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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그냥 공주님이 아니라…"

[현장] 10만, 그들이 한파를 뚫고 총파업 집회에 나선 이유들

"억울합니다."

칼바람이 몰아치던 28일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 현장. 이곳에서 만난 중년의 건설 노동자 김영환(가명·53) 씨는 지난 22일 민주노총 공권력 투입 사태를 떠올리며 "억울하다"고 말했다. 캡사이신을 맞고 동료 조합원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자,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한다.

김 씨는 이날 집회에 그런 마음으로 왔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지침 이전에 이미 "피가 거꾸로 솟아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단다. "노동자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뭡니까. 우린 죄다 범죄자라는 거 아닙니까. 박근혜, 정말 잘못 건드린 거예요"라며 거친 손을 주머니에서 꺼내 담뱃불을 붙였다.

플랜트노조 조합원 박성민(가명·41) 씨는 충남에서 관광 버스를 빌려 동료들과 함께 왔다. "노동자들은 맨날 일하다 다쳐 죽고 무시당하고, 저들 하면 다 합법이고 우리가 하면 다 불법이지요"라며 "경찰이 내 안방(민주노총 건물)까지 쳐들어왔는데 열불이 터져 죽겠습니다"라며 격한 감정을 표출했다.

'일당 쟁이' 건설 노동자들은 이날 총파업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하루 벌이를 포기했다. 박 씨는 "민주노총이 무너지면 어차피 우리 생계도 다 파괴된다. 박근혜 정권이 민주노총을 짓밟으려는데 오늘 하루 포기하는 게 뭐가 대수겠는가"라며 파업에 동참한 이유를 설명했다.

▲ 28일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가 열린 서울광장. ⓒ프레시안(최형락)

"안방 습격 당한" 억울한 노동자들…"박근혜 잘못 건드렸다"

초유의 민주노총 공권력 난입 사태가 있고 6일이 흘렀다. 매서운 한파 속, 정권이 얕본 '노동자'들의 분노는 그러나 식을 기미가 없어 보인다. 집회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지하철 시청역 지하 역사는 "민영화 반대" 피켓을 든 이들로 가득 찼고, 밀려든 인파로 역사 밖으로 나가기도 쉽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들어 가장 큰 규모의 집회다. 서울광장뿐 아니라 길 건너 대한문 앞과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쪽 삼거리, 재능 본사 앞 도로에도 사람들이 들어찼다. 무대 하나로는 집회를 진행할 수 없어 곳곳에 스크린과 스피커가 설치됐다. 경찰은 이 인파를 2만5000명이라고 추산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셈법이다.

이날 집회 분위기는 이전과 사뭇 달랐다. 누군가 무대에 올라 발언을 해도 사람들은 제각각의 대화를 이어가는 게 흔한 집회 풍경. 그러나 무려 20분가량 이어진 투쟁사에도 사람들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의 발언에 귀를 기울였다. "박근혜는 가난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과 싸우고 있다"는 그의 목소리 말고는 들리는 것이 잘 없다.

신 위원장을 이어 한국노총 문진국 위원장이 무대에 섰다. 나부끼는 민주노총 깃발 바로 옆에 선 한국노총 위원장이 "노동 운동을 탄압하는 정권과의 투쟁에 있어서만큼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결코 둘일 수 없다"고 하자, 참가자들의 환호성과 손뼉 소리가 집회 장소를 후끈 달궜다.

▲ 28일 총파업 집회 현장. 집회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마치고 거리로 나서 "박근혜 퇴진"과 "민영화 반대" 등을 외쳤다. ⓒ프레시안(최형락)

민주노총 습격? "조합원 아니지만, 무시 당한 기분이다"

민주노총이 선두에 선 집회다.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와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 때엔 민주노총이 적극 나서지 않아 아쉽다는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날은 민주노총이 보란 듯 집회 분위기를 주도해 나갔다. 철도 파업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그런 민주노총에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모습이다.

직장인 이진아(가명·36) 씨는 "나는 민주노총 조합원이 아닌데도, 민주노총 침탈을 보고 있자니 '어디 한번 해보자'며 정부가 싸움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며 "무시당한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강지은(가명·20) 씨는 "민주노총 아저씨들을 처음 만났는데도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란 느낌이 든다. 철도노조를 응원한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김현아(가명·25) 씨는 "최근 있었던 일 중에 가장 화나는 일이 경찰이 민주노총을 쑥대밭으로 만든 일이다. (정부가) 법 위에 있으려고 한다"고 했고, 고등학생 박현우(가명·19) 군은 "정말 폭력적이더라. 이번 일로 민주노총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졌다. 민주노총이 불쌍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수서발KTX 별도 법인 설립은 '민영화가 아니'라고 반복해 말하는 것을 이들은 도무지 신뢰할 수 없다. 행정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송민지(가명·21) 씨는 "공기업론 교과서에서도 경쟁 체제 도입은 민영화의 한 방식이라고 쓰여 있다"며 "민영화가 아니라고 우기는 건 '이건 피클이지 오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어떻게 저런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나"라며 답답해했다.

인도에서 가두시위를 구경하고 있던 한 커플은 "민영화가 아니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면 저 사람들은 뭐하러 감옥에 갇히고 해고당하는 걸 감수하겠나 싶다"며 "이렇게까지 노조가 물러설 수 없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정치인들 말보다는 자기 미래를 포기한 노동자들 말이 더 신뢰 간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 그냥 공주가 아니라 멍청한 공주예요"

7살 딸과 함께 거리로 나선 문지원(가명·43) 씨는 정부가 "국민을 바보로 안다"고 했다. 문 씨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길 보통 사람이라고 우긴 것 이상의 우격다짐"이라며 "국민들은 촛불집회 때는 광우병을 공부했고, FTA가 논란이 됐을 땐 FTA를 공부했다. 이번에도 이것이 민영화를 위한 포석이란 걸 국민들은 알고 있다. 철도 파업 보도를 하며 국민 불편만 부각하는 언론들도 국민의 지적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집회 참가자들의 성토는 결국 정권의 '불통'을 향한 분노로 이어졌다. 인파 말미에서 촛불을 들고 있었던 20대 초반 두 여성 참가자들은 "어젯밤 (수서발TKX 법인 사업) 면허가 발급되는 것을 보고 집회에 오기로 결심했다"며 "(한국철도공사 최연혜 사장이) 조계사에 가서 협상하자고 했던 것은 완전히 '쇼'였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은) 공주병이 확실하다"며 "원래 공주병 걸린 사람들이 다른 사람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지 않나. 자기에게 '왕관'을 씌워 준 사람들이 국민이란 걸 LTE 급 속도로 잊어버린 걸 보니 그냥 공주가 아니라 멍청한 공주다"라고 비꼬았다.

저녁 8시 30분께. 도로를 점거했던 시위대는 경찰과 큰 충돌을 빚지 않고 평화롭게 해산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영하의 서울 도심 곳곳으로 흩어진 이들은 몸을 녹일 수 있는 카페 등을 찾아 아쉬운 마음을 '박근혜 욕하기'로 달래는 모습이었다. 2013년 연말,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민영화'와 '정권의 불통', '민주노총'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다른 누가 아닌, 박근혜 정부가 만든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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