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을 시작한 지 11일째가 됐다. 장성택 숙청 사건, 철도 민영화 논란과 철도 파업, 연예인 성매매 수사 등 굵직굵직한 사건에 밀려 많은 관심을 받진 못했지만, 이들의 파업은 여러 면에서 주목해볼 부분이 많다. 어쩌다 이렇게 성별도, 나이도, 하는 일도 제각각인 이들이 하나의 노조에 집단 가입하게 됐을까. 140~280만 원 수준의 저임금 중 상당 부분을 싹둑 잘라내는 결단을 해가며 무기한 파업이란 '벼랑 끝 전술'을 쓰게 된 이유는 뭘까.
▲ 17일 오전 인천공항 교통센터에서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소속 조합원들이 파업 11일째를 맞은 채로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세요. 86% 확률로 비정규직"
민영화 논란 덕택(?)에 잘 알려졌다시피, 인천공항은 한마디로 '잘 나가는' 공사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다른 공사와는 달리,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 연속 흑자를 내고 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5100억 원. 재작년(3609억 원)보다 1491억 원을 더 벌었다. 8년 연속 '세계 공항 서비스 평가(ASQ)' 1위, 유엔글로브콤팩트(UNGC)가 주는 '노동존중경영상' 수상 기관이란 명예도 드높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자. 인천공항은 정규직 990명, 소속 외 인력(하청 노동자를 뜻함) 6100명의 땀으로 굴러간다. 공항에 들어서 아무 직원이나 붙잡고 길을 물었을 때, 그 직원이 직접 고용 정규직일 확률은 15%도 되지 않는다. 2010년부터 2012년 사이 여타 공공기관이 정규직 전환 실적을 내겠다며 나름대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을 때에도, 인천공항만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 기간 인천공항의 정규직 전환 비율은 독보적인 '0%'다.
비정규직들이 하는 일들을 면면이 훑어 봐도 적잖이 놀랍다. 집중 교육이 필요한 탑승교 인력, 공항 내 폐쇄회로(CCTV) 등을 관리하는 보안·경비 직원, 공항 조명 및 건축 관리 인력, 소방대원, 청소 및 시설 관리 인력 등…. 국가중요시설인 공항이 이런 일들을 하청에 넘겨 진행해도 되는 건가? 17일 만난 파업 참가자 ㄱ 씨는 이를 두고 "조금 지나면 본인들 남편, 부인도 하청줄 모양"이라고 비꼬았다.(☞ 관련 기사 보기 : "추석 해외 여행, 누구한테 서비스 받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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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장이 문제 해결할 열쇠 쥐고 있다"
교통센터에 자리를 잡은 시위대 전면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여럿 붙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진짜 사장 나와라"란 현수막이다. 파업 참가자들은 집회를 진행하는 내내 "진짜 사장"이란 표현을 수도 없이 썼다. "인천공항공사는 협력업체 뒤에 숨지 말라"는 글귀도 보인다. "니들이 말하는 단순 업무 노동자 화나면, 공항이 멈춘다"는 현수막도 있다.
길게는 13년을 공항에서 일하고도 '소속 외 인력'으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지난 3월부터 14개 하청 업체들과 임금과 근로조건 등을 두고 집단 교섭을 벌였지만, 계절이 세 번 지나도록 도장을 찍지 못했다. 신철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조직국장은 25페이지에 달하는 단체협약 자료를 쓸어넘기며 그 책임은 원청인 인천공항공사에 있다고 했다.
"공사가 의지있게 조정에 나서면 교섭이 진행돼요. 안 해주겠다고 미루던 것도 합의해주기도 하고요. 그러다 공사가 한 발짝 빼면 하청들은 두 발씩 빼는 일이 3월부터 반복되고 있어요. 이런데 어떻게 공항공사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겠어요. 자기들은 이해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뒤에서 하청업체들을 다 조종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에요."
지지부진한 교섭 뒤엔 공항공사가 있다는 의구심은 쟁의 행위가 시작되며 더해졌다. 민주당 은수미 의원과 노조에 따르면, 공사는 지난 10월 말 하청업체 관리자들을 불러 6단계 노조 파괴 방안(①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가라 ② 공사가 쟁의를 주도한 사람의 교체를 요구 ③ 하청업체가 해당 인력을 해고 ④ 소송 제기 시 지연전으로 대응 ⑤ 잔여 조합원 노조 탈퇴 유도 ⑥ 노조 파괴, 종결)을 지시하고, 각 협력업체에 공문을 보내 노조 활동 관련 대응 계획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는 의심도 사고 있다.
공사는 이 같은 논란이 불거지자 '불법 파업에 대해선 엄단해야 한단 뜻을 전달한 것일 뿐'이라며 노조 파괴 시나리오의 존재와 가동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조는 "현장 인력들은 시나리오 가동을 몸소 체험했다"며 정창수 공사 사장과 하청업체 대표 등 20여 명을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다.
▲ 17일 오전 인청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겠다며 공항공사 청사를 방문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
1700명의 사직서…인천공항은 거부
집회 분위기가 한참 오르던 11시 30분께. 이들은 교통센터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머리에 장례 두건을 썼다. 그리고 약 10분을 걸어 인천국제공항 청사로 줄지어 이동했다. 그간 수차례 '진짜 사장을 만나 대화하고 싶다'며 청사를 찾았었지만, 오늘은 그 목적이 약간 다르다. 필수유지업무 소속 인력을 포함해 노조 조합원 1700명 전원이 사표를 던지고 업무를 거부하겠단 뜻을 전하기 위함이다.
많은 사업장에서 파업 등의 쟁의를 벌이지만 '사직서'를 눈앞에 들고 싸우는 일은 흔하지 않다. '고용 안정'을 요구하는 하청 노동자들이 사직서를 썼다는 것은 일면 모순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진짜 해고되면 어떡하냐'는 질문에 씩 미소를 짓고 마는 파업 참가자들의 표정 역시 잘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다. 거듭된 질문에 한 노동자는 이렇게 답했다.
"진짜 해고되면 할 수 없지요. 정창수가 우리를 진짜 해고하면 인천공항이 우리의 진짜 사용자라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것만 세상에 알릴 수 있다면 해고돼도 괜찮아요. 해고하지 못하면 일하라는 거고요. 우리는 일 해요. 노조도 하고, 정당한 대우도 받으면서 일하고 싶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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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마다 해고 불안…이 악몽을 끝내게 해달라"
유령들의 행진과도 같았던 행렬이 멈춘 청사는 이미 경찰들로 겹겹이 쌓여 있었다. 파업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정창수 나와라. 사표를 받거나 문제를 해결하거나 둘 중에 하나는 선택하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경찰과 파업 참가자 사이에 물리적 충돌도 이어졌다. 경찰 뒤편에는 공항공사 직원 여럿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노조의 사직서 제출 시도에 대해 공항공사 측은 "사직서를 받을 지위(직접 고용관계)에 있지 않으므로 당사자끼리 해결하라"는 공문으로 답했다. 경찰의 원천 봉쇄와 공항공사의 사용자성 부정으로 사직서 제출마저도 이렇게 무산됐다. 조성덕 인천공항지역지부 지부장은 "문을 열어라. 업체가 바뀌는 3년마다 일자리를 잃을까 노심초사하는 악몽을 이젠 끝내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인천공항을 찾는 방문객 수는 계속 틀어날 테다. 140만 원의 월급을 받는 인천공항 청소 노동자는 이번 파업으로 월급의 절반가량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인천공항경찰대는 이날 조 지부장 등 노조 집행부 8명에 대해 업무방해 및 침입 등의 혐의로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노사 평행선은 좁혀지기는커녕 엄중한 연말 시국을 닮아 외려 팽팽해지고만 있는 모양새다. 비정규직 비율 85% 인천공항은 이들의 '악몽'을 끝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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