 마음에 들면 계약의사를 밝히면 된다. 가끔 내놓은 집의 조건이 좋아 희망자가 많을 경우에는, 거꾸로 임대인이나 임대회사가 입주자를 선택하기도 한다.
집의 규모가 크고 월세가 비싼 집들은 주로 부동산 중개업자를 통하는 것 같은데, 일반 주택의 경우에는 보통 그 주택을 관리하는 회사가 임대 절차도 맡아서 한다. 또는 드물게 집주인이 직접 광고를 내기도 한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는 대개 2~3개월 치의 월세에 해당하는 금액을 요구한다. 이것이 부담스러울 경우, 일반적으로 중개 수수료 내용이 부동산 광고에 들어있으니까 사전에 수수료가 없는 집을 고르면 된다. 그밖에 임대차 계약서를 쓰기 전에 임대 회사는 세입자의 소득 증명을 요구하기도 한다.
임차인은 계약서를 쓰고 입주하면서 임대 회사에 보통 월세 2~3개월 치에 해당하는 임대 보증금(Kaution)을 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보증금과 비슷한 것이나, 그 돈의 성격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이 보증금은 주로 세입자가 나갈 때 집의 상태가 들어올 때와 다를 경우, 그것에 대한 수리 비용으로 쓰인다. 집에 하자가 없으면 당연히 전액을 돌려받는다. WBS를 받은 공공 임대 주택의 경우에는 이 임대 보증금을 구청에서 대신 부담하도록 신청할 수 있다.
세입자는 나갈 때 집의 상태를 처음 집을 받았을 때와 똑같이 완벽하게 해놓아야 한다. 반대로 손보지 않은 상태의 집을 받았을 때는 스스로 정리하여 살고 나갈 때는 그냥 부담 없이 가면 된다. 또 "몇 년에 한 번씩 벽을 칠해야 한다, 무엇을 교체해야 한다." 등의 내용들이 계약서나 집 관리 규정집에 들어있다. 이런 방식으로 엄격하게 관리가 되기 때문에 집들이 쉽게 낡지 않고 항상 새집처럼 유지되는 것 같았다.
쾰른에서 집을 받았을 때는 후자의 경우였다. 방의 벽지는 낡았고, 거실 벽들도 오랫동안 방치해서 심란했으며, 부엌에는 싱크대조차도 없었고, 심지어 전구도 달리지 않아서 전반적으로 손을 봐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인건비가 비싸서 이를 어쩌나 엄두가 나지 않았었는데, 미하엘(Michael)이라는 친구와 그의 아버지가 여러 가지 도구와 장비를 가지고 와서 모든 것들을 처리해 주었다.
임대 관리 회사가 화장실이 오래되어 보수를 해준다고 했는데, 입주 전에 공사가 끝나지 않아 입주한 후에도 2주일가량 고생을 했다. 대신 첫 달치 월세는 절반만 청구되었다. 반대로 베를린에서 집을 얻었을 때는 모든 것이 완벽하여 청소조차도 크게 필요치 않았다. 대신 그 집에서 나올 때는 다시 완벽하게 하느라 상당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였다.
우리의 경우 옛날 사글세의 경험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월세를 산다고 하면 측은하게 보는 사회적 시선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다. 물론 최근에 보이는 고가 월세의 경우는 예외로 해야겠지만. 하지만 요즘같이 아파트 가격의 거품이 꺼지면서 전세금을 날리는 경우가 종종 생겨나는 것을 보면, 전세보다 월세가 훨씬 더 합리적인 제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월세가 크게 오르지 않아야 하고, 자주 이사 다니는 번거로움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독일에서는 그러한 걱정이 없다. 왜 그런지 다음 편에서 소개하겠다.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 독일의 안정적인 주거 문화 ① 무작정 오른 유학길, 독일에 가보니 '0층'이? ② 가족 수가 많아지면 임대 주택도 커지는 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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