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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도 땡볕도 뚫고 327㎞…"교수님, 왜 걷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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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도 땡볕도 뚫고 327㎞…"교수님, 왜 걷습니까?"

[탈핵 희망 국토 순례] 강원대학교 성원기 교수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 날씨에 326.9킬로미터를 걷겠다고 자처한 대학교수가 있다. 강원대학교 삼척 캠퍼스 성원기 교수(전자정보통신공학부)가 그 주인공이다. 부산 기장군 고리 핵발전소부터 경주시 양남면 월성 핵발전소를 거쳐 강원도 삼척까지 이르는 길이 그에게는 '고생길'이 아니라 '순례길'이었다.

지난 6월 6일, 성 교수가 탈핵을 염원하며 고리 핵발전소부터 시작한 순례길에서 그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와 함께 걷고 싶다고 달려온 사람도 있었다. 떠날 때는 혼자였지만 길 위에서는 함께였다. 그가 순례 동안 들고 다닌 하얀 깃발은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서명으로 가득했다.

9일 오후 강원도 삼척에서 '탈핵 희망 국토 도보 순례'를 막 끝낸 성원기 교수를 만났다. 그는 지친 기색도 없이 또렷한 눈으로 "핵은 인간이 다룰 수 없는 물질"이라고 외쳤다.


▲ 9일 오후 강원도 삼척시에서 열린 '탈핵 희망 도보 순례단' 기자 회견에서 성원기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프레시안(진유민)

"핵은 인류와 공존 불가능한 에너지"

- '탈핵 희망 국토 도보 순례'는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어떻게 도보 순례를 시작하게 되었나?

"지난 2010년 김대수 삼척 시장이 삼척 지역에 핵발전소 유치를 추진하면서 핵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과학기술자로서 핵에너지와 핵발전소를 공부할수록 점점 절망스러워졌다. 핵물질은 '굉장히 위험한' 물질 정도가 아니라 '인류와 공존이 불가능한 물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얘기부터 하자면, 나는 천주교 신자다. 그때부터 인류를 핵에너지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현장에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기도를 하는 현장을 고리 핵발전소부터 핵발전소 건설이 예정된 삼척까지로 정하고 걷기 시작했다.

6월 6일부터 10일까지, 나흘간 일단 고리 핵발전소부터 포항 구룡포까지 105.5킬로미터를 걸었다. 처음부터 혼자 걸으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특별히 알리지 않고서 혼자서 떠났다. 그러고 나서 6월 28일부터 7월 9일까지 다시 포항시 구룡포에서 삼척까지 221.4킬로미터를 걸었다."


- 고리 핵발전소를 시작점으로 삼았다. 핵발전소를 실제로 본 느낌이 어땠나?

"고리 핵발전소는 물론, 경주 월성 핵발전소와 그 주변 지역을 지났다. 정말 생생하게, 인류와 공존할 수 없는 시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핵발전소 자체만으로도 불안한데 현재 불량 부품 등 위험이 더 커진 상태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도 높더라. 핵발전소 주변 지역에 한국수력원자력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가득했다. 실제로 핵발전소 주변 주민이 '핵발전소 비리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는다고 하지 않나. 현지 주민에게 핵발전소의 위험은 현실이다."


한국, 핵발전소 밀집도 세계 1위

- 계속해서 핵발전의 위험을 강조하고 있는데, 어떤 것이 특별히 문제라고 생각하나?

"핵발전은 핵분열을 일으켜 열을 발생시킨다. 핵분열 과정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위험하다.

또 핵발전소가 일상적으로 내뿜는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핵폐기물에 포함된 플루토늄 239는 핵폭탄의 원료이다. 그런데 이 플루토늄 239의 반감기는 약 2만4000년이다. 이 플루토늄 239가 무해한 물질이 되려면 최소한 20만 년 이상이 걸린다.

핵폐기물에는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자연환경으로 많이 누출된 방사성 세슘 137도 들어 있다. 이 세슘 137의 반감기는 약 30년인데, 무해한 물질이 되려면 그 열 배인 300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야 한다. 우리가 앞으로 30년 정도 전기를 좀 더 쓰겠다고 바로 다음 세대 또 그다음 세대가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 사실 핵발전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도 그 위험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핵발전소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핵발전소를 비판하면 반드시 따르는 반론이 '그러면 전기를 어떻게 쓸 거냐' 이런 얘기다.

"독일은 이미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탈핵'을 국론으로 정하고 2022년까지 모든 핵발전소 폐쇄를 추진 중이다. 내가 3개월 동안 유럽을 돌아다니며 각국의 전력 수급 정책을 몸소 느낀 적이 있는데, 독일은 신·재생 에너지로 나라가 잘 굴러가고 있다. 이렇게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동북아시아를 제외한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핵발전은 철퇴를 맞고 있다.

한국인은 마치 핵발전소에 의존하는 국가가 매우 많은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한국을 제외하면 핵발전에 의존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의 말처럼, 핵에너지에 의존하는 국가는 드물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2010년 주요 에너지 통계'를 보면 핵발전소 발전량 상위 10개 국가가, 세계 핵발전소 전력량의 84.6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23기의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나라다.

한국은 총 전력의 약 30퍼센트를 핵발전소에 의지하고 있다. 이른바 한국판 '핵발전 르네상스'가 실현된 2024년에는 이 수치가 약 50퍼센트로 늘어날 전망이다. 프랑스에 이어서 두 번째로 핵발전소 의존도가 높은 국가가 되는 것이다. 국토 면적당 핵발전소 밀집도는 지금 현재도 단연 세계 1위다.

- 이렇게 한국에서 핵발전소가 승승장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의 '핵발전소 의존' 뒤에는 핵발전소 건설로 이득을 보는 대기업이 있다. 원가도 안 되는 값으로 핵발전소 전기를 사서 산업용 전기로 펑펑 써댄다. 거대 자본이 인류에게 엄청난 위협을 주는 범죄 행위다. 그렇지만 누구도, 심지어 언론도 핵발전소의 위험성과 그것을 둘러싼 검은 커넥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검은 커넥션의 핵심에는 최근 그 존재감이 확실히 드러난 '핵 마피아'가 있다. 대기업,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같은 핵발전소 운영 업체, 학계, 언론, 정부 등이 한데 뭉쳐 핵발전소를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 공급처로 홍보한다. 한국에서 핵에너지가 '깨끗하고 값 싼 에너지'라는 명성을 얻은 이유다.

- 유럽은 한국과 달리 핵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고 느꼈나?

"사실 개인 한 명 한 명이 그 위험성에 느낄 필요는 없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이 복잡한 내용을 모든 사람이 글을 찾아 읽고 학습하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다. 정책 당국자만 잘 알고 있어도 된다. 그런데 우린 거꾸로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숨기고, 오히려 일반 시민들이 위험에 대해 알리려고 애쓴다.

정부가 '핵발전소가 이런 점에서 위험한데 그래도 지어도 되겠느냐'고 국민에게 물어봐 줘야 한다. 녹생당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유럽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


"한순간에 한반도가 날아갈 수 있다"

지난해 신규 핵발전소 예정 구역으로 지정 고시된 삼척 이야기가 이어졌다. 지정 고시가 해제되지 않는다면, 핵발전소가 그의 집 근처에 들어서게 된다.

2012년 10월, 삼척에서는 핵발전소 유치를 추진한 김대수 시장을 탄핵하는 주민 소환 투표가 강원도에서 최초로 치러졌다. '삼척 핵발전소 반대 투쟁위원회'가 두 달 동안 삼척시 유권자 6만여 명 가운데 1만2000명의 서명을 받았지만 투표율은 27퍼센트였다. 개표에 필요한 요건인 3분의 1을 넘지 못해 결국 투표함을 열지 못했다.

- 주민 소환 투표 당시 결국 개표하지 못했다. 이후에 달라진 점이 있나.

"반대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다만 지방자치단체의 억압이라든가 하는 외압 때문에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그 이후 12월 19일 치러진 삼척시의회 보궐 선거에서 '탈핵'을 공약으로 내건 이광우 현 의원이 당선됐다. 2위와 3위 후보의 표를 합친 것보다 많은 표를 얻었다.

지난해 7월에는 강원대학교 삼척 캠퍼스 교수 204명 중 107명이 핵발전소에 반대한다고 서명했다. 내가 그 서명을 받으러 다녔는데, 시작할 때는 기껏해야 50명 정도를 기대했다. 과반수의 교수가 서명하기에 나도 놀랐다. 주민 소환 투표 결과가 아쉽긴 하지만, 이것이 바로 민심이다."


- 최근 핵발전소 불량 부품 비리가 연이어 드러났다. 남의 일 같지 않았을 것 같다.

"굉장히 불안하다. 핵발전소에 사고가 일어나면 안전 계통에 동작 신호를 보내주는 제어 케이블이 고장 나면 끝이다. 한반도 전체가 날아갈 수 있는 심각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은 부도덕한 정도가 아니다. 지난해 고리 1호기 정전 은폐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정직됐던 간부들이 모두 몇 달 뒤 복직되지 않았나.

이게 바로 지금 대한민국 핵발전소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징표다. 고리 1호기에서 핵발전소의 냉각수 전원이 꺼진 것은 지진해일로 정전이 난 후쿠시마 상황과 비슷하다. 자칫하면 일본 후쿠시마처럼 되는 것이다. 그렇게 엄청난 사고였다. 그런데도 반성할 줄을 모른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핵발전소는 삼척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제다. 사실 삼척 시장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 핵발전소를 깨끗이 포기하고 에너지 정책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 '제2차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은 탈핵으로 가는 에너지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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