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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천국' 독일에도 고민이 있다!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그들은 왜 노사갈등이 심하지 않을까 ⑥

노동조합과 정치권이 서로 연대하기 위해서 필요한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친노동이나 진보성향 또는 보수성향의 정당들은 노조와의 연대를 위해 어떠한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 위해 이번 편에서는 먼저 독일의 노조와 정당들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서 어떠한 지표들이 양측의 관계에서 중요한지 알아본 후(다음 편),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겠다.

독일 노조의 고민…정계 입지 축소

독일 노조의 정치참여는 과거에 비해 지속해서 후퇴하고 있다. 특히 노동시장이나 사회정책과 관련한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서 노조의 제도적 또는 비공식적 참여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노조와 정당 사이의 관계가 점차 소원해졌다. 독일 코포라티즘은 그 정신은 살아있으나, 공식적인 제도적 틀은 1995년 "고용을 위한 연대"라는 노사정 협의체 이후 해체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코포라티즘'은 우리말로 '조합주의' 또는 '사회적 합의주의'로 번역되는데, 노사문제를 노조와 사용자, 그리고 정부가 공동으로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남산에 있는 독일문화원에서 만났던 독일 기센대학의 아이젤 교수에 의하면, 90년대 말 이후 독일에서는 더 이상 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들에 따라 노조출신 인사들이 점차 정·재계의 엘리트 군(群)에서 탈락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노조가 각각의 정당에 얼마나 잘 정착하고 있는지는 보통 연방하원의 원내교섭단체 내 노조원의 비율, 연방하원에 진출한 노조지도자의 수, 노조원의 당원가입 등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노조가입여부 등은 개인정보에 속하기 때문에 실제로 그 정확한 비율을 알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다.

16대 연방하원(2005-2009)에서 노조출신 의원의 수는 전체의 약 36%를 차지하였다. 이를 정당별로 살펴보면, 사민당(SPD) 내 노조출신 의원은 73%, 좌파당(Die Linke) 65%, 녹색당 27%, 기민/기사당(CDU/CSU) 4%, 자민당(FDP) 2%의 비율을 보였다. 물론 사민당의 비율이 가장 높기는 하지만, 1970~80년대 지속해서 90%를 넘던 것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것이다. 다른 정당들도 사민당과 같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예외적으로 좌파당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7대 연방하원(2009-2013)에서 노조의 정책에 적극성을 보였던 의원들의 수는 사민당이 13명, 좌파당 8명, 기민당 3명으로 총 24명 정도인데, 이는 16대와 마찬가지로 1970년대와 비교하여 현저하게 줄어든 모습이다.

이러한 상황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현상을 반영한 것이나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원의 수가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는 점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노조에 의해 조직된 유권자 수의 감소는 노조의 존재의미 축소와 그 영향력의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 사민당에서는 노조원이 되는 것이 노동운동의 전통에 참여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점차 개인주의화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난 이러한 전통의 해체는 젊은 의원들로 하여금 노조와의 친밀감을 갖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독일 노조의 사민당 지지율이 감소한 이유는?

이처럼 노조 출신의 정치인들이 줄어드는 데에는 노조원의 지속적 감소와 함께 정치인의 전문성이 중시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의원활동 이외에 원래 가졌던 직업을 병행하는 의원들의 수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소위 직업정치인들이 과거 노조나 시민단체에서의 활동가들을 의회에서 몰아내고 있는 셈이다.

또한 독일정당에서의 정치인 충원방법이 변하고 있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오늘날에는 한 정당의 선출직 정치인 후보가 되는 데 있어서 과거처럼 당원증을 가진 성공적인 노조위원장보다 일찍부터 정당에서 활동하여 정당조직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밖에 노조 쪽에서도 정치권으로부터 자리를 넘겨받을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연방의원이 개인적으로 돌파력을 갖거나 추가로 무엇인가 만들어낼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조는 자체적으로 정치력을 갖추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특히 금속 및 공공서비스 노조의 지도부는 1980년대부터 정당들과 별도로 독립된 정치적 조직체로서 노조를 강화하려는 전략을 추진해 오고 있다.

노조위원장이 한 정당의 당적을 갖게 되면 노조의 정당정치적 지향은 그 의미를 잃게 되고, 다양한 정당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케 하려는 전략도 실행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노조들이 정치권에 대해 가능한 한 중립적 입장을 취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사민당에 대한 지지감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여기에서 좌파당은 예외인데, 그것은 노조가 주장하는 내용이 연방차원에서 좌파당의 정책과 아직 경쟁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민당은 전통적으로 독일노총(DGB)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선거에서 일시적인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노조진영 대다수의 지지를 받아왔다. 1998년 총선에서 사민당은 노조진영의 유권자 가운데 56%의 지지를, 기민당은 22%, 민사당(민주사회당; PDS)과 녹색당은 각각 6%, 자민당은 2.9%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2002년 이후 이러한 전통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2년 선거에서 노조진영으로부터 사민당의 득표율은 4.5% 감소하였고, 2005년 총선에서는 추가로 3.8% 감소하여 결국 과반수 지지가 무너지게 되었다. 기민당은 2002년 사민당의 감소에 힘입어 노조진영의 지지율이 4.3%가 증가하는 반사이익을 얻었지만, 2005년 선거에서는 다시 4.6%가 감소하였다. 반면, 좌파당(민사당의 후신)은 2005년 총선에서 6.9%의 증가를 기록하였다. 2009년 총선에서 사민당은 노조진영 유권자의 33.5%의 지지에 그쳤고, 좌파당은 5.2%가 증가한 17.1%를 기록하여 기민당(25%)의 지지율에 육박하였다.

이와 같은 사민당에 대한 노조진영의 지지감소는 1998년 사민-녹색당 연합정부(적록연정 1998-2005)에서 슈뢰더 총리가 '아젠다(Agenda) 2010'을 추진하면서 시작되었다. 2003년에 발표된 이 아젠다는 전후 독일 최대의 구조개혁정책으로 해고보호법의 적용완화를 통한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하르츠 IV(실업수당과 사회보조금의 통합)와 연금수령시기 조정(65세에서 67세부터로 늦춤) 등 복지혜택의 축소, 세율인하 및 세제개혁, 관료주의적 규제철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정책은 당시 사민당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연방상원과 노조 등 광범위한 저항에 직면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개혁의 당위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했다. 독일경제가 2006년 3.0%, 2007년 2.5% 등 건실한 성장을 보이고 실업률이 2005년 11.7%에서 2008년 7.7%로 지속해서 감소하는 등 실질적 성과를 보이자 긍정적 평가가 대세를 이루었다. 반면, 노동계 등 일각에서는 노동자의 실질소득이 감소했고, 가계의 실질소득 증대에도 효과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이 정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이에 따라 진보진영 지지자의 상당수가 좌파당으로 옮겨갔다.

'아젠다 2010'의 시행으로 독일경제는 소위 '유럽의 병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으나, 슈뢰더 총리는 2005년 총선에서 패하여 자리를 잃게 되었다. 기민당의 메르켈 총리는 슈뢰더의 개혁정책을 승계하고 지속했다. 그래서 세계금융위기와 유로존 회원국들의 재정위기 등에도 불구하고 2009년과 2013년 총선에서 모두 승리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슈뢰더가 시행한 비인기 개혁정책의 과실을 메르켈이 차지한 셈이 되었다.

한편, 소수정당으로서 자민당과 녹색당은 오랜 기간 노조와의 연관성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노조는 녹색당과의 관계를 점차 개선해가고, 좌파당과는 필수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과거 동독 집권당(SED)의 후신이었던 민사당(PDS)은 서독지역의 노조들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민사당이 서독지역의 '노동사회선거연합(WASG)'과 연합하여 2007년 좌파당으로 거듭나면서 현재는 연방하원에서 노조의 입장을 대변하는 유일한 정당이 되었다. 그러면 다음 편에서는 노조와 정당 간의 구체적 접점에는 어떠한 요소들이 있는지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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