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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NLL을 위태롭게 만드는가?

[정욱식 칼럼] 새누리당의 정략적 의도, 국가안보 위협

'판도라의 상자'가 국가정보원에 의해 기습적으로 열렸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과 발췌본을 공개한 국정원의 의도는 24일 오후에 낸 보도자료에 잘 드러난다. 2급 비밀을 기밀 해제한 데에는 "지난 20일 새누리당 정보위원을 통해 회의록 발췌본이 공개된 이후에도 '조작·왜곡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란다.

쉽게 말해 대화록과 발췌문을 공개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동시에 불법 선거 개입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정원이 국정조사를 받을 위기에 처하자 NLL 문제로 국면전환을 시도하려고 한 것도 핵심적인 배경이다.

대화록 공개와 관련해 여야와 합의도 없었고, 국회의 요청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장이 초법적인 권한을 행사한 것은 국정원의 정치적 의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깨고 국내 정치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은 순간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과연 'NLL을 포기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일까? 24일 자정 현재 언론을 통해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발췌본이다. 따라서 북방한계선(NLL) 논란 등 정상회담 때 오고 간 대화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7년 10월 3일 오전 공식 회담에 앞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 사진기자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언론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나는 (김정일) 위원장님과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NLL은 바꿔야 한다"는 발언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이 대목만 놓고 보면 '포기'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발췌본만 유심히 읽어봐도 이러한 해석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은 NLL을 잠정적으로 둔 상태에서 서해평화협력지대를 북한에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정원이 의도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문제성 발언만 짜깁기해서 발췌본을 만들었을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대화록 전문을 보면 이러한 해석에 더욱 힘이 실릴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확신이다.

김정일의 제안과 노무현의 역제안

발췌본에 따르면 NLL 문제를 먼저 꺼낸 쪽은 고(故) 김정일 위원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먼저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 또 남측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 이것 사이에 있는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는가"라는 제안을 꺼내든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노 전 대통령이 NLL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피력하기 전에 국방백서에서 '주적 표현'을 삭제한 것과 미국이 작성한 작전계획 5029를 개념계획으로 묶어두려고 한 것 등을 설명하면서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그 흐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굳혀나가는 것은 남북관계에 성과있는 진전이 있어야 된다"는 점을 강조한 부분이다. 이는 맥락상 NLL 문제에 대한 북한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분위기 조성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 그러나 현실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며 NLL 문제의 복잡한 성격을 설명했다. NLL이 국제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은 미국 비밀문서에서도 확인된 것이고(관련기사 보기), 또한 노 전 대통령도 정상회담을 전후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발언한 바 있다는 점에서 시비를 걸 사안은 못 된다.

정작 노 대통령이 방점을 찍은 것은 "(NLL이) 현실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라고 한 대목이라고 보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이는 평화수역을 설정하자는 김 위원장의 제안에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공감을 표하면서도 "단지 NLL 말만 나오면 전부 다 막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다거나, "NLL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겨 가지고,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돼 있다"고 발언한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논란이 되고 있는 발언은 그 다음에 나온다. 앞서 소개한 "나는 위원장님하고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NLL은 바꿔야 한다"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다음 대목이다.

"그러나 이게 현실적으로 자세한 내용도 모르는 사람들이 민감하게, 시끄럽긴 되게 시끄러워요. 그래서 우리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안보군사 지도 위에다가 평화 경제지도를 크게 위에다 덮어서 그려 보자는 것입니다. 전체를 평화체제로 만들어 쌍방의 경찰들만이 관리하자는 겁니다."

이 발언의 취지는 현시점에서 NLL을 거론해봐야 논란만 가중될 것이니 서해 해상분계선 문제는 쌍방간에 상당한 수준의 신뢰가 구축된 이후에 협의하고 우선 서해평화협력지대를 통해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공동 번영의 미래를 열어가자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러한 해석은 노 대통령의 "내가 가장 핵심적으로 가장 큰 목표로 삼았던 문제를 위원장님께서 지금 승인해 주신거죠"라는 발언을 통해 뒷받침된다. '승인'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는 않지만, 맥락 상 NLL을 둔 상태에서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창설하자는 제안에 김 위원장의 동의를 구하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NLL을 위태롭게 하는가?

정리하자면, 김정일 위원장은 남측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과 북측이 주장하는 해상분계선 사이를 평화수역으로 지정하자고 '먼저'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평화수역 자체에는 동감을 표하면서도 NLL 이남과 북측이 주장하는 해상분계선 이북 사이로 지정하는 것은 난색을 표하면서 우선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설치하자고 역제안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정확하다면, 노 대통령은 NLL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해상분계선 합의 이전까지 '사수'하려고 했던 것이 더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김 위원장이 이에 대해 완전히 동의했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행간의 맥락을 짚어보면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의 제안에 대체로 동감을 표하면서 해상분계선 문제는 평화협정 논의 때로 미루자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누리당과 국정원은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상회담 결과를 왜곡하고 있다. 작년 대선 때 재미를 봤다는 관성이 국정원의 선거 개입이라는 민주화 이후 초유의 국기 문란 사건을 덮으려는 유혹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건 명백한 반민주적 행태일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이 그토록 강조하는 'NLL 사수'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새누리당의 주장대로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면, 박근혜 정부에게는 엄청난 부담을, 북한에는 NLL 무력화 공세를 강화할 수 있는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정당의 대표가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격으로 김정일을 만났고, 그 결과는 10.4 선언으로 이어졌다. 이 선언의 핵심 내용이 바로 서해평화협력지대 창설이다. 그런데 이러한 합의가 새누리당의 주장대로 NLL 포기를 전제로 한 것이라면 "남북한의 모든 합의를 존중하고 이행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된다. 하여 묻지 않을 수 없다. NLL을 위태롭게 하는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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